소설

 

이홍

1978년 서울 출생. 2007년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하며 등단. 장편소설 『걸프렌즈』 『성탄 피크닉』 등이 있음.

 

 

 

나의 메인스타디움

 

 

장미모종의 여린 뿌리들이 깊은 땅 밑에서 마녀의 머리카락처럼 구불구불 자라는 동안 아이는 아홉살이 되었다. 아이의 세번째 탄생일을 기념하여 시멘트 담장 아래 심어놓은 장미는 그해에도 피처럼 붉은빛으로 만개했고 가시들은 더없이 날카롭게 솟아올랐다. 장미로 에워싸인 정원에 덩그마니 앉아 있던 아이는 기역자로 꺾어올린 무릎에 수첩을 올려두었다. 스프링 달린 수첩에 적힌 두개의 문장은 카세트 스피커에 귀를 바짝 붙이고 암기한 이국의 언어를 한글로 옮겨둔 것이었다. 짧은 두개의 문장은 자신을 소개하고 서울에 온 낯선 외국인에게 환영하는 마음을 전달할 유일한 방법이었다. 혀 밑에 고인 말간 침을 습- 삼키고 아이는 글자를 따라읽었다. 이국의 언어를 내뱉고 나면 피가 고인 듯 입천장이 비릿해지고 가시가 박힌 것처럼 혀뿌리가 깔깔해졌다. 수십번이나 발음해도 이질적인 언어는 혀에 착 감기지 않고 엉켜버렸다. 스스로의 발음에 확신이 서지 않았던 아이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떨어져내린 장미꽃잎들이 바람에 날려 정원 가득 펼쳐져 있었다. 장미꽃잎이 짓이겨질까봐 발돋움을 하고 부엌으로 겅중겅중 뛰어가 냉장고 문을 열어젖혔다. 튜브형 오뚜기 마요네즈를 집어들고 정원으로 나와서 입안에 마요네즈를 가득 짜넣었다. 쓴 약을 먹을 때처럼 숨을 참고 느끼한 덩어리를 단숨에 꿀꺽 삼켰다. 하늘을 향해 둥글게 벌린 목구멍으로 저 멀리 창공을 지나던 날파리만한 비행기가 날아든 듯했다. 내장을 타고 착륙한 비행기의 문이 스르륵 열리고, 바글거리는 외국인들이 웃으며 손을 흔들어주었다. 자신감이 차오른 아이는 큰 소리로 외쳐보았다. 마요네즈 박 선. 웰컴 투 코리아!

 

예순여덟명의 학생들이 빼곡하게 들어찬 교실에서 아이는 손을 번쩍 들었다. 국민학교 2학년 2학기 임원선거가 실시되고 있는 2교시였다. 키 순서에 따라 뒷자리에 앉아 있던 아이는, 앞에서 흔들거리는 수많은 손에 자신의 손이 가려질까봐 의자에 붙인 엉덩이를 아주 조금 들어올렸다. 손을 든 학생은 무려 스무명이었다. 스무개의 이름들이 모두 칠판에 적혔다. 맨 앞자리부터 조악한 질감의 회색 쪽지가 책상에서 책상으로 전해지면서 교실 안에는 정적이 흘렀다. 빨간 학교직인이 찍힌 쪽지에는 칠판에 적힌 스무개의 이름들 중에서 단 한개의 이름만 기입할 수 있었다. 물론 자신의 이름을 적어도 무방했다. 아이는 자신의 성을 반쯤 적다가 성이 같은 다른 아이의 이름을 휘갈겼다. 하필 그 순간에 짝이 제 쪽지를 힐끔 엿본 탓이었다. 두번 접힌 쪽지는 각 줄 맨 뒷자리에 앉은 아이들이 걷어갔다. 곧바로 투표함이 열렸고 칠판 하단에 적힌 아이의 이름 옆에는 ‘正’자에서 한 획이 빈 채로 갸우뚱하게 서 있었다. 두 눈을 꾹 감고 있는 동안 마지막 쪽지가 펼쳐졌다. 이윽고 아이의 이름 옆으로 ‘正’자가 완성되었고, 그해 가을, 민주적인 방식으로 아이는 2학기 여자부반장으로 선출되었다.

임원선거를 마치고 난 쉬는 시간에 초록색 플라스틱 우유박스가 교실로 배달되었다. 우유급식 신청서에 아이의 엄마가 도장을 찍어서 보냈고, 2교시가 끝나는 쉬는 시간마다 아이는 우유를 받았다. 이 나라 어린이들의 평균 신장을 올리자는 명목으로 ‘흰우유 먹기’가 붐이었다. 학교에선 한달치 우유급식비를 낼 수 있는 학생이라면 누구나 흰우유를 먹어야 했다. 쉬는 시간에 흰우유를 받아 먹는 아이들은 서양인들처럼 키가 커지고 피부색이 하얘진다고 믿었다. 우유를 받지 못한 아이들은 부러운 눈길로 주위를 둘러보거나 주뼛거리며 화장실에 갔다. 아이는 교탁 앞으로 나가서 우유를 받아와 가방에 집어넣었다. 흰우유를 먹는 건 언제나 아이에게 고역이었다. 대중목욕탕이나 슈퍼마켓에서라면 색소가 첨가된 딸기우유나 초코우유나 커피우유를 골랐겠으나 학교에선 그럴 수 없었고, 다른 친구에게 줄 수도 있겠지만 그러면 자신이 흰우유를 먹지 못한다는 사실이 들통날 수 있었다. 아이는 하굣길에 사람들의 눈을 피해서 우유를 버리곤 했다.

종례 종이 울리고 아이는 새로 선출된 반장과 남자부반장과 함께 교무실로 내려갔다. 담임선생님들 책상 앞으로 각반의 2학기 임원들이 불려와 있었다. 때마침 교감선생님이 커다란 상자를 들고 교무실로 들어왔다. 몇몇 선생님이 웅성거리며 교감선생님 자리로 몰려갔다. 아이는 발돋움을 하고 선생님들의 어깨를 넘겨다보았다. 교감선생님이 상자를 풀더니 두 손을 들어올렸다. 교감선생님의 두 손엔 창문에 달린 모기장과 흡사한 푸른 천에 금박 수가 화려하게 놓인 옷이 들려 있었다. 한복도 아니고, 일상복과 전혀 다른 종류였지만 뭐라고 설명하기는 어려웠다. 아무튼 한눈에 쏙 들어오는 아름다운 옷이었다.

 

“엄마, 나 2학기 부반장 됐어!”

집으로 돌아간 아이가 내뱉은 첫마디였다. 현관 앞까지 나온 엄마는 기세등등해진 아이의 정수리를 쓰다듬어주며 약간 아쉽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기왕 하는 거 반장이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 아이는 제 방으로 쏙 들어가서 책가방을 벗어던졌다. 학습지 선생님이 숙제로 내준 구구단 문제지가 일주일치나 밀려 있었다. 학교 숙제인 그림일기도 써야 했다. 화장실로 가서 주홍색 다이얼 비누로 깨끗이 손을 씻고 변기 앞 타일 벽에 붙어 있는 종이를 휙 뜯어서 제 방으로 가져갔다. 코팅된 종이엔 구구단 2단부터 9단까지의 답이 모두 적혀 있었다.

일주일치 구구단의 답을 써낸 아이는 그림일기장을 펼쳐놓고 무얼 그릴까 고민하면서 뭉툭해진 연필심을 자동연필깎기에 밀어넣었다. 유치원에 다닐 적부터 일주일에 한번, 미술학원에 다녔으나 그림엔 영 소질이 없는 아이였다. 뱀이나 닭을 그려도 죄다 둥그런 빈대떡처럼 그려졌고 심지어 개미를 그려놓아도 코끼리처럼 뚱뚱해 보였다. 연필심이 가시처럼 뾰족해지는 동안 아이의 머릿속으로 난데없이 교무실에서 곁눈질한 옷이 떠올랐다. 금박으로 수놓아진 푸른 옷. 그러나 아이가 판단하기에 그건 오늘의 일과와 특별한 관계가 없었고, 일기란 그날 있었던 일을 정직하게 써내기로 약속한 것이었다. 옷을 그린 다음엔 뭐라고 쓴단 말인가. 그냥 그런 옷을 보았다고? 그게 무슨 옷인지 궁금했다고? 아이는 포니테일로 묶은 긴 머리카락을 흔들며 일기장에 스케치를 시작했다. 교탁 위에 놓인 투표함을 그린 후에 색연필로 꼼꼼하게 칠했다. 그런데도 투표함처럼 보이지 않아서 검은 색연필로 ‘투표함’이라고 적었다. 그리고 짐짓 비장한 표정으로 그림 하단의 네모칸들을 채워나갔다.

나는 정직하고 올바른 부반장이 될 것이다.

날이 기울고 아이는 텔레비전 앞으로 달려갔다. 화면에는 새로 짓고 있는 각종 운동경기시설 건축물들이 파노라마로 지나갔다. 빠른 속도로 완공되어가는 시멘트빛 경기장들을 보고 있자니 콧날이 시큰해졌다. 어떤 날엔 글러브로 쌘드백을 쳐대는 권투선수가, 어떤 날엔 트랙을 달리는 육상선수가 나왔고, 또 어떤 날엔 고무처럼 자유자재로 몸을 굽혔다 펴는 체조선수가 저녁밥상 앞에서 새처럼 날아다녔다. 종목을 달리한 국가대표 선수들이 등장해서 구슬땀을 내비칠 적마다 애국가가 잔잔하게 깔렸고 그때마다 아이는 애국조회시간에 그랬던 것처럼 숟가락을 내려놓고 제 손바닥을 가슴께로 갖다댔다.

텔레비전 화면은 거리 인터뷰로 이어졌다. 마이크 앞에 선 시민들은 기쁨을 감추지 못한 고양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나라에서 국제적인 큰 행사를 치르게 된 게 무척 자랑스럽습니다! 경사죠, 경사! 인터뷰를 마친 리포터는 이렇듯 대대적이고 국제적인 행사를 맞아서 거리청결에 힘써야 한다고 마지막 멘트를 읊었다.

“쳇, 눈 가리기지 뭐.”

엄마가 밥상 위에 팔팔 끓어오르는 생태찌개 냄비를 내려놓다가 시큰둥하게 말했다. 유치원생인 여동생이 호기심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왜 눈을 가려? 누가 숨바꼭질 하는 거야? 아빠가 엄마에게 눈을 부라리며 쓸데없는 소리 말라고 호통을 쳤다. 엄마가 그게 왜 쓸데없는 소리냐고 따지고 들었다. 늘 이런 식이었다. 프로야구 씨즌이면 아빠는 열렬한 OB팬이었고, 엄마는 선동렬이 투수로 있는 해태를 응원했다. 선거철이 다가오면 아빠는 무조건 1번을 외쳤고, 엄마는 무조건 3번을 찍겠다고 했다. 그러다 아빠와 엄마의 사소한 말다툼은 격렬한 싸움이 되었다. 프로야구 씨즌이나 선거철마다 아빠 엄마의 싸움이 잦아져서 아이는 프로야구나 선거가 좋아질 수 없었다.

 

평소보다 이른 아침에 깨어난 아이는 다른 때보다 공들여 오래도록 이를 닦았다. 담임선생님이 무슨 인터뷰라고는 말해주지 않았지만 오늘 2교시에 임원을 맡은 2학년 여학생들을 대상으로 교장실에서 인터뷰를 할 거라고 했다. 교무실에 모여 있던 2학기 임원들은 그게 교감선생님이 들어 보인 푸른색 옷과 관련된 인터뷰일 거라고 추측했지만 확실한 건 아니었다.

옷장과 서랍장에 들어 있는 옷을 몽땅 방바닥으로 꺼내 펼쳤다. 하얀 반달칼라가 달린 연보라색 김민제 원피스와 검정색 벨벳 천에 하얀 프릴이 달린 원아동복 원피스를 두고 갈팡질팡하다가, 옷더미 밑에서 비죽 튀어나온 블라우스를 끄집어냈다. 목밑까지 바짝 단추를 잠그게끔 되어 있는 단정한 하얀 블라우스는 언젠가 이모네 집에 놀러갔을 때 외사촌언니가 외교관 면접을 보러 간다며 입었던 것과 비슷한 디자인이었다.

학교 갈 채비를 마치고 안방으로 들어가서 옻칠된 화장대 서랍장을 열었다. 그곳엔 늘 비상금으로 만원짜리 몇장이 포개져 있었다. 아이는 만원짜리 한장을 빼내어 호주머니에 찔러넣었다. 학교 가는 길에 ‘헤어쎈스’간판이 붙은 미장원 문을 열었다. 문에 달린 종이 쨍그랑 울리고서야 뒷방에서 미용사가 눈곱을 떼면서 나왔다. 기다란 전신거울 앞 의자에 앉자마자 잠이 덜 깬 미용사가 엄마는? 하고 물어왔다. 당당하게 주머니에서 만원짜리를 꺼내보였다. 부스스한 머리모양의 미용사에게 신뢰가 가진 않았지만 어쨌든 이 동네에서 아는 미장원은 이곳뿐이었다.

“머리를 자르고 싶니?”

“아니요. 오늘 중요한 날이니까 예쁘게 해주셔야 해요.”

미용사가 고데기를 기계에 넣고 예열했다. 뜨겁게 달궈진 고데기를 가위처럼 벌려 잡고 철컥거린 다음 코 가까이 대어보았다. 아이의 긴 머리카락 위로 아지랑이 같은 김이 피어올랐다. 거울 속 아이의 머리카락들이 구불구불해졌다. 미용사는 아이의 정수리에 곧게 가르마를 타서 양 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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