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박민정 朴玟貞

1985년 서울 출생. 2009년 『작가세계』로 등단. 소설집 『유령이 신체를 얻을 때』 『아내들의 학교』, 장편소설 『미스 플라이트』 등이 있음. dentata05@hanmail.net

 

 

 

나의 사촌 리사

 

 

지난겨울, 나는 리사를 만나러 토오꾜오에 갔다. 리사는 나까메구로에 있는 브런치 까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녀가 혼자 사는 2LDK에서 나는 일주일간 머물렀다. 한칸은 다다미, 한칸은 입식 침실로 되어 있는 집에서 나는 오랜만에 휴가를 즐기는 기분이었다. 리사가 홀로 일구어놓은 공간은 쾌적했다. 리사가 출근하고 나면 나는 청소기로 다다미바닥을 열심히 밀었고 빨래건조대에 가득 걸려 있는 손수건을 다리고 개켰다. 집안일을 도와준다는 핑계로 리사의 집 곳곳을 훑어보는 건 즐거운 일이었다. 리사의 화장대와 책상을 구경할 때면 아직도 어린 시절 리사가 내게 주던 선물꾸러미를 볼 때처럼 황홀했다. 몇권 되지 않았지만 작은 문고판 책들, 정갈한 세로쓰기로 제목이 적힌 책등을 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일본산 세제의 향기를 나는 좋아했다. 섬유유연제를 잔뜩 풀어 빨래를 하고 상큼한 비누거품을 충분히 내어 설거지를 한 후 리사가 일하는 까페로 가곤 했다.

리사는 내게 여러가지 음식을 서빙해주었다. 팬케이크, 오믈렛, 함박스테이크, 샐러드. 나는 냅킨과 접시의 무늬를 꼼꼼하게 관찰하며 음식을 천천히 먹었다. 창밖에 보이는 교각의 철근과 나뭇가지들이 앙상했다. 봄이면 벚꽃이 활짝 피는 동네라고 했다. 리사의 한국말은 갈수록 서툴러졌다. 리사는 ‘만발한다’거나 ‘만개한다’는 표현을 쓰지 않았다. 꽃무늬 앞치마를 두른 리사는 쉬지 않고 까페에 들어오는 사람들에게 서빙하기 위해 바쁘게 움직였다.

그런 리사를 관찰했다. 리사에 대해 쓰려고 마음먹고 토오꾜오까지 갔는데, 정작 리사를 만나자 어떤 이야기를 써야 할지 도무지 생각나지 않았다. 한 이틀간 나는 한줄도 쓰지 못하고 까페에 앉아만 있었다. 리사는 첫날 재킷을 걸치며 내게 다가와 물었다. 오늘은 일 좀 했어? 다음 날 리사는 다시 똑같은 질문을 했다. 리사가 재촉하는 것 같은 상황이 조금 우습게 느껴졌다. 리사는 한줄도 쓰지 못했다고 말하는 내게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어떡하냐, 일본까지 왔는데.

리사는 내가 쓰려는 글이 어떤 건지 몰랐다. 그런 리사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글은 한줄도 못 썼지만, 스케치 노트에 연필로 리사의 모습을 그리기는 했다. 얼굴에 기미가 끼고 머리카락도 많이 빠진 서른여섯의 리사. 내가 그려내는 리사의 모습은 한결같이 무기력하고, 실패한 사람 같아 보였다. 대학교 2학년 때 제출한 소설에 리사를 본뜬 ‘유미’를 등장시킨 적이 있었다. 리사의 삶을 조금 베껴 넣은 첫번째 캐릭터였다. 그때 창작 세미나 교수는 “이건 우울한 개인의 일상일 뿐이야”라고 말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나는 조금도 발전하지 못한 것이었다.

리사는 자기 이야기가 쓸 만한 거냐고 묻곤 했다. 그외에 다른 것들에 대해선 묻지 않았다. 이십대 초반에 그녀가 고모와 함께 잠깐 한국에 들렀을 때 나는 처음으로 인터뷰를 시도했다. 나는 연신 미안하다고 말했다. 언니, 이해해줄 거지? 거듭 말하는 내게 리사는 의아한 얼굴을 하고 되물었다. 지연이 쓰려고 하는 게 뭔데 그래? 나야 고맙지.

반면 리사의 어머니인 고모는 내가 소설가가 되었다고 말했을 때부터 성마른 반응을 보였다. 그때 한국에 다니러 온 고모는 내 손을 붙들고 말했다. 우리 이야기는 쓰지 마라. 그녀가 말하는 ‘우리’는 자신과 리사였다. 결코 하나로 퉁칠 수 없는 삶이지만, 결국에는 서로 연관될 수밖에 없는 두 사람의 이야기. 나는 바로 그런 이야기를 쓰려던 것인지도 몰랐다. 내겐 고모가 모르는 리사의 비밀이 있다, 오직 그 사실만을 굳게 믿으면서.

그러나 오랜 숙제였던 리사의 이야기를 쓰기 위해 비로소 토오꾜오에 있는 그녀의 맨션까지 찾아가고 나서야, 나는 더없이 할 말이 없다는 것을 실감했다.

 

 

1991년의 리사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리사는 나보다 한해 먼저 태어났지만 만 나이로 나와 동갑이었다. 우린 일곱살이었다.

—서울 사람들 왜 이렇게 못생겼어? 토할 것 같아.

지금의 리사는 그때만큼 생기 넘치지 않았다. 애초에 나는 리사를 실패자로 보고 있었다. 내 머릿속의 리사는 어린 시절부터 이십대까지의 리사, 고정된 하나의 이미지였다. 리사가 ‘메가미(メガミ)’를 탈퇴한 후에도 가끔 노래를 불렀다는 사실을 나는 애써 모른 척했던 것이다. 리사는 오직 메가미의 리드보컬이자 센터로서 팬들이 호명하는 불굴의 ‘여신’님이었다. 이십대 중반쯤엔 아끼하바라의 전자상가 축제에서 관객 다섯명을 앞에 두고 “오따꾸들이여, 부활해!”를 외치던 리사가 있지만 나는 그것을 유튜브로 처음부터 끝까지 감상하고는 곧 잊어버리고 말았다. 내가 만들고자 하는 리사의 이야기에 맞지 않는 이미지였으므로. 내게 리사는 이십대 초반에 화끈하게 실패해서 거품처럼 날아가버린 ‘왕년의 아이돌’일 뿐이었다.

나까메구로에서 리사를 만났을 때, 나는 리사가 생각보다 건강하게 지내고 있다는 것에 당황했다. 리사는 고모와 떨어져 자기만의 살림을 알차게 일구고 있었고, 비록 아르바이트생 신분이었으나 주 5일을 까페에서 열심히 일했다. 나는 리사가 아직도 고모에게서 독립하지 못한 채 변변한 일자리도 없이 하루하루를 허비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상상했는지도 몰랐다. 더욱 심하게는 자신의 공연 포스터가 잔뜩 나붙은 방구석에서 히끼꼬모리로 지내는 모습을.

‘메가미’ 이후에, 리사 모녀가 한번씩 한국에 들를 때 나는 리사를 건성으로 대했다. 그녀들이 할아버지를 뵈러 친정인 우리 집에 온다고 할 때마다 자리를 비우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리사와 깊게 이야기를 나눈 적은 별로 없었다. 내심 다 망한 처지에 뭐하러 한국에 들어오나, 생각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때쯤 내 머릿속에 박제된 리사의 이미지는 더이상 예쁘지도 않고 화려하지도 않은 한물간 아이돌이었다. 내게는 고모가 선물한 메가미의 음반 네장이 있었지만 제대로 들어본 적 없었다. 서랍 한구석에 리사가 한국에 올 때마다 주었던 굿즈, 세일러복을 입은 리사의 얼굴이 담긴 스티커나 엽서 따위가 뒹굴 뿐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언젠가 꼭 리사의 이야기를 써보고 싶었다.

—지연은 왜 내 이야기를 쓰려는 거야?

내가 토오꾜오에 머무른 지 삼일째 되던 밤이었다. 리사는 헤어터번을 두르고 기초화장품을 얼굴에 꼼꼼하게 펴 바르며 무심한 듯 물었다. 나는 낮에 리사가 서빙해준 점심을 먹고 다이깐야마의 백화점에 다녀왔다. 글이 안 써진다는 핑계로 쇼핑을 잔뜩 하고 돌아온 날이었다. 텀블러니 찻잔이니 하는 것들을 펼쳐놓고 가만히 보고 있었다. 언젠가 리사가 질문한다면 이렇게 대답해야지, 준비한 말들이 무척 많았다. 그러나 막상 질문을 받자 아무 말도 떠오르지 않았다. 나는 엉겁결에 대답했다.

—언니는 특별하니까. 이런 사람을 알게 되는 경우가 몇이나 있을까.

내뱉자마자 아차, 싶었다. 리사는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

—하긴 그렇지. 자기가 아이도루였다고 착각하는 애들 몇만명을 다 더한대도 그게 얼마나 되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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