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윤대녕 尹大寧

1962년 충남 예산 출생. 1990년 『문학사상』으로 등단. 소설집 『은어낚시통신』, 장편 『옛날 영화를 보러 갔다』 『추억의 아주 먼 곳』 『미란』 등이 있음. parisbell@hanmail.net

 

 

 

낙타 주머니

 

 

1

 

낙타 주머니는 낙타 그림이 있는 검은 주머니이다. 다시, 낙타 주머니는 낙타를 끌고 가는 소년의 모습이 수놓인 둥그런 주머니 혹은 가방이다. 두툼한 천으로 만든 것으로 양쪽에 끈이 달려 있어 어깨나 목에 걸고 다닐 수 있다. 빨간 고깔모자를 쓴 소년은 무릎까지 내려오는 보라색 긴 털옷에 파란 바지를 입었고 펠트화로 보이는 회색 신발을 신었으며 왼손엔 긴 지팡이를 들고 있다. 오른손은 고삐를 쥐고 있다.

이 주머니를 더욱 아름답게 하는 것은 낙타 머리 위에 달처럼 비스듬히 떠 있는 ‘신평(新平)’이라는 붉은 낙관이다. 그런데 왠지 만든 사람의 아호나 이름 같지가 않다. 지명(地名)이 아닐까라고 추측도 해보지만 지도를 펴놓고 찾아봐도 그런 곳은 보이지 않는다. 지금 와서 붙잡고 물어볼 사람도 없다.

낙타 주머니가 내 손에 들어온 것은 1995년 2월 14일이었다. 낡은 여행수첩에 그렇게 적혀 있다. 중국, 투루판 근처 화염산 남록에 있는 고창고성 입구에서였다. 투루판은 천산북로와 천산남로의 분기점에 위치한 사막의 도시로 조상이 터키계 유목인으로 알려진 위구르인들이 주로 모여 사는 곳이었다. 또한 7세기 무렵 인도로 가던 현장법사가 여독을 풀며 잠시 머물다 간 곳이 바로 고창고성이었다.

그는 당나귀를 타고 왔다. 기울어가는 해를 등진 채 상체를 기우뚱거리며. 오후 5시경이 아니었나 싶다. 날씨는 무척 추웠고 모래를 핥고 싶을 만큼 배가 고팠다. 고성으로 들어가려는 참에 우리는 멀리서 그가 오는 것을 발견했고, 그를 기다려야만 하는 것처럼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우리란 함께 여행중이던 동갑내기 화가와 나였다. 그때 우리는 서른네살의 젊은 나이였다.

그 노인은 마치 양동이를 뒤집어쓴 것 같은 커다란 검은 모자에 낡아빠진 검은 옷을 입고 있었다. 귀에 하얀 테가 있었으나 당나귀도 역시 검은색이었다. 노인이 쓰고 있는 모자엔 붉은색과 푸른색이 뒤섞인 화려한 꽃문양이 여섯 개나 박혀 있었는데 앞자락으로 길게 뻗어내린 흰 수염과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우리는 그가 사막에서 만난 현자일지 모른다고 짐작했으나, 알고 보니 주머니를 팔고 다니는 위구르족 노인네였다. 당나귀 목에 주머니가 스무 개 남짓 걸려 있었다. 바탕 색깔과 무늬만 약간씩 다를 뿐 모양은 다 비슷했다. 눈썰미가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 만큼 정성을 들여 만든 물건이었다. 그런데 이걸 사서 뭐에 쓰지? 나는 동갑내기 화가를 돌아보며 투덜거렸다. 노인이 현자가 아니라서 실망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건 말하자면 가방이라는 거요. 몰랐소?”

당나귀 목에 걸린 주머니들을 들춰보며 그가 말했다.

“이게 무슨 가방이오. 주머니지.”

“주머니든 가방이든 끈이 달려 있으니 목에 걸고 다니면 되질 않소.”

“서울 한복판에서 그러고 다니면 사람들이 뒤에서 따라올 텐데. 눈에 튄다 그 말이오.”

아주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동갑내기 화가가 나를 돌아보았다.

“김형은 그럼 서울에서도 이걸 몸에 걸치고 다닐 생각이오?”

만난 지 며칠밖에 되지 않았으나 동갑내기라는 이유로 그와 나는 어느덧 가까운 사이가 돼 있었다. 노인은 대들보에 짓눌려 있는 돌쩌귀처럼 아무 표정이 없었다. 당나귀만 이래저래 힘들어 보였다.

“길에서 산 물건은 흔히 짐이 될뿐더러 갖고 가면 집까지 좁아지게 마련이지.”

내가 계속 비아냥거렸으나 그는 들은 척도 않고 자줏빛 바탕의 주머니 하나를 골라냈다. 푸른 낙타가 수놓아져 있는 주머니였다. 그가 내 몫까지 값을 치르고 나서 말했다.

“당나귀를 봐서라도 김형도 하나 고르시오. 내가 보기엔 흔해빠진 물건은 아닌 듯싶소.”

정세를 염탐하고 있던 노인이 당나귀 목에서 검은 주머니를 빼내더니 내 목에 걸어주었다. 값은 주머니 하나에 담배 두 갑 정도였다. 나는 하얀 낙타였다.

“아름답기 짝이 없는 가방이오. 노인이 당나귀를 타고 오는 걸 보고 나는 알았소. 그가 곧 무언가 가져오리라는 것을.”

노인이 돌아간 뒤 동갑내기 화가가 무척이나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아마도 화가이기 때문에 그렇게 느꼈으리라. 비단길에서 돌아올 때까지 동갑내기 화가와 나는 그 주머니를 당나귀처럼 계속 목에 걸고 다녔다. 방독면을 착용하듯 왼쪽 목에 걸면 주머니는 오른쪽 허리춤에 와닿았다. 나는 거기에 돈과 여권과 여행수첩과 관광안내서 따위를 넣고 다녔다. 지퍼가 달려 있어 사용하기 편리할뿐더러 여행중에는 꽤나 유용한 물건이었다.

주머니를 산 다음날 동갑내기 화가와 나는 화염산 북록에 있는 천불동 위에서 서쪽으로 강물처럼 뻗은 저물녘의 천산남로를 내려다보며 함께 두 팔을 벌리고 사진을 찍었다. 각자 허리춤에 주머니를 찬 우스꽝스런 모습으로. 나중에 인화한 사진을 보니 두 남자는 마치 독일제 쌍둥이칼에 새겨진 검은 심벌처럼 보였다.

 

 

2

 

서울로 돌아온 뒤 나는 낙타 주머니를 현관 옆에 걸어놓고 공과금 고지서나 편지가 오면 우선 거기다 집어넣었다. 술 먹고 돌아온 다음날 바지를 뒤져 명함이나 신용카드 영수증 따위를 집어넣기도 했다. 그 용도 외에는 한국에서 더이상 쓸모가 없었다.

3월 말에 광화문의 한 생맥주집에서 비단길에 함께 갔던 사람들의 모임이 있었다. 서로 시간들이 맞지 않아 몇차례나 미루다 성사된 모임이었다. 당시 동행했던 이들은 모두 여덟 명이었는데 그나마 두 명은 빠졌다. 일행은 각자 사진을 교환하고 생맥주를 1000cc가량씩 마시고 훗날 또 만나자는 지킬 수 없는 약속을 남긴 채 뿔뿔이 흩어졌다.

“고작 이건가? 그 추운 사막의 먼지 구뎅이에서 보름을 함께 지냈건만 그래, 두 시간도 채 버티지 못하고 다들 허둥지둥 내뺀단 말인가?”

담배꽁초가 가득 들어차 있는 재떨이를 내려다보며 동갑내기 화가가 푸념조로 늘어놓았다.

“자네가 술을 통 안 마시니까 그렇지. 담배라도 좀 피우든지. 그리고 왜 중처럼 머리는 박박 밀고 나온 거요? 그러니 무슨 낙으로 앉아들 있겠소.”

그가 눈을 천천히 감았다 뜨고 나서 나를 마주보았다. 갑자기 그는 사마귀처럼 외로워 보였다.

“담배는 가난한 사람들이 피우는 거예요. 그러니 김형도 속히 끊어요. 보아하니 기관지도 안 좋은 것 같은데.”

안된다고 나는 말했다. 담배를 끊는다고 금방 부자가 되는 것도 아니었다.

“나한테 담배는 정부예산과 같은 것이어서 형편에 따라 어느정도 삭감은 가능하지만 아예 끊을 수는 없소이다. 실제로 정부예산 중에 담배 수입이 차지하는 비중이 어느 정돈지는 당신도 잘 알 거요. 나라부터 살리고 봐야지.”

“말이 잘못됐소. 자신부터 살리고 봐야 하는 거요.”

“그럼 술은?”

“술도 육신을 갉아먹긴 마찬가지오. 잠 안 올 때 조금씩 마시는 건 어쩔 수 없겠지.”

“예술가가 그런 발언을 하는 게 적절타고 생각하오? 남들이 들을까 무섭소.”

“예술도 몸에 힘이 있어야 하는 거요. 술담배에 곯아서 하는 얘기를 요즘 세상에 누가 귀 기울여 듣겠소.”

소금에 절인 배추처럼 무력한 표정으로 그는 중얼거렸다. 실제로 여행에서 돌아온 뒤 그는 계속 무력감에 빠져 있다고 고백했다. 길에서 돌아온 자들이 무력감을 호소하는 것은 매우 흔한 증상이다. 나는 부지런히 생맥주잔을 비우며 안주삼아 담배를 피워대고 있었다. 담배연기가 날아갈 때마다 그는 코너에 몰린 복서처럼 얼굴을 이리저리 피하며 눈살을 찌푸렸다. 밖엔 바야흐로 봄비가 내리고 있었고 우리는 우산을 갖고 있지 않았다. 화장실에 다녀온 그가 슬그머니 내 옆자리에 와 앉더니, 아주 소중한 것을 없애버리듯 천천히 공을 들여 말했다.

“모두가 갖고 있지만 내겐 없는 게 있소. 그걸 무유(無有)라고 하오. 또한 있어도 희미하게 아주 조금밖에 없지.”

나는 머리를 쥐어짜며 대꾸했다.

“그렇다면 유무(有無)가 아니고?”

그가 당나귀처럼 고개를 흔들며 웃었다.

“둘은 백지의 앞뒷면 같은 거겠지. 무무(無無)에 이르러야 그게 진짜라고 하더이다.”

그만두자고, 나는 숨을 허덕이며 말했다.

“그래, 오늘은 여기까지. 비를 맞더라도 나는 이만 가봐야겠소.”

그제야 나는 옆을 돌아보며 말했다.

“왜, 빗소리가 들리는 단칸방에서 초저녁부터 아녀자가 기다리고 있나?”

그는 내 뒤통수를 툭 치더니 의자에서 일어나 계산서를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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