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남북정상회담과 한국 사회운동의 미래

2000년 여름호 특집을 읽고

 

이주희 李周禧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우리는 짧은 시기에 이룩한 경제성장이 사회발전의 다른 차원에 걸림돌로 작용하는 것을 수없이 보아왔다. 권위주의 시대의 독재자들이 다른 부문의 정상적인 성장을 희생시키면서 ‘경제성장’에 대해서는 모든 왜곡된 정신적·물질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기 때문이다. 분단상황과 냉전체제가 빚어낸 “비이성의 정치”1는 그 불균형을 더욱 악화시키는 데 기여했다. 그런 와중에 사회운동이 훌륭히 성장하면서 잘난 ‘경제성장’이 일으킨 온갖 문제를 수습해온 것은 마땅히 고마워해야 할 일이다. 새 천년에 대한 막연한 기대와 4·13총선의 열기로 들떴던 2000년 여름, 사회운동의 다양한 갈래를 돌아본 『창작과비평』 특집은 진보세력이 더욱 절차탁마하기를 바라는 간절한 소망을 담고 있다.

그러나 부정의와 비합리를 동반한 급격한 정치경제적 변화가 그것에 대항할 수 있는 튼튼한 사회운동의 산실인 것만은 아니다. 빠른 변화는 조율되지 못한 대응을 초래한다. 80년대의 사회운동이 독재와 맞서기에 급급해 의미있는 내부적 분화를 이루지 못한 반면, 90년대는 적어도 운동이 추구하는 목적과 방식의 측면에서 질적인 전환과 양적인 폭발을 이룬 시기였다. 문제는 개별운동의 약진이 가져온 총체적 결과가 우리 시대의 문제를 앞서서 진단하고 통찰력있는 리더십을 제시하는 데는 이르지 못했다는 점이다. 제도권 정치뿐 아니라 그에 대항하는 사회운동의 발전에도 큰 제약으로 작용했던 남북관계가 성공적인 정상회담을 계기로 통일을 향한 역사적인 대전환의 기회를 맞이하고 있다. 이 글은 지난호 『창작과비평』 특집에 실린 논문과 좌담이 함축하고 있는 시각과 질문을 끌어내어 살펴보고, 그것이 요구하는 다양한 답을, 남북정상회담을 비롯해 현재의 격변하는 정치경제적 환경에 비추어 찾아보려는 조심스러운 시도이다.

 

노동운동과 시민운동: 대결구도의 전환을 위한 시론

분단구조와 반공이데올로기가 발전의 치명적인 장애로 작용한 대표적인 사회운동의 예는 노동운동과 시민운동이다. 노동운동은 1987년 강성 권위주의체제의 붕괴 이전까지 ‘국가안보’에 위협이 된다는 이유로 강요된 노사협조주의 노선에 묶여 제대로 된 단체행동권 한번 변변히 행사해보지 못했다. 비록 80년대말 민주적 노동운동의 비약적 성장을 경험하긴 했지만, 이번 총선을 통해 노동운동은 정치세력화를 위해 뚫어야 할 높고 두꺼운 벽을 다시 한번 확인해야 했다. 시민운동도 진보정당이 설 수 없는 척박한 정치현실에서 사실상 제도권 정치의 기본틀을 정비하려는 “준(準)정치세력”2으로밖에 기능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었다.

노동운동과 시민운동 모두 처한 상황에 매몰되어 큰 그림을 그리지 못했다는 공통점을 가진다. 어떤 양보도 쉽게 하지 않는 국가와 자본을 상대로 힘든 싸움을 계속하느라 솔직히 노동운동이 본연의 기능과 경계를 뛰어넘는 새로운 역할을 수행하기는 어려웠다. 노동운동이 계급중심성을 희석시키고 다른 집단과 이슈를 포괄하기 위해선 자신의 핵심 지지세력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위험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동운동이 ‘조직’된 노동자의 이익을 명료하게 주창할수록 광범위한 사회적 이슈의 대변자역할은 할 수 없게 되기 마련이다. 한편 혁신세력이 제도권 정치 내에 부재한 틈을 메우려 노력해온 시민운동은 내부 활동가 스스로 “민중진영과의 연대를 회피하고, 핵심권력의 비위를 건드리려 하지 않는 길들여진”3 모습이라 평가하듯, 가장 근본적인 사회모순을 정면으로 제기하지 못하고 있다. 현재 동원능력이 가장 큰 이 두 운동이 연대해 혁신세력의 발전을 위한 지적·정치적 리더십을 함께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사회운동 전체에 큰 손실이다. 남북정상회담이 냉전체제 하에서 굳어진 국내정치의 판도에 해빙의 가능성을 불어넣은 지금은 진지하게 혁신정당의 발전을 위한 운동간 연대를 생각해보아야 할 때이다.

물론 지금 이 시점에서 ‘해빙’의 가능성은 그저 가능성일 뿐이다. 남북정상회담과 통일에 대한 기대가 진보세력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조건반사적인 반대논리를 약화시켜줄 수는 있지만, 동시에 보수세력의 극우화 경향도 함께 불러올 수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사회운동세력간의 현명한 협력과 합의가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지난호 특집에 실린 글들이 김영희(金英姬)가 기조논문[

  1. 최장집,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주최 국제회의 ‘남북정상회담과 패러다임 전환: 통일과정과 통일체제’(2000.6.26) 기조발제문, 6면.
  2. 박형준 「전환기 사회운동을 보는 하나의 시각」, 『내가 살고 싶은 세상』, 또하나의 문화 1994, 255면.
  3. 김동춘 「NGO 내부점검이 필요하다」, 『참여사회』 2000년 7월호 1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