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통일과정과 개혁과제

 

남북한의 의료체계에 관하여

 

 

황상익 黃尙翼

서울대 의과대학 교수. 의학사 전공. 저서로 『첨단의학시대에는 역사시계가 멈추는가』 『역사와 사회 속의 의학』 등이 있음. hwangsi@plaza.snu.ac.kr

 

 

1. 들어가는 말: ‘보건의료인 정성운동’과 ‘2000년 의사파업 투쟁’

 

“그 집에 며칠 더 있었는데, 왼발이 점점 더 썩기 시작해요. 그 다음에는 오른발도 심하게 썩어들어가더라구요. 이래선 안되겠다 하면서 그 사람들이 남양병원에 저를 입원시켰는데, 의사 선생님들은 우리는 약도 없으니까 제대로 일 못하겠다고 제게 털어놔요. 그러니까 병원에 입원하는 사람들이 없어요. 병원에 들어가서 발이 나아야 되는데 오히려 더해지는 거예요. 입원실에, 그 추운 냉방에 저 혼자 입원을 하니까 이 손마저 동상에 걸렸어요. 그때는 제가 죽을 각오를 했거든요. 이렇게 골 아프게 살 바에야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그런데 제가 다시 살겠다는 생각을 한 데에는 정말, 병원 선생님들, 의사 선생님들의 신세가 많았어요. 비록 약은 없어도 치료는 못 해주어도, 선생님들이 순번으로 돌아가면서 저에게 밥을 날라주시고 여러가지로 위로를 해주셨어요. 제 생일을 기억해서 축하해주기도 했구요. 이 어려운 시기에 그렇게 한다는 게 참 보통 일이 아니에요, 조선에서는. 제가 거기서 감동을 많이 받았어요. 세상이 아무리 험악하다 해도, 조선사람들 사이에 인정이 돌고 있구나 하는 것을 느꼈거든요.”

이 이야기는 재작년 여름 중국에서 만난 한 북한출신(이 글에서는 남한에서 흔히 사용하는 ‘탈북자’나 ‘북한이탈주민’ 대신 ‘북한출신’이라는 표현을 사용할 것이다) 여성에게서 들은 것이다. 함경남도 함흥에서 살던 이 젊은 여성은 국경지역이 먹고사는 형편이 낫고 돈도 벌 수 있다는 말을 듣고는 강추위가 몰아치던 1998년 11월, 두만강변의 남양으로 가려고 기차를 탔다고 한다. 초만원 기차 속은 발디딜 틈도 없어 거센 바람과 눈보라를 고스란히 맞아가며 승강대에 매달려 갔고, 게다가 정상적으로는 하루에 갈 수 있는 거리이지만 기차가 움직이는 것보다 서 있는 때가 훨씬 많아 일주일이나 걸린 탓에 두 다리와 발에 심한 동상을 입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증언과 같이 입원했던 남양의 병원에서 회복되기는커녕 오히려 손에까지 동상이 생겼다. 고등중학교 시절 육상 장거리 선수였다는 이 여성은 결국 중국에 가서 양쪽 다리와 손가락 몇개를 절단하는 수술을 받았다.

북한의 경제사정이 크게 악화된 것과 병원이 제구실을 거의 못한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지만, 이 여성의 구체적인 체험담은 듣는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였다. 반면, 그 여성이 전한 북한 의사들의 모습은, 체제가 다른 사회에 사는 우리들에게도 잔잔한 감동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북한 의사들의 직업적 자세와 관련하여 많이 이야기되는 것으로 ‘보건의료인 정성운동’이 있다. ‘환자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백번 물음에 백번 웃음으로 대답하자’ ‘중환자는 나에게로!’라는 구호가 말하듯이 의사를 비롯한 의료인의 헌신성을 매우 강조하고 있다. 남한과 중국에서 만나본 북한출신 의사나 일반인들은 한결같이 이 점을 확인해주었다.

한 여성의사는 의학대학에 다닐 때 이식용 피부가 필요한 경우 조직적합성을 확인한 뒤에 자신의 피부를 떼어준 적이 몇차례 있다고 증언했다. 거기에 대해 그런 행위가 북한에서 칭송의 대상이냐고 묻자, 그 의사는 의학대학생이나 의사로서 너무나 당연한 행동이어서 남에게 알려지는 것이 오히려 부끄러운 일이며 따라서 그 사실을 감추느라 힘들었다고 대답하였다. 남한사회의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쉽지 않은 일이라 그러한 행동이 정말로 자발적인 것인가고 거듭 묻는 필자가 도리어 이상하다는 듯이 바라보던 그 의사의 모습은 한해가 가까워오는 지금도 눈에 생생하다.

북한 의사들의 자세가 남한 의사들에 비해 훌륭하다고 말하려고 두 가지 증언을 언급한 것은 아니다. 사람의 행동이라는 것은 그가 몸담고 있는 사회의 총체적 특성과 분리해서는 이해할 수 없을 터이기 때문이다. ‘집단주의적인’ 북한에서 당연한 모습이 ‘개인주의적인’ 남한에서는 매우 특수하고 예외적인 것이 될 수 있다. 자신의 피부를 떼어주는 행위가 북한 의사들에게는 남에게 자랑할 거리도 아닌 당연히 해야 할 것일 수 있지만, 남한 의사들에게는 결코 당연히 해야 할 일이 아니며 남이 명시적으로나 묵시적으로 요구해도 될 일은 더더욱 아니다.

우리가 익히 보았듯이 남한사회에서는 지난해 의약분업 실시를 계기로 하여 의료현실의 개선을 요구하는 의사들의 ‘파업’이 대대적으로 일어났다. 그러한 남한 의사들의 관점에서는, 의료현실의 개선을 위한 ‘투쟁’이 북한에 더 필요할지도 모른다. 현대적 의료설비는 말할 것 없고, 마취제와 항생제 등 기본적인 의약품의 공급조차 턱없이 부족하여 많은 환자들이 실질적으로 의료에서 소외되고 있는 북한의 현실에 대해 그곳의 의사들이 저항하지 않는 것이(북한의 사정을 소상히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섣부른 판단일지 모르지만 대체로 그러할 것으로 여겨진다) 의사들의 당연한 의무를 방기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을 것이다.

이렇듯 남한과 북한 의사들의 모습은 많은 점에서 다른데, 그것은 남과 북의 의료체계, 더 넓게는 사회체제의 차이에서 비롯될 것이다.

 

 

2. 남북분단과 보건의료

 

남과 북은 반세기가 넘도록 분단되어 있으며, 그러한 분단은 남북한 양쪽의 의료체계와 남과 북 주민들의 건강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쳐왔다. 남과 북은 단순히 두 개의 국가로 나뉘어 있는 정도가 아니라 극도의 군사적·정치적 대립상태에 놓여 있고 그 댓가로 엄청난 ‘분단비용’을 치르고 있다. 독일통일 이후 한반도에서도 ‘통일비용’에 대한 관심과 논의가 고조되었으며, 일부 수구세력은 통일을 반대하는 논거로 엄청난 통일비용을 들고 있다.

그러나 남과 북은 이미 그러한 통일비용을 훨씬 능가하는 분단비용을 치러왔거니와, 앞으로 분단과 긴장이 지속되는 한 통일비용에 버금가거나 그보다 더 많은 댓가를 계속 지불해야 할 것이다. 남과 북의 군사력을 유지하고 분단구조를 지속하기 위한 분단비용 지출의 댓가로 남과 북은 그만큼의 희생을 치를 수밖에 없었으며, 그것은 대체로 보건의료 등 복지부문의 축소로 귀결되었다. 그리고 보건의료 부문의 축소는 자연히 남북한 주민들의 건강 수준을 각각의 경제력 수준 이하로 떨어뜨리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남과 북 전체를 논의의 대상으로 할 때, 분단의 해소와 통일, 또는 그에 앞서는 남북 긴장관계의 이완이 주민들의 건강 수준을 한층 높일 것은 재론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분단과 긴장은 남북한 양쪽에 억압적 정치체제를 통해 남과 북 주민들의 건강, 특히 정신건강에 매우 유해한 영향을 미쳐왔다. 서재진은 북한출신 사람들의 면접조사를 통한 『북한의 사회심리 연구』(통일연구원 1999)에서 최근의 경제난(식량난)이 더욱 악화시켰거니와 오랜 기간 지속된 정치적 억압이 욕구불만 및 박탈감, 공격적 행동, 절망, 고착 등 결핍증후군을 낳았으며, 감정정체, 성격변형, 불안 등 사회심리적 병리현상을 초래했다고 보고하였다. 그리고 필자는 「국가폭력과 트라우마」(『동아시아와 근대의 폭력 2』, 삼인 2001)라는 글에서 남한사회에 대해서도 그와 비슷한 진단을 내릴 수 있음을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20세기 한국의 경우만 보더라도, 끊임없이 지속된 국가폭력은 직·간접적으로 공동체(의식)를 철저히 파괴하였다. 벌거벗은 국가와 그 폭력은 우리 모두를 파편화시켰다. 인간과 인간 사이의 횡적 연대와 유대감은 직접적 피해에서 벗어나려는 의식·무의식적인 심리와 행위 가운데 오간 데 없이 사라졌으며, 독립된 개인이라는 근대사회의 인간형도 성립되기 어려웠다. 그 대신 군림하는 국가와 국가에 충직한 ‘국민’이라는 종적 관계가 유일하거나 가장 중요한 것이 되었고, 주체적인 개인의 자리에 타자화된 이기적인 존재만이 남게 되었다. 또한 그러한 관계를 통해 국가폭력은 우리 자신들 속에 내면화되었다.” 앞으로 이 분야에 대한 더욱 구체적이고 실증적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