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김연수 金衍洙

1970년 경북 김천 출생. 1994년 『작가세계』로 등단. 소설집 『스무살』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 『나는 유령작가입니다』, 장편소설 『7번국도』 『꾿빠이, 이상』 『사랑이라니, 선영아』 등이 있음. larvatus@netian.com

 

 

 

내겐 휴가가 필요해

 

 

그날 자료실 열람시간이 모두 끝난 뒤, 직원들은 다음날부터 시작되는 여름독서교실을 준비하기 위해 3층 강의실로 모였다. 해마다 관내 초등학교 5학년생을 대상으로 닷새간 실시하는 여름독서교실이 성공적으로 끝나야 직원들도 홀가분한 마음으로 여름휴가를 떠날 수 있었다. 올해는 도서관장이 직급이 낮은 직원부터 휴가기간을 정해서 보고하라고 지시한 까닭에 여름휴가를 둘러싸고 직원들 사이에 약간 소란이 일었다. 남쪽바다를 바라보고 언덕배기에 서 있는 3층짜리 도서관에 항상 사람이 지키고 있어야만 하는 자료실은 일반자료실, 어린이자료실, 디지털자료실 등 모두 세곳이었다. 그런데 직원은 사서직 네명, 행정직 한명, 기능직 세명 등 모두 여덟명이었다. 7월 28일에 여름독서교실이 끝나고 그다음 주부터 일주일에 두사람씩, 그것도 낮은 직급 순으로 휴가를 떠난다면, 나이 많은 직원들은 8월말이나 되어야지 순번이 돌아온다는 얘기였다. 고참 직원들일수록 아이들의 방학기간에 맞춰 휴가기간을 잡아야만 하는데, 도서관장은 그런 사정을 이해하지 않았다. 일이 이렇게 돌아간다면 미혼 직원들이 자진해서 휴가 일정을 조금 늦게 잡으면 좋으련만, 그들 쪽에서도 저마다 사정이 있는지 서로 눈치만 살필 뿐 가타부타 말이 없어 하는 수 없이 도서관의 살림꾼인 사서7급 최가 총대를 멨다. 최는 기능10급 강 등 미혼 직원들을 독서교실 강의실에 모아놓고 합리적으로 휴가기간을 선택하라고 잘 타일렀다. 하지만 그 말투가 워낙 공격적이라 최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직원들의 얼굴이 굳어졌다.

이런 연유로 삼삼오오 근처 식당에서 저녁을 먹는 내내 서로 이야기가 겉도는 등 직원들 사이에 미묘한 감정의 엇갈림이 느껴졌다. 분위기가 좀 어색했는지 독서교실 강의실로 돌아오던 중 누군가 며칠 동안 모습이 보이지 않던 그 노인이 시에서 차로 10여분 거리에 있는 관광단지 옆 해변에서 사체로 발견됐다는 빅뉴스를 전했다. 그 소식은 이내 강의실에서 여름독서교실에 찾아올 아이들에게 나눠줄 유인물과 책자를 정리하던 강에게도 전해졌다. 강은 프린터로 뽑은 유인물을 세장씩 모아 스테이플러로 천천히 찍던 일을 멈췄다. 도서관에 처음 출근하던 날부터 강은 노인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노인은 도서관의 전설과도 같은 사람이었다. 그 노인이 도서관에 나타난 것은 10여년 전의 일이었다고 했다. 그때는 바코드 프린터도 스캐너도 없었기 때문에 폐가식 관내대출로만 자료실을 운영했다. 서명, 저자명이 가나다순으로 배치된 목록카드함을 뒤져가며 대출하고자 하는 책의 도서카드를 찾아내 대출신청서에 청구기호를 적어 대출대에 제출하면 직원들이 그 책을 찾아오는 식이었다. 언제부터인가 그 노인은 도서관을 찾는 사람들 중에서 가장 먼저 대출신청서를 내미는 사람이 됐다. 아, 그때는 아직 머리칼도 하얗게 세기 전이었으니까 노인이라고 부를 수는 없으니 그라고 해야겠다. 어쨌든 자료실 직원들이 그의 존재를 알기 시작한 뒤로 그는 휴관일을 제외하고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도서관에 찾아와 책을 읽었다. 언젠가는 그가 청구한 책들이 화제였던 때도 있었다. 그는 청구기호상 300번대와 900번대의 책들을 주로 대출했다. 한국십진분류법에 따르면, 300번은 사회과학서를, 900번은 역사서를 뜻했다.

그가 도서관에 나오기 시작하던 초기에는 그의 얼굴을 텔레비전에서 본 적이 있다는 직원도 있었다. 그 직원은 그가 몇년 전 현실에 대한 절망감에 양심선언을 하고 교수직에서 물러나 세간에 화제를 불러일으킨 고려대학교 전직 교수라고 우겼다. 하지만 다른 직원이 이내 서가에서 그 전직 교수의 책을 찾아왔고, 다함께 책에 실린 저자사진과 열람실에 앉아 있는 그의 얼굴을 직접 대조해본 뒤에야 그 직원은 둘 사이의 공통점이라고는 머리를 짧게 깎았다는 사실뿐이라고 인정했다. 그렇긴 해도 그가 서울에서 내려온 교수나 학자이리라는 점만은 직원들의 공통된 추측이었다. 자세한 사정은 알 수 없지만, 아마도 그 고려대학교 교수처럼 정치적인 문제로 학교에서 물러난 뒤, 바닷가에 자리잡은 한적한 도서관에서 연구서를 집필하는 중인지도 모른다고 다들 생각했다. 하지만 그 생각도 틀렸다.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도록 그는 서울로 돌아가지 않고 계속 도서관에 나왔다. 김영삼과 김대중이 차례로 대통령이 되는 동안에도 그는 여전히 아침이면 일반자료실 입구 옆 원탁에 앉아 300번대와 900번대의 책을 읽었다. 후에 도서관 직원들과 조금씩 안면이 트이고 대화가 이뤄지면서 그가 왜 날마다 도서관에 나와서 책을 읽는지 그 이유가 밝혀졌다.

직원들의 이야기를 종합해보니 그는 학자도 교수도 아니었다. 그는 전직 형사였다. 늘 머리를 짧게 깎고 다닌 이유도 형사 시절의 습관이 남아 있어서였다. 마흔다섯살이 될 때까지 경찰청에서 근무한 그는 수배자를 검거하기 위해 전라남도 완도군 신지도에 출장을 나섰다가 그만 무인도에 고립되고 말았다. 도시에서 온 다른 낚시꾼들과 함께 배를 한척 빌려 신지도 인근 무인도로 들어갔다가 벌어진 일이었다. 그들 중에는 자신이 찾는 수배자가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 그는 그들과 함께 소주를 나눠 마신 뒤, 요의를 느끼고 바위 뒤로 돌아갔다. 파도가 밀려왔다가 밀려갔다. 오줌을 다 누고, 그는 잠시 바위에 앉아서 파도를 바라봤다. 그러다가 스르르 잠이 들었는데, 눈을 떠보니 수없이 많은 별들이 자신을 비추고 있었다. 기지개를 켜면서 몸을 일으킨 뒤에야 그는 어제의 파도가 어제의 바다로 돌아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술에 취한 낚시꾼들은, 마찬가지로 술에 취한 선주(船主)가 운전하는 배를 타고 신지도로 모두 돌아가버린 뒤였다. 그렇게 그는 고인 물을 마시며 혼자서 사흘을 보냈다. 그 사흘 동안 그는 이렇게 생각했다. 죽는 건 하나도 두렵지 않으나 이렇게 죽자고 여기까지 온 것은 아니다. 내가 살아온 삶도 나름대로 정의로웠다. 그 사실을 알아주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 상태에서 죽는다는 것, 그게 무엇보다 슬픈 일이다.

사흘 후, 연일 마신 술이 그제야 서서히 깨면서 아무래도 자신이 뭔가 잘못한 것 같다고 생각한 선주가 반신반의하며 그를 찾아 배를 몰고 왔을 때, 그는 이제 더이상 형사가 아니었다. 신지도에서 다시 배를 타고 완도까지 나온 그는 일신상의 이유로 사직한다는 편지를 경찰청에 보낸 뒤, 친한 동료에게 전화를 걸어 퇴직금이 나오면 절반은 가족에게 전해주고 절반은 자신의 계좌로 넣어달라고 부탁했다. 다행히 그에게는 업무의 특성상 자세히 밝힐 수 없는 경로로 몰래 모아놓은 돈이 꽤 있었다. 그는 그 돈으로 남해안의 여러 도시들을 전전하다가 퇴직금이 계좌로 들어오자 그 도시에 자리를 잡았다. 그는 우선 도서관에서 걸음으로 10분 정도 떨어진, 바다가 보이는 언덕배기에 전셋집을 구하고 남은 돈을 차명계좌에 모두 집어넣었다. 처음 한달은 실험의 기간이었다. 술도 마시지 않았고 담배도 끊어버렸다. 아침과 저녁, 하루에 두끼만 먹었다. 일주일에 한번씩 고기를 구워먹었다. 저녁 9시에 잠자리에 들었고 새벽 4시에는 일어나 도서관 뒤 공원에서 운동했다. 한달 뒤, 그는 생활비로 은행에 넣어둔 원금을 나눠보았다. 계산대로라면 적어도 10년 동안은 원금을 빼먹으면서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 원금에 다달이 이자가 붙으니 그 기간은 더 늘어날 것이었다. 그 정도 기간이면 자신이 계획한 일을 모두 끝마칠 수 있으리라. 모든 계산을 마친 그는 그때부터 도서관에 나가 책을 읽기 시작했다.

자살한 노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서 강의실에 모인 직원들은 여름휴가를 둘러싼 미묘한 신경전은 잊어버리고 저마다 그 노인과 얽힌 이야기를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오래전부터 그를 지켜본 최는 이렇게 가면 결국 자신은 9월이 다 되어서야 여름휴가를 떠날지도 모른다는 사실은 완전히 까먹은 채 직원들에게 그를 처음 만났을 때가 얼마나 오래전이었는지를 상기시키며 자신의 경력을 과시하려고 들었다. 최가 그 도서관으로 직장을 옮긴 건 그가 도서관에 나오기 시작한 지 1년 정도가 지났을 때였다. 출근해서 이런저런 일들을 익히던 최에게 그가 찾아와 말했다.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이야기를 읽고 싶습니다.”

그 말에 최는 사서로서 잠시 생각해봤다.

“글쎄요, 성경인가? 아니면 불경? 그리스로마 신화? 이솝우화? 도대체 뭐가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이야기인지 저도 모르겠는걸요.”

“내 말은 그게 아니라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이야기를 대출하고 싶다는 뜻입니다.”

“글쎄, 그게 뭔지 알아야지 대출을 해드릴 게 아닙니까? 제가 좀 확인해보고 알려드리겠습니다.”

그러자 그가 대출카드를 내밀었다. 거기에는 ‘서명,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