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김정아 金正雅
1966년생. 소설집 『가시』로 작품활동 시작. 2017년 신동엽문학상 수상. padosoridul@gmail.com
너무 쉬운 우리 꿈
누구나 한번은 히어로가 되고 싶다. TV만 틀면 부지기수로 등장하는 히어로에게 익숙해진 탓일까, 아니면 지구를 위협하는 악당의 귀환으로 히어로가 절실히 필요해졌기 때문일까? 2008년 봄, 양어깨를 콘크리트 거푸집으로 다진 것처럼 당당하고 목소리마저 탕탕한 시민들이 광장으로 속속 모여들었다.
청계천이 시작되는 소라탑 인근에서 촛불이 밝혀지기 시작했다. 하필 대통령의 치적인 청계천이라니 인생이란 새옹의 말처럼 행운과 불행이 엎치락뒤치락하는 것이다. 촛불의 점화자는 청소년들이었다. “잠 좀 자자, 밥 좀 먹자!” 청소년들은 자신들의 요구를 한마디로 정리했다. 정권이 바뀌자 교육부는 야간자율학습과 0교시를 부활시켰다. 새벽밥 먹고 나와 별도 달도 잠든 한밤중에 집으로 돌아가야 했으니 아이들로서는 시키면 시키는 대로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었다. 그리고 정부가 추진한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은 아이들이 시작해놓은 판에 어른들이 가세할 명분을 던져주었다. 이른 봄, 마른 들판에 불이 번지듯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광장으로 모여들었다.
매일 저녁 촛불을 든 사람들이 소라탑 주위에 빼곡했고 주말이면 청계천변이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한달 가까이 계속된 집회에 경찰은 병력을 동원해 해산하겠다는 발표를 내놓고 참가자들을 위협하려 했지만 시민들은 갈수록 겁을 먹기는커녕 ‘칠 테면 한번 쳐보라’는 듯 가슴을 내밀며 앞으로 나아가는 형국이 되어 오히려 경찰의 시름이 깊어갔다. 경찰은 ‘치안’과 ‘준법’을 강조했지만 집회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열렸다. 시민들은 교육정책과 무역정책만 가지고 항의하는 것이 아니었다. 집회 횟수만큼이나 정부의 갖가지 잘못은 쌓여갔고 대통령은 취임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국민 비호감 1위’로 떠오르면서 물러나라는 국민적 저항에 직면했다.
시민들이 모여서 하는 일은 ‘말하기’였다. 말은 정치인만 잘하는 게 아니니까, 말 못해서 죽은 귀신은 없으니까, 잘못된 건 먼저 말로 타이르고 꾸짖어야 하니까,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니까, 사형수에게도 죽기 전에 한마디는 하라고 하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국민이라는 ‘아무개’들은 이렇게 광장에 나와서 외쳐야 존재를 증명할 수 있으니까.
그날도 자유발언이 이어졌다.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말의 잔치였다. 반복되고 순환되는 말들 속에는 숙연한 자기반성도 있고 알 수 없는 대상을 향해 끓어오르는 적개심도 있었으며 대통령에 대한 맹렬한 질타와 무엇보다 이제 그만 청와대로 총진군하자는 선동이 심심치 않게 나왔다. 자유발언이 길어질수록 소라탑 주위가 말의 늪과 진창이 되어갔다. 집회를 진행하는 비상대책위원회는 준비된 프로그램으로 행사를 끝내려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대책위 니네가 뭔데? 대책위는 빠져, 빠지라구!”
대책위의 주도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사람이 많았다. 닉네임이 ‘빛나리’라는 사내도 그런 부류 중 하나였다. 햇볕에 반짝거릴 정도로 머리가 벗어진 사내는 조국의 밝은 미래를 희망한다고 자신의 ‘닉’을 설명했다. 듣고 있던 무리 중 백두가 껄껄대며 웃었다. 세일즈맨 백두는 빛나리를 다음 아고라에서 알게 되었고 광장에서 아고라 무리들과 함께 깃발을 들었다. 빛나리는 사전집회다 부문집회다 광장을 이리저리 돌며 아는 사람들에게 백두를 소개했다. 이 정권은 노골적인 신자유주의 독재정부이며 노동자, 농민, 빈민, 학생이 총진군하는 강고한 투쟁으로 새 정부를 수립해야 한다는 게 빛나리의 주장이었다. 정말이지 백두로서는 살면서 처음 듣는 생경한 말들이었다. 빛나리는 ‘판’을 읽어야 한다고 했다. 병력의 소속과 규모, 어떤 길을 막아서고 어디에 전경차를 주차하고 밥을 먹는지와 시위대의 숫자 그리고 대치선 따위가 그가 읽는 ‘판’이었다. 그 판을 따라다닐 때 백두의 눈은 전에 없이 빛났다. 몇달 후 빛나리가 준비한 연막살충제나 폭죽, 쇠구슬 따위를 배낭에 지고 도로를 뛰어다닌 사람이 백두였다. 백두는 교통범칙금도 기한을 넘기지 않고 납부하는 얌전한 시민이었지만 그것도 아고라라는 신세계에 발을 들여놓기 전의 얘기다. 백두는 날이 갈수록 용납할 수 없는 것과 타협할 생각이 없어졌고 ‘닥치고’ 한길만 가기를 고집했다. 그것이 막다른 골목일지라도 다른 선택은 고려하지 않았다.
공식적인 집회가 끝난 후에도 사람들은 흩어지지 않고 끈질기게 남아 있었다. 오월의 밤은 자정을 넘기면서 바람막이 점퍼가 필요할 정도로 쌀쌀해졌다. 아무나 노숙할 기온은 아니었는데 해산하지 않는 숱한 아무개들이 노숙도 각오하고 요지부동이었다. 그 아무개 속에 유진도 있었다. 처음엔 지역아동센터에서 여럿이 함께 왔는데 지금은 혼자다. 밴드가 해체되고 친한 친구마저 자퇴해버린 학교에 더이상 다니기 어려워진 유진은 자꾸만 촛불이 밝혀지는 광장으로 향하게 되었다.
한 남자가 발언대에 나와서 마이크를 잡더니 광화문을 넘어 청와대로 가자고 선동했다. 악을 쓰며 발언하는 남자의 입에서 침이 연신 사방으로 튀었다. 유진은 한번도 자유발언대에 서본 적이 없었다. 지역아동센터 선생님이 광장에 나올 때마다 유진에게 한번 해보라며 자꾸 눈짓을 주었지만 다들 저렇게 하늘이 내린 재능인 양 잘해내는 걸 보면 유진은 듣는 편이 좋았다. 누군가의 주장에 찬성할 때는 유진도 마이크를 잡아볼까 하는 마음이 들었으나 그게 무대에 오를 만큼 중요한 말인지, 그래서 웅변대회에 나온 저 사람들처럼 환호와 박수를 받을 수 있을지 가늠해보면 그만두게 되었다. 유진은 말보다 노래가 자신있었지만 여기서는 안 될 일이었다. 게다가 유진은 쎄션 없이는 안 되는 백코러스가 아닌가. 밴드가 활동을 중단한 지 반년이 지났다. 일진에 가담한 리드 기타가 정학을 먹으면서 흐지부지되었다. ‘오렌지’라는 그룹 이름에 맞춰 다들 오렌지색으로 머리를 염색했었는데, 이제 끄트머리에 조금 남아 있을 뿐이다.
“우리가 어린애입니까, 여러분? 우리 청소년들은 결코 어린아이가 아닙니다. 밥도 혼자 해 먹을 수 있고, 돈도 벌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할 수 없는 건 오직 선거, 투표뿐입니다, 여러분!”
한 여학생의 발언에 참석자들은 깔깔대고 웃었지만 유진은 진심으로 박수를 쳤다.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지역아동센터 선생님, 아동보호센터와 구청 직원이 하는 걱정이란 결국 혼자 밥을 어떻게 먹느냐는 것이었다. 할머니가 밥을 차려준 게 언제였던가? 할머니의 밥은 술이었다. 그 밥은 같이 먹을 수 있는 게 아니니 유진은 초등학생 때부터 혼자 밥 먹는 데 익숙했다. 혼자 살지 못할 게 뭐람, 밥 먹고 잠자는 건 본능인데 그걸 혼자 하면 위기아동이 되는 건가? 유진은 썰렁한 장례식에 앉아 마음속에서 웅얼거리는 말들을 곱씹었지만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짧은 노래가 벌써 몇번째 반복되었다. 이 노래가 나오면 다들 자리를 털고 일어났는데 그날 밤은 달랐다. 화장실에 다녀오거나 멀리 떨어져 담배 한대씩을 피우고 다시 돌아왔다. 사람들은 예민하게 무엇인가를 기다렸다. 빛나리는 집회가 시작될 때부터 무대 주위를 서성대다가 참석자들의 항의에 가까운 종용으로 대책위가 물러난 후 ‘자연스럽게’ 진행되는 발언대를 통솔해가는 재주가 있었다. 그는 앰프 옆에 서 있다가 발언자들이 마이크를 누구에게 주어야 할지 몰라 쩔쩔맬 때 그걸 받아주고 스피커에서 띠이 하는 하울링이 나오면 얼른 달려가 앰프를 조절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차도로 밀고 나가 청와대로 행진하자는 종류의 행동파 발언이 나오면 녹화장에서 FD가 그러듯 두 손을 높이 들고 박수를 유도했다.
“나가자! 바리케이드를 무너뜨리자!”
한 사내가 자리에서 일어나 소리 질렀다. 사람들은 신호탄이 터지기를 기다리는 트랙 위의 선수, 종이 울리기 직전 링 위의 파이터였다. 이미 들썩이던 사람들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비폭력, 비폭력”을 외치며 행동파들의 움직임을 차단하려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 숫자는 그리 많지 않았지만 이제 막 시작되려는 행진의 당위성을 의심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안티고네’도 그랬다. 그녀는 초저녁 집회가 시작될 때는 일민빌딩 주변에서 지인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서 본격적으로 참여하지 않다가 밤이 깊어지면서 대열로 들어갔고 급기야 가장 선두로 나서게 되었다. 그녀는 ‘나가자’로 대표되는 행동파에 선뜻 합류할 수 없었다. 만약 경찰과 대치해 물리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