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The Quarterly Changbi

 

박형서 朴馨瑞

1972년 강원도 춘천 출생. 2000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소설집 『토끼를 기르기 전에 알아두어야 할 것들』 『자정의 픽션』이 있음.

 

 

너와 마을과 지루하지 않은 꿈

 

 

또다시 우릴 불러낸 건 너였다. 나른한 일상과 곤한 휴식에서 깨어난 우리는 수풀 사이로, 언덕 너머로, 호숫가로 너를 쫓았다. 마침내 저 불운한 도약의 끝, 어둠에 갇혀 발버둥치는 너의 뒤로는 낯익은 살인자들이 몰려들었다.

 

네가 살았던 작고 외진 마을은 특징이랄 게 없었다. 텁텁한 열매가 나는 과수원, 암탉 삼십여 마리가 있는 오래된 양계장 외에는 야트막한 산과 잡목과 작은 콩밭들뿐이었다. 산중턱에 맑고 깊은 호수가 있긴 하지만 연못에 가까울 정도로 작았고, 그나마 주민들 외에는 아는 이가 드물었다.

구름 그림자가 빠르게 훑고 지나가는 그곳에서 사람들은 닭이나 돼지처럼 그저 태어나고, 밋밋하게 살아가다 조용히 늙어 죽었다. 다만 칠년 전인가 이장이 마을에 꿀벌을 들여온 걸 계기로 주민들 대부분이 양봉 일을 시작했는데, 그게 그나마 특징이라면 특징일 것이다. 익숙하지 않은 이들은 벌에 쉽게 쏘이곤 했다. 그럴 때면 평생 무료에 길들여진 그들의 입에서는 “아야” 하는 짧고 심심한 탄식이 새어나왔다.

너는 마을에서 벗어나고 싶어했다. 어릴적 친구네가 멀리 이사가는 걸 보며 시작된 그 소망은 세월이 흐를수록 간절해졌다. 너는 항상 읍내를, 먼 도시를, 아니 어디건 마을 밖을 꿈꾸었다. 남루하고 따분한 생활 속에서 그 꿈만큼은 조금도 지루하지 않았다. 열네살 때 너는 처음으로 도망쳤다. 아무 준비도 없이 즉흥적으로 벌인 짓이었다. 읍내의 더러운 공원과 뒷골목을 외로이 배회하다, 사흘 만에 굶주린 배를 안고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그날 너는 하루 종일 울었다. 열아홉살이 되어 홀어머니를 졸라 마련한 목돈을 들고 두번째로 마을을 떠났다. 그러나 역시 일주일을 넘기지 못했다. 빈털터리로 돌아온 너의 온몸에는 멍이 가득했고 마음은 새카맣게 타 있었다. 너는 천장이 무겁게 내려앉은 방에 처박혀 며칠 동안 울었다. 남들만큼 가진 게 없고, 남들만큼 영리하지 못하고, 남들만큼 굳세지 못한 게 서러워 울었다. 하지만 눈물이 마르자 너는 또다시 도망을 꿈꾸었다.

산으로 둘러싸여 있기에 마을에서는 라디오 전파도 잡히지 않았다. 사정이 이러니 바깥세상이 빠르게 변해갈수록 너의 마을은 자꾸만 자기 내부로 숨어드는 것 같았다. 주민들은 콩밭에 가거나 벌을 보살피거나 힘없이 무너져내리는 자기 집을 고쳤다. 늦은 오후가 되어 일이 대충 끝나면, 아이들은 저보다 약한 아이를 잡아 두들겨 팼고 주정꾼들은 얼굴이 벌겋게 될 때까지 술을 마셨으며 노름꾼들은 쩨쩨한 표정으로 화투를 쳤다. 그마저 지치면 끼리끼리 모여앉아 별것도 아닌 일을 부풀려 온갖 거짓소문을 만들어냈다. 그렇게 함으로써 숨막힐 듯한 적막과 무료함과 외로움에서 잠시나마 벗어나곤 했다.

 

모든 건 저 폭우에서 비롯되었다. 짙고 검은 먹구름이 삽시간에 마을을 뒤덮고는 굵은 빗줄기를 뿌려댔다. 능선의 잡목림, 언덕의 전신주와 과수원 한쪽에는 새하얀 벼락까지 내리꽂혔다. 이윽고 비가 그치고 파란 하늘이 모습을 드러내자 열댓명 남짓한 주민들은 벼락 비린내 자욱한 산중턱 호숫가로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호수 바로 곁에는 본디 벼랑에 위태로이 매달려 있던 커다란 바위 하나가 굴러떨어져 있었다. 떨어질 때의 충격으로 겉을 감싸고 있던 얇은 사암층이 벗겨져나가 어른 키 정도의 둥근 화강암만 남았는데, 전체가 은빛 광택을 품은 돌비늘로 덮여 있어 반짝반짝 빛났다. 그 운모바위에는 호수를 등지고 지름이 한뼘쯤 되는 깊은 구멍이 언덕을 향해 나 있었다. 누군가 용감하게 팔을 넣어보았지만 끝에 닿지 않았다.

너와 주민들은 감탄하며 주변을 맴돌았다. 바위의 비늘은 수면에 반사되거나 나무 이파리 사이로 흘러들어온 일광을 받아 끊임없이 은빛으로 명멸했다. 그건 마치 고통과 간지러움과 배고픔을 느끼는, 독립된 영혼을 가진 존재 같았다.

모두가 돌아간 후에도 너는 홀로 남아 바위를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조용히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처음엔 멋지게 반짝이는 비늘을 가진 바위에 대한 칭찬이었다. 그러다 곧 너 자신에 관한 얘기로 옮아갔다. 너는 네가 그 무료한 마을을 얼마나 싫어하는지 중얼거렸다. 함께 자란 친구들처럼 도시에 나가 살고 싶은데 그러지 못해 속상하다고 중얼거렸다. 두번이나 실패해 겁이 나지만 언젠가는 제대로 떠날 거라고, 다짐하듯 중얼거렸다. 운모바위가 그걸 들었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는 시커멓게 죽어가는 개암나무 뒤에 숨어 하나도 빼놓지 않고 들었다.

 

사건이 터진 건 그로부터 일주일 뒤였다. 호숫가의 운모바위에 난 틈, 그 자그마한 구멍에 낯선 외지 사내가 머리를 처박고는 축 늘어져 있었다. 하릴없이 읍내에 다녀오던 중 이를 목격한 양계장 최씨는 말문이 막혀 멍하니 서 있었다. 그처럼 이상한 광경은 처음이었다. 그건 마치 바위가 사내를 머리부터 먹어치우다 잠시 쉬고 있는 것 같았다. 문득 손등이 따끔해 “아야” 하고 탄식을 흘렸다. 꿀벌에 쏘이는 건 흔한 일이었다. 그런데 이번엔 따끔하고 마는 정도가 아니었다. 손등이 화끈거리며 부풀어오르자 그게 독한 땅벌의 침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그 순간 등줄기를 훑으며 오싹한 기운이 몰려왔다. 최씨는 가슴에서 터져나오는 괴성과 함께 몸을 돌려 읍내 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도중에 두명의 주민과 마주쳤다. 그들은 비명을 지르며 뛰어오는 최씨를 잡아 세우고는 무슨 일인지 물었다. “사람이 죽었어, 사람이!”

셋은 함께 읍내 파출소로 달려갔다.

 

두시간쯤 지나 경찰 세명이 자전거를 타고 네가 살았던 마을로 들어섰다. 각각의 보조안장에는 읍내까지 줄곧 달리느라 완전히 녹초가 된 양계장 최씨와 두명의 주민이 앉아 있었다. 산길이 시작되는 마을 입구에 자전거를 세워두고 일행은 걸어서 호수 쪽으로 향했다. 이윽고 산중턱의 자그마한 호수와 그 곁에 놓인 바위가 나타났다. 온통 반짝거리는 은빛 비늘로 뒤덮여 있어 거대한 보물처럼 보였다. 입성으로 미루어 삼십대 후반으로 짐작되는 외지 사내가 바위구멍에 머리를 처박은 채 늘어져 있었다. 팬티는 제대로 걸쳤으나 바지가 무릎까지 흘러내렸고, 윗옷도 한쪽 팔에만 꿰인 상태였다. 허벅지와 옆구리에 작고 붉은 반점이 서너개 나 있었는데, 하지만 벌을 치는 마을에서 그건 별다른 특징이 되지 못했다. 주민들 모두가 몸 여기저기에 작고 붉은 반점을 지니고 있었다.

강력사건을 별로 접해보지 못한 신출내기 경찰들은 잔뜩 긴장한 얼굴이었다. 용기를 내어 다가가 툭툭 건드려보았다. 미동도 없었다. 손가락 마디마다 퍼렇게 죽어 있고, 부어오른 팔목에서는 맥이 잡히지 않았다. 바위에 난 구멍이 목 굵기와 비슷했기에 그보다 큰 머리통을 도대체 어떻게 쑤셔넣었는지 신기할 따름이었다.

소식을 들은 마을의 이장과 주민들이 슬금슬금 모여들었다. 그리고 저희들끼리 수군거리며 눈앞에 펼쳐진 기묘한 광경에 참견했다. 너도 그 틈에 끼어 있었다. 얼떨떨한 표정으로, 운모바위와 낯선 사내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이해하려 애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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