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이명랑 李明娘
1973년 서울 출생. 장편소설 『꽃을 던지고 싶다』를 발표하며 등단. 연작소설집 『삼오식당』, 장편소설 『나의 이복형제들』 『슈거 푸시』 등이 있음. market297@yahoo.co.kr
널래 날래 까우리로 까이라?
1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었다. 최선생의 행방은 알 수 없었고, 어진이 퍼즐 짜맞추듯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계획했던 일정들은 쓸모가 없어졌다.
“최선생은 왜 만나려고 하는 겁니까?”
한인 식당의 카운터를 지키고 있던 사내가 다가와 어진의 앞자리에 앉았다. 어진은 어디에서부터 이야기를 풀어나가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수상스포츠나 즐기고 태국 미녀들과 하룻밤을 보내는 일에만 관심이 있어 보이는 이 낯선 사내가 과연 자신의 이야기에 흥미를 가져줄지 또한 자신이 없었다.
인천국제공항에서 타이항공 629편에 올라타 방콕에 도착하기 전까지만 해도 어진이 최선생을 만나려고 했던 이유는 분명했다. 그 분명하던 이유도 이곳, 카오산 로드에서 맞닥뜨린 최선생의 실종 앞에서는 아무 의미도 갖지 못했다.
9년 전 겨울, 어진은 진눈깨비로 뿌예진 서울의 하늘을 뒤로하고 방콕으로 떠나왔었다. 지금 뒤돌아보면 평범해도 너무 평범한 4박 5일의 신혼여행일 뿐이었지만 그때 어진은 스물여섯이었고, 한국에서 방콕으로 가는 다섯시간의 비행이 짧게 느껴질 만큼 남편과 함께 할 여행에 대한 기대로 부풀어 있었다.
어디를 가나 엇비슷해 보이는 사원들뿐이었고, 길거리 여기저기에 누워 힘겨운 듯 졸린 눈을 부릅뜨고 있는 거지들과 털 빠진 개들 사이를 돌아다니다 관광이랍시고 구색을 맞추듯 가이드가 데려간 수상 뷔페에서 야경을 내려다보며 저녁 한끼를 먹는 일정이었다. 그래도 어진의 눈에는 남편과 함께 나눈 그 모든 풍경이 아름다웠다. 방콕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별 다섯개짜리 호텔의 스카이라운지에 갔을 때는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신부의 얼굴을 하고 지금 죽어도 좋다고까지 말했었다. 그러나 남편은 이런 식의 여행은 늙어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건데…… 하며 무언가 부족하다는 듯한 얼굴을 해서 어진을 맥빠지게 했었다.
어진은 남편의 그, 뭐가 하나 모자라다는 듯한 얼굴을 빈틈없이 채워주고 싶었다. 돌아갈 날짜를 하루 남겨두고 남편이 여행사의 일정을 모두 취소하자고 했을 때, 그래서 어진은 남편보다도 먼저 배낭을 꾸렸다.
“방콕 시내 한복판에 이구아나가 있다고 하면 믿겠습니까? 한마리도 아니고 일곱마리나 있는데 아는 사람이 없다니.”
어진 부부는 갑자기 들려온 한국말에 놀라 뒤를 돌아봤다. 어진 부부와 눈이 마주치자 오십 중반의 남자는 이리 와서 앉으라며 돌로 만들어진 벤치에 신문지 두장을 까는 것이었다.
“저기, 저깄다! 봤어요? 지금 나왔다 들어갔는데.”
“뭐가 있다고…… 저거요? 세상에, 저게 진짜 이구아납니까?”
남편은 남자가 깔아준 신문지 위에 앉아 남자의 손가락이 가리키고 있는 호수의 한 점을 들여다보며 소리쳤다. 어진도 덩달아 눈을 부릅떴다. 주의를 기울여 들여다보자 과연, 이구아나처럼 생긴 파충류 몇마리가 호수에서 기어나와 어슬렁거리는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웃기지 않습니까? 보세요. 저렇게 큰 놈들이 제집처럼 들어갔다 나왔다, 이 주변을 하루 종일 돌아다니는데도 저놈들을 보는 사람이 없어요. 여기 있는 방콕 사람 아무나 붙잡고 한번 물어보십시오. 여기 이구아나가 있다는데 어디 있는지 아십니까, 하구요. 다들 고개를 내저을 겁니다. 별 이상한 사람 다 보겠다고 오히려 미친 사람 취급할걸요.”
남자의 말을 듣고 보니 어진 부부 역시 눈뜬장님이었다. 남자와 말을 트기 훨씬 전부터 어진 부부는 호숫가에 앉아 있었고, 공원 안에 발을 들여놓자마자 시내에서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듯이 평화롭게 펼쳐진 호수에서 눈을 떼지 못했던 것이다. 최선생은 그렇게 버젓이 눈앞에 존재하는데도 보지 못하던 것을 어진 부부의 눈앞에 들이대며 그들과 인연을 맺었다.
이쪽에서 먼저 사례를 해서라도 안내를 부탁하려던 참에 최선생이 먼저 점심이나 같이 하자며 어진 부부를 시내의 한인 식당으로 데려갔다. 그 일대에서는 꽤 알려진 인물인지 최선생이 식당 안으로 들어서자 여기저기에서 알은체를 했다.
“뭐 학자는 아니지만, 여기저기 떠돌다보니 우리 것에 관심이 가더라구요. 젊었을 때 유엔에서 일을 했는데, 어떻게 동남아 일대만 떠돌게 됐지요. 소수부족들을 많이 보다보니 어, 이거 이상한데? 이 사람들 이거 우리 민족 아니야? 뿌리를 캐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거지요.”
어디에서 어떻게 만들었는지 몰라도 도저히 된장국이라고 할 수 없는 된장국과 출처불명의 김치를 앞에 놓고, 최선생은 우리 것과 뿌리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최선생의 말에 의하면, 한국 내에서도 우리 민족의 ‘우랄알타이어족설’과 ‘단일민족설’을 부정하는 학자가 있는데 이곳 동남아 일대에 퍼져 있는 소수민족들과 오래 지내다보니 그 학자의 의견에 공감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몇몇 소수부족의 경우에는 말이나 춤, 의복이 우리 것과 너무 똑같아서 이들을 우리 민족과 떼어서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기이하게 느껴진다고도 했다.
남편은 아이처럼 눈을 빛내며 최선생의 이야기를 들었다. 점심을 먹고 자주 들른다는 여행사 사무실에 가서 최선생이 표지에 자신의 이름이 뚜렷이 인쇄되어 있는 책 두권을 주었을 때는, 무언가 부족하다는 듯이 남편의 얼굴에 뚫려 있던 빈틈은 남김없이 메워져 있었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도 남편은 최선생의 저서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여행사의 판에 박힌 일정을 포기하자마자 얻게 된 최선생과의 하루를 남편은 값진 선물처럼 여겼고, 심지어는 한국어족(韓國語族)을 창설해야 한다는 최선생의 의견을 박사논문 주제로 다뤄봐야겠다고까지 말해서 어진을 놀라게 했었다.
이제는 전남편이 되어버린 남자가 서랍 속에 처박아두고 잊어버린 그 두권의 책을 배낭에 꾸려넣고 어진은 이곳, 카오산 로드로 최선생을 만나러 온 것이다.
“치앙라이 일대에 고구려 후손이 있다고……”
그렇게 말해놓고 어진은 얼른 눈을 내리깔았다. 다리를 떨어댈 때마다 목에서 흔들리는 금목걸이를 부적이나 되는 듯이 만지작거리는 사내 앞에서는 고구려니 후손이니 하는 말들이 턱없이 공허하기만 했다.
“아, 소수부족? 그거 뭐 꼭 최선생이 있어야 되나. 가이드 한명 붙여줄까요? 하루 일당 팔만원만 주면 되는데. 어때, 불러요?”
2
허리춤에 칼을 꽂은 조련사들이 쓰레빠를 끌고 다니듯 여기저기로 코끼리들을 끌고 다녔다. 코끼리들의 배설물 위로 또다른 배설물처럼 쏟아져내리는 이국의 언어와 낯선 얼굴들 사이에서 어진의 시선은 어쩔 수 없이 한 사내에게 붙박여 있었다.
치앙라이 공항으로 어진을 마중나온 사내는 통성명을 하기도 전에 일당을 먼저 요구했다. 어진이 지갑을 꺼내자 사내는 뻔뻔스러울 만큼 빤히 어진의 지갑을 들여다보았다. 오로지 어진의 지갑이 얼마나 두툼한가에만 관심이 있어 보였다.
“빳빳하네.”
어진에게서 건네받은 달러를 청바지 앞주머니에 쑤셔넣고, 사내는 그제야 생각났다는 듯이 검은 썬글라스를 눈썹 위로 밀어올리며 ‘타이 한’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사내와 눈이 마주쳤을 때 어진은 온몸이 얼어붙는 듯했다. 까맣게 잊고 있던 인물이 과거 속에서 걸어나와 말을 건넨 것이다. 어진의 입술은 제멋대로 벌어졌고, 사내는 어진의 얼굴이 갑자기 붉어지는 것을 보자마자 눈썹 위로 추켜올렸던 썬글라스를 재빨리 밑으로 내렸다. 자신의 얼굴을 알아본 어진에게 화가 난 듯도 했고, 어진이 기억해낸 자신의 과거에 화가 난 듯도 했다.
어진이 타이 한의 입장이었다고 해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불과 서너해뿐이었다고는 해도 한때는 그 이름만 대도 대한민국 대부분의 십대가 열광했던 스타였으니 말이다. 최소한 자신의 화려했던 전성기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게만은 ‘몰락’이라고 해도 될 만큼 초라하게 변해버린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을 테니까.
통성명을 한 뒤로 타이 한은 어진에게 내처 등만 보이고 있었다. 그러다가 가끔씩 걸음을 멈추고 어진에게 말을 걸어올 때라고는 오로지 돈 내라고 할 때뿐이었다. 한두번인가 어진은 다 관두고 한국으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그러나 이미 돈은 건네졌고, 돌아가기에는 너무 멀리 와버렸다. 타이 한이라는 사내를 믿고 따라가보는 것 외에 어진에게 달리 뾰족한 수라고는 없었다.
새벽녘의 알싸한 공기 속에서 어진이 자신의 팔목보다도 가는 대나무 기둥을 붙들고 서서 발아래 펼쳐진 아수라장을 내려다보는 동안에도 타이 한은 어진에게 등을 돌린 채 코끼리 조련사와 흥정하기에 바빴다.
“이 바나나도 원래는 돈 주고 사야 되는 겁니다.”
코끼리 등에 올라탄 어진에게 바나나 한다발을 던져주면서도 타이 한은 생색내는 것을 잊지 않았다.
어진을 태운 코끼리는 당장이라도 붉은 흙이 쏟아져내릴 듯한 민둥산을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산 사이로 난 길은 비좁았고 군데군데 도랑이 파여 있어 코끼리는 자주 걸음을 멈췄고 그때마다 코끼리의 목덜미에 앉아 있던 조련사는 낡은 쓰레빠로 코끼리의 귀를 걷어찼다. 얼마나 오랜 시간 걷어차였는지 조련사의 쓰레빠가 닿는 부분이 허옇게 닳아 있었다. 조련사의 쓰레빠 밑창도 코끼리의 귀만큼이나 나달나달해져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경사가 심한 언덕 몇개를 넘어 평지가 나오자 조련사는 엉덩이를 한번 들썩이는가 싶더니 어느새 몸을 날려 길 위로 내려섰다. 그러고는 한마디 말도 없이 앞으로 걸어가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