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공지영 孔枝泳

1963년 서울 출생. 1988년 『창작과비평』으로 등단. 소설집 『인간에 대한 예의』 『존재는 눈물을 흘린다』, 장편소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봉순이 언니』 등이 있음.

 

 

 

네게 강 같은 평화

베를린 사람들 2

 

 

1

 

테겔공항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안개처럼 가느다란 비였다. 그는 여행가방을 끌고 공항 대합실을 나왔다. 비둘기 가슴털처럼 옅은 회색빛 하늘이 낮은 건물들에까지 내려와 있었다. 습기찬 대기는 온화했고 서안해양성 기후 특유의 부드러운 바람이 불고 있었다. 그는 검은 외투를 습관처럼 여미며 담배를 물었다. 독일에는 와본 일이 있지만 베를린은 처음이었다. 독일의 수도를 대표하는 공항치고 테겔은 몹시 초라했다. 가난한 나라의 수도, 외국 비행기라고 해봐야 사흘에 한번 들어오는 그런 도시의 공항 같았다. 이 도시에 있는 세 개나 되는 국제공항은 2차대전 후 분할 점령당한 베를린의 역사를 역설적으로 이야기하는 듯했다. 수명은 아직 나와 있지 않았다. 그동안 독일에 와서도 굳이 베를린에 들르지 않았던 이유야 많았다. 베를린은 그가 취재차 들르던 프랑크푸르트나 뒤쎌도르프에서 멀었던 것이다. 베를린은 옛 동독지역에 섬처럼 떠 있는 땅…… 아니, 벌써 통일 후 십년이 넘어가니 그도 의미없는 이야기다. 그 베를린에는 사촌형 수명이 살고 있었다.

 

수명을 못 본 지 이십년이 되어간다. 그가 대학에 들어가던 해 수명이 베를린으로 떠났으니까. 당시 그에게 베를린은 얼마나 아득하고 환상적인 이름이었던가. 전혜린류의 뮌헨도 아니고 베를린이라니. 공산주의 동독에 떠 있는 섬, 굵직한 씨가를 물고 트렌치코트의 깃을 세운 중절모의 잘생긴 사내가 술집에 들어가 조용히 적의 동태를 감시하는 스파이 영화가 어울릴 것 같은 도시. 그런 베를린으로 떠난 수명은 다시는 한국에 돌아오지 못했다. 그사이 무슨 일이 일어났던가. 군대에 갔다온 후 그는 대학을 졸업했고, 수명에 대한 기사를 읽었다. 임수경의 방북을 주선해준 그는 수배된 채 베를린에 체류하고 있었다. 수명의 아내인 형수는 이혼한 후 서울로 돌아왔고, 아들 소식에 충격받아 쓰러진 큰아버지는 결국 돌아가셨다. 외아들 수명이 장례식에 참석할 수 없자 그가 대신 큰아버지의 영정을 들었다. 쓰러진 큰아버지를 살리려다 가세가 기울어 큰어머니는 전셋집을 전전하기 시작했다. 평생 큰집과 큰어머니에 열등감을 가지고 살았을 그의 어머니는 장례식 내내 묘한 표정을 지었는데 만일 거기에 슬픔이 있었다면 늙어가는 여자가 인생 자체와 죽음에 대해 느끼는 그런 보편적 감정이었을 것이다.

대학을 졸업한 그는 젊은 사람들이 싫어하는 C일보에 입사했다. 그 무렵 광화문과 명동 일대에는 젊은이들이 날마다 몸을 던져 붉은 꽃잎처럼 보도에 누웠다. 페퍼포그와 최루탄으로 희뿌예진 거리를 뚫고 그는 노(老)시인에게 가서 원고를 받아왔다. 한복차림의 노시인은 안성에 거처하고 있었는데, 원고를 건네는 순간 젊은 수습기자인 그를 피해 시선을 얼른 내리깔았다. 아니, 담배를 입에 물고 성냥을 긋느라 고개를 돌렸던가. 그 글은 신문에 게재되었고, 시인의 글대로 ‘분신의 잔치’는 갑자기 우스꽝스러워져버렸다. 노시인의 원고를 넘겼을 때 데스크의 눈가에 번쩍이던 것…… 그는 그때 몸을 던지는 학생들이나 데스크에게 어떤 공통점이 있다는 생각을 했다. 뭐랄까, 순교자가 되고 싶은 광신도의 열기 같은 것, 내 말을 듣지 않으면 죽어버리겠다는 다분히 사무라이적인 잔인하고 장엄하며 단호한 어떤 것…… 그것은 이미 죽고 사는 걸 초월해 있었다. 아니다, 그렇게 말하면 안되는지도 모른다. 스무살 무렵의 퍽도 어수룩한 젊은이들은 죽고, 순교자 후보들은 살아남아 성인품에 오르는 것이다. 이상(理想)에 제 몸을 바친 괜찮은 인간 하나가 한 나라의 경찰 전체를 먹여살리기도 한다고, 체 게바라를 두고 어떤 작가가 그랬던가. 2004년, 이제 한국의 경찰을 먹여살리는 것은 반도체다. 한국 경찰은 이제 너무나 친절해서 때로는 감동적인 장면을 연출한다는 것을 수명은 알까. 수명이 알고 있는 것은 80년대 초반의 한국일 터이다. 그건 지난 20세기의 일이다.

서른아홉, 그는 빠른 승진을 거듭했다. 그는 호텔방에 투숙시킨 수습기자들에게 룸쌀롱 계집애들을 배치한 후 단호하게 새벽 세시 로비에 집합시키는 해병대 하사 같은 호기를 부리기도 했고, 출판사의 골프접대로 필드에 나갈 때는 매너가 좋았고, 자기 신문에 반감을 가진 문인들과는 적당한 유머와 낭만을 섞어 포장마차에서 소주잔을 기울이기도 했다. 연휴에도 제주로 가는 비행기표를 구할 수 있었으며 명절기간이라도 새마을호 특실을 구할 수 있었다. 졸업식날 택시를 잡을 수도 없어 가족들과 함께 초라하게 버스정류장으로 걸어가던 예전의 그가 아니었다. 큰아이의 유치원 졸업식날 신형 쏘나타에 가족을 태우고 스키장으로 향하는 그는 소위 잘나가는 특급신문의 문화부 차장대우였다.

그런데 로마출장 후 피렌쩨나 밀라노를 돌아보지 않고 왜 굳이 베를린으로 오려고 했는지 그는 스스로를 납득시키지 못하고 있었다. 송두율 선생 주변을 좀 취재해볼게요…… 데스크에게는 그렇게 말했지만 이미 송두율도 없는 베를린이었다. 그때 처음으로 그의 머릿속에는 수명이 떠올랐다. 자신이 실은 오래전부터 베를린에 있는 수명을 만나고 싶어했다는 것을 그는 깨달았다. 하지만 그것이 다는 아니었다. 굳이 해명하려고 하지 마라, 연리와 합정동 한 낡은 모텔에 들던 날 불을 끄면서 그는 말했다. 그 단발머리 여자가 신문사로 처음 찾아왔을 때 왜 그녀를 데리고 나가 커피를 사주었는지 알지 못했던 것처럼, 그렇게…… 무언가를 해명하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그는 늘 생각했다. 하늘은 왜 하필 파란색인지, 사과는 왜 아래로 낙하하는지 묻는 게 바보스러운 것처럼, 이미 체념을 포함하고 있는 물음을 그는 그친 지 오래었다. 왜라고 묻기보다는 잠 안 오는 밤 포르노를 보며 마스터베이션을 하는 편이 건강에도 좋았다. 아니, 만보기를 허리춤에 차고 걷는 편이 새벽 발기를 원활하게 할 것이다.

 

“최, 영명, 기자?”

누군가 다가와 물었다. 그러고는 최영명 기자라고 말한 것이 쑥스럽다는 듯이 얼굴을 활짝 펴고 웃었다. 누군가라고 한 것은, 그가 알던 사람과는 다른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이 사람은 물이 적당히 빠진 청바지 차림에 낡은 갈색 점퍼를 입고 있었다. 놀랍게도 이 사람은 유학을 떠나기 전의 모습을 거의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귀 뒤로 한줌의 흰머리가 있고, 약간 건조한 듯한 얼굴, 웃음 끝에는 잔주름이 입가에 선명했지만, 뭐랄까 냉동상태로 숙성이 정지된, 세월에 침식되지 않은 그런 모습이었다. 베를린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학생이라 해도 전혀 어색할 것 같지 않은 이 사람이 오십이 다 된 중년의 사촌형이란 말인가. 사촌형의 얼굴에는 수도승 같은 건조하고 맑은 기운이 있었다. 아마 나란히 서서 걸어간다면 십년이란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친구냐고 물어볼 것 같고, 재수가 없으면 그를 두고 선배냐고 할 것만 같았다. 그는 좀 작고 다부진 편인데 비해 수명은 키가 컸다. 그가 눈이 작고 얍삽해서 영리한 느낌이라면 수명은 검은 뿔테안경 속에 둥그런 눈동자를 가지고 있었다. 여기까지 와서 사촌을 만나다니 촌스러운 짓을 했군, 이름 석자 중 두 글자가 같다고 해도 뭐 딱히 나눌 말도 없는 이 만남을 그는 후회하기 시작했다. 뒤져보면 베를린 교민 중에 동창놈도 두엇 있을 거고, 안면이 있는 타사 특파원에게 갈 수도 있었다.

둘은 비즈니스 파트너처럼 악수를 나누었다. 수명의 차는 낡은 오펠(Opel)이었다. 차는 신호에 걸려 정지하면 종종 시동이 꺼졌다. 수명이 싫어할까봐 말은 안했지만 차 안은 추웠다. 히터가 고장난 것일까. 주행거리계는 37만 킬로미터를 표시하고 있었다.

“한국담배 하나 드릴까요?”

그가 물었을 때 수명은 좋지, 하면서 담배를 받아들었다.

“통독 되고 많이 변했죠?”

그는 기자 경험으로 이렇게 어색한 자리를 어떻게 모면해야 하는지 알고 있었다. 뜻밖에도 수명은 웃었다. 입을 벙긋 벌리고 즐겁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미안해, 웃어서. 문득 어릴 때 생각이 나서……”

옆자리에 앉은 그는 약간 당황스러워져서 엉덩이를 살짝 들었다 놓으며 자세를 고쳐잡았다. 어린시절을 떠올린다는 것은 형제간이거나 적어도 거기에 준한 우정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이 어색한 만남에서 뜻밖에도 수명이 어린시절 이야기를 꺼내자 그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고개를 돌리니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회색빛이었다. 이제껏 와본 독일, 아니 유럽의 도시 중 가장 멋대가리 없었다. 1920년대에는 빠리와 견줄 만큼 화려했던 그 도시라고는 믿기지 않았다.

“외신 보니까 동베를린하고 서베를린이 아직도 소득격차가 많이 난다고 하던데, 동독지역 실업률도 심각하고 그래서 지난 선거에서는 동베를린 지역에서 공산당 후보가 당선되기도 했다던데요. 옛 동독지역에선 공산주의에 대한 향수가 여전한가요? 아무래도 실업 때문이겠죠?”

수명은 담뱃재를 재떨이에 털면서 잠시 웃었다.

“사람 사는 거야 다 똑같지. 서베를린에서도 소득격차는 나니까. 한국에서 미국에서도 그렇듯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통계를 내느냐가 문제 아니겠어? 독일차라고 다 좋은 것이 아니듯이……”

수명은 자동차 시동을 다시 걸며 말했다. 그는 동의한다는 듯 잠시 수명을 따라 웃었지만 기분은 여전히 좋지 않았다. 고등학교 시절엔가 큰집 수명의 방에 들어갔을 때 수명이 이거 읽어볼래? 빠울루 프레이레 알아? 하며 책을 건네던 게 생각났다.

“도시가 영…… 서울 같아요. 뭐랄까, 독일 도시 같지 않고. 2차대전 때 하도 폭격을 맞아서 그런가요?”

그는 건조한 말투를 유지하려고 애쓰면서 물었다. 연리와 처음 잠자리를 하고 출근하던 날 오후 그녀의 전화를 받으면서 그랬던 것처럼.

“그렇지. 그때 워낙 파괴되었으니까…… 그런데 베를린은 아주 묘한 도시야. 살수록 정이 떨어지지. 그런데 베를린 사람들은 다른 도시로 떠나지 못해. 다른 도시에 가면 견딜 수 없어하고 다시 돌아오거든…… 다른 도시에는 없는 어떤 게 여기엔 있어.”

“살수록 정이 떨어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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