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오늘의 한국, 변모하는 사회운동

 

심상정 沈相奵

전국금속산업연맹 사무차장.

 

 

 

‘노동의 시대’를 위하여

민주노총과 한국 노동운동

 

 

21세기 노동운동의 방향을 상징하는 두 사건

 

총선시민연대의 낙천·낙선운동으로 그 어느 때보다도 수구·보수정객들의 생존경쟁이 치열했던 4·13총선은 지역주의의 괴력이 뿜어낸 매연에 휩싸여 끝났다. 4·13 총선이 진행되는 동안, 이후 한국 노동운동의 방향을 상징하는 의미있는 두 가지 사건이 있었다. 그 하나는 대우자동차 해외매각을 반대하는 자동차노동자들의 연대파업이고, 다른 하나는 민주노동당의 진보정치 실험이다.

대우·현대·기아·쌍용자동차 8만여 노동자들은 ‘대우자동차 해외매각 반대, 공기업화’를 주장하며 4월 12일까지 열흘간 연대파업에 돌입했다. 자동차노동자들의 연대투쟁은 대우자동차의 해외매각이 곧 한국자동차산업의 종말을 예언하는 것이며 자동차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대량실직과 더 나아가 한국경제의 자립적 기초를 무너뜨리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위기감에서 비롯되었다. 외환위기 이후 정리해고·고용불안·임금삭감·복지후퇴에 맞선 노동자들의 투쟁은 끈질기게 지속되어왔다. 그러나 이번 자동차연대파업이 갖는 특별한 의미는 외환위기 극복을 명분으로 ‘외국인 투자는 많을수록 좋다’는 김대중정권의 무분별한 개방화 정책에 맞서 해당 산업노동자들이 체계적인 산업정책을 요구한 최초의 공동파업이라는 데 있다.

한편 4월 14일 새벽 여의도 민주노동당 당사는 침울했다. 방송사의 출구조사 결과로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린 탓도 있었지만, 내부정치만 잘되었더라도 53년 만의 진보정당의 원내진출이라는 전기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는 자괴감이 컸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은 곧바로 4·13총선을 계기로 당을 더욱 확대·강화해갈 것임을 선언함으로써 선거 참패와 맞물려 명멸했던 지난 시기 진보정당들과는 분명히 선을 그었다. 민주노총이라는 대중조직의 결의를 바탕으로 건설된 정당이고 장기적인 노동자·민중의 정치세력화 전략에 복무하는 방향에서 16대 총선에 임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비록 의석확보는 실패했지만, 노동자 밀집지역의 계급투표 조직화와 21명의 후보 평균 13.2%의 득표를 얻은 것은 이후 노동자·민중의 정치적 결집 가능성을 밝게 해주는 것이었다.

21세기 노동운동이 직면한 일차적 과제는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에 대한 투쟁이며, 21세기 노동운동이 주력해야 할 최대 과제는 노동자 정치세력화이다. 이 두 가지 과제는 노동운동의 발전전망 속에서 긴밀히 맞닿아 있다.

 

 

87년 노동항쟁: 노동운동의 새로운 고양기의 시작

 

노동운동의 현재와 미래를 말하려면 1987년 노동항쟁으로부터 시작하지 않을 수 없다. 87년 노동항쟁은 노동운동의 새로운 고양기를 연 역사적 필연이었으며, 노동운동의 현재는 그 연속선상에 있는 것이다.

87년 노동항쟁은 노동자들의 인간선언이자 노동해방의 열망을 담지한 투쟁이었다. 당시 전국의 공장담벼락을 뒤덮은 구호들은 ‘인간답게 살고 싶다!’ ‘배고파 못살겠다, 임금인상하라!’ ‘어용노조 물러가라, 민주노조 건설하자!’였다. 이미 노동자들의 거대한 투쟁에 묻혀간 아픈 역사가 되었지만, ‘공돌이·공순이’라는 노동자들을 비하하는 속어는 당시 노동자들의 열악한 사회적 지위를 적나라하게 표현하는 것이었다. 노동자들은 이 투쟁을 통해 경제적 빈곤과 차별, 자본과 정권의 전횡적인 통제와 탄압, 사회적 멸시와 천대, 정치적 무권리에 항거하면서 인간다운 삶을 쟁취하고자 했다. 더이상 시키면 시키는 대로 주면 주는 대로 누르면 누르는 대로 사는 노동자가 아니라, 자신들을 억압하는 제도와 체제를 구조적으로 인식하고 자신들의 힘과 단결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다. 이러한 노동자들의 열망은 곧 ‘노동해방’이라는 구호로 집약되었으며, 임금인상과 노동기본권 확보를 위한 연대투쟁의 활성화로, 자주적이고 민주적인 노동조합 건설로 발전해나갔다.

또 임노동자계급 형성 이래 최대 규모의 대중적인 파업투쟁이며, 독점재벌·중화학공업의 대규모사업장 노동자들이 투쟁의 주력으로 등장하고, 장기적이고 완강한 투쟁양상을 보였다는 점으로 집약되는 87년 노동항쟁의 특징은 이후 노동운동의 비약적 발전의 토대가 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87년 이후 10년간의 노동운동은 87년 노동항쟁의 양적 토대 위에서 87년 노동항쟁이 제기한 과제들을 노동조합운동 차원에서 발전시켜간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조직확대와 민주노총 건설

 

87년 노동항쟁 이후 노동조합운동은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루었다. 무엇보다도 노동조합 조직의 영역을 대폭 확장함으로써 노동조합운동을 일반화·보편화시켰다. 87년 노동항쟁을 통해 표출된 ‘민주노조 건설’의 열망은 제조업 분야만이 아니라 언론·교사·금융·연구기관·정부투자기관·대학·유통 등 광범한 미조직 분야로까지 확대되었다. 이제 블루칼라든 화이트칼라든 교사든 써비스직이든 노동의 종류를 불문하고 노동이 존재하는 곳에서 노동조합이 결성되는 것은 당연하게 인식되었다. 이러한 조직의 확대는 노동운동의 영역을 확대하고 노동조합운동의 전체 구도를 크게 변화시키면서 이후 민주노조운동이 노동조합운동의 전면에 나서는 새로운 흐름을 형성하게 하였다.

87년 노동항쟁 이후의 노동자투쟁은 노동조합을 주체로 하여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양태를 띠고 발전하였다. 투쟁의 내용도 임금 및 노동조건의 개선으로부터 노동탄압 중지, 노동법 개정, 교육개혁, 언론개혁, 의료개혁 등 이른바 사회개혁의 영역으로 확대되었고, 투쟁형태 역시 정권의 탄압에 맞선 지원·연대투쟁으로부터 과제의 성격에 따른 지역별·산업별·그룹별 투쟁 등 다양한 연대투쟁이 활성화되었다. 이렇게 투쟁과정에서 축적된 역량은 민주노총 건설과 함께 정책 및 제도 개선 요구를 중심으로 한 전국적인 통일투쟁으로 발전했다.

민주노조운동은 연대투쟁 활성화와 함께 형성된 몇 갈래의 연대조직—신규 제조업노조 중심의 ‘전국노동조합협의회’, 사무전문직 중심의 ‘전국업종노동조합회의’, 그리고 재벌그룹별 조직인 ‘현대그룹노동조합협의회’와 ‘대우그룹노동조합협의회’ 등—을 결집하여 마침내 95년 11월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이라는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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