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

 

노래가 된 시, 노래가 된 시인

조태일의 시세계

 

김수이 金壽伊

문학평론가, 경희대 교양학부 교수. 평론집 『환각의 칼날』 『풍경 속의 빈 곳』 『서정은 진화한다』 등이 있음.  whitesnow1@hanmail.net

 

 

1. ‘노래’의 조건들

 

이제는 다시 언급하기도 새삼스러운, 지난 시대의 뇌관에 별처럼 박혀 있던 역사·철학적이며 미학적인 강령 하나. 우주의 운행과 인간의 운명을 잇는 루카치(G. Lukács)의 신화적 비전은 오늘의 시대에는 다음과 같이 덧붙이는 말을 필요로 한다. “별이 빛나는 창공을 보며, 갈 수 있고 또 가야만 하는 길의 지도를 읽을 수 있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별빛이 그 길을 훤히 밝혀주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라고 순정하게‘노래’할 수 있던 시대, 경험하지도 않은 먼 과거를 열렬히 기리고‘추억’할 수 있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이념과 신념이‘노래’가 될 수 있던 시대, 신화의 세계가 현재의 시공간에 들어와‘추억’이 될 수 있던 시대는 행복했다는 진술은, 말할 것도 없이 지금 이 시대의 시선으로 편집되고 굴절된 것이다. 그렇다면, 무어라 이름붙이든 우리시대의 시적 기율이 지닌 특징은 순정하고 행복한‘노래/기억’과의 거리로써 설명될 수 있겠다. 가령 최근 시에서 고전적 의미의‘노래’가 잦아들고 정체성의 내용물인‘기억’이 현실의 의미체계에서 탈각된 무정형의 형태로 그려지는 것은 전 시대와 차별되는 한 예가 된다. 작고 10주기를 맞는 조태일(趙泰一)의 시가 떠올리는 문학사적 문제 역시 우리 시의‘변화’와 긴밀하게 맞물려 있다. 조태일의 시를 읽는 일은 세기의 전환과 함께 우리 문학에 발생한 시차(時差/視差)를 한꺼번에 체감하는 일과 통한다. 그의 시는 한국시의 근과거와 현재를 함께 목도하게 하는 거울이자 일종의 충격장치인 것이다.

짐작하겠지만, 그 강도는 사실 낮은 수준은 아니다. 최근 10여년간 우리 문학에 발생한 적지않은 시차는 두가지 변화를 바탕으로 한다. 첫째는 시인-개인의 진정성과 양심 등의 윤리적 덕목이 문학의 동력이 된 1970, 80년대와, 시인/개인에게 부과된 윤리를 해체하고 재구성함으로써 문학의 새로운 윤리와 돌파구를 찾는 2000년대 사이의 간극이다. 시인-개인-사회-역사의 방향성이 고결한 윤리의 아우라 속에서 합치될 수 있었고, 현실의 올바른 변화에 대한 엇비슷한 신념과 상상이 문학의 추동력이 되었던 시대란, 그 자체로 (무거운) 축복이자 사건이었다고 할 수 있다. 역사의 종말과 문학의 종말에 관한 담론은 이 사건을 정리하는 리포트의 키워드였고, 이‘종말’의 사태 혹은 소동을 거친 2000년대 문학의 시야로 보면, 조태일의 시로 예시되는 종전의 문학은 순정하고 치열하지만 어딘가 평면적인 단순성을 지닌 것이 된다. 가장 큰 이유는 시인 자신과 분리되지 않는 시적 주체와 현실 사이의 저 많은 균열과 거리를 민족과 국가, 자유와 평등의 이념이 메우고 있다는 데 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 이념들이 개인을 넘어 공동체의 운명을 성찰하는‘윤리의식’의 발원이 된 점은 종종 간과되고 있다. 2000년대 문학이 전 시대 문학의 발생 토대나 사회·역사적 기반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념과 윤리의 양면적인 관계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듯하다. 문제의 핵심은 2000년대 문학이 이전의 문학적 추진력인 사회·역사적 문제의식과 상상력, 공동체의 행복에 관한 윤리적 문제를 더이상 적극적으로 끌어안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개인과 사회·역사의 현재와 미래에 관해 고뇌하고 모색하는 일은 이제 공동의 움직임을 형성하지 못하고 작가 개인의 선택으로 돌려지고 있다. 전 시대의 문학이 견지한 사회현실에 대한 윤리적 태도는 어느새‘재미없는 낡은 유산’쯤으로 여겨지고 있는 것이다. 민중시의 대표자 가운데 한 사람인 조태일의 시 역시 이같은‘낡은’유산을 자양분으로 삼고 있다. 그러나 오늘의 시점에서 다시 읽는 조태일의 시는, 활발한 미학적·인식론적 모험을 감행한 2000년대 시들과는 확연히 다른 입지에서, 이후의 시들에서 만나기 어려울지도 모를 절박하고 육중한 울림을 전해준다. 문학의 역사적 소명과 시인-개인의 윤리적 삶의 방식을 모태로 한 그 울림은 지난 연대의 시와 오늘의 시의 시차(時差/視差)만큼이나 이질적인 느낌을 자아내는 것이기도 하다.

지난 10여년간 우리 문학에 발생한 시차의 두번째 양상-첫번째와 밀접하게 관련된-은 시의 입장과 정치적 입장이 유기적으로 밀착된 시대의 퇴조에 따른 것이다. 민족, 민주, 자유, 평등 등의 정치적 이념이 빠져나간 자리에는 사회·역사·민족의식의 동의어로서의 윤리의식도 함께 스러졌다. 시와 정치를 함께 사유하고 실천했던 관습은 시에서 정치를 분리하고 축출하는 것으로 변화했다. 즉 지난 연대의 특정한 정치의식의 몰락은 보편적인 문제로 확대해석되면서 문학에서 정치의식 자체를 억압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공적 담론공간으로서 2000년대 문학의 영토는‘정치(적 공동체)’를‘감각(의 공동체)’으로 대체하면서 넓어진 만큼 다시 좁아졌다고 할 수 있다. 많은 외압이 수반되었지만, 1970, 80년대에 문학은 권력과 제도가 용인하지 않는 정치적 사유와 주장을 펼칠 수 있는 진보적인 동시에 거의 유일한 개인적·사회적 담론공간이었다. 1990년대의‘애도기’를 거쳐 2000년대의 문학은 현실정치에 대해 개입하고 발언하는 일에 관심을 갖지 않거나 소극적이 되었다. (그동안 논의되어왔듯이 이러한 배경에는 현실사회주의의 몰락과 한국사회의 〔표면적인〕 민주화가 자리잡고 있다. 더불어, 이전까지 한국사회에서 문학이 해온 정치적 담론공간의 역할을 인터넷이 대대적으로 수행하고 있는 점도 하나의 요인이 되었다는 가설을 생각해볼 수 있다.) 시의 경우, 우리시대의 현실에 관한 정치적 입장은 대체로 개별화되고 미시적이며 간접화된 양상으로 드러난다. 특히 젊은 시인들의 시에서, 세계의 은폐된 구조와 배후에 대한 직관 및 감각적 인식들이 활성화되는 가운데 문학과 정치, 문학과 현실의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대응관계는 희미해졌다. 이 관계가 현실적인 기표들을 얻기 위해서는 여러 맥락을 거쳐 재구성되는 과정을 필요로 한다. 언어가 그 물적 토대인 사회·역사적 의미체계로 환원되는 것을 저지하는 시적 전략이 도달한 자연스러운 귀결이라고 할 것이다. 사유와 감각의 근원을 해부하는 태도 역시 문학과 정치가 연동되는 유효한 방식들 가운데 하나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문학과 정치의 너무 근본적이어서 느슨해 보이는 구도는 오히려 이에 대한 직접적인 논의를 촉발하고 있기도 하다. 최근 여러 문학잡지들이 앞다투어‘정치’를 주제로 특집을 꾸리는 것은 오늘의 문학에 부족한 정치적 사유에 대한 문제의식의 소산으로 볼 수 있다. 텍스트의 틈새를 우선 논의와 이론으로 방어하고자 하는 시도는 2000년대 문학에 대한 반성과 보강을 겨냥하고 있다(『세계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