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담

 

노무현정부의 출범, 그 의의와 과제

 

 

홍세화 한겨레 기획위원 hongsh@hani.co.kr

박태견 프레시안 편집국장 tgpark@pressian.com

유재건 본지 편집위원, 부산대 사학과 교수 jkyoo@pusan.ac.kr

 

 

때: 2003년 1월 18일
곳: 창작과비평사 회의실

 

 

유재건  반갑습니다. 바쁘신데 참석해주신 두 분께 감사드립니다. 지난해 12월의 대통령선거로 새로운 노무현정부가 출범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맞춰 이번 좌담은 대선 결과 드러난 현실의 상황을 전체적으로 점검하면서 한국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랄까, 차후의 과제를 생각해보자는 취지로 마련됐습니다. 아시다시피 지난 한해 한국사회는 놀랄 만한 경험을 했습니다. 국민의 주목을 끈 민주당 국민경선,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한 월드컵 응원열기, 두 여중생의 죽음을 추모하는 촛불시위, 그리고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 당선 등 1년 전 이맘때에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던 일들이 연이어 일어났지요. 한국사회의 역동성이랄까 활력 같은 것을 거듭 확인하게 된 한해였지 않나 싶습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 사회의 낡은 패러다임이 무너지면서 냉전적인 사고나 권위주의 문화가 약화되고 사회 전반의 세력교체와 세대교체가 진행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기도 합니다. 이번 대선만 하더라도 선거풍토가 많이 달라져서 국민참여형 선거혁명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습니까? 흔히 이번 선거에서는 세대대결이라든가 지역주의, 이념대립, 다양한 매체간 갈등, 더 나아가서 남북관계나 반미감정 같은 것들이 어우러져 결과에 영향을 미쳤다고 하는데, 대선을 보면서 느낀 소감부터 이야기해볼까요?

 

 

대선, 피플 파워에 의한 대규모 드라마

 

 

박태견  

朴太堅
지금 조·중·동이 갖고 있는 74%의 시장점유율은 당장은 어마어마한 것이지만 시대정신에 계속 역행한다면 그 미래를 장담할 수 없습니다.

지적하신 대로 이번 대선은 역대 어느 선거보다도 극적인 커다란 사건들이 많았고, 그 결과로 새로운 역학관계가 성립된 것 같습니다. 이전에는 유권자들이 최종 투표행위에만 참여했지 정치행위에 참여한 적은 거의 없었지요. 반면에 이번 선거는 국민경선이라는 참여장치가 작동됐고, 그 과정에서 당내 기반이 없던 노무현 후보가 선두에 올라서는, 정치권에 대한 반란이 시작됐어요. 그런데 노후보가 한때 정치적 실수를 했는데 양김으로 대표되는 정치세력과 손을 잡고 굳히기를 하려 한 것이죠. 그 결과 60%에 달하던 지지율이 바로 10%대로 급락할 정도로 국민의 호된 심판을 받았어요. 국민경선의 에너지가 또 한번 표출된 것은 후보단일화 때였습니다. 그 과정에서 국민들은 어떤 변화를 이뤄내야 한다, 그러려면 힘을 모아야 한다는 압력을 가했습니다. 그 힘이 결집되면서 후보단일을 성사시켜냈고, 이후 대선 때까지 이어지면서 박빙의 결과지만 또 한차례 새로운 세력이 집권하는 일련의 대규모 드라마를 만들어냈습니다. 이 과정에서 주목할 것은 작년 1년 동안 나타난 새로운 형태의 피플 파워(people power)인데요. 우리나라에서 피플 파워가 1960년 4월혁명, 80년대 초 민주화의 봄, 그리고 1987년도 등 몇차례 등장하지 않았습니까? 이번에 표출된 파워는 과거와 맥을 같이하는 역사적 정통성을 가지면서도 세대교체적인 측면이 있고, 또 탈냉전적 사고를 기초로 하면서 자발성이 굉장히 강했어요. 그리고 아주 창의적인 모습을 드러냈고 이 과정에서 소위 인터넷으로 대표되는 기술적 혁명과 결합된, 새로운 참여민주주의의 가능성을 열어준 것이 아닌가 합니다.

 

 

 

홍세화  

洪世和
학벌구조는 아이들을 일찍부터 질곡에 몰아넣을 뿐만 아니라 국가경쟁력 면에서도 아주 떨어지는 것이니까 혁명적 차원의 개혁이 요구된다는 생각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27년 만에 투표를 했어요.(웃음) 6월의 지방선거와 12월의 대선 때 투표했습니다. 군대생활할 때 유신 찬반투표를 했던 기억이 있는데 정말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어요. 1975년 초의 유신 찬반투표란 말 그대로 박정희 ‘유신체제’의 찬·반을 묻는 국민투표였는데, 1973년10월 대학가에서 유신 반대운동이 일어나자 그 움직임에 쐐기를 박기 위해 박정희가 국민을 동원한 것이었지요. 기억이 분명치 않은데 아마 70%가 넘는 찬성표가 나왔을 거예요. 그때 반대표를 찍고 투표장을 나서는데 인사계가 제 뒤통수에 대고 “빨갱이보다 더 지독한 새끼”라고 외치더군요. 그 소리는 지금도 귀에 쟁쟁하게 남아 있습니다. 200명 가까운 부대원 중에 일곱 명은 몇달 동안 외박, 외출이 금지되었지요. 이번에 투표장으로 가는 길에 권영길 후보가 웃고 있는 선거벽보판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는데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또 12월 7일과 14일의 촛불시위에 참석했는데 그 현장에서 느낀 것도 격세지감이었습니다. 반세기 동안 이어져온 냉전이 무너지고 있다는 느낌이었지요. 저 같은 사람도 반미라든지 미군철수 같은 목소리를 내려면 자기검열을 해야 하는데, 아직 작은 목소리에 지나지 않지만 자기검열 없이 그런 얘기를 쉽게 할 수 있는 탈냉전적인 젊은이들이 나타나고 있는 것 같아요. 저는 이번 대선에서 탈냉전과 반권위를 보인 세력이 등장한 점, 기득권세력의 중심이 정치부문에서는 헤게모니를 잃어버리고 시대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점에는 이런 세대간의 간극이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특히 저는 젊은이들의 반권위에 대해 생각해봤습니다. 젊은이들에게 옛 권위는 사라지고 새로운 권위는 아직 정립되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데, 이 점은 대중소비사회의 수혜자로서 전통적 권위에 반기를 들고 일어났던 서구의 68세대가 좌파이념으로 무장했던 점과 차별성을 보이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요즘 젊은이들의 반권위는 교육의 효과라기보다는 사회·경제적인 물적 토대가 뒷받침해준 것이 아닌가, 특히 하나 혹은 둘만 낳다보니까 가족 내에서 위함을 받고 자라서 문화적으로 기존 권위를 받아들이기가 어려운 점이 있지 않나 싶습니다. 아무튼 반권위적이고 탈냉전적인 요소들이 이번 대선을 계기로 정치적으로 표현된 것이 아닌가 해요. 촛불시위도 대선 직전인 12월 7일과 14일에 가장 많이 모였는데, 그것은 대선을 변화의 계기로 보았다는 것이거든요. 분단체제에서 만들어진 냉전적 틀이 이제 부서지고 있고, 균열이 시작되고 있다는 것이 이번 대선이 갖고 있는 중요한 점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유재건  

柳在建
부시정권에 영합하는 세력이 우리 사회의 불안요소가 되었고, 실제 경제나 노사관계 같은 면에서도 이회창 후보가 좀 불안하게 보이는 점이 있었어요.

젊은 세대의 정치참여가 두드러진 점을 두고 언론에서는 세대갈등이니 세대대결을 강조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설명만으로는 부족하지 않은가 싶습니다. 나이만이 아니고, 민주화를 비롯한 현실적 여건에서 받은 영향 내지 새로운 경험이 있지 않나 싶어요. 이십대의 투표율이 47.5% 정도로 낮아서 적극 참여자와 불참자로 갈린 상황입니다. 또 지난 1997년 대선 때는 사십대에서 이회창 후보가 상당히 앞섰는데 이번에는 대등했고요. 그러니까 유권자수가 가장 많은 삼십대에서 노후보가 상당히 앞서고, 사십대에서는 대등해지는 가운데 이십대 일부가 가세한 형국을 보면, 역시 6월항쟁이라는 민주화 경험의 세대와 ‘붉은악마’라든가 인터넷 세대가 결합해서 새로운 사고방식을 적극 표출한 점이 중요하다고 봐요. 그저 세대대결을 강조하는 견해에는 찬성할 수가 없습니다.

 

박태견  지금 말씀하셨지만 삼사십대라면 386세대를 말하고, 6월항쟁을 경험한 세대들이죠. 또 사십대 중반은 광주사태를 경험한 세대로 광주사태 과정에서 미국을 다시 보게 되었어요. 소위 386세대라고 불리는 이들은 80년대에 그 문제를 공공연하게 토론하고 ‘광장’에서 몸으로 느꼈어요. 이번 대선에서 사십대 초반은 노무현 지지율이 높았고 사십대 후반은 이회창 지지율이 높았는데, 사십대에서 이런 차별성이 보이는 것은 역사적 경험과 맥을 같이하는 측면이 있다고 보입니다.

홍세화  저는 붉은악마를 시민의 광장이라는 개념으로는 생각지 않습니다. 그것은 월드컵을 계기로 일상적 억압에서 일시적으로나마 일탈하려는 욕구들이 합쳐져 광장의 ‘경험’으로 나타난 것인데, 미선·효순양 사건을 통해서, 또 미군에 대한 무죄평결로 인해 고양되면서 시민의 광장 경험으로 발전해나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거기에 IMF 위기 이후 한국경제가 세계경제 속에 편입되면서 그것을 주도하는 것이 역시 미국이라는 사실이 드러나고, 어려움에 처했던 민중이 미국을 다시 보게 된 점도 가미돼 있지 않은가 해요. 그것이 동계올림픽의 오노 사건, 여중생 사망사건과 겹쳐지면서 다시금 미국의 실체를 확인하게 되고, 냉전의식에서 벗어나도록 했던 계기가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특히 부시의 행보가 그런 점을 촉진시킨 면도 있어요. 부시가 9·11 테러 이후 아프가니스탄을 일방적인 전쟁놀이터로 몰아가는 것을 보면서 남북이 공동운명이라는 인식을 하게 되고 한미공조라는 의식이 허물어지게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부시정권에 영합하는 세력은 우리 사회의 불안요소?

 

유재건  그렇습니다. 그런데 부시 대통령이 역설적으로 노후보 당선에 큰 공을 세우게 된 건 한반도의 객관적 상황이 바뀌었기 때문이지요. 6·15 남북정상회담 후 남북화해가 진전되면서 안보의 개념이 바뀌어가는 것, 이건 정말 중대한 사실로 보입니다. 과거에 저는 언론의 안보상업주의니 하는 이야기를 들을 때 처음엔 그게 뭐 장사가 될까 하고 생각했는데, 하지만 그게 잘 통했지요. 북한이 당면한 위협세력이었고, 거기에다 중국·러시아와 같은 공산권과 동맹관계에 있었을 때 안정을 바라는 폭넓은 층의 사람들에게 충분히 통할 수 있었던 거죠. 그런데 남북관계가 호전되면서 부시가 북한을 핵 선제공격할 수 있다고 하니까, 이제는 부시정부가 우리나라의 안보, 더 나아가서는 경제에 제일 위해를 주는 집단이 된 겁니다. 안보가 위태로워지면 우리나라 주식의 36%를 갖고 있는 외국인부터 빠져나가고 주식시장도 붕괴될 테니까요. 선거 개표방송을 보다가 저도 모르게 감탄사가 절로 나온 대목이 있었는데, 경기도 연천에서 노무현 후보가 앞서 갈 때였어요. 연천은 전형적인 군사지역이지 않습니까? 나중에 보니 강원도 전체에서 이회창 후보가 11% 정도 앞섰는데, 철원·양구·인제 같은 강원 북부에서는 노후보가 이겼더군요. 이제는 군사지역의 주민들도 긴장완화가 자기 삶에 도움이 된다고 본 겁니다. 이렇게 보면 이번 대선을 안정이냐 개혁이냐는 구도에서 개혁이 이겼다고 보는 것도 일면적이에요. 부시정권에 영합하는 세력이 우리 사회의 불안요소가 되었고, 실제 경제나 노사관계 같은 면에서도 이회창 후보가 좀 불안하게 보이는 점이 있었어요. 이미 시대의 패러다임이 바뀌어가는 상황에서 낡은 방식은 전체적으로 우리 삶의 안정에 도움이 안된다고 판단했다는 거지요. 선거 전에 증시의 투자분석가들에게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노후보 지지율이 더 높았다는 것도 그 징표가 아닐까 싶습니다.

박태견  부시정권은 클린턴정권과는 분명 다른 측면이 있습니다. 클린턴정권은 금융자본이라든지 첨단산업의 이해를 상당히 반영했고, IMF 구제금융 초기에 한국에 시장개방을 강하게 요구했어요. 그 과정에서 외국자본이 많은 돈을 벌었지요. 금융산업이라든지 미국이 경쟁력을 갖고 있는 산업이 계속 자본을 축적하려 할 때 전쟁은 정반대의 악재이기 때문에 클린턴정권은 한반도 평화의 필요성에 대해서 상당히 인정을 했습니다. 남북정상회담이 가능했던 것은 그런 미국의 용인이 있었기 때문이고요. 그런데 부시정권이 출현하면서 사정이 달라졌어요. 부시정권은 아시다시피 군수와 석유 자본의 이해 위에서 세워진 정권이고, 그러다보니 평화보다는 일정한 긴장상태가 이어지기를 바라고 있어요. 한반도가 평화지대가 된다는 것은 부시정권에는 전세계에서 가장 많은 무기를 소비해주는 한반도 주변 지역이라는 시장을 잃고 군수산업의 기반이 붕괴되는 것을 의미하죠. 이처럼 김대중정부 아래서 우리는 미국과 관련된 두 측면의 경험을 다 해본 것 같아요. 그래서 김대중정부 5년 동안 미국이라는 나라를 정확하게 보게 되었던 것이 아닌가 합니다. 이번 선거운동 후반기에 뉴욕을 중심으로 하는 월가에서는 노무현 후보를 거의 공식적으로 지지하지 않았습니까? 블룸버그(Bloomberg)통신은 대선 이틀 전이라는 아주 예민한 싯점에서 자신들은 이회창보다 노무현을 지지한다는 공식적인 컬럼을 내보냈어요. 여의도 금융가에서도 압도적으로 노무현이 낫다는 얘기를 했습니다. 통념상 이회창 후보가 재계의 이해를 대변하고 노후보는 상대적으로 노동자의 이해를 대변한다고 알려져 있었지만, 실제로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의 갈등이라는 점에서 보면 이후보가 너무 구산업 또는 재벌의 이해관계를 대변한다는 것이죠. 하지만 이미 한국경제에서 재벌은 시장 내에서도 장애요소로 지적되고 있습니다.

홍세화  선거과정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 사회구성원들의 의식이 많이 바뀐 점이에요. 미국을 다시 보게 되고, 냉전 이데올로기가 젊은 세대들에게는 잘 먹히지 않고, 특히 악의 축이라든지 핵 선제공격 발언 등을 통해 미국이 더 위험하다는 인식이 확산되었어요. 실제로 대선 1주일 전의 여론조사에서도 북한이 우리나라의 안보에 제일 위험한 요소가 아니라는 의견이 60% 이상이었어요. 또 65% 정도는 촛불시위, 여중생 사건이 대선에 영향을 미친다고 말하고 있고요. 그것과 맞물리는 것인데 노무현 당선자가 2.3% 앞선 것에는 정몽준씨의 지지철회로 권영길 지지표가 노무현 지지표로 이동한 덕을 본 측면이 있어요. 김대중정부의 경우에는 DJP 연합으로 김종필이라는 혹을 갖고 있어야 했는데, 이번에는 정몽준이라는 혹이 스스로 떨어져나간 셈이 됐고 그 몫을 권영길 지지표가 어느정도 담당해줬다는 것은 그만큼 이 사회의 의식구조가 바뀐 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해요. 또 권영길 후보가 TV 대선토론에 나감으로써 노무현 후보가 급진이나 과격에서 중도로 자리가 잡혔는데, 그런 점도 이미지 상으로 사회구성원들에게 매우 큰 영향을 주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니까 일부에서는 아직 좌파적이다, 사회주의적이다 따위의 얘기를 하지만 이젠 잘 먹혀 들어가지 않는 구도가 된 것 같아요.

 

 

영호남 몰표현상을 어떻게 볼 것인가

 

유재건  박빙의 승부이긴 했지만, 아무튼 과거의 정치문화랄까 정치문법에서는 한나라당이 도저히 지려야 질 수 없는 정황이었습니다. 국회의원 숫자도 그렇지만 돈, 조직, 게다가 북풍 같은 것들이 과거엔 판을 다 결정해버렸잖아요. 결국 객관적 정황이 바뀌면서 낡은 틀이 많이 깨지고 있다는 것인데, 그 낡은 구조를 지탱하는 또다른 축이 지역주의 아닙니까? 이번에는 지역주의가 완화된 것 같기도 하고, 그런가 하면 영호남 몰표현상은 여전한 것 같기도 한데, 97년 대선 상황과 비슷한 건지 아니면 다른 건지, 어떻게 봐야 할까요?

박태견  이번 대선에서 나타난 몰표현상을 놓고 아직도 지역주의가 살아 있다는 평가를 하기도 하는데 호남지역에서 드러난 일련의 지지율 변화를 보면 그것이 과거와 같은 맹목적 지역주의는 아닌 것 같습니다. 경선이 시작되기 전에는 이인제 후보가 가장 높은 지지율을 얻었다가 국민경선 과정에서는 영남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노무현 후보가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소위 ‘노풍’이 광주에서 시작된 것 아닙니까? 그런데 노무현 후보가 양김과 손을 잡는다고 했을 때 지지율이 급속히 낮아졌고 대신에 미지의 인물이지만 변화의 가능성 쪽으로 표가 몰리면서 정몽준 지지율이 앞서던 때가 있었어요. 호남에서 이렇게 지지후보가 이동하는 현상을 보면 단순히 지역주의로 볼 수 있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또다른 측면에서 이는 높은 정치의식의 다른 표현이 아닌가 합니다. 이 지역은 변화를 바라는 동시에 DJ정부에 굉장히 실망했고, 3홍 비리라는 것이 터졌을 때 가장 심한 배신감을 느꼈던 지역입니다. 실제로 그 당시 목포시장 선거 같은 큰 지역선거에서 김홍일씨가 지원하는 세력은 다 깨져버릴 정도였으니까요.

홍세화  저는 호남사람들이 한나라당의 이회창 후보를 과연 찍어줄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지역주의의 문제를 떠나서 광주항쟁의 가해세력이 아직 잔존해 있는 한나라당이고 그 후보인데 말이죠. 이회창의 한나라당은 김대중정부 5년 동안 무슨 일만 있으면 대구나 부산으로 달려가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회창 후보는 호남사람들을 안심시킬 만한, 과거의 기억에서부터 벗어날 수 있게 할 만한 제스처를 전혀 취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지역주의도 민족주의와 마찬가지로 공격적이거나 팽창적인 것이 있고 저항적이랄까 수동적인 것이 있다고 보는데, 호남의 그것은 저항성을 갖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반면에 영남에서 이회창 후보 지지율이 70% 가까이 나온 것도 어떤 점에서 보면 몰표의 성격을 가지고 있어요. 왜냐하면 산업의 지역적 편중에 의해서 호남지방에는 호남사람밖에 없지만 영남지방엔 다른 지역 출신이 많단 말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영남에도 강고한 지역주의가 남아 있다는 것이죠. 지역주의가 완전히 해소됐다고 보기에는 조금 이른 것 같아요. 앞으로 5년 동안은 그것이 희석돼가는 과정일 수 있겠죠.

유재건  지역주의적 성격이 남아 있지만, 성격이 다르다는 데 공감합니다. 사실 한나라당은 김대중 때리기를 통해서 비호남표를 결집하려 했고, 호남에서 노후보의 몰표가 나오는 쪽이 차라리 유리하다고 생각해 그 지역을 방치한 면도 있어요. 호남에서 김대통령에 대한 애정이 예전 같지 않더라도 김대중 때리기를 전략으로 삼은 한나라당에 대해서는 위기의식이 발동한 것 같습니다. 결국 그런 비호남표 결집 전략은 충청과 수도권은 물론이고 강원도에서도 그리 큰 효과를 보지 못했는데, 이것을 볼 때 지역주의는 완화된 측면이 있어요. 이회창 후보를 지지한 이인제 의원의 지역구인 충남 논산에서 노무현 후보가 2배 정도 이긴 것도 놀랍구요. 사실 지역주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