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현기영 玄基榮

1941년 제주 출생. 197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 소설집 『순이 삼촌』 『아스팔트』 『마지막 테우리』, 장편 『지상에 숟가락 하나』 등이 있음. key0116@naver.com

 

 

 

장편연재 (제1회)

누란(樓蘭)

 

 

■ 연재를 시작하며

6세기경 타클라마칸 사막의 모래 속으로 사라진, 영화를 누리던 옛 도시 누란(樓蘭)을 아시는지? 모든 욕망은 헛되이 한줌 모래로 화할 뿐임을 누란은 증거해준다. 모래는 모든 것을 무효화시킨다. 죽음의 손길로 모든 것을 지워버린다. 모래폭풍이 일고, 황사가 자욱한 저 거대한 모래 바다들이 점점 제 영토를 넓혀가고 있다. 우리에게 ‘황사 3일’로 알려져 있던 봄철 황사현상이 지금은 시시때때로 발생하고 보름을 넘기기도 한다. 그것은 인간의 무한욕망이 자연을 착취하여 사막화를 촉진하는 현상을 상징해주기도 한다.

9·11사태는 더욱 구체적으로 인간 욕망의 허무함을 증언한다. 그러나 자신의 이기적 욕망만을 생각하는 인간은 그 사태가 가르치는 묵시록적 교훈을 깨닫지 못한다. 그 사태로 촉발된 위기상황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음에도, 사람들은 그 심각성을 애써 외면하려고 한다. 한반도에도 그 어느 때보다도 싸늘한 냉전의 냉기가 흐르고 있음에도 우리는 대개 무감각하거나 무기력하다. 핵무기 사용도 불사하겠다고 강대국이 언어도단의 발언을 해도 우리는 남의 일처럼 무덤덤하다. 우리는 단지 어리석은 상품소비자일 뿐인가? 문명충돌, 자연파괴 등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인터넷 교란 하나만으로 인간 문명이 붕괴될 개연성이 있다는 것은 지금이 묵시록적 상황임을 말해준다. 그런데도 상품소비자인 우리는 오로지 새로운 욕망, 새로운 감각, 새로운 쾌락을 좇아다니느라 여념이 없다.

그리하여, 이 소설은 묵시록적 상상에 사로잡힌 한 시민의 지적·정서적 편력에 대한 이야기가 될 것이다.

 

 

1

 

영하의 추운 겨울밤, 자정이 훨씬 지난 시간이다. 가게들이 철시하여 어두워진 그 삼거리 우체국 옆의 조그만 편의점 하나가 어두운 상가를 배경으로 마치 무대 쎄트처럼 을씨년스럽게 떠올라 있다. 건물들의 검은 씰루엣 위 반공(半空)에 날카롭게 굽은 초승달이 박혀 있는데, 가로등이 카드뮴의 누런 불빛을 뿌리고, 그것의 흐릿한 반사광을 입고 있는 검은 아스팔트 위에는 군데군데 물이 얼어붙은 자국들이 깨진 유리파편처럼 반짝인다. 이따금씩 택시들이 스쳐 지나갈 뿐, 춥고 늦은 시간이라 인적이 드물다.

이렇게 밖은 괴괴한 정적인데, 편의점 안에는 TV의 심야방송으로 떠들썩하다. 가게주인은 머리숱이 많아 머리통이 뻑시게 보이는 중년 사내다. TV 화면에는 북중미 골드컵 축구대회, 한국과 쿠바의 경기가 실황 중계되고 있는 중이다. 손님은 열예닐곱살쯤 되어 보이는 두 아이들뿐이다. 한 녀석은 검정색 야구모자를 쓰고 다른 녀석은 부스스한 노랑머리인데, 지금 한창 라면을 먹으면서 화면을 보고 있다. 뜨거운 라면발을 후후 불어 삼키면서, 화면 속의 축구선수들을 향해 연방 욕을 해댄다. 씹새들, 똥뽈 차고 있네, 똥뽈. 최용수, 저 시끼 뽕 먹었나, 왜 빌빌해? 이천수는 왜 또 저래? 플레이 메이커라는 시끼가! 얼라 얼라, 잘 논다. 또 패스 미스야?

“야, 씨바, 열받네! 저 시끼들, 그냥 팍!”

노랑머리가 제풀에 화가 나서, 유리탁자를 내리칠 듯이 주먹쥔 오른손을 부르르 떤다.

“야, 싸이코, 또 발작이야? 정신차려! 또 사고치려구 그래? 야, 밖으로 나가자!”

야구모자한테 떠밀려 밖으로 나온 노랑머리가 편의점 앞의 가로수를 걷어차며 화풀이한다.

“씨바, 쿠바 같은 약팀한테 쩔쩔매다니, 말이 돼? 나쁜 시끼들!”

막 더운 음식 먹고 나온 두 녀석의 입에 흰 입김이 머플러처럼 날린다. 우체국을 끼고 돌아 주택가로 향하는 동안 그들은 언제 화를 냈느냐는 듯이 깔깔대고 웃는다. 밤의 정적을 깨는 요란한 웃음소리.

“얼라, 오늘 무슨 날이야? 이 늦은 시간에 불켠 집들이 있네!”

하면서 노랑머리가 주택가 쪽을 가리킨다. 삼사층짜리 다가구주택의 밀집지역인 그 어두운 주택가에는 아직도 소등 않고 불 밝힌 창문들이 꽤 많이 보인다.

“야, 싸이코, 역시 넌 형광등이라 늦게 켜지는구나. 축구중계 본다고 저 지랄이지, 뭐야.”

“빙신들, 그따위 졸전을 뭐하러 봐.”

“저 빙신들도 열받아 부글부글 냄비뚜껑 열리고 있을걸.”

야구모자가 지금 막 산 담뱃갑을 꺼내 한개비 뽑아 물자, 노랑머리가 불쑥 손을 내민다.

“나도.”

“야, 싸이코, 넌 거지같이 맨날 달래기만 하냐?”

“야, 이 씹새, 치사하게 나올 거야, 정말?”

“형편 안되면 담배 끊지 그러냐? 낄낄.”

“야, 당분간 이 가난한 성님한테 담배 좀 대주면 안되냐, 엉?”

“성님? 웃기고 있네. 성님은 나야. 나한테 ‘성님, 담배 한까치만 주세요’ 해봐. 그러면 주지.”

“욜라 지랄하고 자빠졌네. 이 시끼, 쌍코피 나기 전에 얼릉 못 내놔?”

하면서 노랑머리가 상대방의 손에 들린 담뱃갑을 번개같이 낚아챈다.

“아카카카! 요 양아치 시끼 봐!”

야구모자가 담뱃갑을 도로 빼앗으려고 달려드는 것을 노랑머리가 한손으로 펀치 먹이는 시늉을 하면서 능숙하게 이리저리 피한다. 야구모자가 달려들다 말고, 두 손으로 나발을 만들어 입에 갖다대고는 어두운 주택가를 향해 느닷없이 소리를 질러댄다. 공포에 질린 듯 다급한 목소리를 흉내낸다.

“사람 살려어! 강도야, 강도! 사람 살려어!”

날카로운 비명소리가 얼어붙은 밤의 정적을 산산이 깨뜨린다. 잠깐 뜸들였다가 다시 똑같은 비명을 질러댄다. 그 소리가 텅 빈 거리에 음산한 메아리를 남기면서 사라지자 두 아이는 서로 오른손 바닥을 마주쳐 하이파이브 하면서 깔깔깔 웃어댄다. 깔깔대던 야구모자가 이내 시무룩해져서 침을 퇘 뱉는다.

“씹새들! 들은 척도 하지 안잖아, 사람 살려달라는데. 저기 불켜져 있는 집들도 텔레비만 보고 있어. 씹새들, 아무도 내다보지 않아.”

“저치들 니가 거짓말하는 줄 다 알고 있는 거지.”

“그럼, 난 양치기 소년?”

“허걱! 웬 양치기? 넌 웃겨. 넌 양아치야, 비행 청소년……”

“난 아니야. 싸이코, 니나 양아치 해라.”

“어쭈구! 이젠 양아치 안하겠다고? 그럼, 너 배신 때리겠다, 이거야?”

“난 양치기야.”

“씹새, 좆까고 있네.”

야구모자가 다시 한번, “사람 살려!” 하고 소리친다.

“거봐, 아무도 듣는 놈 없잖아. 어디, 내가 한번 해볼까?”

이번엔 노랑머리가 “강도야, 강도!” 하고 소리지른다. 그러고는 귀기울여 듣는 시늉을 하다가 벌컥 화를 내며 신호등 기둥을 걷어찬다.

“씨바, 들은 척도 안해. 저 꼰대들! 아무도 우리한텐 신경 안 쓴단 말이야!”

“좋다, 이거야! 우리도 신경 끈다, 이거야! 신경 안 쓴다, 이거야!”

“우리가 우리한테도 신경 안 쓰는데, 좆또, 우리가 왜 꼰대들 말에 신경써? 웃겨!”

“씨바, 정말, 팍 꾸겨버리고 싶어! 찢어버리고 싶어! 아, 짱나! 야, 싸이코, 내 담배 빨랑 내놔!”

“‘성님, 한까치만 주십시오’ 하면 주지. 낄낄낄.”

야구모자가 덩달아 낄낄 웃다가, 아까처럼 두 손을 입에 대고서 또 소리를 질러댄다.

“엄마야아! 엄마야아! 승철이가 내 담배 뺏어갔어! 빨랑 와서 이 시끼 때려주라구!”

그 소리가 다시 한번 인적 없는 거리를 요란하게 흔들어놓는다.

“거봐, 니 엄마도 못 들은 척하잖아. 니 엄마도 이젠 신경 껐어. 누구도 니한테 신경 안 써. 니 엄마 주정뱅이잖아. 요새도 술 먹고서 울어쌓니? ‘아이고, 아이고 내 팔자야’ 하면서?”

야구모자가 발끈 화를 내면서 노랑머리의 가슴팍에다 아프게 스트레이트 펀치를 먹인다.

“너 이 시끼, 우리 엄마 욕하지 마! 아무리 그래도 엄마는 엄마야. 내가 속 썩여서 그래. 공부는 안하고 맨날 말썽만 피우니까 그렇지. 우리 엄만 정말 불쌍해. 밤늦도록 시장일에 고생하시고…… 엄마가 불쌍한 줄 알면서, 내가 왜 그러는지 몰라. 엄마만 보면 왠지 화가 나서, 마구 욕하게 돼. 아, 엄마!”

야구모자가 모자를 벗어서 신호등 기둥을 마구 휘갈기더니, 거기에다 이마를 대고 끅끅 흐느껴 운다. 노랑머리가 그 옆에서 깝죽대며 조용필 노래로 놀린다.

 

엄마야 나는 왜 자꾸만 기다리지

엄마야 나는 왜 자꾸만 보고 싶지

아마 나는 아직은 어린가봐 그런가봐

엄마야 나는 왜 자꾸만 슬퍼지지

엄마야 나는 왜 자꾸만 울고 싶지

 

“야, 씹새, 울지 마! 니가 그러면 나도 눈물나잖아! 에이, 게임 망쳤어. 자, 니 강아지 도로 가져가.”

하면서 노랑머리는 담배 한개비만 뽑아 입에 물고는, 담뱃갑을 야구모자에게 던져준다. 둘은 우울한 표정으로 담배를 피워문다. 입김에 섞인 다량의 연기가 분노처럼 두 입에서 쏟아져나온다. 차도를 건너기 시작한다. 빈 아스팔트를 가로질러 두 개의 그림자가 기다랗게 내던져진다.

“씨바, 꾸겨버리고 싶어!”

“찢어버리고 싶어!”

“니네는 진짜 웃겨!”

“니네들이 좆같은지 왜 몰라!”

거칠게 서로 어깨를 부딪쳐대다가, 아예 차도 한가운데 멈춰서서 복싱 연습하듯이 느린 동작으로 상대방에게 펀치 먹이는 시늉을 한다. 잽을 먹이고 피하면서, 상체를 상하좌우로 깝죽깝죽 더킹 모션을 하다가, 그것이 어느덧 갱스터랩 동작으로 바뀐다. 번갈아 내뻗는 두 팔의 동작에 맞춰 툭툭 내지르는 사나운 목소리가 광물성으로 얼어붙은 네거리 공간을 음산하게 울려퍼진다.

 

아이브 빈 루킹 포 어 트레이스 루킹 포 어 하트 루킹 포 어 저스티스 (…) 앤 아이 노우 아이 돈 니드 유어 룰즈, 아이 저스트 원티드 투 브레이크 프리

니네는 진짜 웃겨, 가만히 듣고 하다보면 진짜로 웃겨

너는 내가 본 새끼들 중에 제일 웃겨

왜 니가 뭣 땜에 된다 안된다 참견이 많은지 몰라, 누가 그걸 몰라

청소년들이 욕을 왜 몰라 니네가 좆같은지 왜 몰라

니네가 그렇게 입을 막고 또 손을 묶고 해도 뭘 잘 몰라

누가 좆같다 안 가르쳐도 다 좆같은 게 좆같은 거지

 

급히 달려오던 택시 한대가 그 앞에서 급커브를 튼다. 스칠 듯이 비켜 지나가는 차를 향해 노랑머리가 “개새끼!” 하면서 발로 걷어차는 시늉을 한다.

 

누가 좆같다 안 가르쳐도 다 좆같은 게 좆같은 거지

(…)

그렇게 관심없이 멋대로 굴다간 좆되지, 솔직히 까고 말해

니네 비행 청소년들의 미래 관심있기나 해?

까놓고 상관이나 해? 그렇게 사회라는 조직 위에

편히 숨어서 남에게 해 끼치기만 해 돈 벌려면 벌어

근데 딴거 해서 벌어 벌어 벌어

………………………

 

길을 건넌 두 아이는 계속 노래를 부르면서, 우체국 옆 교회건물을 돌아 어두운 주택가 안으로 사라진다. 멀어지는 노랫소리. 아이브 빈 루킹 포 어 트레이스 루킹 포 어 하트……

네거리는 다시 조용한 부동의 풍경으로 돌아간다. 교회 앞 검은 아스팔트 위에 반사된 붉은 네온 빛이 핏물처럼 번져 있다. 어두운 허공에 떠 있는 교회 첨탑의 핏빛 네온 십자가.

그러고서 약 30분 후인 새벽 두시경, 축구중계로 늦게까지 켜 있던 주택가의 불빛들이 마저 꺼져버린 시간에, 택시 한대가 스르륵 미끄러져 편의점 앞에 와 멈춰선다. 그 차에서 서른아홉살의 대학선생 허무성이 내린다. 술에 취한 그는 엄습하는 차 밖의 냉기에 진저리치면서 버버리 코트 호주머니에 두 손을 찔러넣고는, 비척거리며 편의점 안으로 들어간다. 머리숱이 많아 뻑시게 보이는 두상의 중년 사내가 자울자울 졸다가 문 열리는 차임벨 소리에 눈을 뜬다. 그러나 허무성은 그쪽으로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곧장 주류 진열장으로 가서 킹 싸이즈의 맥주 한병을 집어든다. 이틀에 한번 꼴로 술에 만취해 이렇게 귀가가 늦어지는 날이면 가끔씩 이 가게에서 더도 아니고 맥주 딱 한병을 사는 것이 그의 버릇이다. 카운터에서 맥주병을 비닐봉지에 넣어주면서, 주인 사내는 허무성의 모습을 몰래 살핀다. 이 가게에 종종 들르긴 하지만, 물건값 묻는 것 외에는 달리 말 걸어온 적이 없는 손님이다. 말 걸기는커녕 눈 마주치기조차 꺼리는 기색이다. 안경 너머로 눈빛이 어둡다. 뭔가 고민이 있는 모양이다. 그렇지만 왜 맥주를 한병만 살까? 큰 키에 마른 몸매, 알코올로 표백된 얼굴은 희다 못해 핼쑥하게 푸른 기가 돌고, 양미간은 괴롭게 찡그려져 있다. 그 모습이 마치 언젠가는 터져버릴 시한폭탄처럼 위태로워 보인다.

그러나 실은 킹 싸이즈의 그 맥주병이 시한폭탄이라는 걸 가게주인은 모른다. 허무성이 맥주 한병을 사는 이유는 언제나처럼 그것을 매개로 해서 이 늦은 밤에 아내를 깨워놓고 무슨 얘기를 하고 싶기 때문이다. 아내는 오늘도 TV를 끄지 않은 채 잠에 곯아떨어져 있을지 모른다. 방영이 끝나 영상이 사라진 TV에는 탁한 음색의 정신 사나운 소음과 함께 화면 가득히 전자 입자들이 세균 무리처럼 뒤엉켜 바글거린다. 사람 형태를 갖추고 움직이던 영상들이 부서져 바글거리는 전자 입자들로 변한 그 화면과 그 곁에서 입을 쩍 벌린 사나운 몰골로 잠에 곯아떨어져 있는 아내의 모습은 언제나 그에게 죽음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 허무성은 이 깊은 밤 그 음산한 장면을 깨뜨리고 싶어한다. 영상은 죽고 전자 입자들만이 바글거리는 그 TV 화면을 끄고, 아내를 깨워서 뭔가 절실한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그 ‘절실한’ 이야기란 지난 일년 몇개월 동안 미해결 상태인 채 똑같은 내용을 똑같은 표현방식으로 반복해온 것이어서, 이제는 별로 절실하지 않은 상투어가 되어버렸다. 한밤중이면 이따금씩 그 방에서 분노의 불꽃이 사납게 일곤 했다. 아마도 열흘에 한번 꼴은 될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관성적으로, 요식행위처럼 치러지는 그 해프닝을 어떻게 분노라고 부를 수 있겠는가. 그것은 분노라기보다는 광증이었다. 단 삼사분 동안에 집중적으로 벌어지는 그 격렬한 광증의 소용돌이 속에서 말하고 행동하는 것은 오로지 허무성뿐이다. 문정선, 정선아, 우리 이러지 말고, 어떻게 좀 해보자, 언제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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