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 제3회 창비신인소설상 가작

 

김지우 金智雨

1963년 전북 전주 출생. 전북대 국문학과 졸업.

 

 

 

눈길

 

 

그새 또 지랄맞게 눈발이 날린다. 철 만난 한추위 원풀이라도 하듯, 달도 없는 섣달 그믐밤부터 진탕만탕 퍼부어댄다. 자우룩한 눈안개에 덮여 운장폭포 아랫길이 흔적조차 없다. 밤낮으로 익혀온 길눈이 아니라면 길을 틔울 수조차 없을 것 같다. 그믐치에는 없던 바람마저 살아 산등성이로 밭 언저리로 눈발을 휘몰고 다니고, 과녁빼기 운장사 풍경들은 소리를 놓아버렸다. 아무래도 살짝이 지나가고 말 눈이 아니었다. 운장산성길 돌담 한군데를 호되게 다스려놓든 참나무골 버섯막사를 그예 반병신을 만들어놓든 한바탕 북새질을 쳐놓을 심보다. 별나게 볕이 좋던 두어 날 새 골안개에 먹진 구름이 동무해 걸릴 때, 암만해도 재 넘어오는 바람이 수상쩍다 여겼어야 했다.

‘사람 인심 한번 좆같네. 조카새끼가 암만, 지가 가서 한번 둘러볼랑만요 했다손 한 놈은 내다봐야 쓸 것 아녀?’

명색이 설 푼수에 놀이삼아 치우는 눈도 아니고 안 그래도 뒤숭숭한 속에 부아가 치밀어 사내는 싸리비를 훌떡 내던져버렸다. 종손이면 큰영감이나 장형인 태수형이 종손이지 종갓집 고구마 줄기라고 줄줄이 종손은 아닐진대, 아들병풍 치고 제 모실 것도 아니고 굴러다니는 아들 중에서 하나는 인사삼아, 작은집 태섭이가 시방 참나무골에서 눈 터니라고 욕보고 있응게 얼른 빗자루 한나 들고 나가봐라이, 하고 내몰아야 어른 도리가 아닌가 싶어서였다.

미친년이 상추 뜯듯 해놓았든 어쨌든 사내는 만여 본이나 되는 큰영감네 버섯막사 스무 동을 털어놓긴 했다. 부라퀴 같은 영감이 매조지 하나는 워낙 단단하게 해둔 덕으로 두어 날은 더 퍼부어도 영감네 버섯들이 눈더미에 몰사할 일은 없을 것 같았다. 문제는 큰영감 밑에서 품팔이 댓달 만에 종산 한옆을 도지 얻어 이천 본 가량 접종해놓은 사내네 버섯들인데, 흥부네 자식들 불쌍타 할 것 없었다. 그집 자식들 이불 하나로 삼동 나는 거나 이집 자식들 뜯어진 비닐 한 장으로 모진 눈발 배겨내는 거나 입성 사납기는 매한가지였다.

그렇잖아도 경상도 어디까지 닿는 길이 하필이면 종산을 관통해서 뚫린다는 통에 맨속 시끄러운 날뿐인데 어쩌자고 눈발은 저리 휘몰아치는지, 해토머리 따신 바람 한줌이 이리 귀할 줄 예전에는 몰랐다. 사내는 종잡을 수 없는 날만큼이나 하늘이 원망스러웠다.

보아하니 금세 시들해질 눈은 아닐 성부르고, 어젯밤처럼 쌕쌕 휘몰아치면 밤중에라도 손전등 밝혀 들고 다시 한번 둘러보고 가더라도 사내는 일단 산을 내려가기로 했다.

하도 날이 지랄같은지라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감조차 잡히질 않고 햇솜을 널어놓은 것마냥 눈안개만 자욱하니 딴세상에 갇혀버린 것 같았다.

골 안에 저 멀리 동진강으로 흘러드는 수만댐 상류를 안고 있어 평소에도 참나뭇골은 골안개가 잦았다. 그러나 오늘처럼 길을 감춰버리지는 않았다. 이쪽 길이 보리밭둑길이지 하고 가늠잡아 걸으면 그보다 더 안쪽에서 불쑥 보리싹이 넘실거리고, 참나뭇골과 수만골 갈림길이 요쯤일 텐데 하고 보면, 밭둑 두어 장은 장히 어긋나 있었다.

갈림길에서 사내는 잠시 망설였다. 눈발에 가려 보이진 않아도 야트막한 솔숲 하나만 질러가면 큰집이었다. 한데 요즘 들어 큰영감이 시큰둥하니 사내를 대하는 태도가 어째 떨떠름했다. 갑작스레 종산이 두 동강이가 난다고 깃발이 꽂히면서부터였다. 덩달아 사내도 떠름할 수밖에 없는 것이 큰영감 배려가 아니면 알랑꼴랑한 버섯농사나마나 그나마도 작파를 해야 할 처지에 놓였기 때문이다. 그러자니 큰영감 기침소리가 사내의 일진이 되고 큰영감 눈치에 맞춰 손발을 놀려야 했다.

사내는 일단 큰집이 있는 솔숲으로 발길을 놓았다. 영감 행태가 그렇다고 그냥 지나치자니 설인사치고 안됐다 싶고 빈속에 한속도 들고 생판 남도 아니고 어쨌거나 조카새낀데, 덕담으로라도 무슨 언질이 있을지 누가 아는가.

 

시방 저 소리가 떡국을 맛나게 먹으라고 허는 소리다냐, 숟가락 놓고 물러서라고 허는 소리다냐. “국물까정 훌훌 떠묵어감서 묵어야” 하고 말부조를 넣은 것을 보면 조카새끼 고생했다고 생각하는 말 같기는 한데, 사내는 입맛이 싹 달아나버렸다.

“그렁께 느그 엄니가 찾어와갖고 허는 말이, 니가 맘잡고 살게끔만 해도라는 것여. 그서 내가, 갸가 애깃적버텀 배깥으로다만 떠돌았는디, 농새를 질 중 알겄소, 뒤엄냄시를 맡을 중 알겄소. 아니헐 말로 갸 잘허는 짓거리도 흙 묻히고 사는 것허고는 생판 다른 일인디, 내가 갸헌티 심 보태줄 일이 뭣이 있겄소 했제. 그렁게 느그 엄니가 문중산이서 시숙님 표고 키우는 일 조까 허게 해도랴. 갸도 새끼까정 뒀는디 언제까정 달 밟고 다니겄냠서.”

“아따! 언젯적 얘기다요.”

사내는 못마땅해서 중도에 큰영감 말을 잘라버렸다. 듣자듣자하니 덕담은 고사하고 거지 쪽박 깨는 소리 다름아니어서 낯꽃이 먼저 알고 울그락불그락해졌다.

“고렇게 낯 붉힐 일이 아닌디 무단시 성은 내고 그런다. 그렁게 내 말은 문중산이 결딴나뻔지게 생겼응게, 너도 살 채비를 허라 그 말여. 보상비 조까 나오는 것 갖고는 조상님들 묏자리를 봐야 헐 텡게 말여.”

그러니까 큰영감 딴에는 생각고 당신 속엣말을 잘깃잘깃 풀어낸 모양인데, 사내 귀에는 어째 간사위로밖에는 들리지 않았다. 이 갈가위 같은 영감이 뉘라서 보상비를 먹잘 것 없이 죄다 뫼 쓰는 일에 풀겠는가. 미련퉁이가 아니고서야 아무렴 여태 그만한 눈치를 못 챘을까. 당신 살 궁리 찾아 황영감네 묵정밭을 봐두었다는 것이 천년만년 감춰질 성부른가. 그럴 양이면 그 땅에다 노지재배를 할 거라고 당신 입으로 냠냠거리지나 말 일이다.

사내는 얼었던 몸이 풀리면서 감당 못하게 들러붙던 졸음이 단박에 가셔버렸다.

하여 사내는 큰영감이,

“입맛이 깔깔허다냐 어쩌다냐. 고거 한술을 다 못 뜨고 냉기게”

하면서 건네준 농익은 죽순주도 마다하고,

“글먼, 제 뫼시고 난 퇴주를 줄까이?”

하고 골방에서 내온 더덕주도 마다하고,

“품팔러 다님서 마시던 쐬주나 한잔 허고 말라요.”

해서, 나는 요 집안에서 암것도 아닌게 요러고 마실라요 하는 게정부림으로 상밑에다 놓고, 한잔 쳐주겠다는 큰영감 손도 물리친 채 자작으로 따라 마시다 일어섰다.

“벌써 갈라고야? 즘심이나 묵고 느 성들 새에 껴 놀다 가제.”

“집에서 기다릴 텡게 가볼랑만요.”

영감이 붙잡거나 말거나 갈 채비를 차린 사내는 두말 않고 문턱을 넘어섰다. 잠깐 새에 눈발이 더 우꾼해진 것을 모르고 무심코 뒤따라 나오다 영감이 진저리를 쳤다. 사내 또한 고개 하나 길이라고는 하지만 날이 보드라울 때 얘기라 순간 아뜩했다.

“쪼깨 지달렸다 시든 참에 갔으먼 쓰겄고만.”

그예 사내가 뚝뚝하게 “눈이야 어채피 내리는 눈이고” 하자, 영감도 “승질도 참말로 개떡 같네이” 했다. 여편네 샛서방을 보내는 길도 말려야 할 참에 조카새끼나 되는 놈이 고집을 쓰니 마뜩찮은가 보았다.

“누가 왔을랑가도 모르겄고……”

얼결에 뱉어놓고 사내는 아차! 싶었다. 다행히도 영감은 무슨 말인가 하는 눈치였다.

“누가 와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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