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천운영 千雲寧

1971년 서울 출생. 200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 작품으로 「바늘」 「숨」 「유령의 집」 「등뼈」 「당신의 바다」 「행복 고물상」 등이 있음. hangomm@hanmail.net

 

 

 

눈보라콘

 

 

어머니가 오신다.

잔교(棧橋)를 건너 남항동 철공단지를 나와 신선국민학교 높은 담을 따라 지금 집으로 오고 있다. 낡은 차들이 검은 연기를 쿨럭이며 겨우 올라오는 가파른 길을 어머니는 힘 하나 들이지 않고 사뿐사뿐 올라온다. 고무작업복과 머릿수건이 담긴 보자기를 들고, 신선동으로.

부산시 영도구 신선동. 신선이 살았다고 믿기에는 너무 낡고 더러운 곳이다. 옹색한 집들로 향하는 좁은 골목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집요한 악다구니가 이어지고, 악다구니가 끝나면 사내아이들이 모여 담배를 피우거나 벌거벗은 여자들의 사진을 돌려보고, 아이들이 사라지면 쥐들의 차지가 되는 동네.

나는 악다구니와 벌거벗은 여자들과 쥐들의 골목을 나와 담 위에 앉아 시시각각 다른 빛이 되는 항구를 바라보며 시간을 보낸다. 때로 선박 아래에 이는 흰 포말과 잠루(岑樓)에서 반짝이는 싱싱한 금속성 눈부심을 보기도 하고, 해안을 따라 자리잡은 상점과 술집 들이 그려내는 주홍빛 소묘를 보기도 한다. 그리고 항구가 완전히 어둠에 잠기면 어김없이 담 위에 올라앉아 집으로 돌아오는 어머니를 기다리는 것이다.

내가 앉아 있는 콘크리트담은 산의 목언저리까지 바락바락 기어오르는 판잣집들과 고갈산을 가르는 경계선이다. 담이 최후방어선이라도 되듯 산은 더이상 집들을 받아들이지 않고 저 혼자 숲을 이룬다.

손을 뻗어 보안등 스위치를 올린다. 보안등을 켜기 위해 이곳까지 올라오는 사람은 없다. 흐린 불빛을 찾는 것은 고개를 쳐들고 몰려드는 날벌레들뿐이다. 벌레들의 날갯짓에 불빛이 흔들린다. 불빛이 흔들릴 때마다 나도 흔들린다. 내 마음은 이미 어머니의 부드럽고 깨끗한 손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어머니는 망치를 들고 선박의 녹 떼어내는 일을 하지만 아직까지 싱싱하고 부드러운 손을 갖고 있다. 그건 어머니가 녹을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녹을 이해하는 것은 얼음을 이해하는 것과 같다고 어머니는 말하곤 한다.

곡괭이를 꽂으면 쩡, 얼음 갈라지는 소리가 나. 갈라진 틈에 곡괭이를 몇번 더 질러넣고 망치질을 하면 조각조각 떨어지는 녹덩이를 볼 수 있단다. 무턱대고 망치를 휘두르면 표면만 바스라져. 얼음도 그렇지 않니? 막 내린 눈과 사람이 밟아 단단해진 눈을 치우는 건 다르거든. 녹꽃은 살짝 긁어내야 하는 거야, 성긴 눈처럼. 끌로 긁어내면 사박사박 눈 밟는 소리가 나. 파도가 만든 녹덩이는 얼음을 가르듯 일격에 금을 내야 해. 무조건 두들겨팬다고 되는 게 아니거든. 차가운 것일수록 더 세심한 배려가 필요한 법이란다.

나는 녹을 설명하는 어머니의 나긋나긋한 목소리를 좋아한다. 영도로 시집와 십여년을 살았는데도 어머니는 부산 말을 쓰지 않는다. 특히 녹과 얼음을 말할 때 어머니 목소리는 저절로 흘러나오는 꽃향기나 음악처럼 그윽하게 퍼진다. 그것은 공기 속으로 사라져버리는 소리가 아니라 한입 베어문 아이스크림처럼 목젖을 간질이며 내 속 깊은 곳으로 흘러들어온다. 그 웅숭깊고 달콤한 목소리가 좋아 몇번이고 얼음 이야기를 해달라고 어머니를 조르게 된다. 그렇다고 내가 어머니의 말을 모두 이해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두껍게 앉은 얼음덩이를 깨어본 적이 없다. 처마끝에 매달린 고드름이나 소복이 쌓인 눈을 만져보지도 못했다. 그것은 내가 신선동에서 태어나 신선동에서 자랐기 때문이다.

신선동에 함박눈이 내리는 것은 십몇년에 한번쯤이나 있을까. 눈이 내려도 바닥에 닿자마자 녹아버리거나 다음날 아침이면 시침을 뚝 떼고 흔적도 없이 사라지기 일쑤여서 눈 덮인 신선동을 보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중학생이 되도록 나는 눈사람을 만들어보지 못했다. 신발이 젖을 만큼 눈을 밟아본 적도 없다. 어머니가 끌로 긁어내는 녹꽃의 사박거림은 언제 들을 수 있을까.

어머니는 산복도로 횡단보도 앞에 서서 저녁 찬거리를 꼽아보고 있을 것이다. 지금 내려가면 중복도로 즈음에서 어머니를 만나 손을 잡고 집에까지 걸어 올라올 수 있다. 이제 담에서 내려 어머니를 맞을 시간이다. 바지에 묻은 흙을 털어내고 어머니가 오는 곳으로 향한다.

신선미용원 앞에 소녀가 서 있다. 소녀의 손에는 아이스크림이 들려 있다. 점집 가시나, 사람들은 소녀를 그렇게 부른다. 국민학교 때 같은 반인 적도 있지만 말은 해보지 못했다. 어깨 위에 동자보살을 얹고 영도다리 밑에서 점집을 하는 어머니 때문에 아이들은 소녀와 친구가 되려고 하지 않았다. 소녀 또한 까불거리는 아이들 따위에는 별 관심이 없다는 듯 고개를 빳빳이 세우고 혼자 다니곤 했다. 소녀는 어머니와 함께 매일 밤 고갈산을 올라 기도를 드린다. 내가 담에서 내려오면 소녀가 담을 차지하고 다 녹은 아이스크림을 핥거나 붉은 사탕 따위를 오물거리며 점쟁이 어머니를 기다리기 시작한다.

소녀가 아이스크림을 베어문다. 움푹 패는 것을 보아 오래 들고 있었던 모양이다. 소녀는 일부러 내가 오기를 기다렸다가 아이스크림 포장지를 벗기는지도 모른다. 소녀의 입가에 묻은 하얀 아이스크림을 슬쩍 올려다본다. 손등 위로 아이스크림이 녹아내린다. 녹은 아이스크림이 팔뚝을 타고 흘러내리는데 소녀는 혀끝을 살짝살짝 댈 뿐 서두르지 않는다. 오히려 그걸 보는 내가 안타까이 아이스크림을 훔쳐보며 침을 삼키게 된다. 밭게 침을 삼켜도 혀 아래에서 자꾸 침이 솟아오른다.

소녀의 손에 들린 것은 부라보콘이다. 언제부턴가 나는 부라보콘을 운명적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부라보콘은 내가 태어난 1970년 4월에 출시되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현대적인 아이스크림과 나이가 같다는 사실만으로도 부라보콘을 운명적으로 여기는 것이 당연하게 느껴졌다. ‘부’ 하고 입술을 부딪쳐 입안의 공기를 밀어내다가 입천장에 혀끝을 딱 붙이며 ‘콘’ 하고 마무리짓는 부라보콘의 발랄하고 향긋한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그 운명적인 이름을 몇번이고 발음해보았다. 그 순간 강력한 승리감에 몸의 가닥가닥을 휘어잡힌 채 부라보콘에 빠져버리고 만 것이다.

내 이름은 용수다. 표용수. 그 이름은 발음하기도 어렵거니와 부라보콘처럼 명쾌하지도 매혹적이지도 않은 시시한 이름이다. 내 이름을 지은 아버지는 이발소에서 바닥을 쓸거나 머리를 감겨주는 보조이발사였다. 3,4분이면 꼬마녀석들의 머리를 깎아내는 이발사 밑에서 잔일이나 하던 아버지의 꿈이 이발사인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 아버지가 한자사전까지 빌려와 바리깡을 손에 든 채 만들어낸 이름이 바로 ‘용수’였다. 얼굴 용(容), 지킬 수(守). 얼굴을 지킨다, 아버지에게 그보다 더 좋은 이름이 있었을까?

아버지는 내가 태어난 지 이태 만에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용수라는 이름에 아버지의 꿈이 주술처럼 남아 내 삶을 강요하지는 않을까 두려워지곤 한다. 그러나 나는 이발사가 되거나 얼굴을 지키는 일 따위는 하지 않을 것이다. 죽은 아버지나 이름이 나를 구속할 수는 없는 일이다. 오직 부라보콘만이 내 운명에 관여할 수 있는 존재였다.

내가 부라보콘에 빠져든 것은 이름 때문만이 아니다. 부라보콘은 결단코 최고의 아이스크림이라 부를 수 있다. 훌훌 벗겨내는 비닐포장지의 삼강하드나 사카린과 색소를 적당히 섞어 만든 아이스께끼의 싼 맛과는 질적으로 다른 최고의 아이스크림.

소녀는 왜 최고의 아이스크림을 몰라보고 저렇게 들고만 서 있는 걸까. 소녀를 밀쳐내고 부라보콘을 빼앗고 싶다. 진정 부라보콘을 사랑하는 자만이 그걸 먹을 자격이 있는 것이다. 나는 자리에 우뚝 서 부라보콘을 훔쳐먹는 상상을 한다. 눈을 감는다. 부라보콘이 내 손에 있다.

전체를 휘어잡게 만든 원뿔형의 부라보콘은 냉정한 육체를 가졌다. 그러나 내가 손에 쥐는 순간 그 차가운 몸뚱이는 뜨거운 잔상을 남기며 맹렬히 안겨온다. 표면에 생긴 물방울이 손금 사이사이로 스며들면 다른 손바닥에도 슬그머니 땀이 찬다. 비밀의 문을 열듯 조심스럽게 옷을 벗겨낸다. 돋을새김이 되어 있는 콘의 표면은 소름이 살짝 돋은 발가벗은 여자의 몸처럼 안쓰럽기까지 하다. 아이스크림의 질감을 훼손하지 않을 정도로 바삭바삭하면서 촉촉한, 그 어떤 콘도 따라올 수 없는 아슬아슬한 균형감각. 나는 부라보콘 맨살을 아주 세심히 쓰다듬는다.

뚜껑에 붙은 아이스크림에 혀끝을 살짝 대어본다. 혀의 돌기마다 전해오는 감칠맛에 나는 안달이 난다. 빨리 나를 먹어봐, 부라보콘은 달콤하게 속삭인다. 유혹의 손길을 뻗는 부라보콘을 보란듯이 한입 크게 베어물고, 빨리 그 몸 구석구석을 파고들고 싶다. 하지만 성급하게 굴지 않는다. 목구멍을 뜨겁게 달구며 내 혀를 부추기는 욕망이 자라나도록 그냥 둔다. 그것이 점점 더 살이 올라 목구멍과 가슴 한복판을 지나 복사뼈를 짓누를 때까지 참고 견디며 포장지에 붙은 미세한 아이스크림을 샅샅이 빤다. 그러면 부라보콘은 제 몸을 촉촉이 풀어내며 봉긋 솟아오르게 된다. 이제 가장 탐스러운 부분에 이빨을 들이댈 때다. 살 속 깊숙이 이를 박으면 나를 짓누르던 욕구가 순식간에 방출되며 화사한 황홀경이 찾아온다. 입천장을 뜨겁게 후려쳤다가 부드럽게 목젖을 통과하고 종내는 말간 침에 의해 단 기억이 지워지는 일련의 과정. 천천히 그러나 격정적으로 부라보콘의 몸을 탐한다. 초콜릿이 살짝 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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