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다시, 민족주의는 반역이다

 

 

임지현 林志弦

한양대 사학과 교수. 『당대비평』 편집위원. 저서로 『바르샤바에서 보낸 편지』 『민족주의는 반역이다』 『그대들의 자유, 우리들의 자유―폴란드 민족해방운동사』 『이념의 속살』 『우리 안의 파시즘』(공저) 등이 있음. jiehyun@hanyang.ac.kr

 

 

1. 운동으로서의 민족주의

 

민족에 대한 한국사회의 욕망은 참으로 집요하다. 민족주의로 표상되는 이 사회적 욕망이 단순히 허위의식이나 감정의 차원이라면, 논의의 필요성이나 가치를 느낄 이유가 없다. 민족주의를 바라보는 내 시선은, 그것이 ‘근대 세계사의 물질적인 현실의 운동방식에 근거를 갖는 것’이라는 차원을 넘어서 현실에 대한 사유와 실천을 구성하고 생산하는 현실 규정력을 지닌 담론이라는 것이다. 민족주의 담론은 물질적 현실의 단순한 반영을 넘어서, 현실을 만들어나가는 힘인 것이다. 『민족주의는 반역이다』에서 민족주의를 ‘관념의 힘’으로 규정하는 시각을 비판하고. “사회적 총관계의 변화에 따라 끊임없이 방향과 내용을 수정하면서 살아 움직이는 역사의 변화에 열려 있는 운동으로서 민족주의를 파악”하는 ‘운동사의 관점’을 촉구한 것1도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민족주의를 사회적 내용이 채워져야 하는 이차적 이데올로기이자 단순히 감정의 차원으로 취급하는 시각부터 문제”2라는 유재건(柳在建)의 비판은 그가 서평을 쓴 바 있는 바로 그 책에 의해서 이처럼 부정된다. 책의 권두논문인 「운동으로서의 민족주의」를 발표한 1994년에 비해 내 생각은 또 달라졌지만, 운동사의 관점에서 민족주의를 바라보아야 한다는 기본생각에는 변함이 없다.3

민족주의를 역사적 변화에 따라 움직이는 ‘이차적 이데올로기’로 규정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데올로기로서의 민족주의는 자기완결적 논리구조를 갖지 못한다. 그것은 복수 주체들의 다양한 입장에 따라 그리고 역사적 조건과 맥락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지기 마련이다. 박정희의 ‘조국근대화’론이나 북한의 ‘주체사상’, 남한의 ‘민중적 민족주의’ 등이 민족주의의 외투를 걸치고 병존해온 엄연한 역사적 현실에서도 그것은 입증된다. 해방과 저항 이념으로서의 민족주의라는 규범적 이해가 지배적인 한, 물론 ‘이차적 이데올로기’라는 규정성은 불편할 것이다.‘이차적 이데올로기’라는 규정성이 소중한 것은 역설적으로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그것은 민족주의〓절대선이라는 규범적 인식의 틈새를 벌림으로써, 민족주의의 복합적 현실에 접근하는 첫걸음인 것이다. 다행히 지난 몇년간 민족주의〓절대선이라는 인식은 많이 깨지기도 했지만, 여전히 좋은 민족주의 대 나쁜 민족주의, 혹은 열린 민족주의 대 닫힌 민족주의라는 이항대립의 규범적 인식틀은 완강하게 존재한다.

지배와 저항을 동시에 관통하면서 작동해온 20세기 한반도 민족주의의 복합적 현실 앞에서, 이항대립의 이 안이한 규범적 인식은 현실의 비판을 견뎌낼 수 없다. 민족주의에 대한 운동사의 관점이 요구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운동사의 관점은 민족주의에 대한 본질주의적 이해를 거부한다. 그것은 민족주의가 역사적 변화에 따라 움직이는 이데올로기라는 점을 직시하면서, 사회운동 또는 정치운동으로서 민족주의를 파악하려는 시도이다. 운동사의 관점에서 민족주의를 포착한다고 할 때, 세계사의 정치·경제적 차원에 대한 분석이 요구되는 것은 물론이다. 그 분석에 기댈 때, 민족주의에 대한 비판은 오히려 견고한 현실성을 갖는다. 구좌파의 변혁적 사고가 개별 국가단위에 갇혀 있었고 민족운동 또한 국가성에 대한 어떠한 역사적 대안도 제시하지 못한 채 체제의 제약들 안에 포섭되었다는 이매뉴얼 월러스틴(Immanuel Wallerstein)의 비판, 국민적/지역적 집단들의 정체성에 기초하여 저항의 거점들을 만들고자 했던 좌파의 노력이 결과적으로 ‘제국’의 발전을 지지했다는 마이클 하트(Michael Hardt)와 안또니오 네그리(Antonio Negri)의 비판 등은 무엇보다도 세계사의 정치·경제적 분석에 입각한 것이다.4 민족주의 비판이 마치 세계체제의 인식부족에서 비롯된 것처럼 몰고 가는 유재건의 논지가 다소 엉뚱하게 느껴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편에서는 다양한 포스트주의의 이론틀에 기댄 민족주의 비판이 담론구성체로서의 민족주의를 겨냥하고 있다는 점에서,‘물질적 현실의 운동방식’을 소홀히 한다는 인상을 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데올로기를 허위의식으로 규정하는 단순한 사고를 벗어나 이데올로기의 물질성이라는 인식에 다다르면, 문제의 차원이 달라진다. 소박한 기초주의적 인식론과 언어 표상이론을 벗어나면, 사유와 실재의 정연한 이분법을 액면 그대로 지탱하기 어렵다. 대상이 담론적 접합 속에서 우리에게 주어지고 현실이 담론 속에서 구성된다면, 정치·경제·사회적 실천들 또한 담론적 틀을 통해 방향성이 규정되기도 수정되기도 하는 것이다. 예컨대 신념·의미·실천 체계로서의 이데올로기가 사회적 존재로서의 우리를 어떻게 ‘호명’하는가에 따라 실천의 지향이 정해지는 것이다.‘대〜한민국’의 국민으로 호명된 주체의 인식/실천의 지평은 기본적으로 민족주의의 담론적 틀 안에 갇힐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민족주의는 이처럼 물질적 현실의 운동방식에 근거를 가질 뿐만 아니라 현실을 규정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운동으로서의 민족주의가 갖는 복합적 현실을 세계체제라는 물질적 현실의 반영으로 환원한다면. “한반도의 현실에 대한 복합적 사고를 회피한다”5는 유재건의 비판은 자신을 향한 부메랑이 될 수밖에 없다. 민족주의라는 이데올로기의 물질성에 대한 비판적 인식이 결여된다면, 민족주의 담론이 현실에 개입하는 복합적 작동방식을 이해하기 어렵다. 담론구성체로서의 민족주의에 대한 비판의 의미를 성찰한다고 해서 소박한 실재론의 틀로 재단하는 것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 내 논지는 물질적 현실이라는 ‘실재’(the Real)를 부정하자는 것이 아니라, 민족주의의 코드로 그것을 인식하고 실천해나가는 ‘현실’(reality)을 직시하자는 것이다. 일상생활의 영역을 포괄하는 시민사회의 전공간으로 침투한 지배 헤게모니에 대한 대항 헤게모니를 생산한다는 문제의식에서 보면, 월러스틴이 잘 지적했듯이 일국적 지평에서 정치권력과 국가기구들을 장악하여 사회를 변혁한다는 1848년 이래 반체제운동들의 한계는 뚜렷하다. 기존 운동의 역사적 성취를 부정하거나 그 성취 안에 안주하는 자세를 버리고 그것을 딛고 서는 관점에 설 때, 다시 민족주의는 우리에게 무엇인가?

 

 

2. 국가권력과 국민주권

 

타자를 복종시키는 수단이라는 점에서 권력의 속성은 변하지 않는다. 단지 타자를 복종시키기 위한 매개들이 역사적으로 변할 뿐이다. 근대 권력의 역사적 특징은 그것이 마치 지배를 욕망하지 않는 듯한 외양을 띤다는 데 있다. 그것을 가능케 한 사상적 기제는 국가의 절대적이고 영속적인 권력인 주권이 인민에게 있다는 인민주권론이었다. 더 정확하게는, 자꼬뱅(Jacobin)의 현실정치가 ‘주권적 혁명독재’의 이름으로 인민주권론을 국민주권의 사상으로 변형함으로써 가능한 것이었다. 그것은 국가주권론보다는 진일보한 것이지만, 국민국가의 권력을 정당화하는 사상적 기제이기도 하다. 즉, 다양한 욕망을 지닌 구체적인 개개인을 단일한 집합의지를 가진 민족/국민으로 추상화하고 권력의 의지를 국민 개개인의 의지로 내면화하는 근대 국민국가가 국민의 이름으로 자신의 지배 헤게모니를 정당화하는 것이다. 민족주의에 힘입어 ‘재주술화’된 국민의 물신주의에서 벗어나면, 국민주권의 존중과 국가주의를 구별해야 한다는 상식의 이면에 근대 국민국가가 만들어낸 지식/권력 체계가 작동하고 있다.

인민주권론은 물론 근대 시민혁명의 부정할 수 없는 역사적 성취이다.‘하나이며 나누어질 수 없는’ 공화국을 선포한 프랑스 대혁명 이래, 공화주의 담론은 근대 국민적 주체들의 세계에 대한 사유와 실천을 규정하는 인식틀로서 존재해왔다. 이상적 공동체로서 고대 로마의 ‘시민적 공화정’(civic republic)으로의 복귀를 꿈꾸는 공화주의는 봉건제의 신분적 특권을 법 앞에서의 시민적 평등과 자유로 대체함으로써, 근대 국민국가가 내포한 해방의 가능성을 제시해준다. 민족주의 또한 계몽사상의 ‘신고전주의’와 결합하여, 특권적이고 제한적인 봉건사회를 평등주의적이고 자유로운 민족공동체로 발전시키는 이데올로기로서 해방의 메씨지를 내포하고 있다. 언어와 혈통 등에서 다양한 주민집단들을 프랑스 민족/국민이라는 단일한 공동체

  1. 임지현 『민족주의는 반역이다』(소나무 1999)25면.
  2. 「통일시대의 개혁과 진보」, 『창작과비평』 2002년 여름호 21면.
  3. 8년이 지난 지금의 싯점에서 되돌아보면, 오히려 프랑스혁명을 보편적 모델로 상정한 유럽중심주의라는 비판이 더 적실하지 않은가 한다. 『이념의 속살』(삼인 2001)에 수록된 글들은 운동사의 관점을 견지하면서 이러한 자기비판의 기조 위에서 출발하고 있다.
  4. I. 월러스틴·G. 아리기·T. 홉킨즈 『반체제운동』(송철순·천지현 옮김, 창작과비평사 1994)41,46,156면; A. 네그리·M. 하트 『제국』(윤수종 옮김, 이학사 2001)80〜82면.
  5. 유재건, 앞의 글 2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