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김연수

김연수 金衍洙

1970년 경북 김천 출생. 1994년 『작가세계』로 등단. 소설집 『스무살』 『나는 유령작가입니다』, 장편소설 『꾿빠이, 이상』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밤은 노래한다』 등이 있음. larvatus@netian.com

 

 

 

장편연재 1

바다 쪽으로 세 걸음

 

 


│연재를 시작하며│

 

십여년 전 삼십대에 세편의 장편소설을 쓰기로 결심했다. 세편 다 지난 역사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들이었다. 이미 두편은 썼다. 『꾿빠이, 이상』과 『밤은 노래한다』. 세번째가 이 소설이다. 그간 “왜 자꾸 역사 속으로 숨느냐?”라는 질문을 자주 받았다. 그 질문에 답하자면, 자료를 열심히 읽고 취재를 다녀야만 쓸 수 있는 소설을 한살이라도 더 젊었을 때 쓰고 싶어서였다. 다른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니었다. 어쨌거나 올해 기축년, 만으로 서른아홉살이다. 올해가 가기 전에 이 소설을 다 써야 십여년 전 나와의 약속을 지키는 셈이 될 텐데, 매번 약속을 지키면서 살았던 사람이 아닌지라 그런 건 별로 관심이 없다. 다만 끝까지, 내가 쓰고자 원했던 그 소설을 쓸 수 있다면 좋겠다.

 

앞서의 두편과 마찬가지로 이 소설 역시 오래전에 읽은 짧은 문장에서 시작했다. 운이 좋아서 신복룡 선생이 정리한 스물네권짜리‘한말 외국인 기록’씨리즈를 천천히 읽을 기회가 있었는데, 거기에 임진왜란 당시에 에스빠냐 신부를 만난 조선인 소년들에 대한 이야기가 짤막하게 나왔다. 그게 H.B. 헐버트의 『대한제국멸망사』에 나오는지, F.A. 매킨지의 『대한제국의 비극』에 나오는지 지금으로서는 확인 불가능이다. 이사한 뒤로 내 서가는 엉망진창이라 그 책들을 찾을 수가 없다. 어떤 책인지에 지금은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조선인 소년들이 있었다는 사실이 풍문처럼 적혀 있었다. 풍문 같은 것이어서 나는 그 문장에 매료됐고, 지난 십년간 틈틈이 그 소년들에 대해 찾아봤다.

 

여기까지는 이 소설을 쓰게 된 과정이고, 다른 얘기를 좀 해야겠다. 한동안 다른 기축년, 그러니까 1589년을 다룬 조선왕조실록을 하염없이 읽었다. 실록을 믿을 수 있을까? 그런 의심이 많이 들었다. 그게 다 지난해 정권이 바뀐 뒤, 권력이 역사를 아름답게 분식(粉飾)하는 걸 목격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실록의 아름다운 말들이 얼마나 허망한지 깨닫게 됐다. 도움이 된 것도 있다. 망루에 올라간 용산 철거민들을 진압하는 걸 지켜보면서 조선시대 관군과 관리의 성격에 대해서 직관적으로 알게 됐다. 싸이코패스가 아닌 다음에야 불에 타죽는다는 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하지만 그걸 직시하지 못하면 이 소설을 끝낼 수 없게 돼서 더욱 괴로웠다. 첫회를 쓰는 동안, 여러날 그 죽음들이 생각났다. 명복을 빈다.(2009.2)


 

 

바다 쪽으로 세 걸음

 

 

1

 

마침내 그 일본인이 자신의 이야기를 모두 끝마쳤을 때, 나는 내게도 그와 비슷한 무용담이 하나쯤은 있어야만 하지 않겠는가 생각했다. 나는 훌륭한 이야기를 들었다면서 손뼉을 치고 모두에게 술을 권했다. 뜨거운 지방의 냄새 나는 술이나마 바꾸후(幕府)의 배신자들이자 사교의 추종자들을 처단하기 위해 바다를 건너오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은 이 무사들에게 죽음의 상인으로서 나는 얼마든지 술을 제공할 용의가 있었다. 이럴 때, 내게도 들려줄 무용담이 있으면 좋겠는데, 생각나는 건 모두 한 인간이 살아남기 위해 구차하게 저지른 죄악뿐이어서 아쉽기만 했다. 난 살아 있는 인간의 살점을 뜯어내어 먹어보거나, 손바닥에 대못을 박아 십자가에 매달고 과연 며칠 만에 숨이 끊어지는지 관찰하거나, 혹은 끓는 기름에 통째로 밀어넣었다가 너무 빨리 죽은 걸 알고 아쉬워해본 일이 한번도 없었던 것이다. 내가 달리 죽음의 상인으로 악명을 떨쳤겠는가? 이제 나는 죽음을 사거나 팔 뿐, 직접 죽음을 만들지는 않는다. 게다가 지난 십여년 동안 나는 충분한 양의 은을 모았으므로 이제 오랜 꿈을 이룰 일만 남았다. 마르내(乾川洞)로 돌아갈 때는 다시 착하고 순한 완(宛)이 되고 싶었다.

“이 짐승들이 국왕폐하의 포도주 맛을 알까?”

털북숭이 가스빠르에게 뽀르뚜갈어로 물었더니, 독설이 돌아왔다.

“차라리 돼지 똥구멍에 쏟아붓는 게 낫지 않을까. 구더기 썩는 것보다 더 더러운 이야기를 들었네. 오, 주님이시여.”

그러면서도 가스빠르는 웃는 낯이었다. 가스빠르는 늘 일본인들이 허리에 차고 다니는 두개의 단검을 두려워했다. 그렇게 겁이 많은 주제에 은화만 준다면 돼지 똥구멍을 핥으러 지옥까지라도 갈 녀석이라는 걸 나는 잘 알고 있었다. 우리가 목소리를 낮춰 대화하는 걸 보고는 그 일본인이 소리를 질렀다.

“저 돼지 똥구멍이 자꾸 벌렁대며 나한테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달라고 조르네. 어떻게 하나, 재미있는 이야기가 없는데. 난 포도주를 가져올 거야.”

“아깝지도 않아?”

가스빠르가 이마에 주름을 만들면서 말했다.

“어차피 여름이 오기 전에 다 마셔야 돼.”

밖으로 나갔더니 어느새 비가 내리고 있었다. 내 기척을 듣고 벽에 붙어 있던 도마뱀 몇마리가 어둠 속으로 황급히 몸을 감췄다. 다행이었다. 아무도 내가 땀을 흘리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으니까. 땀이 식으면서 시큼한 냄새가 났다. 뜨거운 물에 목욕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나는 멍하니 내리는 비만 바라보고 있었다. 건너편 초희와 아이가 있는 방에서 불빛이 어른거렸다.

“당신은 헛된 꿈을 좇고 있어. 당신이 모을 건 은화가 아니고, 당신이 갈 곳은 그 끔찍한 왕국이 아니야. 난 하느님의 나라로 갈 거야. 당신을 따라가지 않을 거야. 절대로.”

버림받을 줄 알면서도 사랑에 빠져드는 여자들은 끊임없이 사랑을 확인하려 들기 때문에 성가시기만 하다. 집 밖에 나가지 못하게 남자들의 무릎을 꺾어버리는 유일한 무기는 말뿐이었으므로 그녀들은 깨어 있는 동안에는 쉬지 않고 저주의 말을 퍼붓는다. 하지만 초희가 내게 매달리면 매달릴수록 나는 무감각해졌다. 내가 저지른 죄가 있다면 고작 이런 것들뿐이었다. 사랑한다고 말함으로써 한 여자의 일생을 망쳐버리는 일. 임종 자리에서 그런 걸 죄라고 고백하다간 두고두고 교구의 조롱거리가 될 것이다. 빠드레(神父)들은 그런 일들까지 시시콜콜 얘기하는 순진한 신자들을 살인자보다 더 싫어했다. 그들의 고백성사는 식사시간이 되어서도 끝날 줄을 몰랐으니까.

나는 두 손으로 빗물을 받았다. 저 돼지 똥구멍 같은 입을 가진 일본인에게 내 이야기를 들려주자면 일단은 잘 드는 칼이 필요할 것 같았다. 사람을 죽여본 게 언제였는지 기억도 가물거렸다. 이 악마의 자식들! 우리가 실수하기라도 하면 쎄스뻬데스 신부는 그런 욕을 퍼붓곤 했다. 나를 욕하는 건 참을 수 있었지만, 나의 불쌍한 아버지와 어머니를 욕하는 것만은 참을 수 없었다. 나는 형과는 다른 종류의 인간이었다. 형은 그냥 형이었고, 나는 형의 그림자였다. 그림자가 없어도 형은 형이었지만, 형이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두 사람은 이제 모두 고인이 됐다. 먼저 정답고도 사나운 우리의 쎄스뻬데스 신부님이. 그다음에는 형이. 형이 죽었다는 소식은 방금 전에야 처음 들었다. 이런 얘기 그만하고 싶지만, 요점은 간단한다. 쎄스뻬데스 신부에게서 그 욕설을 들을 때마다 살의를 느꼈더니, 나중에는 사람을 죽일 때마다 그 말이 귀에 들렸다. 이 악마의 자식들! 그러니까 지금 그 소리가 내 귀에 들리고 있는 것이다. 신부님이 살아 계셨다면, 매로 나를 다스렸을 것이다. 비를 바라보면서 그런 생각을 하니 갑자기 눈물이 흘러내렸기 때문에 나는 손에 받은 빗물로 얼굴을 씻었다.

고개를 드는데, 맞은편 어둠 속에서 뭔가가 움직이는 게 보였다. 거기 어둠 속에서 파란 눈동자들이 나를 쏘아보고 있었다. 나무 밑에서 꼬리깃을 활짝 펼친 수컷 공작이었다. 어딘가에 암컷이 비를 맞으며 서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수컷의 꼬리깃에 있는 그 외로운 무늬들, 푸른색의 타원들을 보니,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지 생각났다. 이건 말하자면, 쎄스뻬데스 신부님이라면 넌더리를 낼 만큼 길고도 지루한 고백성사인 셈이다. 이 악마의 자식들! 이 악마의 자식들! 그렇지만 이야기를 다 듣고 나면 신부님도 내 죄를 용서하실 수밖에 없을 테지. 하지만 용서받지 못해 지옥불에 떨어진다고 해도 이젠 어쩔 수 없다. 나는 나만의 방식대로 종말을 고하고 싶을 뿐이니까.

 

 

2

 

여섯살이 되던 해 여름, 말레이 공작 한쌍이 배를 타고 부산포로 들어왔다. 공작 옆에는 조총(鳥銃)이 두자루 있었는데, 그 이름 때문에 공작들이 호신용으로 가져왔다고 생각해서는 안될 일이었다. 그건 나중에 겁에 질린 조선인들이 날아가는 새도 맞혀서 떨어뜨린다는 의미로 붙인 이름이니까. 그때는 일본인들이 소개한 대로 철포(鐵鍜)라고 불렀다. 철포에 대해서 말하자면, 조선(그렇다, 나는 조선인이다) 정부는 그런 신무기에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조선 정부는 되도록 고전적인 무기를 선호했는데, 우선 당시 그들에게 가장 큰 적은 기근과 부역에 시달리다가 유리걸식한 뒤 결국 도적 무리가 되는 백성들이었으므로 굳이 신무기가 아니어도 충분히 진압이 가능했고, 둘째로 공연히 강력한 무기를 들여왔다가 반역집단들에게 넘어갈까 두려워했기 때문이었고, 셋째로 군포(軍布)를 내지 못해 군문에 남게 된 병사들에게는 그 무거운 무기를 들고 다닐 만한 열정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조총이야 그렇다 치고 공작이야 구경할 만하지 않겠느냐마는 관리들에게는 그것 역시 처치곤란의 동물에 불과했다. 대마도에서 오는 세견선이나 특송선을 굳이 받아들이는 것은 남해안을 침범하는 왜구들을 달래려는 고육책이기도 했지만, 나름 그 배를 통해 들어오는 물품이 유익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예컨대 후추와 소목(蘇木)과 주석과 단향(檀香) 같은 것이라면 얼마든지 교역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별견선(別遣船)이었던지라 관리들이 왜관의 다례의(茶禮儀) 자리에 올라가 붉은색 도서(圖書)가 찍힌 서계(書契)를 들여다보니, 거기에 달랑 두가지 물품, 즉 공작과 철포밖에 적혀 있지 않았다. 조선 관리들에게 그건 꽤 난감한 진상품이었던 게 분명했다. 바로 그때 수컷의 울음소리가 바람을 타고 구슬프게 들렸다. 그 구슬픈 울음소리를 듣고 보니 남방의 기이한 새는 더욱더 아무런 쓸모가 없는 선물처럼, 심지어는 불길한 징조처럼 느껴졌다. 그렇다고 일본 정부가 성의를 담아서 보내온 물품을 그 자리에서 죽여버릴 수는 없는 일이었으므로 관리는 즉시 공작과 철포가 입국됐다는 내용의 장계를 조정에 올렸다. 물론 거기에 울음소리나 불길함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한달이 지나서야 절차에 따라 공작과 철포를 서울로 보내라는 명령이 조정에서 내려왔다. 한달이면 졸지에 공작을 돌보는 일까지 떠맡게 된 관노(官奴)들의 저주를 받아 공작 내외가 돌연사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건만 그 새들은 쌀가루를 집어먹으면서도 무럭무럭 살이 찌기만 했다. 그 나라의 백성들에게 몇끼 정도 굶는 건 일상다반사였으니(굶는 게 일상다반사라고 말해도 되는 것인가, 형이여? 역시 이 세상에 형이 없다고 생각하니 무엇도 제대로 판단할 수가 없다) 공작이 먹을 쌀가루를 훔쳐먹는 걸로 모자라 자식에게 먹이려고 훔쳐가는 관노까지 있는 마당에 공작 내외로서도 죽는 시늉을 하기에는 좀 미안하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찰방(察訪)의 명령을 받은 역졸들은 공작을 각각 우리에 넣은 뒤, 조총과 함께 수레에 실었다. 그때 읍민들이 모두 공작을 구경하려고 성 밖으로 나왔는데, 우리에 갇혀서 그들을 바라보는 공작들은 반란을 일으켰다가 도성으로 압송되는 수괴 내외처럼 흉악해 보였다. 옆에는 조총까지 있었으니 그 섬뜩한 효과는 더했다. 모이면 폭도가 되고 흩어지면 양민이 되는 게 그 나라 백성들의 처지였으므로 역졸들이 해산하라고 창으로 위협했건만 사람들은 뭔가에 단단히 홀린 듯 계속 수레를 따라왔다. 행렬이 이어지자, 성 밖에서 개들과 함께 흙을 파먹고 살아가는 천민들까지 따라붙었고, 후미에서는 두달 전 관아의 창고를 습격한 자들과 마찬가지로 역졸들이 공작들을 강변까지 끌고 가서 목을 칠 것이라는 소문까지 돌았다.

그리하여 강가의 미곡창에 도착했을 때는 따르던 사람들 사이에서 공작을 죽이지 말라는 소리가 하나둘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이 어처구니없는 사태를 만난 역졸들은 수레 쪽으로 밀고 드는 사람들에게 뒤로 물러서라고 외쳤으나, 일단 흥분하기 시작한 사람들에게는 씨알도 먹히지 않는 소리였다. 개중에는 임박한 공작의 죽음을 슬퍼하며 눈물을 흘리는 아이들과 집으로 가서 농기구를 들고 오겠다고 설레발을 치는 자들까지 나오기 시작했다. 뜻밖의 강경한 저항에 역졸들은 당황해서 사람들을 창으로 밀어내기 시작했는데, 그 바람에 울던 아이 하나가 팔에 상처를 입고 말았다. 생김새로 봐서는 노비의 자식이 분명한 그 아이는 창에 찔려 아프기도 했지만, 하라는 심부름은 하지 않고 공작을 따라갔다가 몸까지 다쳤으니 나중에 주인에게 매 맞을 일이 더 두려워서 피를 흘리며 땅에 뒹굴었다. 역졸들이 주춤거리는 사이에 사람들은 역졸들을 밀어내고 수레를 둘러쌌다.

“공작을 죽이지 마라. 아이를 살려내라.”

사람들은 두가지 요구사항을 내걸었는데, 역졸들로서는 그들의 요구를 하나도 들어줄 수가 없었다. 그들에게는 공작을 죽일 생각도 없었고, 또 아이도 죽을 정도는 아니었으니까. 그러자 그들은 급기야 두달 전 관아를 습격했다가 처형된 농민들의 신원(伸冤)을 요구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폭도로 변해가는 사람들을 해산시킨 것은 금성을 데리고 하늘 높이 오른 초승달이었다. 어스름이 내리자, 사람들은 모래알갱이처럼 흩어져버렸다. 약한 자들은 늘 밤을 두려워했다. 어둠에 둘러싸이자, 그들은 아이의 부주의함을 책망했다.

그 공작들을 말라카에서 나가사끼까지 데려간 사람이 자신이라고 내게 말한 사람은 뼛속까지 사악한 뽀르뚜갈 상인 호르헤였다. 세상에서 딱 한명만 죽일 수 있다면, 한동안 고민해야겠지만 결국 그자를 죽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다. (자신은 열명 안에도 들지 못한다는 사실을 천국에서도 신부님은 다행으로 생각해야만 할 것이다.) 이제는 그 소원을 이룰 수 없게 된 지 오래다. 그간 나는 너무 많은 사람들을 죽였으니까. (“이 악마의 자식들! 이 악마의 자식들!”) 어쩌면 백발이 된 호르헤를 다시 만난다고 해도 나는 그의 심장에 칼을 꽂기는커녕 죽은 아버지를 다시 만난 듯이 반가워할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 누군가에게는 뼛속까지 사악한 조선 상인 완(宛)일 게 분명할 테니까. 아버지는 어쩌자고 내게 그런 이름을 지어준 걸까? 부드러운 곡선을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