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
단절과 침묵, 그리고 ‘이어짐’의 상상력
‘문학의 정치’를 생각하며
정홍수 鄭弘樹
문학평론가. 평론집 『흔들리는 사이 언뜻 보이는 푸른빛』 『소설의 고독』 등이 있음.
myosu02@hanmail.net
1. 공동영역으로서의 문학
하나의 전제가 필요할 듯싶다. 황정아가 온당하게 지적하고 있는 대로 ‘문학의 정치’는 “애초에 문학의 ‘이미 그러한’ 역능에 대한 관찰이지 문학에 부과된 규범 같은 것이 아니었다”1는 점이다. 근대문학의 발생적 기원이나 역사가 근대 자본주의 시스템의 성립·확산과 얽혀 있는 긴밀성은 이미 많은 이들에 의해 충분히 관찰되었으며, 특히 근대문학의 총아라 할 수 있는 장편소설의 경우 사회·역사적 지평의 창조적 인식과 수용에 의해 역량을 심화하고 키워왔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즈음은 훨씬 덜 언급되는 것 같지만, ‘총체성’에 근접하는 문학의 인식, 재현 능력을 적극적으로 사유하고 논의해볼 수 있었던 측면도 이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한국 근현대문학 백년의 역사를 돌아봐도 ‘문학의 정치’는 이 땅의 창작자나 독자 모두에게 그것을 의식하지 않는 속 편한 쓰기와 읽기를 허락하지 않은 뾰족한 칼날이었음이 뚜렷해진다. 여기에는 문학과 현실의 긴장을 계속 환기한 문학담론의 역할 또한 적지 않았지 싶다. 나 자신의 실감 속에서는 그다지 멀게 느껴지지 않지만, 지난 1960년대 중후반부터 시민문학론, 민중문학론, 리얼리즘론 등으로 지속적으로 전개된 ‘민족문학론’은 물론이고 반대편에서 ‘민족문학론’의 ‘정치’ 우위를 비판한 대항 담론들 역시 ‘문학과 정치’ 혹은 ‘문학과 현실’의 관계를 사유하는 폭넓은 지평을 열어왔다. 그러나 문학담론의 지위 또한 역사화되는 것이라면, 현실에서의 민주주의의 진전과 함께 ‘글쓰기의 민주주의체제’2 역시 빠른 속도로 한국문학의 장 안에 펼쳐지기 시작한 듯하다.
특정하게 도드라진 일부 소설적 경향에 대한 언급이긴 했지만 ‘역사의 인력에서 벗어난 무중력 공간의 탄생’으로 2000년대 일군의 새로운 문학적 흐름을 진단한 비평적 논의3도 있었고, 2000년대 소설을 향해 ‘현실’의 결여나 과소를 지적하는 비판의 목소리도 적지 않았으나, 이후 전개된 양상이 판이했음은 두루 아는 대로다. 사정은 “2000년대 말에서 2010년대 초반에 걸친 ‘문학의 정치’ 논의는 당시 금기까지는 아니라도 추문으로 취급받던 문학과 정치의 결합을 당당히 선언했다”4로 시작되는 황정아 글의 서두에 잘 요약되어 있다. 그러나 황정아는 널리 공유된 ‘몫 없는 자의 몫’이라는 개념이나 ‘포함과 배제’의 프레임이 조금은 단순한 접근이 아니었는지 되짚는다. 그런 가운데 차이와 타자성에 대한 강조가 재현의 윤리에 대한 과도한 민감성으로 이어지면서 “여하한 객관화나 보편화도 타자를 향한 폭력처럼 생각되고 그런 폭력을 미세한 수준까지 감지하고 추적하는 태도가 정치적·윤리적 덕목이”5 되고 만 역설적 상황을 지적한다. 요컨대 ‘문학의 정치’가 문학 본연의 역능이라 하더라도 ‘정치적으로 올바른’ 문학이 정답처럼 전제될 때, ‘문학의 정치’는 문학과 현실의 관계에 대한 살아 있는 질문이 되지 못하고 문학 스스로를 좁게 속박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충분히 동의한다. 기실 최근 한국문학에서 ‘정치성’의 우세화는 일종의 도덕적·윤리적 안전판처럼 작동하는 측면이 없지 않은 것 같다. 문학은 현실에 대한 질문을 포함해서 현실과의 긴장력을 불가피하게 표현하지만 현실 그 자체는 아니며, 당연히 ‘정치’나 ‘윤리’의 동의어도 아니다. 문학은 때로 정치나 윤리에 침묵하는 방식으로 인간사의 이야기를 끌어들이는데, 그런 작품들에서도 우리가 단순한 독서의 즐거움 이상의 무언가를 되돌려받는다면 우리의 삶과 세계가 그같은 침묵과 역설을 상당한 정도로 포함하고, 그렇게 구조화되어 있기 때문일 테다. “문명화란 진실을 앎으로써 유발되는 어떤 유혹에 저항하는 능력을 전제한다”6는 생각은 가령 소설이 인간의 심성과 행동과 말을 자신의 문학 언어로 옮길 때도 충분히 유효할 법하지 싶다.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라는 명제는 특히 차별과 혐오의 일상을 새롭게 폭로하고 개선하려는 긴박한 요구에 이어져 있지만, 거기에 개재된 모종의 근본주의는 인간들 사이에 존재해야 마땅한 거리와 침묵의 영역을 삭제하기도 한다. 과도한 투명성과 가시성의 요구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의 확산을 타고 ‘전짓불의 심문’을 은밀하지만 동시에 거의 공개적인 일상의 상호 정치적·윤리적 낙인 방식으로 만든다. ‘개인적인 것’을 ‘정치적인 것’으로 발견하고 확장하는 것과 ‘개인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을 동일시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일 테다. 이 차이를 망각할 때 ‘공적 영역’은 ‘사적 영역’으로 대체됨으로써 ‘공적 영역’의 포기를 무의식적으로 옹호할 수도 있다.7
여기서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을 이론적으로 통합할 길은 없다고 보는 리처드 로티(Richard Rorty)의 입장을 떠올려볼 수도 있다. 로티는 “자아창조의 요구와 인간의 연대성의 요구를 똑같이 타당하지만 영원히 공약 불가한 것으로 취급하”는 가운데서 ‘인간의 연대성’을 발견되거나 인식될 하나의 사실이 아니라 성취되고 창조되어야 할 목표로 제시한다. “그것은 탐구가 아니라 상상력, 낯선 사람들을 고통받는 동료들로 볼 수 있는 상상력에 의해 성취되어야 할 어떤 것이다.”8 로티는 이 과정을 “낯선 사람들이 어떠한지에 대한 상세한 서술과, 우리 자신들은 어떠한지에 대한 재서술”의 문제로 보면서 이를 이론의 과제가 아니라 보고(報告)와 서사 예술, 특히 ‘소설’의 과제로 설정한다.9 자신의 ‘마지막 어휘’를 끊임없이 의심하고, 가능한 모든 판단과 느낌의 방식들을 설명할 수 있는 하나의 메타-어휘를 발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이를 로티는 ‘자유주의 아이러니스트’ 철학자, 작가로 명명하고 있지만, 이런 특정한 범주화와 관계없이 대문자 진리의 거대서사를 내면화하지 않고도 세상의 비참, 잔혹함의 감소를 생각하고 연대와 정의의 상상력을 키워가는 일은 세상 장삼이사의 몫일 수 있다. 사실 ‘공적 영역’은 우리 각자의 편견과 두려움, 나약함을 억제하고 혹은 불편함을 참아내면서 얼마간의 가면이 있을망정 우리 자신의 성숙한 의견을 시민의 얼굴로 등재하는 공간이다. ‘민주주의와 문학’을 생각하는 가운데 그 민주주의를 “갈수록 빈틈없이 규정해오고 있는 자본주의라는 계기”를 섬세한 작품 분석과 연동하고 있는 강경석의 글10이 보여주는 것처럼, 우리의 일상과 정치를 규정하는 더 크고 근본적인 구조를 폭넓은 현실 인식으로 품기 위해서도 ‘공적 영역’ ‘공적 정치의 장’을 지키고 활성화하는 일은 긴요하다.
‘문학의 정치’의 특정한 양상이 ‘타자성’과 ‘차이’를 특권화하는 가운데 ‘재현의 윤리’나 ‘공감’의 윤리적 좌표에 대한 과도한 민감성으로 스스로의 창조적 영역을 얼마간 제한해왔다면, 이는 보편의 작동공간으로서 ‘공적 영역’의 역사나 현재에 대한 오래된 실망과 거부의 표현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문학의 역사는 그 민감성을 잃지 않은 채로도 숱한 모
- 황정아 「‘문학의 정치’를 다시 생각한다」, 『창작과비평』 2021년 겨울호 20면. ↩
- “(민주주의적 글쓰기의) 말 많은 침묵은 말로 행동하는 인간들과 단순히 살아갈 뿐인 인간들 간의 구분을 폐기한다. 글쓰기의 민주주의는 소설 속 영웅들의 삶을 전유(專有)한다든지, 스스로 작가가 된다든지, 또는 공동 관심사에 대한 토론에 몸소 참여하는 것 등을 통해 각자가 몫을 챙길 수 있는 자유로운 문자 체제이다.” 자크 랑시에르 『문학의 정치』, 유재홍 옮김, 인간사랑 2009, 27~28면. ↩
- 이광호 「혼종적 글쓰기 혹은 무중력 공간의 탄생: 2000년대 문학의 다른 이름들」, 『문학과사회』 2005년 여름호. ↩
- 황정아, 앞의 글 17면. ↩
- 같은 글 20면. ↩
- 로베르트 팔러 『성인언어』, 이은지 옮김, 도서출판b 2021, 89면. ↩
-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의) 혼합은 사적인 것을 정치적인 것과 동일시함으로써 많은 긍정적인 영향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을 잠재적으로 정치적인 것으로 무분별하게 포함될 여지를 열어놓았다. ‘일상의’ 미학적인 ‘변형’에서 본 것과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특권화된 주체적 경험을 그 대상보다 우위에 놓는 평준화 효과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마틴 제이 『경험의 노래들』, 신재성 옮김, 글항아리 2021, 214~15면. ↩
- 리처드 로티 『우연성 아이러니 연대성』, 김동식 옮김, 민음사 1996, 24면. ↩
- 같은 책 24~25면. ↩
- 강경석 「진실의 습격」, 『창작과비평』 2021년 겨울호, 인용은 57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