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윤고은
1980년 서울 출생. 2004년 대산대학문학상 수상으로 등단. 장편소설 『무중력 증후군』이 있음. shellmaker@naver.com
달콤한 휴가
커피메이커가 배달된 후로 그는 아침마다 원두를 내렸다. 커피향이 부엌에서 거실로, 그리고 각 방으로 천천히 전달되었다. 에티오피아 예가체프와 인도네시아 만델라가 그가 처음으로 선택한 커피들이었다. 그는 하루는 예가체프를, 다른 하루는 만델라를 마셨다. 커피맛을 미세하게 구분해낼 정도는 아니었지만, 얼른 다른 나라들의 원두도 마셔보고 싶었다.
커피메이커는 퇴직금의 첫번째 지출항목이었다. 그는 7년간 다니던 직장을 잃었다. 그는 바로 다른 직장을 알아보지 않고, 6개월간의 휴업을 선언했다. 실업급여가 나오는 동안 조금만이라도 쉬고 싶었다. 퇴직금의 두번째 지출항목은 DSLR이었다. 그는 사진 동호회에 가입했지만 잘 나가지는 않았고, 그래도 책과 인터넷을 통해 DSLR작동법을 배웠다. 메모리카드 두개를 샀고, 외장하드와 넷북도 샀다. 그리고 항공권도 샀다. 두장이었다. 교사인 아내가 여름방학을 맞이하면 바로 출발할 생각이었다. 2주간의 유럽여행이었다.
그는 2주를 위해 두달을 준비했다. 카메라를 얼추 익숙하게 다루게 된 다음에는 여행 동호회에 가입했다. 가이드북을 사고, 방문할 도시들의 말을 배우고, 그 도시에 관한 책이나 영화를 봤다. 출근할 일이 없어도 그의 일과는 여전히 규칙적이었다. 아내가 출근하고 나면 그는 아침밥을 먹고, 커피를 내린 다음, 커피잔을 들고 컴퓨터 앞으로 가서 앉았다. 컴퓨터를 켜면 또다른 세상이 열렸다. 그는 여행 동호회를 통해 가이드북에는 나와 있지 않은, 보다 세세한 정보들을 모았다. 수첩에 적고, 파일로 만들고, 프린터로 인쇄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그는 인쇄된 정보들 속에 빈대가 무척 많이 등장한다는 것을 알고 놀랐다.
“21세기에 웬 빈대? 유럽에?”
아내가 말했다. 그 역시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다. 빈대라면 이미 의인화된 지 오래였다. 진짜 빈대를 본 적은 한번도 없었다. 군대에 있을 때 잠시 빈대소동이 벌어지기는 했지만, 그때도 그는 정작 빈대를 보거나 빈대로부터 어떤 피해를 입지는 않았다.
“자기 너무 많은 정보를 본 거 아니야? 필요한 것만 골라 봐도 바쁠 텐데.”
아내가 웃으면서 그렇게 말했다. 아내는 그가 실직한 것에 대해 걱정하고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여름방학에 맞춰 남편과 유럽여행을 간다는 것에 다소 들떠 있었다. 결혼 3년차, 신혼여행 이후로 오랜만의 해외여행이었다. 아내는 피곤했지만, 그랬기 때문에 더더욱 활기찬 여행을 기다렸다.
일주일쯤 지나자 그가 모은 정보는 몇가지로 압축되었는데, 그중 하나가 빈대였다. 빈대에 대한 정보의 대부분은 빈대로 인한 피해사례였다. 그는 많은 사람들의 빈대 경험담을 읽었다. 비행기 안에서 빈대에 물린 신혼부부의 이야기부터 야간열차에서 물린 여행객, 그리고 빈대인지 모기인지 구분은 안 가지만 아무튼 뭔가에 물려서 극심한 가려움에 시달리고 있다는 사람의 이야기도 읽었다. 여행 막바지에 빈대를 만난 후, 돌아와서 반년이 넘도록 지워지지 않는 흉터 때문에 고생하는 사람도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빈대를 생소하게 여기지만, 잘 생각해보면 여행에서 빈대와 동행할 확률은 굉장히 컸다. 청결상태가 양호한 숙소에 머문다 해도 안심할 수는 없었다. 특급호텔에서도 빈대에 물린 사람들이 가끔 나타났기 때문이다.
잠자리는 햇빛이 드는 쪽으로 선택하라. 침대 모서리와 머리 뒤편, 매트리스 이음매, 굽도리널 밑을 살펴라. 벽에 걸린 액자나 달력, 시계 뒤편을 살펴라. 빈대 퇴치를 위한 도구들을 동원하라. 이 정도가 그가 알아낸 대처법이었다. 그는 빈대에 관한 파일을 만들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 파일은 점점 두툼해졌다. 며칠 후, 그의 집에는 빈대 퇴치용품들이 하나씩 배달되었다. 레몬과 유칼립투스, 민트향의 아로마오일과 샤워용품들, 그리고 계피향 방향제와 진짜 계피 몇가닥, 티락스와 비오킬 등 빈대를 쫓는 스프레이형 약품까지.
“차라리 담배를 피워.”
아내가 말했다. 그는 담배를 끊은 지 오래였지만, 담배가 빈대 퇴치에 효과가 있다면 기꺼이 다시 피울 생각도 있었다.
“모기향도 가져갈까? 매트 갈아 끼우는 걸로.”
아내가 거들었으나, 그는 고개를 저었다. 모기와 빈대는 엄연히 달랐다. 빈대를 모기나 이, 벼룩과 같은 종류로 묶는 것은 곤란하다. 빈대는 그냥 벌레가 아니라 노린재목 빈댓과에 속하는 곤충이기 때문이다.
“곤충이라고? 빈대가?”
“그래. 곤충 중에 흡혈습성을 가진 건 별로 없는데, 좀 특이한 경우지.”
빈대는 복잡했다. 그는 조금씩 빈대에 대해 알아가고 있었다. 빈대는 일반적인 흡혈벌레와 달리 숙주에 직접 기생하지 않는다. 대신 숙주의 공간에 서식하며 밤이 되면 기어나와 숙주를 뜯는다. 그래서 빈대를 퇴치하려면 자신의 영역을 먼저 지켜야만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향기들이 효과가 있대? 그게 빈대가 좋아하는 향이야?”
“무슨 소리야, 빈대가 싫어하는 향이지. 빈대가 기피하는 걸로 우리 몸을 코팅해야지.”
열심히 캐리어 내부를 들여다보던 아내가 하품을 했다. 그 역시 피곤이 몰려왔다. 하루종일 집밖으로는 한발짝도 나가지 않았는데도 여행정보를 구하고 준비하는 것만으로 육체적 피로가 몰려왔다. 졸음이 몰려오는 순간, 그는 오늘 아침에 커피를 내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기억해냈다. 요즘은 그렇게 커피 없이 지나가는 날들이 조금씩 생겨났다. 자정이 가까운 시간, 그는 브라질 싼토스를 내렸다.
여행 하루 전, 그는 동호회 게시판에 글을 올렸다. 많은 회원들이 그러듯, 내일이면 미지의 세계로 간다는 설렘과 두려움이 묻어나는 글이었다. 그는 소매치기, 전염병, 테러, 그리고 빈대와 싸워야 하지만 그래도 설렌다고 적었다. 더불어 빈대 퇴치를 위해 10만원을 투자했다고도 적었다. 실제로 아로마오일부터 연고, 의약품까지 사는 데 10만원 가까운 비용이 들었다. 이게 모두 동호회의 정보 덕분이라는 말도 잊지 않고 적었다.
그들 부부를 태운 비행기가 드디어 떠올랐다. 손바닥만한 창 아래, 그들의 일상이 가라앉아 있었다. 아내는 한껏 들떠서 와인을 계속 주문해 마셨다. 그 역시 들떠 있었으나, 아침에 공항 라운지에서 확인한 댓글이 마음에 걸렸다. 그가 남긴 글 밑에 열두개의 댓글이 붙어 있었다. 회원들은 주로 그의 준비력을 칭찬하거나, 좋은 여행을 응원하거나, 혹은 조심하라고 당부하는 글들을 달아놓았다. 딱 하나만 예외였는데, 그의 뇌리에는 그 댓글만 남았다.
‘빈대는 복불복입니다.’
그는 숙소를 옮길 때마다 두개의 쏘프트캐리어에 스프레이형 빈대 퇴치제를 흠뻑 뿌렸다. 빈대가 싫어하는 향의 바디워시로 샤워를 하고 빈대가 싫어하는 향의 바디로션을 바르고 빈대가 싫어하는 향의 아로마오일을 베개와 침대 시트, 이불 등에 뿌렸다. 매트리스 이음매나 벽지 틈새, 그리고 액자 뒤를 살펴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여행이 중반을 넘어설 무렵, 아내가 말했다.
“우리 여행의 테마는 빈대로군!”
아내의 피로는 빈대 때문이 아니라, 빈대를 떨쳐버리지 못하는 남편 때문이었다. 아내는 한국으로 돌아가자마자 얼마 쉬지도 못하고 다시 보충수업을 하러 학교에 나가야 했다. 그는 그런 아내에게 미안해졌다.
유난을 떤 덕분에 그는 빈대를 만나지 않았다. 물론 누구 말마따나 빈대는 복불복이었으니 운도 따라준 셈이었다. 귀국행 비행기에 오르기 전, 공항에서 확인한 인터넷 기사만 아니었다면 그는 돌아오는 비행기에서만이라도 평온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는 기사를 보았고, 기사는 그의 막연한 두려움을 활자와 사진으로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한국도 이제 안전지대가 아니었다. 2006년부터 간헐적으로 빈대로 인한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최근에는 그런 사례가 더 잦아지고 있었다. 2006년 9월 기숙사, 2006년 11월 집단수용소, 2006년 12월 스포츠팀 합숙소, 2007년 3월 호텔 객실…… 가장 최근의 피해사례는 겨우 며칠 전 날짜로 기록되어 있었다. 뉴욕에 거주하던 여자가 한국으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온몸을 이름 모를 벌레에게 뜯겼다. 그 여자는 질병관리본부로 그 벌레의 사체와 유충을 가지고 왔는데, 그것은 여느 벌레가 아니라 곤충이었고, 흡혈곤충, 그러니까 빈대였다. 여자의 수화물에 붙어 뉴욕의 슈퍼빈대 몇마리가 함께 들어왔던 것이다. 기사에는 뉴욕에서 건너온 것으로 추정되는 빈대들의 사체 몇구가 점처럼 박혀 있었다.
비행기가 몇천피트 상공으로 솟아오르자 그의 심장이 또 쿵쿵 뛰기 시작했다. 수십만마리의 빈대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국경을 검색 없이 통과하고 있다고, 아내에게 그렇게 말하던 그는 입을 꾹 다물었다. 아내가 성난 얼굴로 그를 쏘아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빈대처럼 박혀 있는 별들 사이를 지나 한국으로 돌아왔다. 몇주 후 아내는 보충수업을 하러 다시 학교로 나갔다. 그는 실업급여가 제대로 나오는지 확인한 후, 다시 여행 전의 일상으로 돌아왔다. 다행히 그들의 짐에는 빈대가 딸려오지 않았다. 그가 매일 아침 청소기를 돌렸기 때문에 바닥은 늘 말끔했고, 거실에는 커피향이 기분좋게 맴돌았다. 집에 머무는 시간이 얼마 되지 않는 아내가 집 곳곳에 머리카락을 흘려놓는 것만 빼면 그로서는 평온한 일상이었다.
그는 지역 소식을 알리는 신문을 펼쳐들었다. 그리고 그 신문에서 다시 그들을 만났다. 빈대였다. 그는 뉴욕에서 돌아온 여자의 오피스텔이 신촌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의 집도 신촌에 있었다. 며칠 후 그는 그 오피스텔이 자신의 집과 그다지 멀지 않은 곳임을 알았다.
사건 이후, 그 피해여성은 이사를 갔다. 피해여성과 빈대들과 같은 층에 살았던 사람들도 모두 방을 비웠다. 사람을 내쫓고 들어앉은 빈대들은 피 냄새를 찾아 이리저리 새로운 숙주의 방향을 가늠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보통 성충은 실온에서 1년 정도 살 수 있고, 봄에는 60일, 겨울에는 175일까지 굶으면서도 생존이 가능하다. 그는 기사를 추적하면서 여행중에 사온 커피를 꺼냈다. 봉투 뜯는 소리가 유독 크게 들렸다. 그 안에는 윤기나는 갈색 커피콩들이 가득 들어 있었다. 커피콩을 한주먹쯤 꺼내면서, 그는 처음으로 커피와 빈대가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둥글납작한 빈대가 이 커피콩처럼 통통해지려면 피를 빨아야 한다. 굶은 빈대는 쌀알만하다. 다 자란 빈대의 몸길이는 5~8mm정도로 앞날개는 매우 짧고 뒷날개는 퇴화했으므로, 사실상 날개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엄지와 검지로 주워든 커피콩 위로 짧은 털이 솟아나고, 커피콩의 껍질이 벗겨지기 시작한다. 어린 벌레는 다섯번 탈피해야 어른 빈대가 된다. 커피콩이 다섯번 벗겨진다. 암컷은 하루 5개가량, 지름 1mm크기의 알을 낳는데, 열흘 정도가 지나면 부화한다. 일주일 후에 피를 빨 수 있으며, 6~8주 후에 다 자란 벌레가 된다. 이 둥글납작한 흡혈귀는 피를 빨면 몸 전체가 핏빛으로 물들고 복부가 크게 팽창한다. 그래서 이 커피콩처럼 통통해진다. 빈대는, 커피는, 빈대는, 커피는, 그는, 커피를 떨어뜨렸다. 갈색의 통통한 콩들이 와르르르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는 무릎을 꿇고 커피콩을 줍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