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과 현장

 

대국과 소국의 상호진화

 

 

최원식 崔元植

인하대 인문학부 교수. 저서로 『민족문학의 논리』 『한국근대소설사론』 『문학의 귀환』, 편서로 『제국의 교차로에서 탈제국을 꿈꾸다』 등이 있음. ps919@hanmail.net

*이 글은 2008년 9월 30일 서울에서 열린 제1회 한·일·중 동아시아문학포럼에서 발표한 발제문 「소국주의의 재구성을 위하여」를 개제·개고한 것이다. 발표 당시의 시사성은 두고 논의를 조금 보완하는 절충을 선택한바, 개고의 용기를 북돋워준 백낙청 선생의 논평에 감사한다.

 

 

1. 이름의 전쟁

 

일본정부가, 모처럼 잔잔한 동아시아의 호수에 돌을 던졌다. 2008년 7월 14일 문부과학성은 중학교 사회과 새 학습지도요령 해설서에 독도(獨島) 영유권 분란을 기재하기로 결정함으로써 한·일 신시대를 선언한 한국정부로서는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 꼴을 면치 못하게 되었다. 사실 아시아 이웃과의 불화를 사양하지 않았던 전임 총리들과 다른 자세를 보인 후꾸다 야스오(福田康夫) 신임 총리에 대해 한국에서도 은근한 기대가 없지 않았다. 후꾸다 총리 취임 이후 한일관계는 오랜만에 평화를 누리기도 했던 터인데, 그는 극적인 반전의 돌팔매를 선택하고 말았다. 도대체 왜 그런 무리수를 둔 것일까? 외교는 내치(內治)의 연장이란 말을 빌릴 것도 없이 이는 일본 국내정치가 봉착한 어떤 위기에서 비어져나왔기 십상이다. “단기적으로는‘지지율 떠받치기’라는 분석이 유력하다. 가뜩이나 지지율이 바닥을 기는 상황에서 우익세력의 집단적인 반발을 사 국정 장악력을 완전히 상실하는 위험을 피하기 위해 한국과의 관계 악화를 감수했다는 해석이다.”(『동아일보』 2008.7.15) 지금 와 생각하니 지난 6월 11일 일본 참의원에서 민주당이 제출한 총리 문책결의안이 통과된 것이 이번 사태를 야기한 화근이었던가 보다. 법적 구속력이야 없지만 헌정 사상 초유의 일이라는 상징성이 추락하는 지지율과 겹쳐 기어코 이런 거사로 나타난 것이라는 점에서 차라리 안쓰럽기조차 하다.

일본정부는 그래도 한국을 배려하느라 애썼다고 변명한다. 실제로 그 표현이 너무 온건하다고 일본 우익들은 비판하는 모양인데, 잠깐 해설서 그 부분을 보자. “북방영토는 우리나라 고유의 영토이지만 현재 러시아연방에 의해 불법 점거되어 있기 때문에 그 반환을 요구하고 있는 것 등에 대해 적확하게 다룰 필요가 있다. 또한 우리나라와 한국 사이에 타께시마(竹島)를 둘러싸고 주장에 차이가 있다는 점 등도 언급하여, 북방영토와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의 영토·영역에 관해 이해를 심화시키는 것도 필요하다.”(같은 신문) 독도를 일본 영토로 명토박지는 않았으니 그나마 다행이란 말인가? 이 대목의 중심은 확실히 북방영토분쟁이다. 쿠릴열도(Kuril Islands, 千島列島) 남쪽 네 섬, 즉 에또로후(擇捉, Iturup), 쿠나시리(國後, Kunashir), 시꼬딴(色丹, Shikotan), 하보마이(齒舞, Khabomai)를 가리키는 북방영토는 2차대전 이후 소련이 점령한 뒤 현재 러시아가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섬들이다. 원래 아이누(Ainu)의 땅이라는 점은 차치하더라도 이 네 섬의 사정은 독도와는 비교할 수 없이 복잡하다. 그럼에도 이곳에 독도를 슬그머니 끼워넣은 것은 떳떳함과는 거리가 먼 태도다. 이렇게 교묘히 우회하면서 실제로는 독도문제를 북방영토와 거의 동격으로 올려놓는 일본정부의 꾀 아닌 꾀에 한국 여론이 더욱 끓어올랐던 것이다.

독도사태가 일파만파(一波萬波)로 번져간다. 한국과 일본, 두 정부의 힘겨루기가 전개되는 것과 함께 두 나라의 시민들도 오프라인과 온라인 두 전선 모두에서 전투로 돌입한다. 급기야 한일 두 나라 밖으로 불똥이 튄다. 당장 러시아가 강력한 항의를 제기한 것은 당연한 일인데, 중국도 짐짓 쾌재를 부른다. “중국이 공격 소재로 사용할 수 있는 논리를 일본이 스스로 제공해주었기 때문이다.”(『동아일보』 2008.7.17) 알다시피 중국/대만과 일본은 미군이 1972년 오끼나와(沖繩)를 일본에 반환하면서 함께 넘겨준 땨오위따오(釣魚島, 일본 이름 센까꾸尖閣열도) 영유권을 둘러싸고 갈등중이다. 일본이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센까꾸열도를 중국이 일본을 따라 중국령이라고 명기하더라도 일본이 할 말이 적게 된 것이다.

그런데 분쟁영토들을 대상으로 비등하는 동아시아 각 나라들의 민족주의적 충돌이란‘이름의 전쟁’이라고 할 수도 있다. 한국에서는 독도 일본에서는 타께시마, 중국에서는 땨오위따오 일본에서는 센까꾸, 한국에서는 백두산 중국에서는 창빠이샨(長白山) 등등, 접경의 특정 장소들을 나라마다 다르게 호명하는 경쟁 속에서 두 이름의 평화공존보다는 한 이름의 독재로 달려가려는 경향, 즉 단일언어를 꿈꾸는 욕망의 정치가 비등한다. 민족주의는 그리하여 변경 또는 접경의 장소를 둘러싼 이름의 전쟁, 정치적 무의식이 격돌하는 그 초점에서 강렬히 폭발하곤 하는 것이다.

 

 

2. 무명으로 가는 길

 

이 난국으로부터 자유로워질 길은 어디에 있는가? 유토피아에는 이름이 없을지도 모른다. 이름이야말로 분쟁의 모태니까. 이름을 바루는 정명(正名)을 근본으로 삼음으로써 이름을 나누는〔名分〕 쟁론에 쉽게 빠져들곤 했던 유가(儒家)와 달리 근본적 차원에서 이름 너머를 사유하는 도가(道家)는 그리하여 무명(無名)을 꿈꿨다. “저녁(夕)에 어두워 누구인지 보이지 않을 때 입으로 불러내는 것(口)을 상형”1하여 名이란 글자가 만들어졌다는 데서 분명히 짚이듯이, 이름은 창조질서의 혼돈을 분화하는 문명의 논리다. 명(名)과 실(實), 요즘식으로 말하면 기표(記表)와 기의(記意) 사이는 자의적이고 강제적이거니와, 도가가‘반듯한 이름의 세상’이 아니라‘이름 없는 세상’의 원초성을‘오래된 미래’로 선취(先取)하려고 한 것은 자연스럽다면 자연스럽다. 물론 도가도 이름 자체를 완전히 경시한 것은 아니다. “도는 본시 무명〔道常無名〕”2이라고 거듭거듭 강조하면서도 유명(有名)을 그 짝으로 들었던바, 잘 알려진 『도덕경(道德經)』 1장의 그 대목을 보자.

 

無名天地之始 有名萬物之母

무명(名分이 없는 혼돈)은 천지의 비롯됨이요 유명(이름으로 분별함)은 만물의 어미다.3

 

현실로서 존재하는 유명의 세상과 그 너머에서 고요히 빛나는 무명의 유토피아, 유명을 축으로 삼는 유가에 대해 도가에 있어서는 무명이 중심이다. 유명을 짝으로 무명을 사유한다는 점에서 유명을 간과한 것은 아니로되, 도가는 아나키즘답게 일거에 무명으로 비약한다. 비약이라는 근사한, 그렇지만 쉬운, 길이 아니라‘지루한 성공’으로 가는 어려운 길을 유명과 무명 사이로 낼 수 있다면 작히나 좋으랴!

도가가 물론 그저 비약만 하는 것은 아니다. 무명의 유토피아에 걸맞은 사회모형으로 “작은 나라, 적은 인민〔小國寡民〕”4을 제시한 바 있기 때문이다. 좋은 권력이든 나쁜 권력이든 권력이란 근본적으로 마성(魔性)을 뿜어내는 것인지라, 부국강병(富國强兵)을 추구하

  1. 기세춘 『노자강의』, 바이북스 2008, 672~73면.
  2. 蔣錫昌 編著 『老子校話』, 成都古籍書店 1988, 32장 214면.
  3. 같은 책 3면. 이 글의 번역은 기세춘의 『노자강의』를 따랐다.
  4. 같은 책 80장 45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