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이혜경 李惠敬
1960년 충남 보령 출생. 1982년 『세계의 문학』으로 등단. 소설집 『그 집 앞』, 장편소설 『길 위의 집』이 있음.
대낮에
지붕의 박공이 마무리되었다. 지붕은 오랫동안 닫혀 있는 암자의 쪽문에서 볼 수 있는, 세월이 느껴지는 동록빛이었다. 그 자체로는 썩 마음에 드는 빛깔이었다. 문제는 집 주위가 녹색투성이라는 것이었다. 연둣빛 잔디에 메타세쿼이아를 닮은 진초록 나무, 게다가 동록색 지붕이라니. 수틀을 소파에 기대어놓고 몇발짝 떨어져서 보니, 오래 묵혀둔 집처럼 스산했다. 수본대로라면 환한 빨강 지붕이었다. 같이 십자수를 배우는 다른 여자들은 순순히 빨간 실을 꿰었는데 왜 나는 빨강이 너무 상투적이라고 생각했을까. 연녹색에서 진녹색까지 농담을 두어가며 지붕을 절반쯤 수놓았을 때 이미 그르쳤다는 걸 알았다.
생전 처음 놓아본 십자수였다. 지지난달 시누이네 집에서 거실 탁자 위에 놓인 둥근 수틀을 보지 않았더라면 직물의 날줄과 씨줄 사이에 코를 박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볼이 통통한 소녀와 머리가 둥근 남자애가 코를 맞댄 수본 위에 수가 절반쯤 놓여 있었다. 여고생인 조카가 남자친구에게 선물하겠다는 일념으로 수놓는 중이라는 게 시누이의 설명이었다. 남편이 그걸 유심히 보고 있었다.
“뭘 그렇게 열심히 봐요?”
“아니, 요즘도 이런 수를 놓나 싶어서. 어렸을 적에 벽에 걸려 있던 옷덮개, 뭐라더라, 횃댓보? 그래, 거기에 이런 수가 있었던 것 같아서. 당신은 이런 거 할 마음 없어?”
“나도 남자친구가 생기면 고려해볼게요.”
남자친구 아닌 남편의 생일을 달포 앞두고 나는 유럽풍의 십자수를 지향한다는 수예방에 들어섰다.
대학 신입생 때 만난 남편은 첫번째 데이트에서, 가족이라고는 누나와 단둘뿐인데다 남는 시간은 온통 아르바이트에 바쳐야 하는 처지임을 먼저 밝혔다. 그가 자신에게 불리한 점을 먼저 내보이는 게 결벽 때문인지 아니면 나에 대한 완곡한 거절인지를 곰곰이 저울질하면서 나는 맥주거품을 핥았다. 친가도 외가도 형제가 많은 집안인데다, 오빠 둘에 언니가 둘인 막내딸이라서, 가족모임이 있는 날이면 현관에 신발이 잔을 넘는 맥주거품처럼 넘쳐나는 집안에서 자란 내게 그의 단출함은 결격사유가 못되었다. 추억도 식구수에 비례하는지, 연애시절, 내가 개성 다른 언니들 이야기며 짝사랑했던 오빠 친구 이야기를 조잘거려도 남편은 자기의 어린 시절을 펼쳐 보이지 않았다. 그런 남편이 추억 속에서 불현듯 꺼낸 십자수였으니 나로선 무심하게 넘길 수 없었다. 남편 몰래 수를 놓으며 비밀스러운 기분이 들 때가 좋았다. 남편의 생일에 맞춰 식탁 옆 벽에 걸고 그 앞에서 케이크를 자를 예정이었다. 그랬는데…… 초록투성이인 풍경은 오히려 식욕을 떨어뜨릴 것만 같았다. 나 하는 짓이 늘 이렇지, 뭐. 나는 짧게 한숨을 쉬고 딱딱하게 뭉친 어깨를 주무르며 일어섰다. 어느새 한시 반이 다 되어 있었다. 유치원에 간 딸 희영이 돌아올 시각이었다. 카디건을 찾아 걸치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거기 김형도씨 댁인가요?”
애프터써비스 쎈터에서 일하는 사람처럼 격식을 갖춘 목소리였다.
“네, 그렇습니다만.”
“여기는 대전 유성구청 사회복지과입니다. 김형도씨 계십니까?”
“출장중인데요. 무슨 일이시지요?”
“그래요? 혹시 부인 되시나요?”
“예, 그렇습니다만……”
“그럼 김경선씨를 잘 아시겠네요?”
“김경선씨요?”
나는 뜨악하게 되물으며 머릿속으로 더듬었다. 낯선 이름이었다.
“며느리 되시는 분이 시아버지 성함을 몰라요?”
은근히 힐난조인 사내의 말을 듣고서야, 나는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시아버지 이름이 여자 이름 같았다는 걸 떠올렸다.
“그런데 무슨 일이시죠?”
“김경선씨가 그동안 수용시설에 오래 계셨어요. 저희는 연고가 없는 분인 줄 알았는데, 아드님이 있다는 사실을 이제서야 밝혔어요. 김경선씨가 살고 있는 시설은 부양할 가족이 있으면 머물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남편이 출장에서 언제 돌아오시나요? 우선 제 연락처 알려드릴 테니 오시는 대로 연락 바랍니다.”
머릿속에 매캐한 연기가 가득 차는 기분이었다. 시아버지라니? 혼잣몸으로 고생하면서 남매를 키운 시어머니의 고생담을 간간이 들었을 뿐, 시아버지에 대해 들은 것이라고는, 남편이 초등학교 때 어느날 집을 나가서 종적이 없다는 것뿐이었다. 그러니 내게 시아버지는, 산길에서 우연히 만난 묵은 무덤을 보면서 그 무덤 임자를 상상하는 것만큼이나 막연한 존재였다. 그런데 시아버지라니? 나는 전화를 끊자마자 시누이네 전화번호를 눌렀다.
“뭐, 누가 전화했다구?”
“그, 저, 김경선씨, 아니 아버님……”
늘 차분하던 시누이가 날카롭게 되묻는 바람에 나는 더듬거렸다.
“그분이 직접 전화하신 건 아니구요. 그런 분들을 담당하는 공무원인가봐요. 그분이 자식들 곁으로 가고 싶다고 하셨다구요.”
“아니, 자식들이라니. 누가 그 인간 자식이라나. 그냥 싸질러만 놓으면 자식인가?”
시누이가 갑자기 대들듯 소리를 질렀다. 나를 질책하는 게 아님을 알면서도, 처음 들어보는 시누이의 거친 말투에 가슴부터 벌렁거렸다.
어머니마저 돌아가신 뒤, 어린 동생을 돌보며 세상을 헤쳐온 시누이는 나와 첫대면하던 날, 내 손을 잡고 손등을 하염없이 쓸어내릴 뿐, 제대로 인사치레조차 할 줄 모르던 여자였다. 기름기라고는 하나도 없이 소슬하던 손이 전하는 그 진정에 나는 그만 목이 메었다. 골목을 다 벗어날 때까지 지칫거리며 따라온 시누이는 내가 몸을 돌려 다시 작별인사를 했을 때에야 내내 하고 싶었을 말을 입밖에 내었다. 우리 형도, 세상에 그렇게 가엾게 큰 애도 다시 없을 거야. 잘 부탁해요.
표나게 자상하지도 않았지만 남을 입질에 올리지도 않는 시누이의 질박함은, 잘 쌓은 돌담에 등을 기댄 것처럼 든든하기도 했고 때로는 스스럼없이 다가가는 데에 투명한 옹벽이 되기도 했다. 그런 시누이가 이십여년 만에 받은 생부의 소식에 그런 반응을 보이다니. 사건이라면 그것이, 내게는 없는 걸로 알았던 시아버지가 나타난 것보다 더한 사건이었다.
“전화가 또 오면 희영 엄만 무조건 모른다고 해. 희영 아빠 돌아오면 희영 아빠랑 내가 알아서 할 테니. 아니야, 거기 전화번호 받아놓았다며? 불러줘봐.”
통화를 마친 뒤, 담장이 무너져 밖에서도 안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집안에나 앉은 것처럼 허둥거리던 나는 그날 밤, 평소에 잠그지 않던 베란다 쪽 문까지 꼼꼼히 걸어잠그고 나서야 겨우 눈을 붙일 수 있었다.
“별일 없었지?”
출장에서 돌아온 남편은 평소의 버릇대로 동전이며 열쇠 들을 호주머니에서 꺼내어 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