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대중의 눈을 통한 ‘근대’의 재발견

 

 

김백영 金白永

서울대 대학원 사회학과 박사과정 수료. rangzang@naver.com

 

 

1. 왜 ‘근대’인가

 

최근 몇년간 한국의 대중교양서 시장에 일고 있는 ‘근대’ 역사서의 바람은 몇가지 점에서 충분히 징후적이다. 우선 누구나 알고 있는 ‘뻔한’ 일제 식민지 시기, 그 암울했던 시대를 다룬 연구서들이 대중적 인기를 끌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놀라운 일이며, 기성 학계에서 아직 충분히 검토되지 않은 그 시기의 ‘색다른’ 모습에 대한 새로운 시각에서의 연구성과들이 대중독자들에 의해 먼저 전유되고 있다는 사실도 설명을 필요로 하는 이례적인 현상이다. 필자가 볼 때 이 현상은 일단 두 갈래로 해석된다. 하나는 이미 1990년대 후반부터 일기 시작한 역사물의 붐이며, 다른 하나는 ‘지금 여기’ 우리 삶의 환경을 구성하고 있는 ‘근대’ 혹은 ‘현대’에 대한 자의식의 출현이다.

우선 역사물의 인기몰이는 특정 시대와 관련된 것이라기보다는 역사적 과거 일반에 대한 것이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근대화’와 ‘초고속 성장’의 시대에 망각되어버린 역사와 전통에 대한 회고 정서가 투영된 것으로 읽히며, 다른 한편으로는 대중의 문화적 소비욕구의 증가와 미디어시장의 확산과 함께 ‘이야깃거리’에 대한 항상적인 수요과잉과 소재빈곤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 역사물이 개발되고 소비되는 측면도 있는 것 같다.1 하지만 그 저류에 놓여 있는 또 하나의 중요한 흐름은 스테레오타입화된 기성 역사학에서 벗어나 ‘새로운 역사’를 알고 싶어하는 대중의 지적 욕구의 확산이다.2 그리고 이 새로움의 추구에는 서구중심주의적 보편사관에 짜맞추어 편성된 교과서적 역사의 ‘정통성’에 대한 회의적 시선이 깔려 있다. 어쩌면 ‘역사학의 위기’는, ‘포스트모던’ 역사학의 학문적 도전보다는, 이처럼 역사를 다채롭게 소비하고 싶은 대중의 욕망에 토대를 둔, 미시적 일상사의 잠식에 의한 소리없는 균열과 해체를 통해 현실화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고대’나 ‘중세’가 아니라, 식민지 시기를 핵심으로 하는 우리의 ‘근대’에 관한 것이라면 좀더 복잡한 설명을 필요로 한다. 돌이켜보면, 지적 반성의 대상으로서 ‘근대성’(modernity)이란 용어가 우리 사회에 광범위하게 유통되기 시작한 것은 불과 10여년 전부터이다. 1990년대, 베를린 장벽의 붕괴와 함께 파산해버린 사회주의 변혁이론의 거대담론을 대체한 것은 ‘탈/후기/포스트(post)’ 담론―‘탈/후기’구조주의 철학, ‘포스트’(맑스주의/모더니즘/포드주의)론, ‘탈/후기’(산업사회/자본주의)론―이었다.이러한 ‘탈근대’적 보편이론의 유행은 그 현실도피적 경향성에도 불구하고, 한가지 확실하고도 중요한 공통인식을 만들어냈다. 그것은 사회와 역사에 대한 근대적 가정, 즉 보편적이고 합법칙적인 역사의 ‘발전’에 대한 존재론적 신념과, 세계의 합리적 구조를 과학적으로 분석할 수 있다는 인식론적 확신에 대한 의심이다. 여기에 이른바 ‘68세대’ 이후 등장하기 시작한 서양사 연구의 새로운 흐름들이 국내에도 급속히 번역·소개되었으니, 특히 ‘3대 근대성 비판의 역사가들’―푸꼬(M.Foucault), 엘리아스(N.Elias), 아리에스(P.Ariés)―의 저작들은 국내에도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제 역사는 더이상 이성의 ‘카프카적 감옥’이 아니라, 역사가가 자신의 무한한 상상력을 투여할 수 있는 해방공간이 되었다.

한국에서 1990년대 중반 이후에야 걸음마를 시작한 ‘근대의 재발견’ 움직임은 이러한 외래 담론의 영향 아래에서 태동했다. 새로운 대상에 대한 새로운 방식의 접근, 그 ‘혁신’이 더 새롭게 느껴지는 것은 역사학의 자가발전의 논리적 귀결이 아니라, 역사학의 ‘외부’로부터 주어진 충격과 자극의 산물이라는 점이다. 더욱이 자리잡기 시작한 그 일련의 새로운 흐름들의 재생산이 이루어지는 방식도, 여전히 학계의 ‘강한 의지’에 기대고 있다기보다는 대중의 ‘자각과 욕망’에 토대를 두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역사학은 역사 속의 ‘대중’을 발견하기 시작했고, 대중은 자신 속의 ‘역사’를 발견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오랜 외면의 시간 끝에, 마침내 한국에서도 역사와 대중의 역사적 만남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이제 만남의 장소와 대화의 구체적 내용을 확인할 차례다.

이 글은 그 ‘첫만남’으로 널리 알려진 김진송 『현대성의 형성: 서울에 딴스홀을 許하라』(현실문화연구 1999, 이하 『딴스홀』) 이래 만남이 이루어져온 여러 장소들 가운데 대표적인 여섯 개의 사례를 골라, 둘씩 짝을 지어 세 부류로 나누어 서평의 형식으로 다루어보고자 한다. 첫번째 부류는 만남의 초기적 특성을 드러내는, 자료집에 가까운 책이다. 『딴스홀』과 신명직 『모던뽀이, 경성을 거닐다: 만문만화로 보는 근대의 얼굴』(현실문화연구 2003, 이하 『모던뽀이』)은 만 4년의 시차에도 불구하고 그 성격이 크게 다르지 않은 ‘자매편’으로 독자들에게 수용되었다. 두번째 부류는 철도나 도시 건조환경(建造環境, built environment)과 같은 물질적 요소를 직접적 대상으로 한 것으로, 박천홍 『매혹의 질주, 근대의 횡단: 철도로 돌아본 근대의 풍경』(산처럼 2003, 이하 『매혹의 질주』)과 노형석 『모던의 유혹, 모던의 눈물』(생각의 나무 2004, 이하 『모던의 눈물』)이 그것이다. 마지막 세번째 부류는 문학연구에 방법론적 토대를 둔 문화사적 연구이다. 권보드래 『연애의 시대:1920년대 초반의 문화와 유행』(현실문화연구 2003)과 천정환 『근대의 책읽기: 독자의 탄생과 한국 근대문학』(푸른역사 2003)이 이에 해당한다.

 

 

2. 낯선 ‘그들’에게서 낯익은 ‘우리’를 발견하다

 

몇년이 지난 지금의 싯점에서 다시 들춰보면, 『딴스홀』의 자문자답 구조는 의외로 단순하다. 김진송은 다음과 같이 묻고, 답한다. “우리 역사에서 ‘현대성이 형성된 곳’은 어디인가?…… 1930년대.”그럼에도 불구하고, 발간 당시 이 책이 큰 파장을 일으키며, 뒤이어 나올 여러 편의 ‘근대 씨리즈’의 신호탄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의 문제제기는 ‘현대성’에 대한 재정의에서 출발한다. 우선 그는 현대성을 논해왔던 학계의 지배적 방식들―사회과학계의 보편적 도식과 유형론이나 역사학계의 사건사를 통한 민족사 혹은 민중사적 서사의 전개―을 거부한다. 저자에게 ‘현대’는 이처럼 추상적이거나 거창한 것이 아니라 ‘현대인’에게 물과 공기처럼 일상에 널려 있어 의식조차 하지 못하는 그 무엇과 같은 것이다. 저자는 이처럼 소박하고 독창적인 ‘현대성’의 정의

  1. 전통적인 TV사극과는 성격과 시청자층을 달리하는 ‘퓨전사극’ 「허준」과 「대장금」의 폭발적 성공을 떠올릴 수 있다. 이런 유의 역사적 콘텐츠들은 영화, 소설, 만화, 컴퓨터게임, 그리고 캐릭터상품으로도 소비되고 있다.
  2. 1990년대 중반 선보인 한국역사연구회 『조선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1·2(청년사 1996)를 필두로 하여, 최근에 나온 조선시대의 생활사와 풍속사를 다룬 일련의 연구서들에 이르기까지 이제는 하나의 흐름으로 정착된 적지 않은 양의 교양역사서들, 그리고 KBS의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역사스페셜」은 모두 그 결과물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