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대학은 왜 바뀌지 않는가

분단체제적 인식과 대학개혁

 

 

윤지관 尹志寬

덕성여대 교수. 한국대학학회 초대 회장 역임. 저서 『세계문학을 향하여』 『사학문제의 해법을 모색한다』(공저) 등이 있음. jkyoon@duksung.ac.kr

 

 

1. 대학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

 

올해 들어 급진전된 남북관계는 한반도에서 적대관계의 종식과 평화체제 구축이라는 전망을 열었다.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을 통해 이같은 기본원칙이 확인되고 북한의 비핵화와 체제보장 과정이 실질적으로 진행되면서, 한반도의 남북한 사회를 규정하고 있던 분단체제의 요동이 본격화되었다. 분단체제가 남북의 대결상황에 기반하면서도 각 사회의 지배구조를 고착·강화하는 방식으로 작동해왔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체제의 해체 과정에 따라 우리 사회도 여러 부문에서 변화가 촉진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핵폐기와 북한의 체제보장을 둘러싼 미국과 북한의 ‘힘겨루기’와 주변 강대국 사이의 이해관계에 따라 이 과정이 순탄치 않을 소지도 있거니와, 국내적으로도 분단체제 해체의 전망이 어떤 방식으로 한국사회의 변화에 작용할지는 아직 미지수다. 중장기적으로 그 체제에 기생하던 세력들에게 타격이 될 것은 분명하나, 사회 각 부문에 구조화된 기성질서가 쉽사리 해체되리라고 낙관하기는 이르다.

물론 기득권구조를 해체하고 새롭고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겠다는 것이 문재인정부의 출범선언이었고 적폐청산이 시대의 흐름이 되었다. 그러나 국정농단 사태로 드러난 지난 정부의 비정상적 국가운영방식을 시정하고 비리당사자들을 징벌하는 것만으로 사회 속에 뿌리내린 기성 권력구조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최근 최저임금을 둘러싼 논란이 말해주듯 국민의 경제기본권을 확립하겠다는 대표 공약의 이행조차 경제사회 내부의 이해관계들이 충돌하면서 결국 속도조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듯이, ‘적폐’는 마땅히 ‘청산’되어야겠지만 그것이 이해관계를 통해 우리의 일상 속에 얽혀 있고 심지어 우리의 심리영역조차 잠식하고 있다면, 그만큼 지난한 작업일 수 있다.

적폐청산의 이같은 어려움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분야 가운데 하나가 교육, 그 가운데서도 대학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대학 문제에서 교육부의 대응은 여타 부문에 비해 현저하게 미진하거나 지지부진하다는 비판이 높다. 교육부의 소극성을 의심할 수도 있겠고 오랜 관료주의의 폐습 탓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이는 교육부만이 아니라 새로운 정권이 과연 대학의 기득권질서를 ‘변혁’할 의지나 역량이 있는지와도 연관된다. 교육 부문이야말로 가령 권력기구나 경제제도와도 달리 국민의 시민의식 수준까지 포함하는 문화와 직결되어 있으며 그만큼 기성질서의 뿌리가 깊기 때문이다. 한국 대학의 가장 큰 병폐가 서울을 중심으로 한 서열화체제임은 누구나 인정하는 바고, 대선 당시 문재인캠프도 이를 중요한 개혁과제로 삼아 국공립대 통합을 비롯한 대학평준화 기획을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과연 현 정부는 서열화체제에 정면도전하여 근본적인 혁신을 수행할 수 있을까? 현단계로 보자면 이념적 지향은 그럴지 몰라도 현실적으로는 매우 의심스럽다.

이 문제에 대한 교육부의 딜레마는 대학입시제도 개편 문제를 둘러싼 최근의 사태에서도 드러난다. 교육부는 수능 전과목 절대평가 도입을 입시제도 개선방침으로 정했다가 반발에 부딪히자 이를 철회하고 지난 4월 입시제도 개편방향 결정을 신설된 국가교육회의에 위임하였다. 선발 방법, 시기, 수능평가방법 등 쟁점 사안에 대해 ‘숙의 공론화’를 거쳐 결정해달라는 요청을 받은 국가교육회의는 다양한 이해당사자들이 포함된 공론화위원회를 구성해 여론수렴과 숙의 과정을 거쳐 지난 8월 초 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나 국가예산 수십억원을 쓰면서 국민대표 수백명을 모집하고 전국을 돌며 여론수렴을 거친 후 내놓은 결과는 그야말로 ‘태산명동에 서일필’ 격으로 빈약하거니와 그것조차 정책에 반영할 정도로 유의미한 내용이 아니었다.1 숙의 과정을 둔 점이 단순한 여론조사와 다르기는 해도 입시제도 관련 논의는 이미 나올 대로 나와 있어서 새삼 ‘공론’할 사안도 아니거니와, 아무리 ‘집단지성’이 발휘된다지만 불과 몇개월의 시한을 둔 시민집단의 토의로 뚜렷한 결론이 나오기는 애초부터 무망한 일이었다. 물론 대학입시 개편이 늘 학부모들의 관심사이고 입장도 엇갈리는 만큼 여론에 입각해서 최종결정을 하자는 것이 교육부의 방침이겠으나, 구체적인 정책방안까지 여론에 맡기자는 발상 자체가 무책임하게 여겨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더 근본적인 문제는 교육부가 대학입학의 ‘공정성’에 몰두하는 사이, 정작 대입제도 문제를 이처럼 국민적 관심사로 만든 연원을 놓칠 수 있다는 점이다. 교육부 스스로 국가교육회의에 쟁점을 이송하면서 분석하다시피 “지속적 교육혁신 노력에도 불구하고 입시위주 교육이 여전”하고, “학력경쟁으로 인한 사교육이 심각한 사회문제”라면 그것이 어떻게 입시제도만의 탓이겠는가? ‘망국적’이라는 판에 박힌 형용어가 붙을 정도로 세칭 일류대를 향한 학벌경쟁이 한국교육 전반을 병들게 하고 대학입시제도 개편을 극도로 민감한 정치적 의제로 만들고 있을 뿐이다. 서열화체제에 대한 근본적인 혁신 방안 없이 입시제도 개편에 매달리는 것은 본말을 전도한 격이다. 결국 입시제도 개편을 둘러싼 이 해프닝은 서열화체제의 개혁과제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교육부의 무능함을 감추는 방편이 아닌가 하는 혐의조차 엿보이는 것이다.

민주사회에서 여론을 중시하지 않을 수 없고 정책을 결정하는 데 시민사회의 공론과 숙의를 활성화하는 것이 나쁠 리 없다. 그러나 겉으로 드러난 여론이 시대의 흐름이나 심층적인 국민의 여망을 반영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때로는 노골적으로 왜곡하기도 한다. 대학입시에 대한 과도한 관심의 이면에 서열상 좋은 대학에 진학하거나 자식을 보내고 싶은 욕망이 숨어 있음을 부정할 수는 없고 학력주의가 기승을 부리는 우리 현실에서 그러한 욕망 자체를 나무랄 수만도 없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대학이라는 기관 자체가 사회불평등 구조의 반영이자 그것을 재생산하는 기제라는 비판이 높아져가고 그 핵심에 악화일로에 있는 서열체제가 존재하는 것도 현실이다. 이 불평등구조를 변혁하자는 것이 촛불민심인 이상 일류대를 향한 욕망 한편에 서열화된 대학구조를 개편해달라는 요구가 여론의 깊이에서 흐르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적폐청산과 새 질서 건설이 시대정신이 되고 있는 시기에 대학개혁의 지지부진은 한국 대학의 현실을 보는 좀더 복합적인 시각이 필요함을 말해준다. 정권교체에도 불구하고 대학 현안에 대한 정부의 대응에 큰 변화가 없다면 그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대학의 서열화구조는 한국사회의 기성질서와 맺어진 한편으로 세계적인 추세와도 맺어져 있는 것이 아닐까? 실상 경쟁 위주의 신자유주의는 비단 우리 대학만이 아니라 지난 수십년간 세계자본주의의 중심 이념이기도 했다. 한국 대학의 구조적 문제가 전지구적인 변화와 연계되어 있고 우리 내부의 욕망과도 결합되어 있다면, 과연 현상을 극복해낼 단초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대학 문제를 남한의 일국적 관점이 아니라 자본주의적 세계체제와 관련하여, 그리고 그것의 한반도적 구현이라고 할 분단체제와 관련하여 이해하고자 하는 시도는 이런 물음들에서 비롯한다.

 

 

2. 분단체제론적 인식과 한국 대학의 현실

 

한국 대학의 현실을 남북관계와 관련하여 그리고 분단체제적인 인식과 관련지어 말하는 것은 다소 생소하게 여겨질 수 있다. 남북관계는 어디까지나 정치외교적인 문제로 여겨지기 십상이거니와 분단을 하나의 체제로 인식하는 관점도 일반에게 그리 익숙하지는 않다. 그렇지만 남북관계의 변화는 비단 한국 정치만이 아니라 경제·문화 등 여러 부문에 영항을 미치고, 교육현실도 체제화된 분단구조와 긴밀하게 연계되어 있다. 가령 반공교육이 일반화되고 학생자치조직 대신 학도호국단이 존재했던 독재정권시대는 차치하고라도, 앞에서 언급한 대학입시 개편 문제만 해도 그렇다. 고등교육에 대한 접근권과 대학입시의 공정성 문제는 어느 사회에서나 제기되지만, 그것이 남한사회처럼 ‘전쟁’이라고 칭할 정도의 과도한 경쟁을 유발한다면 도대체 그 원인이 무엇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한국의 대학입시 과열은 세계적으로도 유례없이 높은 대학 진학률 탓일 수도 있다. 현재는 70% 이하로 내려갔지만 한때 80%를 상회했을 정도로 한국의 고등교육 진학률은 대중화를 넘어서 보편화 단계에 들어선 지 오래다. 유럽 국가들이 지식중심시대를 맞아서 고등교육 진학률을 높이는 정책을 쓰고 있지만 그 목표가 50% 수준인 것과 비교된다. 그러나 높은 진학률 자체가 사회문제일 수는 없고 오히려 국민의 총체적인 의식수준을 높이는 바탕이 될 수도 있다. 문제는 높은 진학률 및 입시위주 교육과 사교육 번성의 배경에는 한국사회의 극심한 학력주의와 일류대 진학을 최상의 교육목표로 삼는 풍토가 있다는 것이다. 이 현상을 한국 학부모의 교육열과 유교적인 전통에서 찾는 시각도 있으나 그

  1. 전체적으로 수능 위주 전형비율을 지금보다 높이고 중장기적으로 수능 절대평가 과목을 늘리는 것이 다수안이라고 했지만 김영란 위원장 스스로 유의미한 통계결과가 아니라고 밝힌 바도 있거니와, 실제로 곧이어 발표된 국가교육회의의 최종안은 결국 현행 제도를 유지하면서 수능 반영비율을 높이라는 권고 정도에 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