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학문의 주체성과 오늘의 대학

 

대학평가·학문평가를 평가한다

 

 

홍덕률 洪德律

대구대 사회학과 교수. 공저로 『참여민주주의와 한국사회』 『한국사회의 구조론적 이해』 『영남지역 계획도시의 사회구조와 생활문화』 등이 있음. drhong@daegu.ac.kr

 

 

1. 평가가 휩쓸고 간 대학가 스케치

 

원래는 낯설고 어색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게 된 ‘평가’가 있는데, 늘 평가와 심사의 주체이기만 했던 대학과 교수에 대한 평가가 그것이다. 우선 교수들은 재단과 대학에 의해서 일상적으로 평가받기 시작했다. 물론 그 전에도 재단과 대학은 재임용과 승진 심사를 통해 교수를 평가해왔다. 하지만 그것은 주로 연구실적 평가에 국한되었다. 지금은 연구실적 외에 학회활동, 사회봉사, 대학발전기금 모금실적, 외부연구비 수주액, 산학협력 실적, 신입생 모집 및 학생 취업알선 실적, 학교내 봉사실적 등 교수의 일거수일투족이 점수로 환산되고 있다. 연구실적도 과거와는 달리 게재된 학회지의 등급에 따라 다른 점수를 받는다. 또한 이전의 재임용과 승진 심사는 형식적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았지만, 지금은 계약제·연봉제 등과 함께 운영되면서 매우 살벌하게 바뀌었다. 평가 결과에 근거해서 연봉과 승진 여부가 결정되고 심지어는 계약이 해지되기도 한다.

교수들은 재단과 대학본부에 의해서만이 아니라, 항상 평가대상이기만 했던 학생들로부터도 평가받고 있다. 강의를 얼마나 잘했는지, 휴강은 자주 하지 않았는지, 수업준비는 제대로 했는지, 기자재 활용은 적절했는지 등도 모두 평가받는다. 자주 결석하면서 매우 성의없이 수업에 임한 학생들까지도 강의를 평가한다. 강의평가 제도가 처음 도입될 때 논란이 일기도 했지만, 지금은 대부분의 대학들에서 정착되었다. 실은 그것보다 더 신경쓰이는 것이 있다. 학생들의 수강 기피에 의한 폐강 가능성이다. 학생들은 대개 취업을 준비하는 데 도움되는 교과목을 선택한다. 취업에 직접 도움되는 것도 아니면서 수업내용이 어렵거나 과제가 많거나 성적이 박하다는 소문이 나기라도 하면 수강생을 구하기가 어려워진다. 폐강으로 책임 시수를 채우지 못할까도 걱정이지만, 교수의 학문적 자존심도 상처를 받는다. 시장과 수요자(학생)의 선택에 의해 강좌와 교수가 퇴출될 수 있게 된 것이다. 종종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문제많은 시장인 것을 두눈으로 확인하면서도 교수들은 시장의 부당한 요구에 타협해야 하는지를 놓고 고민하게 된다.

불안의 그림자는 학과에도 드리워졌다. 예컨대 신입생 충원율에 따라 학과의 존폐를 결정하는 대학들이 늘고 있다. 교수들은 자신의 학과를 살려내기 위해 학과 명칭을 바꿔보기도 하고 신입생을 찾아 고등학교를 떠돌기도 한다. 폐과라는 최악의 사태를 막기 위해 학과별 신입생 충원율과 교수 봉급을 연동시키겠다고 교수들 스스로 결의한 대학도 있다.

그러나 요즘 더 문제되는 것은 대학과 학과가 대학 밖의 기관들에 의해 종합적으로 평가받게 되었다는 사실과 그러한 평가가 범람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과거에는 교육부가 행정감사식의 평가를 하거나 혹은 재정지원을 위해 대학의 특정사업을 대상으로 평가하는 것이 전부였지만,1994년 이후 대학교육협의회가 실시하고 있는 대학종합평가 인정제에서는 대학의 재정상태와 발전계획의 타당성 등 대학의 전반적인 운영실태와, 교수의 연구실적, 교수 확보율, 학생 복지, 교사(校舍) 확보율, 교육용 기자재 구비율 등의 연구·교육 여건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대학종합평가 외에도 대학교육협의회는 학문분야별 평가도 실시하고 있으며, 학문분야별 평가인증기관과 일간신문 등에 의한 평가도 일상화되어 있다.1

평가가 범람하고 있다는 사실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느새 평가가 대학의 생존을 결정지을 정도로 막강한 힘을 갖게 되었다는 사실이다.2 지금 대학들은 각종 평가에서 평가인정을 받고 좀더 좋은 점수를 얻기 위해 사활을 건 경쟁을 벌이고 있다. 대부분의 대학들이 행정조직에 상시적인 평가전담기구를 두고 있다. 평가지표에 맞춰 예산을 편성하고 행정조직을 재편한다. 평가를 앞두고 갑자기 많은 교수를 채용하기도 하고 조교를 늘리기도 한다. 건물을 새로 짓거나 뜯어고치기도 한다. 강의동 복도마다 대학헌장과 교육이념을 담은 액자가 걸리는가 하면, 실내조명을 높이고 도색을 새로 하기도 한다. 느닷없이 강의실을 뜯어고쳐 첨단강의실로 개조하는가 하면 연구소가 갑자기 큰 평수의 방으로 이사를 가기도 한다. 교수에게 연구비를 늘려주기도 하고 교내 연구소 논문집이 한해에 몇권씩 발간되기도 한다. 엄청난 양의 평가서류를 준비하느라 대학 행정직원은 몸살을 앓는다.

행정직원뿐만이 아니라 교수들도 평가를 준비하느라 아까운 연구·교육 시간을 뺏긴다. 시간을 뺏기는 정도가 아니다. 온갖 비교육적인 방식으로 평가준비에 동원되면서 심각한 자괴감에 빠지기도 한다. 예를 들어 대학종합평가의 현장방문평가 기간 중에는 학생들을 상대로 예상질문과 모범답안을 교육시킨다. 설문조사 결과를 조작하기도 한다. 사전에 입수된 현장방문 평가위원 명단에 아는 교수라도 있게 되면, 대학으로부터 그를 상대로 로비를 하라는 특명을 받게 된다. 접대를 받을 수 없도록 되어 있는 평가위원들에게 어떤 식으로든 식사나 술을 접대하려고 인근 대학 교수들과 신경전을 벌이기도 한다.

교수들은 또 연구실적을 부풀리기 위해 동료 교수들과 공모해 이름을 빌려주고 빌린다. 학회활동의 실적과 논문의 등급을 부풀리기 위해, 자신이 주로 관계해온 지역 학회를 외양만 손질해 전국 학회로 바꾸고 그 학회가 발행하는 학술지를 저명학술지로 둔갑시킨다. 물론 그 과정에서 학회 회원은 부풀려지고 아무런 일도 하지 않은 타 지역 교수가 학회 임원으로 명부에 올라가기도 한다. 학회와 회원교수들에게는 물론이고 학회에 이름을 빌려준 교수에게도 득이니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학회지의 등급을 올리기 위해 논문심사 서류를 허위로 만들고 논문심사 탈락률을 조작하는 식의 편법까지 동원한다.

숭고한 대학이념, 학자적 기개와 지성, 교육자적 양심은 증발해버리고, 재단이든 대학이든 학과든 교수든 점수따기 경쟁만 남은 것이다. 각종 평가들이 대학가 풍경과 교수들의 삶을 크게 바꿔놓은 것이다. 한마디로 비극적인 풍경이 아닐 수 없다.3

 

 

2. 대학과 학문의 현실: 대학개혁과 교수개혁의 과제

 

평가가 초래한 비극적 결과들에도 불구하고 평가제도의 도입은 매우 강력한 논거를 가지고 있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대학과 교수사회에 뿌리내려 있던 비리와 부도덕, 지적 태만과 낮은 생산성의 문제 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경쟁과 평가 씨스템의 도입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그런 논거가 꽤 설득력을 가질 만큼, 평가가 본격 도입되기 전의 대학과 교수사회는 매우 심각한 중병을 앓고 있었던 것이다. 중요한 몇가지만 간추려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는 대학의 도덕성 위기이다. 그것은 다시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사립대학의 재단비리다. 사실 대학은 오랫동안 경쟁의 무풍지대였다. 문만 열어놓으면 학생들이 구름같이 몰려드는 구조였으니 재정난도 피할 수 있었다. 대학 경영자의 가장 큰 관심사는 대학정원을 늘려 승인받고 학과신설을 허용받는 것이었다. 재정수입을 늘리는 가장 쉬운 지름길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학과신설과 정원증원은 모두 교육부의

  1. ‘한국 의과대학 인정평가위원회’와 ‘한국간호평가원’의 의학·간호학 분야 평가, ‘한국공학교육 인증원’의 공학분야 평가가 대표적이다. 언론사 평가의 예로는 중앙일보가 1994년부터 실시하고 있는 전국대학평가를 들 수 있다. 학술진흥재단은 학술지 평가와 연구논문 평가를 실시하고 있다.
  2. 예컨대 2001년에 끝난 1기 대학종합평가 인정제에서는 평가받은 160개의 4년제대학 모두가 ‘인정’평가를 받았으며, 세부적인 내용은 대부분 비공개 처리되었다. 따라서 대학과 사회에 준 충격도 그리 크지 않았다. 하지만,2004년 8월 31일에 발표된 ‘대학구조개혁방안’을 통해 교육인적자원부는 2005년부터 평가 결과를 비롯해 대학관련 각종 자료와 지표를 일반에 공개하겠다는 방침(대학정보공시제)을 천명했는데, 그렇게 되면 앞으로 대학평가는 대학가에 엄청난 폭풍을 몰고 오게 될 것이다.
  3. 물론 그간의 대학·학과·학문·교수 평가들이 부정적인 결과만 가져온 것은 아니다. 대학이 평가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실상을 객관적으로 돌아보게 됐고, 자신의 강점과 약점을 명확하게 진단할 수 있게 됐으며, 나아가 발전계획을 세우고 노력을 집중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준 것 등은 대학평가가 가져온 긍정적 결과들이다. 교수들 역시 지적 태만과 나태를 극복하도록 자극받은 측면도 없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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