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2007, 한국사회의 미래전략

 

대한민국 ‘레짐 체인지’

현 정치질서의 특성과 향방

 

 

안병진 安秉鎭

창원대 국제관계학과 교수. 저서 『노무현과 클린턴의 탄핵 정치학』 『마이크로소프틱스』. nsfsr@hotmail.com

* 필자의 조야한 글에 대해 예리하고 따듯한 비평으로 수정에 도움을 주신 김윤재, 고원 박사님께 감사드린다.

 

 

1. ‘레짐 체인지’의 서막

 

2007년은 ‘레짐 체인지’(regime change) 시대의 서막을 열 해가 될 것 같다. 물론 이는 북한에 대한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 내부 정치지형에 대한 이야기이다. 일찍이 부시행정부가 북한의 레짐 체인지를 언급했을 때 많은 이들은 이를 ‘정권교체’로 번역한 바 있다. 하지만 박성래가 예리하게 지적했듯이, 여기서 레짐이란 단지 정권의 담지자가 누구인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에서 말하는 특정한 사회모델 전반을 가리킨다.1 미국의 정치학자 플롯케(David Plotke)는 비슷한 문제의식에서, 시대정신, 지배적 담론, 주요한 정치연합의 형태 등을 포괄적으로 나타내는 개념으로 ‘정치질서’(political order)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2 필자가 굳이 레짐이나 정치질서를 언급한 것은 2007년이 단순히 대한민국에서 정권의 담지자를 선출하는 시기가 아니라 정치체제까지 포함한 향후 사회모델이 달라질 수 있는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해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레짐의 문제의식이 특별히 새로운 것은 아니다. 바로 80년대 진보진영을 뜨겁게 달구었던 사회구성체논쟁이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 논쟁은 당시의 조야한 맑스주의 토대/상부구조론과 서구적 이론에 과도하게 의존했다는 점에서 많은 한계를 지닌다. 하지만 총체적인 사회경제체제, 북한과의 관계 및 지구적 질서, 각 정치세력의 역관계에 기초해 현실에서 과학적인 실천을 추구했던 문제의식은 미국 정치학계를 풍미한 ‘정치질서재편론’(realignment theory)보다 훨씬 풍부한 성과를 남기기도 했다.

하지만 흥미로운 것은 과거 운동진영의 일부 세력이 이제는 정권의 담지자 및 집권여당의 핵심으로 자리잡았음에도 정작 그들의 문제의식은 사회구성체론에서 이론적으로 발전하기는커녕 80년대 이전으로 크게 후퇴했다는 점이다. 이들은 단지 87년 시절부터 강박관념처럼 집착해온 정치개혁 아젠다나 정치공학적 판짜기에만 정통할 뿐, 급격히 변화하는 정치질서에 대한 총체적 문제의식을 견지하지 못했다. 더욱 놀라운 점은 노무현정부의 경우에 현단계 민심의 방향이나 각 정치세력간의 역학관계를 시종일관 철저하게 무시하며, 미래를 준비한다는 미명하에 대연정, 개헌 등의 공허한 주장을 남발해왔다는 것이다. 필자는 이렇듯 민심과 정치적 역관계를 무시하고 탈정치적인 미래에 집착하는 것을 ‘토플러주의 리더십’이라고 비유적으로 표현한 바 있다.3 송호근(宋虎根)도 필자처럼 이 퍼즐이 이해되지 않아서인지 노무현정부를 ‘정치학을 모르는 운동정권’이라 규정하기도 했다.4

이 글에서는 이러한 문제의식하에 단순히 정치공학적인 평론을 하기보다는 2007년 한해 동안 심도있게 검토해봐야 할 논점들이 무엇인지를 다방면에서 제기하고자 한다. 지면상 한계로 각 논점들을 자세히 다룰 수는 없지만 일종의 브레인스토밍이 될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하고자 한다.

 

 

2. 현단계 정치질서의 성격과 관련된 논점들

 

정치담론이나 정계개편의 방향에 대해 논의하기 이전에 우선 현 레짐 혹은 정치질서의 성격이 어떠한지 전면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는 다음의 논점들로 집약될 수 있을 것이다.

 

절차적 민주주의 대 실질적 민주주의 이분법론의 한계5

많은 정치학자들은 노무현정부의 출범으로 절차적 민주주의는 일정정도 진전되었지만 이에 반해 사회경제적 측면의 실질적 민주주의는 퇴보했다고 진단해왔다. 이에 따르면 실천적으로는 실질적 민주주의의 심화라는 목표가 도출된다. 하지만 그간 노무현정부나 집권당이 실정을 거듭해온 역사를 돌이켜보면, 여기에는 절차적 또는 사회경제적 민주주의의 한계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핵심적인 오류가 존재한다. 바로 민주공화국이 꼭 갖춰야 할 자유주의적 정치문화의 결여라는 점이다. 하지만 현재 집권당이나 개혁파 지식인들은 이를 중시하지 않는 것으로 보이는데, 그로 인해 결국 차후의 어떠한 정계개편도 공허해질 위험이 있다.

선진국의 자유주의적 정치문화에서 주요한 개념 중 하나는 ‘민의의 위임’이다. 구소련이란 공룡을 붕괴시킨 자유주의정치의 탄력성은 바로 선거에서 확인된 민의를 치열하게 해석하고 이를 어떤 형태로든 반영하고자 하는 문화가 존재하기에 가능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빈번하게 그리고 열정적으로 치러지는 선거는 탈정치론자들의 걱정과는 달리, 갈등을 긍정적으로 표출시켜 ‘갈등적 합의’(conflictual consensus)를 이끌어내는 매우 효율적인 정치기제가 아닐 수 없다.6 선진국의 자유주의적 정치는 많은 부작용을 낳는 첨단 여론조사기법을 진화시켜가면서까지 이러한 민의를 자신들의 헤게모니로 편입시키기 위한 일상화된 전쟁을 벌인다.

하지만 현 집권진영은 민의를 해석하는 행위나 그러려는 노력을 거의 방기한 채, 자신들이 집착하는 아젠다들을 실현하는 것에만 매몰돼 있다. 탄핵정국에서 보수야당의 의회민주주의 유린에 대한 민의의 심판을 자신들의 4대 개혁입법 지지로 자의적으로 연결시킨 것은 아직 자유주의적 위임의 개념이 형성되어 있지 못함을 단적으로 드러냈다. 이는 이후 대연정, 개헌, 한미FTA 등에서도 일관되게 나타났다.

역사적으로 보면 이러한 비자유주의적 행태는 노무현정부가 사실상 구시대의 막내로서, 질적으로 김영삼·김대중정부의 불철저한 자유주의의 연장선상에 있음을 웅변한다. 그리고 구태에 대한 근본적인 혁신이 전제되지 않은 대통령중임제 등의 제도적 장치나 실질적 민주주의 과제들을 추구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실패를 반복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민의의 치열하고 정확한 해석 없이 사회경제적 아젠다를 추구하는 것은 애초부터 성공할 수 없는, 위로부터의 주관적인 기획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결국 2007년의 주요 과제 중 하나는 절차적 또는 실질적 민주주의 구현에만 매달리는 것이 아니라 정치문화를 질적으로 혁신하는 것임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기업국가론의 정교화 필요성

비록 집권진영은 사회구성체의 문제의식을 잃어버렸지만 학계에서는 의미있는 연구들이 축적되어왔다. 특히 최근 김동춘(金東椿)은 현 대한민국을 기업헤게모니가 강한 미국식 기업국가라고 주장한다.7 사실 그의 말처럼 노무현정부는 초기부터 삼성 등의 강력한 자장 안에서 동북아중심국가론, 국민소득 2만불시대 등의 담론을 전개해왔다.

현단계 한국의 기업국가성은 내용적으로 두가지가 결합되어 있다. 하나는 재벌구조, 부동산투기 등으로 대표되는 천민자본주의적 특성이고 다른 하나는 포스트모던한 미국식 신자유주의이다. 천민자본주의적 소유구조와 조직문화를 가지고 디자인 중심이나 창조경영이라는 포스트모던한 화두를 던지는 삼성은 대한민국 모순의 소우주라고 할 수 있다.

앞에서 말한 절차적 민주주의의 한계가 질적으로 김대중정부까지 거슬러올라가듯이, 역사적으로 보면 기업국가적 성격도 과거의 민주정부에 맞닿아 있다. 예컨대 새로이 들어선 노무현정부의 경제정책을 제약한 김대중정부의 무원칙한 신용카드 남발과 이로 인한 신용불량자 양산은 전형적인 천민자본주의적 행태이다. 그리고 IMF위기 이후의 노동유연화는 근대적 평생고용체제를 넘은 포스트모던한 미국식 신자유주의적 실험이었다.

그런 점에서 현단계의 과제는 단순히 미국식 기업국가론과의 투쟁이 아니라 한국식 이중모순에 대한 투쟁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즉 한편으로 재벌체제, 부동산투기 등의 천민자본주의를 건전한 자본주의로

  1. 박성래 『레오 스트라우스』, 김영사 2005.
  2. David Plotke, Building a Democratic Political Order: Reshaping American Liberalism in the 1930s and 1940s, Cambridge Univ. Press 1996.
  3. 졸고 「노무현 대통령의 리더십 특성: 토플러주의와 포퓰리즘의 모순적 공존」, 한국정치학회·관훈클럽 공동주최 ‘한국 대통령 리더십 학술회의’(2007. 1. 29).
  4. 송호근 「송호근 교수의 노무현정권 입체 대분석」, 『신동아』 2007년 2월호.
  5. 이 부분은 특히 미국식 위임(mandate)의 의미에 대해 필자와 문제의식을 같이하는 김윤재 박사와의 토론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
  6. 졸고 「탈정치론의 시대: 참여정부와 뉴라이트의 탈정치론과 공화주의적 대안 모색」, 『동향과전망』 2006년 여름호.
  7. 김동춘 『1997년 이후 한국사회의 성찰』, 길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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