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평

 

‘대화’의 에티카

미하일 바흐찐 『말의 미학』, 길 2006

 

 

이장욱 李章旭

시인 wook6297@hanmail.net

 

 

135-324

철학자나 이론가의 인생에서 어떤 시적인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내게는 스피노자(B. Spinoza)가 그렇고 바흐찐(M. Bakhtin)이 그렇다. 유대인으로서 유대인 공동체에서 파문당한 후 안경렌즈를 세공하며 일생을 보낸 스피노자는 “네개의 벽 안에 매장된 듯” 외로운 삶을 살았다고 한다. 아마도 그에게는 당대의 초월적 선악관념(종교와 도덕)을 넘어 세계의 ‘실체’에 이르는 것 자체가 바로 ‘윤리’(에티카)였는지도 모른다.

러시아의 문예학자 바흐찐 역시 비쩹스끄, 싸란스끄 등 러시아의 변방을 떠돌며 주변부적인 생을 보냈다. 쏘비에뜨시대의 유형생활을 견뎌내고 골수염으로 한쪽 다리를 잃는 등 불우한 삶을 살아낸 이 북구의 학자에게는, 하지만 자신의 원고뭉치로 담배를 말아 피우는 ‘카니발적인’ 자유인의 이미지가 남아 있다. 특유의 낙천성을 잃지 않았던 그는 러시아를 벗어나지 않고 조용히 생을 마감했다. 동시대의 이론적 경쟁자이자 쏘비에뜨 구조주의와 문화론에 획기적인 자취를 남긴 로뜨만(Iu. Lotman) 역시 따르뚜 같은 북구의 변방에 머물며 일생을 보냈다. 능력있는 자라면 누구나 서구로, 서구로 망명을 떠나던 그 시절에 말이다.

우리에게 바흐찐이라는 이름은 90년대에 유입된 서구담론과 맞물려 있다. 바흐찐 하면 바로 떠오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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