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박민규 朴玟奎

1968년 출생. 장편소설 『지구영웅전설』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핑퐁』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소설집 『카스테라』 『더블』 등이 있음. kazuyajun@hanmail.net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 ex machina)

 

 

그날 아침엔 조깅을 했다.

 

신께서 내려오신 ‘그날’ 말이다. 여름휴가가 시작된 날이라 또렷이 기억한다. 마냥 늘어지게 늦잠을 잘 생각이었는데 웬걸, 평소보다 일찍 눈을 뜬 바람에 조깅을 나선 것이다. 보름 만의 조깅이었다. 연이은 출장에 심신이 녹았다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기분도 좋고 머리도 맑았다. 늘 뛰던 코스를 나는 달렸고 우연히 마주친 1410호와 잠시 인사를 나누고는 2킬로를 더 달렸다. 그리고 벤치에서 휴식을 취했다. 평소에도 늘 반환점으로 여기던 벤치였다. 나는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근처 어딘가에서 여름 냄새가 났는데 그런 건 하나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천변의 비릿한 풀냄새였을 수도 있고 아니면 내, 땀냄새였는지도 모른다. 살짝 입언저리가 가려웠던 건 헤르페스 때문인데 실은 몸이 피곤하다는 증거였다. 헤르페스는 좀처럼 낫지 않는다. 그만큼 삶도 피곤하다는 증거일 것이다. 멍하니 앉아 나는 달리는 노인들을 보았고 자전거를 타는 여자를 보았다. 그리고 또, 먼발치의 그물망 펜스 안에서 농구를 하는 십대들을 볼 수 있었다. 출근을 시작한 차들이 하나둘 도로를 지나고 있었고… 지저귀는 새소리를 들었다. 나는 하품을 했다. 두대의 푸드트럭이 주차된 후미진 곳에서 키 작은 아이들이 고양이를 죽이고 있었다.

 

깊이 생각한 건 아니지만

 

여전히 1410호의 이름이 기억나지 않았다. 같은 오피스텔에 살고 몇년 전 잠깐 만남을 가졌던 여자다. 두어번 잠자리를 같이하고 나서였나? 아무튼 결혼할 남자가 생겼다며… 어디 외국으로 간다고 했다. 그래, 축하한다는 인사를 건넨 것도 같고 고맙다는 답을 들은 것도 같다. 아마 그랬을 것이다. 입에 발린 말이라면 둘 다 일가견이 있었으니까.

 

언젠가부터 다시 얼굴을 볼 수 있었다. 말 그대로 오며 가며 마주친 것인데 그사이 나는 그녀의 이름을 까먹은 것이다. 묻지도 않았는데 이혼을 했고, 혼자 돌아왔으며, 다시 1410호에 사는데, 오피스텔을 처분하지 않고 세를 놓고 가길 잘했으며, 아이는 없고, 다시 보니 반갑다는 말을 그때그때 늘어놓았다. 그래그래 들어주기는 했다. 말을 하니까, 그래서 1410이란 호수를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그날 아침

 

그녀는 짧은 레깅스에 윈드점퍼 차림으로 개를 산책시키고 있었다. 무슨무슨 말끝에 언제 식사나 같이하자고 했다. 그러자고, 역시나 일가견이 있는 그녀가 답했다. 결국 이름은 떠오르지 않았지만… 그래, 중요한 얘기는 아닐 것이다. 어쨌거나 하품을 몇번 하고 나자 비로소 휴가,라는 사실이 실감났다. 폰을 열어 나는 페낭을 기점으로 꼭 가야 할 곳과 이동경로 등을 차근차근 점검하기 시작했다. 바로 다음날 항공기 예약이 되어 있었다. 말레이시아 페낭. 5박 6일의 일정. 자유여행. 와아, 소릴 지르며 아이들이 어디론가 뛰어갔다. 푸드트럭을 둘러친 천막에는 커다란 와플 사진이 붙어 있었고 나는 곧, 배가 고파졌다.

 

와플이 먹고 싶었다.

그리고 더

자고 싶었다.

빨리 내일이 오고

말레이시아로 가고 싶었다.

 

그리고 나는

걸어서 돌아왔다.

 

So much Fake News is being reported.

돌아오는 길엔 트윗을 받았는데

미국 대통령이 보낸 것이었다.

They don’t even try to get it right, or correct it when they are wrong.

연이어 트윗이 왔다.

그와 나는 트친이다.

 

와플, 같은 걸 사기 위해 곧바로 오피스텔 근처의 베이커리를 들렀는데 창가에 앉아 있는 1410호를 볼 수 있었다. 또 보네? 하는 식으로 그녀가 손을 살짝 들기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토스트를 주문했고 몇 테이블 떨어진 자리에서 혼자 아침을 먹고 일어섰다. 본격적으로 무더위가 시작된 날이었다. 이른 아침인데도 햇살의 농도가 달라 보였다. 태양을 관장하는 누군가가, 고가의 에스프레소 머신이라도 구입해 시험 삼아 햇살의 원두를 갈고 있는 느낌이었다. 걷는 것만으로도

 

나는 나른함을 느꼈고

방으로 올라와 곧장 잠에 들었다.

긴 잠은 아니지만

휴가를 얻은 회사원만이 들 수 있는

깊은 잠이었다.

 

신은 그사이에 내려오셨다.

 

잠에서 깨고, 샤워를 하고 나와서도 나는 그 사실을 몰랐다. 부재중 전화가 여러통, 또 갖가지… 폭주한 메시지의 숫자를 보고서도 별다른 확인을 하지 않았다. 머리를 말리고 속옷을 꺼내 입다가… 아예 가져갈 옷가지를 챙겨 캐리어를 꾸리기도 했다. 그러고도 좀 시간을 보냈는데 결국 상황을 접하게 된 것이다. ‘어떤’ 일이 났다는 걸 처음으로 알려준 건 여행사의 전화였다. ‘아시겠지만’으로 시작된 얘기의 결론은 모든 항공기의 이륙이 금지되었고… 때문에 환불 의사가 있는지를 묻는 것이었다.

 

왜요? 내가 묻자

왜라뇨? 그가 답했다.

 

통화가 끝나고 바로 사태를 파악했다. 너무 많은 메시지를 한번에 접했으므로 누구를 통해 아는 게 아닌, 그냥 알게 된 느낌이었다(물론 그 속에는 미대통령의 트윗도 있었다). 혼란 그 자체였다. 그리고 나는… 한동안 기억이 불분명한데… 정신을 차려보니 모니터를 켜고 방송에 의지하고 있었다. 뭐가 뭔지 그래도 가늠이 되지 않았다. 다만 확실한 것은, 그 순간 내가 T자형 끈팬티 차림에 양말만 신은 몰골이었다는 사실이다. 발목을 살짝 덮는

 

빨간 양말이었다. 무슨 일인지 모를 ‘어떤’ 일의 윤곽은 NASA의 공식 발표가 진행되면서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ISS(국제우주정거장)와 여러 인공위성들의 자료를 토대로 한 구체적인 성명이었다. 곧바로 이어진 브리핑에서 백악관 부대변인이 ‘신의 강림’이란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비로소 갈피를 못 잡던 뉴스들의 헤드라인이 결정되었다. 그렇다. 말 그대로 그날, 신께서, 이 땅에, 내려오신 것이었다. 어떤 징후도 없이 그분은 내려오셨고, 어떤 의상도 걸치지 않은 알몸이셨다. 한쪽 무릎을 세워 굽힌 자세로… 그래서 끈팬티의 압박을 느끼며 나는 ISS와 위성들이 촬영한 사진과 영상… 또 이를 시뮬레이션한 영상들의 반복을 끝까지 지켜보았다. 여전히 머릿속은 뒤죽박죽이었지만 다만 확실한 것은 신이 남자라는 사실이었다. 우주 공간엔 ‘나뭇잎’이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CNN의 앵커는 위트가 있는 사람이었다.

 

그날의 혼란을 일일이 열거할 순 없지만,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는 몇가지 이유가 있었다. 우주에서 촬영된 영상을 보지 않고선 도무지 상황 자체를 파악하기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인간의 형상 그대로 신은 지구 위에 우뚝 서 계셨다. 그러나 우러러볼 수 있는 존재는 아니었다. 과학자들이 추정한 신의 키는 대략 560만 피트(1700킬로미터)였고… 신체의 대부분은 대기권 밖의 우주 공간에 위치해 있었다. 다시 말해 지상에서는 뭐가 뭔지 파악조차 불가능했던 것이다. 인간적으로

 

그는 너무 거대했다.

 

출몰과정도 미스터리였다. 정말이지 암흑의 저 공간 어딘가에 기계장치가 있어 드르르

저자의 다른 글 더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