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1 | 한국문학의 오늘, 민족문학의 새로운 구도

 

도전과 기회 사이에서

최근 민족문학론의 쟁점과 과제

 

 

하정일 河晸一

문학평론가. 원광대 국문과 교수. 저서로 『20세기 한국문학과 근대성의 변증법』 등이 있고, 『창작과비평』 2001년 봄호에 평론 「새로운 출발점에 선 민족문학론」 발표. jungil@wonkw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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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자에 들어 민족문학(론)에 대한 논의가 점차 활발해지고 있는 듯하다. 백낙청(白樂晴)의 고군분투를 제외하면, 10여년 동안 민족문학(론)이 침체의 미로를 헤매어왔는데, 이제야 조금씩 길을 찾아가고 있구나 싶다. 민족문학적 관점에서 한국근대문학을 연구해온 필자의 입장에서는 반갑기 그지없는 일이다. 그러나 최근의 이런저런 논의들이 아직 분명한 방향을 잡지는 못했다는 점에서 지금이 여전히 모색기인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무언가 가능성은 보이지만 뚜렷한 대안을 내놓기는 어려운 모색기에 필요한 것은 섣부른 해답을 제시하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가 무엇이고 어떤 난관을 돌파해야 하는지를 정리하는 것이, 섣불리 해답을 제시했다가 다시금 나락으로 떨어지는 위험을 피하면서 민족문학론의 길 찾기에도 도움이 될 수 있는 의미있는 작업이라 하겠다.

그래서 민족문학론의 쟁점과 과제를 나름대로 정리하고 있던 터인데, 마침 『창작과비평』 올 가을호에 민족문학론에 관한 필자의 구상을 비판하는 김명환(金明煥)의 글이 실렸다. 김명환은 몇년 전에도 필자의 글을 비판한 적이 있기 때문에 남다른 관심을 가지고 그 글을 읽었다.1 필자가 민족문학론과 관련된 글을 쓰게 된 것은 90년대 들어 민족문학이 맞이한 일대 위기와 연계되어 있다. 이른바 ‘청산’과 ‘전향’이 속출하고 탈근대 담론의 도전이 날로 위세를 더하면서 필자 역시 여러모로 위기의식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과정에서 일차적으로는 이념적·학문적으로 흔들리는 필자 스스로를 다잡기 위한 자기점검 차원에서 민족문학론에 대한 글쓰기를 시작한 것이다. 따라서 민족문학론을 지지하는 동학(同學)의 조언을 받아 필자의 부족한 부분을 메울 수 있다면 그보다 좋은 일이 또 어디 있겠는가. 그런데 김명환의 글을 읽으면서 ‘이게 아닌데’라는 의구심이 피어오르는 것을 도저히 막을 수 없었다. 무엇보다 필자의 책을 성실하게 읽지 않은 흔적이 역력했고, 한국근대문학의 역사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으며, 민족문학론에 대한 인식이 일면적이었다. 성실한 독서는 비판의 윤리에 관한 문제니까 논외로 치더라도 뒤의 두 문제는 민족문학론의 길 찾기와도 밀접히 연관되어 있어 그냥 지나치기 힘들었다. 더구나 그것들은 민족문학론의 쟁점과 과제에 직결된 공안(公案)이기도 하다. 그래서 필자는 김명환의 비판을 반박하면서 그를 통해 민족문학론의 쟁점과 과제를 정리해보는 방식으로 논의를 진행하고자 한다. 새로운 이야기는 못하더라도 쟁점과 과제만이라도 명확히할 수 있다면 그 나름으로 민족문학론의 발전에 무언가 보탬이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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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환의 비판은 주로 분단체제론에 대한 필자의 견해에 집중되어 있다. 김명환은 필자의 민족문학론이 분단문제를 “여러 항목 중의 하나”로만 다룸으로써 “분단극복을 중심과제로 설정”해온 기왕의 민족문학론에서 이탈했다고 혹평한다(1996, 298면). 또한 그는 분단체제론에 분단 이후에 대한 구상이 불분명하다는 필자의 평가에 대해 “분단 이후의 체제에 대해서 미리부터 무슨 그림을 그려놓을 수 없다는 것은 명약관화”(2001, 223면)하다고 단정하며, 계급문제가 상대적으로 소홀히 다루어지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정치한 비판적 분석”이 부족하다고 비판한다(2001, 224면).

김명환의 비판을 접하면서 느낀 첫번째 소감은 분단체제론에 대한 완강한 집착이었다. 완전무결한 이론이란 없는 법이다. 더구나 분단체제론은 지금도 ‘형성’중인 이론 아닌가. 분단체제론에 대한 이런저런 지적에 좀더 유연하고 개방적으로 응대하는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따지고 보면, 필자 역시 분단체제론 지지파이다. 하지만 김명환 식의 옹호와는 좀 맥락이 다르다. 필자가 최근 80년대의 문헌들을 검토하면서 재확인한 중요한 사항 가운데 하나는 80년대 중반 사회구성체 논쟁이 이후 민족문학의 향방과 관련해 결정적인 고비였다는 사실이다.

1980년을 전후해 민족문학론은 민족주의를 내부로부터 극복하려는 노력을 조심스럽게 진행하고 있었다. 발단은 제3세계론이었는데, 제3세계론의 수용과 재구성 과정에서 ‘전지구적 전망’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일국중심의 민족주의적 관점에 대한 자기반성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민족주의를 좀더 객관적이고도 비판적으로 바라보려는, 즉 민족주의를 역사화하려는 다양한 작업이 벌어졌다. 가령 역사학계에서는 민중적 민족주의론이 등장했고, 문학 쪽에서는 제3세계문학론이 그러한 역할을 했으며, 『민족주의란 무엇인가』(창작과비평사 1981)를 비롯한 번역서도 활발히 간행되었다. 이를 보더라도 민족문학이 민족주의의 포로라는 항간의 비난이 얼마나 터무니없는가가 다시 한번 증명되거니와 그 당시 중심적 역할을 한 인물이 바로 백낙청이었다. 그러나 사회구성체 논쟁으로 상황은 달라진다. 1985년 『창작과비평』 57호에서 벌어진 박현채와 이대근의 논쟁을 계기로 국가독점자본주의론 대 주변부자본주의론의 이론투쟁이 격화되었고, 대세는 국가독점자본주의론(정확히 말하면, 신식민지 국가독점자본주의론)의 압도적 우세로 나아갔다. 그러면서 제3세계론─종속이론─주변부자본주의론으로 이어지던 70년대 후반 이래의 흐름이 꺾이게 된다. 이후 논쟁은 신식민지 국가독점자본주의론(약칭 신식국독자론)과 식민지 (반)자본주의론(약칭 식반자론) 사이에서 주로 벌어지는데, 주변부자본주의론(약칭 주자론)은 식반자론의 변종쯤으로 취급당하고 말았던 것이다. 신식국독자론으로부터 노동자계급문예론이나 노동해방문학론이, 식반자론으로부터 민족해방문학론과 주체문예론이 나왔음은 잘 알려진 일이다.

80년대를 되돌아볼 때, 주자론이 변방으로 내몰리지 않았다면 민족문학(론)의 방향도 달라졌을 가능성이 크다. 그랬다면 90년대 민족문학의 상황도 달랐을지 모른다. 90년대 민족문학의 침체가 자본주의의 ‘전지구화’에 대한 무기력한 대응에서 비롯된 바 크기 때문이다. 80년대의 통념과는 반대로, 주자론은 식반자론의 변종이 결코 아니다. 뿐만 아니라 신식국독자론과 식반자론이 그렇게 대립적인 관계도 아닌데, 두 가지 이유에서 그렇다. 하나는 신식국독자론과 식반자론이 똑같이 일국주의적 전망에 사로잡혔다는 점이며, 다른 하나는 양자가 모두 식민성과 신식민성의 관계에 대해 착종된 인식을 했다는 점이다. 신식국독자론이나 식반자론 공히 레닌의 『제국주의론』을 출발점으로 삼고 있었음에도, 정작 『제국주의론』 특유의 ‘전지구적 전망’은 받아들이지 못한 채 일국 중심의 사고에만 맴돌았다. 그와 더불어 식민성과 신식민성 간의 연속성과 불연속성에 대해서도 올바른 관점을 세우지 못했다. 가령 신식국독자론은 ‘지배’라는 연속성

  1. 대상이 되는 김명환의 글은 「민중문학의 길 다지기를 위하여」(『창작과비평』 1996년 여름호)와 「90년대문학 성찰의 좌표를 찾아서」(『창작과비평』 2001년 가을호) 두 편이다. 본문에서는 연도와 면수만 밝히기로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