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

 

돌봄의 상상력과 평등의 꼬뮌

강지혜 이근화 김선우 시를 중심으로

 

 

장은영 長恩暎

1975년 서울 출생. 2014년 세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평론집 『슬픔의 연대와 비평의 몫』 등이 있음.

pome01@hanmail.net

 

 

돌봄위기와 문학

 

통계와 수치로 고조되었던 코로나 시대의 수사학은 일순 달아올랐다가 급격히 힘이 빠진 듯하다. 팬데믹의 종식이 모든 위기를 해소하리라 단정 짓거나 팬데믹에 따른 위험을 개인이 책임져야 할 일상적 재난으로 떠넘기는 무책임을 경계하는 지혜가 필요한 때다. 무엇보다 한 의료인류학자의 말처럼 “코로나19라고 명명된 존재의 고유한 특성에 의해 현재의 위기가 결정되어 있지 않다”는 앎이 중요한데, 그 이유는 “우리가 이 새로운 존재의 도래를 (…) 어떻게 언어화하는지, 또 어떻게 다루는지에 따라서 이것이 무엇인지가 달라지며, 그에 따른 대응 역시 달라”1질 수 있기 때문이다. 팬데믹 시대의 고통을, 다시 말해 누가 어떤 고통에 처했는가에 주목하는 일군의 학자들과 활동가들이 지금 드러난 삶의 위기를 기존의 시스템을 전환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이런 맥락에 있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확산되고 있는 돌봄, 기후정의, 생태, 탈성장론 같은 키워드의 부상 역시 팬데믹에 대한 성찰이 자본주의체제의 위기에 대한 근본적 반성과 대안 모색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방증한다.

문학도 돌봄위기나 기후위기에 대한 관심을 드러내며 문학적 상상력을 확장해나가고 있다. 하지만 사회 담론을 그대로 재생산하는 역할이 예술 장르로서의 문학에 요청되는 바는 아니기에 문학은 문학 나름의 고민을 넓히며 돌파구를 찾아나가는 중이다. 그런데 돌봄을 다루는 문학은 돌봄위기에 대한 사회정치학적 대응과 대안이 문학에 그대로 기입되는 것을 경계해야 하는 한편, 문학이 “사회적인 유용성이나 실천적 가치를 자신의 내부에서 배제함으로써 자기를 다른 기술과 구별하고, 그 자체로 존립하는 영역으로 자율화한”2 근대적 예술의 소산으로 남는 것 역시 지양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돌봄의 가치와 문학의 연결 지점을 탐색한 한 비평가는 현실과 예술의 접점을 조심스럽게 짚으면서 현재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우리 시가 지향할 마음가짐이란 미래의 존재와 연결된 삶의 자세여야 한다고 제안한 바 있다.3 문학이 할 수 있는 일이 삶의 연결망을 상상하고 돌봄의 가치를 확장하는 것이라는 비평적 발언 이면에는 돌봄이라는 화두가 정형화된 주제에 머물러선 안 된다는 우려도 있지만, 돌봄의 상상력이 필요한 근본적 이유는 돌봄이 지속될 수 있는 대안적 관계성을 발견하고 다양한 형태의 연결망을 사유해보는 데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돌봄위기에 대한 대안을 찾는 단체 ‘더 케어 컬렉티브’는 돌봄이 혈연적 가족을 넘어서서 우리와 타자를 구분 짓는 배타적인 경계를 해체할 때, 서로 돌보는 관계의 연결망이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마저도 넘어서려는 운동성을 지니게 된다는 가능성을 시사했다.4 문학의 영역에서 돌봄을 화두로 삼을 때 필요한 전제도 돌봄의 확장성과 운동성에 관한 상상력일 것이다. 이 글에서는 강지혜 이근화 김선우의 시를 중심으로 돌봄위기를 포착하고 서로 돌보는 관계의 연결망을 넓히려는 상상력을 살펴보려고 한다. 세 시인들이 보여주는 서로 다른 층위의 발화와 상상력을 관통하는 것은, 생명의 취약성을 직접 목격하며 말 그대로 “운 좋게 오늘까지 살아 있”는 것을 요행으로 여겨야 하는 팬데믹 시대 삶과 생명의 취약성이다. “아주 조금씩 움직인다”(강지혜 「민달팽이」, 『이건 우리만의 비밀이지?』, 민음사 2022)는 믿음을 잃지 않는 동시에, 자멸하지 않는 생명의 품위를 소중히 지키면서 돌봄위기를 견디는 시적 상상력은 삶을 지지하는 사유 공간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가 서로의 삶을 지지하는 존재라는 믿음이 필요하다면 바로 그곳이 돌봄의 상상력이 요청되는 자리일지도 모른다.

 

 

마더링을 전유하기

 

강지혜는 두번째 시집 『이건 우리만의 비밀이지?』에서 출산·육아·가사와 같은 재생산노동에 주목한다. 가정에서 재생산노동을 담당하는 여성 주체의 경험을 드러내는 시적 발화는 근대 핵가족에 기반한 가족제도가 직면한 재생산노동의 모순과 위기를 긴장감 있게 그려낸다. 특히 불안과 긴장이 고조되는 지점은 육아의 경험을 다룬 마더링(mothering)의 영역이다. 근대 이후 가족이데올로기는 마더링을 본능적이고 자연적인 여성의 의무로 간주하며 모성을 제도화해왔다. 제도로서의 모성을 비판하는 에이드리언 리치(Adrienne Rich)는 가정과 공적 영역은 분리되어 있으며 여성은 어머니 역할에 전념해야 한다는 식의 19세기, 20세기의 이상이 가정을 고립시키고 여성을 공적 영역에서 배제했다고 비판했다. 뿐만 아니라 가부장적 이데올로기는 여성이 어머니의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경우에는 여성으로서의 지위 자체를 위협하며 여성을 통제해왔다.5 이와 같은 제2세대 페미니즘의 문제의식은 안타깝게도 지금까지 유효하다. 경제활동 등의 이유로 출산한 여성이 직접 육아를 할 수 없는 경우에도 마더링의 총책임은 어머니에게 맡겨지고 가정은 외부와 단절된 돌봄의 유일한 장소로 여겨진다. 마더링에 대한 강지혜의 시적 발화가 강렬한 파열음을 내는 이유는 가부장적 질서 아래 제도화된 모성을 비판하고 거부하는 데서 비롯하지만, 여기서 한걸음 더 내딛는 강지혜의 시는 육아의 경험을 드러내며 마더링의 관습적 의미를 해체하고 돌봄의 장소인 가정을 균열시키는 데 집중한다. 집이 “매 시 매 분 매 초마다 좌절”(「신혼」)을 맛보는 장소이자 결코 화해하지 못하는 감정들이 “끓고 있”(「행주를 삶는다」)는 곳이며 “극악무도”하고 “자비가 없는” “가장 위험한 곳”(「가정」)으로 그려지는 이유는 집이 돌봄을 위해 고립된 가정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육아 일지」 연작에서 나타나듯이 출산 후 화자는 “사랑의 시작이며 저주의 처음인/육아”(「육아 일지—소금밭」)를 수행하는 육체의 감각에 집중한다. 생명의 탄생이라는 환희에 가려진 출산의 고통을 흔쾌히 삼키지 못하는 화자가 포착하는 것은 자신의 육체로 감각되고 그후엔 마음으로 이어지는 마더링의 고통이다.

 

생살을 찢고 나왔으니

나와 너

우리의 고향은 차가운 칼이다

 

(…)

 

외로운 수술대 위에서

하나였던 인간이 둘이 되었고

다시 눈을 떴을 때

 

너는 형벌처럼 나타났다

 

떨림을 멈출 수 없었다

 

너를 살리는 것은 나의 벌

 

나를 살리는 것은 너의 죄

—「제왕절개」 부분

 

오열하는 오른 가슴을 퍽퍽 내리치며

왼 가슴으로 너에게 젖을 물리는

달빛조차 없는 밤

 

너의 목덜미에

잔인하고 거룩한 송곳니를 내리꽂지

 

나는 뱀파이어야

네 피를 마시며

이 고통을 견뎌 낼 거야

 

나는 갈증으로 죽고

네 피로 되살아난다

너는 허기로 나를 먹고

나에게 네 피를 준다

 

(…)

 

너를 죽이고 너를 살리며

너를 먹이고 너를 죽이며

나의 어머니와 나에게서 나와 내 딸에게로 전해지는

저주받은 영생

—「뱀파이어」 부분

 

출산이 몸에 일으키

  1. 서보경 「서둘러 떠나지 않는다면: 코로나19와 아직 도래하지 않은 돌봄의 생명정치」, 『문학과사회 하이픈』 2020년 가을호 25면.
  2. 오타베 다네히사 『예술의 조건』, 신나경 옮김, 돌베개 2012, 41면.
  3. 송종원 「돌봄은 어떻게 문학이 되는가」, 『창작과비평』 2022년 여름호 17~38면 참조.
  4. 더 케어 컬렉티브 『돌봄 선언』, 정소영 옮김, 니케북스 2021, 79~80면 참조.
  5. 에이드리언 리치 『더이상 어머니는 없다』, 김인성 옮김, 평민사 1995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