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장류진 張琉珍
1986년생. 2018년 창비신인소설상으로 등단.
소설집 『일의 기쁨과 슬픔』, 장편소설 『달까지 가자』 등이 있음.
jace.ryujin@gmail.com
동계올림픽
이번 연휴에는 사정이 있어 집에 못 간다고 미리 말을 해두었는데도 설 당일 엄마와 아빠로부터 번갈아 전화가 걸려왔다. 휴대폰 화면 위에 초록색 통화 버튼과 빨간색 거절 버튼이 나타났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 빨간 쪽을 누른 다음 보고 있던 지도 화면을 다시 들여다봤다. 이상하다, 분명 이 근처 어디라고 했는데.
새벽 어스름부터 골목길을 헤매고 다닌 지 벌써 한시간째였다.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가만히 서 있으면 한기가 몸속으로 더 강하게 파고들었기 때문에 어디로든 일단은 발을 부지런히 움직여 걷는 편이 나았다. 휴일이라 그런지, 날이 추워 그런지, 아니면 너무 이른 새벽이라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거리에 사람이라고는 그림자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골목길 끝에서 누군가가 보험사를 부르는 낙담 가득한 목소리만 어렴풋이 들려왔다. 강추위에 승용차 배터리가 방전된 모양이었다. 매서운 칼바람을 막아보려 목도리를 코끝까지 동여맸더니 입김이 올라와 속눈썹이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이미 곱아버린 손을 다시 겉옷 주머니 깊숙이 찔러넣고 꼼지락거렸다.
역대급 한파가 덮쳤다고 했다. 서울의 수은주가 영하 20도 아래로 내려간 건 기상관측 이래 여섯번밖에 되지 않는다는데 하필 오늘이 그중 하루였다. 민족대명절인 음력 설날이자, 캘거리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스피드스케이팅’ 종목 남자 1000미터 결승 경기가 있는 날. 나는 오늘 쇼트트랙 국가대표 백현호 선수의 집에 방문해 가족들이 중계방송을 보며 응원하는 모습과 인터뷰를 영상으로 담아 1분 남짓의 리포트 기사를 만들어야 했다. 지난 석달간의 인턴기자 생활을 마무리하는 마지막 과제였고, 완성된 리포트의 퀄리티에 따라 정기자로 전환될 수 있는 임원 면접 자격이 주어지거나 주어지지 않는다고 했다.
좀 의문이었던 건, 내가 인턴으로 일하고 있는 곳에 자체 뉴스 프로그램이 있기는 하지만 지역 민영방송국이라 아무래도 현장에서는 지역 뉴스를 주로 제작해왔고 인턴기자로서의 취재실습 역시 대부분 지역 현안을 다뤄왔기 때문이었다. 규모가 크지 않은 방송국이어서 스포츠 쪽은 사내에 부서도 따로 없던 터라 다소 뜬금없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하라면 해야지 별수는 없었다. 인턴들을 교육하고 관리하는 사회부 팀장으로부터 실습 최종과제가 올림픽 관련 취재라는 것을 전달받던 날, 나를 포함한 인턴 셋이 의아해하는 표정을 숨기지 못하자 그 의중을 읽기라도 한 듯 팀장은 우리는 종합뉴스를 지향하는데다 올림픽에는 지역이 따로 없고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보고 응원하는 게 올림픽인데 당연히 취재해야 하는 영역이라고 덧붙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괜찮았다. 마음이 지금처럼, 그러니까 언 강을 지나 한기를 잔뜩 머금고 온 칼바람 앞 한개비 성냥불처럼 불안하지는 않았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사실 인턴 셋 중 한명은 방송국 대주주인 모기업 회장과 집안끼리 모종의 연이 있다는 게 공공연히 알려져 있어 채용이 되리라는 걸 처음부터 어렴풋이 예감하고는 있었다. 미지수인 건 나를 포함한 나머지 둘의 명운이었다. 결국 처음부터 점찍어둔 그 한명을 눈치껏 뽑기 위한 말막음용 페이스메이커였을 뿐인지, 그게 아니라면 내게도 가망이 있는 것인지 윗선의 의중을 알 수는 없었다. 적어도 둘 중 하나는 뽑을 생각이 있고 그래서 이번 마지막 리포트 과제를 통해 저울질해보는 것이라 믿는 것이 내가 가질 수 있는 가장 긍정적인 마음이었다. 그런데,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 둘 중 하나가 어쩌면 내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번뜩 든 건 다른 인턴들에게는 각각 서울역, 강남고속버스터미널 시민 반응 취재가 맡겨졌는데 나만 생뚱맞게 선수 자택 취재를 과제로 받았기 때문이었다.
그게 내가 새벽부터 추위에 떨며 다세대주택이 밀집해 있는 목동의 골목길을 헤매고 있는 이유였다. 팀장이 빙상연맹을 통해 어렵게 구했다며 전해준 주소는 아무래도 뭔가 잘못된 것 같았다. 도로명주소와 건물번호가 서로 섞였나 싶어 반대로 바꿔보기도 했지만 어떤 조합으로도 존재하지 않는 주소일 뿐이었다. 백현호 선수가 처음 스케이트를 배우기 시작했다는 아이스링크, 그리고 졸업했다는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보면 분명 이 동네가 맞긴 맞는 것 같은데…… 길에 누구라도 있으면 붙잡고 물어보기라도 할 텐데 한파특보가 내려진 공휴일 새벽에 사람을 마주치기란 쉽지 않았다.
엇비슷한 건물들 사이를 뱅뱅 돌며 기웃거리기만 하다보니 조바심이 났다. 며칠 전 예선을 마친 쇼트트랙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1000미터 종목은 아침 일곱시부터 준준결승 경기가, 뒤이어 준결승과 결승 경기가 열릴 예정이었다. 적어도 여섯시에는 도착해야 스케치도 미리 찍어두고 인터뷰도 여유있게 딸 수 있을 것 같은데…… 게다가 여태껏 취재실습만 해왔고 촬영용 캠코더는 어제 처음 지급받은 것이어서 잘 다룰 수 있을는지도 걱정이었다. 걱정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백현호 선수의 집을 무사히 찾는다고 해도, 과연 취재할 수 있을지도 확실치 않았다. 내가 가지고 있는 정보는 잘못된 주소 한줄뿐 취재원의 연락처조차 없었고, 정식으로 취재 허락을 받은 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휴대폰을 다시 꺼내 시계를 봤다. 벌써 다섯시 반. 큰일이다. 급한 마음에 발걸음을 더 빨리하려던 그때, 가로로 늘어진 전깃줄이 시계 방향으로 기우뚱 돌아갔고, 동시에 발이 허공에 뜨는 것이 고스란히 느껴졌고, 이내 쿵, 하는 소리가 났다. 일찰나의 고통에 그야말로 눈앞이 번쩍이는 것만 같았다. 엉덩이에서 시작된 저릿한 통증이 온몸에 퍼지고 있었다. 얼마 전 내린 눈으로 군데군데 아직 얼음이 남아 있어 미끄러진 거였다. 젖은 엉덩이를 붙잡고 통증이 얼른 지나가길 바라며 견디고 있는데 겉옷 주머니에서 난데없이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넘어지면서 통화 버튼이 눌려 때마침 걸려온 전화가 받아진 모양이었다. 일단 엉덩이를 털고 일어나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받았다. 또 아빠였다.
“니 안 내리온다꼬?”
“어. 말했잖아.”
“와? 뭐 한다꼬 안 오는데?”
“인턴 하는 거 때문에 취재해야 돼서 못 간다 했잖아.”
“아, 맞나.”
아빠가 다시 말을 이었다.
“근데 니, 느그 엄마 핸드폰 사주기로 했나?”
그건 또 어떻게 알았지? 뭘 잘못한 것도 아닌데 추궁하듯 묻자 괜히 당황스러웠다.
“어, 그게…… 메인보드 문제라 고치는 돈보다 다시 사는 게……”
“뭐 사주노?”
내가 미처 대답도 하기 전에 아빠가 다시 이어 말했다.
“느그 엄만 좋은 거 필요없데이.”
별생각 없이 그냥 흘려보냈는데 나중에 시간이 지난 뒤 바로 이 한마디가 내 마음속에 깊고 뚜렷한 상처를 남겼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아빠의 숨은 의중을 똑바로 읽어내는 데만 몰두해 있었다. 나는 이렇게 답했다.
“아빠도 뭐 필요한 거 있으면 말하고요.”
“내는 요즘 양주 묵거든.”
양주? 천만 뜻밖의 단어에 당황하고 있는데 한층 더 톤이 높아진 아빠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발렌타인 삼십년산이 그래 좋다카대.”
이건 또 무슨 소린지 알 수가 없었다.
“발렌타인…… 삼십년? 그거 사달라고요?”
“아니, 사달라는 건 아니고. 마, 근데 사주면 좋지.”
“뭔지 한번 알아볼게요.”
“그래.”
전화가 뚝 끊겼다. 취직하면 첫 월급은 무조건 부모님께 고스란히 드려야 한다는 이야기를 어릴 때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서, 얼마 전 인턴 첫 월급을 받은 그대로 전부 다 송금했더니 내가 정말로 큰돈을 벌고 있는 줄로 아는 것 같았다. 휴대폰을 들고 있던 손이 너무 시려 얼른 주머니에 넣었는데 넣자마자 진동이 다시 울려대기 시작했다. 이번엔 엄마였다. 내키지 않았지만 전화를 받았다. 엄마 역시 전화를 받자마자 인사도 없이 다짜고짜 질문부터 했다.
“어, 선진아. 니 취직한 데가 어데라 했지? 와이티엔이라 캤나?”
나도 모르게 한숨을 한번 내쉬고 대답했다.
“아니라니까요.”
“잘 안 듣기네? 와이티엔 맞제?”
“아직 취직한 것도 아니고, 와이티엔도 아니라고.”
나는 주위를 살핀 다음 수화구 쪽을 반대편 손으로 감싼 다음 목소리를 조금 낮추고 이미 여러번 했던 말을 또다시 반복했다.
“와이티엔이 아니라 와이비씨고…… 아직은 인턴이라 했잖아요, 인턴. 어떻게 될지 모른다니까.”
“아, 맞나. 잠깐만.”
몇초 뒤, 이번엔 갑자기 둘째 작은엄마였다.
“선진이가? 서울서 일하느라 내리오지도 몬하고 억수 고생이 많디.”
“아니에요.”
“니 와이티엔 들어가가 기자 한다고 느그 엄마 억수 자랑하대.”
“아니, 그게요, 와이……”
“느그 짝은아빠도 와이티엔 밤낮 틀어놓고 본다 아이가. 지금은 좀 그래 됐지만서도 니 쬐맨할 때는 억수로 새첩게 생깄었다 안 하나. 낸중에 다시 살 빼가 앵커도 하고 그라믄 을매나 좋겠노, 그쟈? 집안에 경사지 경사.”
“네?”
“마, 잘 지내고. 추석 땐 꼭 온나. 들어가래이.”
“니 우째 살은 쫌 뺐나.”
둘째 작은엄마의 인사에 대답도 안 했는데 이번엔 다시 엄마였다.
“뺄 거다. 내 알아서 할게요.”
“우짜노, 진짜. 니가 옛날에는 내를 닮아갖고 빼빼했거든. 우짜다가 그리 됐는가 모르겠다. 우리 집안에 통통한 사람은 우야다 있어도 뚱뚱한 사람은 없었거든, 진짜로.”
나는 필사적으로 화제를 돌려야만 했다.
“근데 아빠가 뭔 바람인지 양주를 사달라 하는데……”
“뭐? 니한테도 그 소리 했나?”
“갑자기 발렌타인데이 삼십년인가? 그게 마시고 싶다고……”
“돌았는갑다.”
“그게 뭔데?”
“됐다, 마. 요즘 여 앞바다에 수억짜리 요트 타는 외지에서 온 미친갱이들 천지다. 가게 일도 제끼고 거 가가 좋다고 홀짝홀짝 얻어 처먹고 마 지랄하고 자빠짔다니까. 노망났는갑다. 미쳤는갑다.”
쏘아붙이듯 엄마가 계속 말했다.
“발렌타인 삼십년 같은 소리 하고 앉아 있네. 박통도 십칠년짜리 묵다가 가싰다는데. 마, 느그 아빠 뭐라고 삼십년짜리 묵노? 절대 사지 마래이. 그럴 돈 있으면 계좌로 입금을 해도. 지난 번처럼.”
이번에는 조금 가라앉은 목소리로 엄마가 다시 말을 이었다.
“아 참, 그리고 우진이 겨울방학 숙제 말이다.”
“독서기록장? 그거 내가 며칠 전에 메일 보냈는데.”
“아까 들어보니까네. 뭐가 세갠데 하나밖에 안 해줬다 뭐라 뭐라 카대.”
“전부 다 해달라는 거였나? 내가 쓴 거 보고 그런 식으로 응용해가지고 나머지도 비슷하게 쓰면 될 건데.”
“마, 그걸 할 줄 아는 아면 내가 해돌라 하나. 니는 진짜……”
반사적으로 어깨가 움찔거렸다. 이미 잘 알고 있는 어떤 흐름이 시작되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그게 우진이 입시랑 직결된 거라 중요하다 안 했나. 니는 왜 만날 니 기준에서만 생각을 하는데? 뭐, 뭐, 다 니처럼 그래 잘나고 똑똑한 줄 아나.”
사실 나는 전혀 잘나지 않았다. 똑똑하지도 않았다. 난 그걸 이미 잘 알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보다 똑똑하거나 잘나지 않은 게 살면서 늘 걸림돌이 되어왔기 때문이었다. 나한테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은 내 가족밖에 없었다. 가족들이 말하는 그런 사람, 똑똑하고 잘난 사람이 차라리 너무나 되고 싶을 뿐이었다.
“주말에 써서 개학하기 전까진 꼭 보낼게요.”
“알았다.”
이 말을 끝으로 두번의 짧은 통화가 끝났다. 입에서 새하얀 입김이 나오는 걸 눈으로 보고서야 내가 한숨을 깊게 내쉬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아직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벌써 허기가 졌고, 그 사실이 갑자기 견딜 수 없을 만큼 싫어졌다. 이렇게 중요한 일을 앞두고서 왜 배도 고프고, 요의도 밀려오고, 심지어는 이 와중에 잠까지 오려 하는지…… 내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전날 잠을 한숨도 못 자기는 했다. 쇼트트랙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어 전날 검색하고 공부하느라 밤을 새웠고 늦지 않으려 새벽 첫차 시간에 맞춰 나왔기 때문이었다. 백현호, 그 이름 석자를 검색하자 최근 기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백현호 선수는 동계올림픽 남자 쇼트트랙 국가대표팀의 막내로, 이번이 올림픽 첫 출전이라고 했다. 몇해 전 중학생 신분으로 주니어 세계선수권대회 1000미터 금메달과 3000미터 계주 금메달을 동시에 목에 걸면서 국제무대에 화려하게 등장했고 현재는 대표팀에서 중장거리로 가장 주목을 받는 선수였다. 지난 세계선수권대회, 사대륙선수권대회에서 모두 1000미터 금메달을 차지한데다 사대륙선수권 1500미터에서는 다른 나라 선수의 노골적인 진로 방해로 넘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달려 동메달을 획득했다. 그리고 마침내 이번 시즌 쇼트트랙 스피드스케이팅 월드컵에서는 1000미터, 1500미터 금메달을 휩쓸며 개인종합우승을 차지하기까지 했으니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독차지할 수밖에 없었다. 첫 올림픽임에도 불구하고 동계올림픽의 기대주로 부상한 대한민국 쇼트트랙의 미래, 대한민국 빙상의 미래. 그것이 백현호 선수의 단골 수식어였다.
백현호 선수의 생년을 보지 않았다면 이런 생각까지는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냥 뛰어난 운동선수구나, 쇼트트랙 세계 톱이구나, 하는 생각까지만 했을 것이다. 하지만 포털사이트 프로필에 적혀 있는 그의 나이가 너무 어리다보니 조금 이상한 기분이 드는 게 사실이었다. 나는 부러웠다. 일곱살에 우연히 집 근처 스케이트장에서 스케이트를 접하고, 특별한 적성을 발견하고, 온 가족의 응원을 받으며 이미 타고난 소질을 더 빛나고 귀하게 갈고닦고, 또래들이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해 진로를 고민하는 나이에 이미 자신의 분야에서 세계 정상의 자리에까지 오른 사람이. 상념에 잠겨 하염없이 걷다보니 저 멀리 주차되어 있는 은색 승용차 한대가 눈에 들어왔다. 얼핏 평범해 보이는 그 승용차를 무심코 시야에서 흘려보냈다가 눈에 뭔가가 띄어 곧바로 다시 뒤돌아봤다. 차 문짝에 낯익은 로고, KBS라고 쓰인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분명 이 근처겠구나. 반가운 마음에 순간 추위도 잊고 한달음에 그쪽으로 달려갔다. 골목을 꺾자 한 건물의 담벼락을 따라 주요 방송사 로고스티커를 부착한 차들이 주차금지라는 팻말이 무색하게 빽빽이 주차되어 있었다. 그제야 안심이 되었다. 적갈색 벽돌로 된 4층짜리 낡은 다세대주택 건물 앞이었다. 때마침 열린 1층 출입구로 까만색 롱패딩 점퍼를 입은 사람이 삼각대를 들고 올라가는 뒷모습이 보였다. 저 사람만 따라가면 되겠다. 나는 놓칠세라 잽싸게 그 뒤를 쫓았다. 건물 입구에 발을 들여놓았을 뿐인데 1층에서부터 벌써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려왔다. 한층, 한층, 계단을 올라갈수록 흘러나오는 소리가 점점 커졌다.
*
백현호 선수의 집은 건물의 맨 꼭대기 층인 4층에 자리하고 있었고, 호수는 따로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대문이 활짝 열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열린 문으로부터 왜인지 열기와, 어쩐지 구수하고 맛있는 냄새가 은은하게 퍼져 나왔다. 반폭 남짓밖에 되지 않는 현관에는 신발이 정신없이 늘어져 있었다. 아니, 그건 늘어져 있다기보다는 쌓여 있다고 표현해도 이상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