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김혜진 金惠珍

1983년 대구 출생. 201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소설집 『어비』, 장편소설 『중앙역』 『딸에 대하여』 등이 있음. suspens77@naver.com

 

 

 

동네 사람

 

 

너는 잠시 차를 세우고 베이커리에 들를 생각이었다고 한다.

시장 앞은 차와 사람들로 붐비고 그래서 한동안은 주차할 곳이 마땅치 않았다고 한다. 한참 만에 자리가 났고 아슬아슬하게 후진과 전진을 반복하고 있을 때 차체에 뭔가 부딪히며 와르르 쏟아지는 소리가 났다고 말한다.

폐지 줍는 할머니 알지? 왜, 깡통이랑 병이랑 끌고 다니는 할머니.

나는 알고 있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인다. 커다란 가방 서너개를 들고 늘 동네 골목 어딘가에 주저앉아 있던 노인의 모습이 곧장 떠오른다. 우리가 처음 이사 왔을 무렵엔 비닐봉지 몇개가 전부였다. 그러다 언젠가부터는 커다란 배낭을 메고 혼자서는 들지도 못하는 여행가방을 자루처럼 끌고 다니는 모습을 자주 봤다.

할머니를 친 거야?

아니, 내려서 보니까 할머니가 아니고 개였어. 할머니가 데리고 다니는 개 있잖아.

너는 할머니가 데리고 다니는 개 이야기를 한다. 다리가 짧고 털이 많은 개. 언젠가 우리가 동네 치킨집에서 맥주를 마시고 있을 때 그 노인이 개를 데리고 들어왔다. 주인이 생맥주 두잔을 소리 나게 내려놓고는 재빨리 출입문 쪽으로 다가갔다. 노인은 천원짜리 한장을 내밀며 치킨을 달라고 요구했다. 주저하거나 미안한 기색은 없었다. 주인이 거의 내쫓듯 노인을 몰아붙이고 승강이가 이어지는 동안 작은 몸이 공중에 뜰 정도로 맹렬히 짖던 개의 모습이 생각난다.

개가 다쳤어?

아니, 그런가 해서 봤는데 아니더라고. 할머니가 폐품 쌓아놨잖아. 거기 앞에. 그게 쏟아진 거였어. 개는 멀쩡해. 잘 걷더라고. 다행이지?

너는 노인을 따라 노인의 집까지 갔었다고 말한다. 베이커리 뒤편 골목 안쪽에 노인의 집이 있다고 알려준다. 오래된 한옥이지만 마당도 있고 집 안이 꽤 넓은 편이었다고 말할 땐 몰랐지, 하는 표정으로 눈을 크게 뜬다.

집이 있어? 의외네. 근데 왜 만날 길에 나와 있대?

몰라. 그건 안 물어봤어.

너는 개의 상태를 꼼꼼하게 살피고 몇번이고 동물병원에 가려고 했다고 말한다. 노인에게 다친 곳이 있느냐고 묻고 병원에 데려가려고 했다고도 한다. 그리고 그 모든 제안을 뿌리친 노인에게 오만원을 건넸다고 털어놓는다.

오만원은 왜?

그냥 청심환이라도 사드시라고 했어.

상의 없인 차를 쓰지 말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온다. 기름을 넣고, 수리를 하고, 보험비와 과태료, 세금을 내는 일까지. 모든 비용을 내가 지불하는데도 너는 그것에 대해 아무 생각이 없는 것 같다. 네 명의로 된 차니까 네 마음대로 해도 된다고 여기는 것 같다. 차를 갖고 나가기만 하면 이런 문제들을 안고 돌아오는 네가 제일 먼저 사과해야 할 사람이 나라는 생각은 해본 적 없는 것 같다. 그럼에도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만다. 네 이야기를 듣는 동안 비로소 긴장이 풀어지고 기운이 다 빠져나간 것 같다. 나는 남은 오렌지케이크 조각을 한입에 다 털어넣고 말한다.

그래. 잘했네. 놀랐겠다.

주말이 되고 일요일 오후에 우리는 집을 나선다. 나들이 나온 사람들로 동네가 북적거린다. 인도는 좁고 울퉁불퉁해서 다들 걸음이 느리다. 우리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사람들을 요리조리 피해 시장까지 간다. 그럼에도 이 동네로 이사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동네가 점점 더 좋아진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이런저런 가게들이 새로 문을 열고 멀리서 사람들이 찾아오고. 주말이나 휴일엔 이렇게 낯선 사람들 속에 섞여 동네를 어슬렁거릴 수 있다는 게 마음에 든다. 아무도 모르고, 누구도 모르는 인파 속에서 느끼는 어떤 편안한 기분에 대해 알게 된다.

한주가 지나고 수요일 저녁 건물 반상회가 있다. 누가 가느냐 하는 문제로 우리는 잠시 실랑이를 벌인다. 결국 아홉시가 되기 전에 내가 아랫집으로 내려간다. 201호 여자가 문을 열고 나를 맞는다. 달큼한 양념 냄새, 코가 매운 향 냄새 같은 것들이 달려든다.

301호 맞죠? 두분이 같이 올 줄 알았더니 혼자 오셨네.

여자의 말이 나를 놀라게 한다. 우리는 지난겨울 새로 이사 왔고 여자는 내게 처음 보는 사람이나 마찬가지다.

왜, 맨날 두분이서 사이좋게 다니잖아요. 둘이 자매예요? 닮은 거 같아.

내가 모르는 어떤 순간 여자가 나를, 혹은 우리를 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곧바로 뒤따라온다. 나는 간단히 고개를 까딱하고 만다. 좁고 긴 현관을 지나자 3인용 소파가 놓인 작은 거실이 나온다. 먼저 온 두 사람이 알은체를 한다. 언젠가 한번쯤은 마주쳤을 텐데도 다들 본 적이 없는 사람들 같다.

아홉시를 조금 넘기고 회의가 시작된다. 일층 한 가구, 사층 한 가구를 제외한 여섯 가구가 마주 앉아 논의하는 것은 주차장과 옥상에 쌓아둔 개인 물품들을 처리하는 문제다. 이주 동안 각자 물건을 되가져가고 그후에도 남는 물건들은 일괄 폐기하는 것에 모두 합의한 뒤에도 사람들은 자리를 뜨지 않는다. 자꾸만 다른 문제들이, 사안들이 따라나온다. 재활용쓰레기를 잘 분리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옥상 방수공사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지고, 누군가 우편함과 건물 외벽에 광고 스티커가 너무 많이 붙어 있다고 말하면 이는 청소업체에 대한 불만으로 옮겨간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나자 관리비를 더 내서라도 청소업체를 바꾸고 건물을 깨끗하게 유지하는 게 좋지 않으냐는 제안에 사람들이 열을 올리고 있다.

301호는 어떻게 생각해요?

맞은편에 앉은 201호 여자가 묻는다.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이야기들을 마무리하고 서둘러 이 사람들을 돌려보내고 싶은 눈치다. 나는 고민해보겠다고 말한다. 그만 집으로 돌아가고 싶긴 나도 마찬가지다.

참, 그때 할머니 사고 난 거 그건 잘 해결했어요?

현관 앞에서 201호가 다시금 놀라운 말을 건넨다. 그럴 이유가 없는데도 얼른 대답이 나오지 않는다.

할머니 발가락이 부러졌다고 그러던데 아니에요? 강아지 발이 부러졌댔나. 아무튼 잘 해결됐나 해서 물어봤어요.

여자는 요 앞 철물점에서 들었다고 하고, 미용실에서 들었다고 하고, 목욕탕에서 들었었나, 하면서 고개를 갸웃한다. 나는 복도에 서서 여자와 조금 더 이야기를 나눈다. 주로 내가 상황을 설명하고 여자가 그렇구나 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식이다.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자꾸만 말이 길어진다. 센서등이 꺼질 때마다 한 팔을 휘휘 내두르면서 나는 계속 말을 보탠다. 결국 여자가 내 말을 끊고 말한다. 어쨌든 옥상과 주차장에 내놓은 물건들을 가능한 한 빨리 치워달라는 부탁이다.

이틀이 더 지난 뒤에야 201호가 왜 그 이야길 꺼냈는지 알게 된다. 퇴근 후 나는 곧장 네가 알려준 베이커리로 간다. 가게 안으로 들어서자 카운터 앞에 서서 주인과 이야기하는 네 뒷모습이 보인다. 카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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