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정영문 鄭泳文
1965년 경남 함양 출생. 1996년 『작가세계』로 등단. 소설집 『검은 이야기 사슬』 『꿈』, 연작소설 『달에 홀린 광대』, 장편소설 『핏기 없는 독백』 『중얼거리다』 등이 있음. moll65@naver.com
동물들의 권태와 분노의 노래 2
동굴 생활자
동굴의 입구는 서쪽을 향해 있었고, 그래서 저녁 무렵이면 때로 장엄한 석양을 볼 수도 있었다. 해는 수평선에 가까워지며 더욱 크고 붉어져 장엄하게 침몰하며 수면 아래로 사라졌는데 그것을 보고 있을 때면 나는 조용히 물속으로 걸어들어가 바닷속으로 사라지는 상상을 하곤 했다.
동굴의 입구는 보통의 문 크기였고, 그 깊이는 정확히 알 수 없었다. 천장의 높이가 3미터 정도 되는 홀 같은 공간 너머로 동굴은 높이와 너비가 점점 작아졌고 결국에는 사람이 통과하기 어려울 정도로 좁아졌다. 그럼에도 그곳에는 구멍이 있었고, 그 너머에는 좀더 넓은 공간이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확인할 수는 없었다. 나의 추정에 따르면 동굴은 상당히 깊게 나 있는 것 같았다. 바다에서 불어온 바람이 맞은편 구멍 속으로 들어가 사라지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람이 안쪽의 구멍을 통해 들어간 후 더욱 깊은 곳에서 소멸되는지, 아니면 일부가 막다른 곳에 이른 후 다시 밖으로 나오는지는 알 수 없었다. 나는 그것을 알아내기 위해 바람의 움직임을 세심하게 느껴보려 했지만 정확히 알 수는 없었다. 어떤 때에는 바깥에서 불어들어온 바람과는 상관없이 바람이 안쪽에서, 비록 미약하기는 하지만, 나오기도 하는 것 같았다.
내가 동굴에 살게 된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나는 유랑의 한 시기를 거친 후 동굴에 정착하게 되었다, 그런 셈이었다, 그렇게 말할 수도 있었다. 내가 동굴에 정착하게 된 것은 일종의 자의 반, 그리고 타의 반이었다. 아니, 거기에는 누구의 의지도 작용하지 않았다. 어쩌면 자연의 의지가, 그런 게 있다면 말이지만, 작용했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동굴이 내가 지내기에 아주 괜찮은 곳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추위와 습기가 때로 문제가 되긴 했지만 동굴은 비바람을 피할 수 있었으며 맹수들의 위협으로부터도 안전한 곳이었다—물론 일대에 맹수들은 없었고, 맹수들의 위협 또한 없었지만 나는 동굴이 맹수들의 위협으로부터도 안전한 곳이라고 생각하기를 좋아했다.
수백만년, 혹은 수천만년이 된 동굴은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집이었다. 한때는 대부분의 인간들이 동굴에 살던 때도 있었다. 그 당시 동굴은 맹수들의 위협을 피하기에 가장 좋은 곳이었다.
그리고 말년을 동굴에서 보낸 그리스의 철학자도 있었는데 나는 그 철학자가 왜 말년을 동굴에서 보냈는지는 알지 못했지만 말년을 보내기에는 동굴이 괜찮은 곳이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래서 내가 나의 말년이라고 생각되는 시기를 동굴에서 보내기로 한 것은 아니었다.
내가 사는 동굴에 박쥐는 없었다. 하지만 그전에 박쥐가 살았을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라도 하는 것 같은, 박쥐의 배설물처럼 보이는 것은 있었다. 나는 박쥐떼가 돌아온다면 우리가 함께 살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동굴에서 지낸 초기에 나는 다양한 통조림 식품으로 연명했다. 동굴 한쪽 구석에는 통조림 깡통들이 가득 쌓여 있었다. 나는 정어리와 고등어와 꽁치와 청어 그리고 참치 통조림을 번갈아가며 먹었다. 매일같이 정어리와 고등어와 꽁치와 청어 그리고 참치 통조림을 번갈아가며 먹기란 어려운 일이었지만 나는 비교적 그것을 잘 견뎠다. 어떤 통조림은 유효기간을 훨씬 넘기기도 했지만 그것을 먹고 탈이 난 적은 없었다. 한 정어리 깡통에 들어 있던 정어리는 정어리의 형체도 맛도 찾아볼 수 없었지만 그럼에도 나는 정어리를 먹으며 정어리를 먹고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있었으며, 그것을 먹고 난 후에는 정어리를 먹었다는 생각을 할 수 있었다.
동굴에서 생활하는 나의 소지품은 많지 않았다. 내게는 약간 의외로 여겨질 수도 있는 토끼가죽 코트가 하나 있었는데, 나는 그것을 잠잘 때 깔개로 사용하거나 추울 때 입거나 방석처럼 사용해 그 위에 앉아 있곤 했다. 토끼가죽 코트는 내가 결코 벗지 않는, 담비가죽으로 만든 모자와 잘 어울렸지만 길이가 어중간해 약간 차림이 우스워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일부러 그런 차림을 한 것은 아니었다. 다른 옷이 없었던 나로서는 달리 어쩔 수가 없었다. 코트는 검은색이었는데, 수십마리의 토끼 가죽으로 만든 그것은 본래 검은색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것은 흰색이나 회색의 토끼가죽을 검은색으로 염색한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그 코트에는 내가 한때 기르던 흰색 토끼의 가죽은 들어 있지 않았다. 코트는 내가 만든 것이 아니었고, 내 것도 아니었다. 그것은 내가 한때 같이 살던 여자의 코트였는데 나는 그것을 빼앗다시피 해 얻었다. 한데 나는 내가 한때 같이 살았으며, 코트를 빼앗다시피 해 얻은 그 여자의 행방에 대해 알지 못했다. 아니 행방뿐만 아니라 그녀의 생사에 대해서도 알지 못했다. 우리가 함께 살던 마지막 시기에 그녀는 미친 듯이, 그리고 끝없이 첼로를 연주했는데 실제로 그녀는 미쳐 있었다. 그녀가 가장 즐겨 연주한 곡은 「핑갈의 동굴」 서곡이었다.
나는 흰색 토끼를 한마리 기른 적이 있었는데 그것의 이름은 램지였다. 나는 램지를 자주 안아주었는데, 그것은 내가 그것을 안아주기 위한 토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내게 안겨 있기를 좋아했다, 적어도 내 생각에는 그랬다. 램지는 내가 안아줄 때면 그것에 대해 불편해하며 벗어나려고 버둥거리거나 하지 않았다. 그것은 잠자코 안겨 있었고, 그럴 때면 나는 그것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그럴 때면 그것은 약간 겁을 먹은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고, 그럴 때면 나는 그것을 다정한 눈으로 내려다보았지만 그것은 여전히 약간 겁을 먹은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서로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을 때면 나는 우리가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되는 존재라고 느꼈다. 아니,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되는 존재라고 느끼지는 않았지만 서로를 얼마간 이해하는 존재라고 느꼈다.
램지는 별로 활동적이지 않은 토끼였다. 주로 그것은 내가 살던 집 마당 한쪽에 있는 풀밭 속에서 풀이 죽은 모습으로 엎드려 있곤 했다. 풀밭에는 풍뎅이 같은 벌레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또한 그것은 가끔은 마당의 연못가에 가만히 앉아 연못을 바라보곤 했다. 어딘가 병약해 보였던 램지는 이른 나이에 죽었다. 램지는 어느날 금붕어들이 사는 연못에 죽어 떠 있는 채로 발견되었는데, 왜 그 토끼가 연못에 죽어 떠 있는 채로 발견되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나는 램지를 건질 생각을 하지 못했고, 며칠 동안 물 위에 떠 있는 그것을 보았다. 물 위에 떠 있는 램지는 눈을 감은 채로 있었다. 어느날 그것을 보고 있자 문득 어린시절 아버지와 함께 야산에서 토끼를 한마리 잡아온 기억이 났다. 하지만 실제로 우리가 그것을 잡은 것은 아니었다. 우리가 토끼를 발견했을 때 그것은 다른 누군가가 쳐놓은 올가미에 걸려 이미 죽어 있었다. 말하자면 우리는 그것을 훔친 것이었다. 죽은 토끼의 귀를 잡은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