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동북아경제중심’의 가능성과 문제점(21세기의 한반도 구상 1)

 

동북아시대 남북경협의 성격과 발전방향

 

 

이남주 李南周

성공회대 중국학과 교수. 본지 112호(2001년 여름)에 「북한 개혁의 ‘이륙’은 가능한가」 발표. lee87@mail.skhu.ac.kr

 

 

1. 남북경협의 새로운 의미

 

남북경협은 1988년 남한정부의 ‘대북경제개방조치’ 발표와 1991년 12월 남북기본합의서 체결을 계기로 시작되었다. 그러나 교역규모는 2002년에야 6억 달러를 넘었을 정도로 초기의 기대만큼 빠르게 진전되지는 않았다. 특히 1993〜94년 북한의 NPT(핵확산금지조약) 탈퇴로 인한 북미관계의 악화, 1996년 동해안 북한 잠수함 침투사건 등으로 교역규모가 감소했다. 이는 남북경협이 정치적 변수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한반도에서 냉전적 대립이 청산되지 않았던 것에 비해 동북아 정치·경제구조는 근본적인 변화를 겪었다. 중국의 개혁개방정책, 소련의 붕괴 등으로 동북아에서 한국전쟁 이후 유지되어오던 지역내 국가들 사이의 정치·군사적 대립은 크게 약화되었다. 정치관계의 개선은 동북아에서 무역·투자 등의 경제교류도 빠르게 증가시켰다.

이러한 상황에서 2000년 남북정상회담은 동북아에서 냉전체제를 청산하고 새로운 발전단계로 진입하게 되는 계기를 만들었다. 물론 중국과 대만 사이에도 냉전적 대립은 존재하나 이는 더이상 동북아 국가들 사이의 교류를 가로막는 인위적 장벽이 되지는 않고 있다. 따라서 한반도에서 인위적 장벽의 붕괴는 동북아에서 냉전적 대립을 완전히 극복하고 새로운 협력의 시대를 열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동북아시대’라는 화두의 등장도 이러한 상황변화를 배경으로 하는 것이다.

즉 ‘동북아시대’란 다른 지역블록과 대결하는 것이 아니라 냉전적 구도 속에서 서로 반목하고 대립하던 동북아에서 협력과 공존의 새로운 질서가 만들어지고 그 속에서 모든 동북아 국가들이 새로운 발전의 기회를 갖게 되는 시대를 의미한다. ‘동북아시대’에 한반도의 중심적인 역할은 다른 주변국들에 대한 우월적인 지위에 의한 것이 아니라 동북아시대를 여는 데 한반도가 결정적 열쇠를 쥐고 있다는 역사적 상황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리고 ‘동북아시대’의 도래는 남북경협의 의미를 더욱 중요하게 만들었다. 이제 남북경협은 남한에서 경쟁력을 상실한 사양산업의 이전이나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이 아니라 한반도, 나아가 동북아의 경제지도를 새롭게 그리는 사업으로 발전하고 있다. 지역경제통합의 가속화는 동북아 평화체제 건설에도 유리한 조건을 만들어줄 수 있다. 즉 남북경협은 정치·군사적 환경변화의 종속변수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한반도와 동북아의 새로운 미래 설계에서 적극적인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2. 남북정상회담 이후 남북경협의 전개

 

남북의 정상이 2000년 6·15 공동선언에서 “경제협력을 통해 민족경제를 균형적으로 발전시킨다”고 합의한 이후 남과 북은 모두 경제협력에 적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물론 남북정상회담 이전에도 교역규모는 1991년 1억 달러, 1995년 2억 달러, 1997년 3억 달러, 2000년 4억 달러로 꾸준히 증가하면서 남북경협이 일시적인 것이 아님을 확인시켜주었다. 그러나 정상회담 이전까지 남북경협의 한계도 뚜렷하다.

첫째, 남북교역에서 제네바합의에 따른 대북 중유지원, 경수로사업 및 금강산관광사업 관련물자 등 비거래성 교역 비중이 높다는 것이다. 이 비중은 1995년 3.8%에 불과했으나, 2000년에는 46%까지 증가했다. 비거래성 교역 비중이 커진 것은 정부 사이의 협력사업이 증가한 결과지만 동시에 같은 기간 거래성 교역(상업적 매매거래 및 위탁가공교역)이 크게 감소한 결과이다. 거래성 교역은 1995년에 2억7630만 달러까지 증가했으나 1998년에는 1억4269만 달러로 감소했다.

둘째, 남북경협에 참여하는 업체당 교역규모도 1994년 이후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등 대부분의 경협사업이 영세성을 면치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1999년 업체당 평균 교역규모는 32만5000 달러로 1993년의 1/4 수준에 불과하다. 이는 거래성 교역의 감소와도 관계가 있다. 그리고 협력사업의 경우도 경수로사업과 금강산관광개발사업만이 규모가 1억 달러를 상회하며, 민간차원에서 진행되고 있는 사업 중에는 평화자동차사업이 최근의 재투자로 사업규모가 5000만 달러를 넘은 것을 제외하고는 1000만 달러를 넘는 사업이 없다.

마지막으로 남북경협의 씨너지 효과가 미흡했다. 비거래성 교역의 대부분은 경제적 씨너지 효과 창출보다는 경수로 건설, 식량난 해소 등 정치적 필요에 따른 사업에 집중되었다. 정치성이 덜한 민간교역의 경우에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상업적 매매거래에서 북한으로부터의 반입은 농림수산물 등과 같이 성장성이 낮은 품목이 주류를 차지했으며, 위탁가공교역의 경우도 반입품 중 섬유류가 차지하는 비중이 90%를 넘는 상황이다. 그리고 경제적 상호보완성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협력사업의 경우는 사업승인자 수가 1997년 16건, 1998년 13건으로 정점에 달한 이후 급격하게 감소하여 1999년 2건, 2000년 1건에 불과했다.

남북정상회담 이후에도 남북경협은 양적인 측면에서 이러한 문제점이 뚜렷하게 개선되고 있지는 않다. 거래성 교역이 2000년에는 1억7833만 달러, 2001년에는 2억3632만 달러, 2002년에는 3억4296만 달러이며, 협력사업승인자 수도 2001년 6건, 2002년 3건으로 약간의 회복세를 보이는 정도의 변화가 있을 뿐이다. 그러나 질적인 측면에서는 정상회담 이후 주요 협력사업으로 떠오른 남북 철도·도로 연결, 개성공단 건설사업 등은 그 경제적 효과가 지금까지의 경협사업을 훨씬 능가하는 것이다.1 뿐만 아니라 남과 북이 각각 분리된 상태에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한반도 경제공동체를 촉진시키는 길이 열렸다는 의미에서 남북경협은 새로운 단계로 진입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변화는 남북 정부 사이의 협의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

남북은

  1. 2002년 11월 내놓은 보고서에서 전경련은 개성공단의 가동을 통해 북한은 2010년경까지 41억8000만 달러의 직접적 외화 수입을 포함해 총 154억1000만 달러의 경제적 효과를 얻을 것으로 전망했다. 국토연구원도 개성공단의 경제가치를 분석한 자료에서 공단이 완성될 경우 북쪽 17만명의 고용창출 효과와 함께 남북을 합쳐 모두 722억 달러의 경제적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한겨레신문』 2002년 12월 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