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한국사회의 발전전략을 찾아서(21세기의 한반도 구상 3)

 

좌담: 동북아시대 한국사회의 중 · 장기 전략과 단기적 과제

 

 

김석철 金錫澈

명지대 건축대학장, 아키반 건축도시연구원 대표. archiban@kornet.net

 

박세일 朴世逸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전 청와대 정책기획수석비서관. sipark@snu.ac.kr

 

백낙청 白樂晴

서울대 명예교수, 본지 편집인. paiknc@snu.ac.kr

 

성경륭 成炅隆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위원장, 한림대 교수. krseong@hanmail.net

 

때: 2003년 10월 18일

곳: 한국프레스쎈터 20층 모란실

 

전체

 

백낙청 바쁘신데 이렇게 나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 창비는 ‘21세기의 한반도 구상’이라는 큰 주제로 지난 여름호부터 3회에 걸쳐 연속기획을 하고 있습니다. 창비로서는 이런 연속기획이 처음인데 새 정부가 출범했을 뿐만 아니라 21세기가 열리는 마당에 뭔가 한반도를 위한 새 구상이 우리 사회에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거기에 일조하려는 뜻에서 이런 기획을 마련했습니다. 그래서 첫번째는 ‘동북아경제중심의 가능성과 문제점’이라는 제목으로 여름호에 특집을 했고요, 두번째로 지난 가을호에서 ‘평화체제와 평화운동’이라는 제목의 특집을 꾸몄고, 이번에 ‘한국사회의 발전전략을 찾아서’라는 세번째 특집을 하면서 그 일부로 ‘동북아시대 한국사회의 중·장기 전략과 단기적 과제’라는 주제로 좌담을 갖게 되었습니다. 무언가 현실적인 과제와 밀착된 논의를 해보려는 게 이번 연속기획의 취지인데, 어떤 분들은 창비가 참여정부의 의제설정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냐 하는 얘기도 합니다만, 사실은 정부의 의제설정이라는 것도 원래 사회 안에서 논의되던 것을 이어받은 면이 있고, 우리가 보기에 그중에서 의미있고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있다면 지식계에서 당연히 논의해서 비판할 것은 비판하면서 서로 주고받는 관계가 형성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한국사회의 발전전략을 얘기할 때,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계신 성경륭 교수님이 이 자리에 오셨습니다만, 정부의 균형발전전략이라든가 지방분권구상 같은 것도 우리 나름의 독자적인 입장에서 점검하는 기회가 되기 바랍니다. 물론 성교수께서는 위원회나 정부를 대표한다기보다 개인 자격으로 자유롭게 말씀해주시기를 기대하지만요. 다른 참석자들도 은퇴한 교수인 저를 포함해서 전부 교수입니다만, 실제로 현장의 실무경험이랄까 실물의 움직임에 대해 직접·간접으로 경험이 많으시고 경륜이 있으신 분들로 모셨습니다. 독자들을 위해서 소개를 드리면 박세일 교수님은 원래 서울대 법대 교수를 하시다가 첫번째 문민정부인 김영삼정부에서 정책기획수석으로 청와대에서 일하셨습니다. 그후에 다시 교직에 돌아오셔서 지금은 서울대 국제대학원에서 가르치시는데 ‘법과 경제’가 전문분야시지요. 김석철 교수님은 지금은 명지대학교를 비롯해서 이딸리아의 베네찌아대학, 미국 컬럼비아대학 등에서 건축학 교수로 재직중이십니다만, 원래 건축가이자 도시설계자로서의 경력이 훨씬 오래되었고 실제로 국내외의 수많은 건물과 도시를 설계하신 분입니다. 그리고 성경륭 교수님은 한림대 교수이시자 방금 소개드린 대로 대통령자문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위원장으로 근무하고 계십니다. 저 자신은 사실 이런 자리에서 장기 발전전략을 얘기할 어떤 특별한 분야의 전문성이 있는 사람이 못 됩니다. 전공이 문학이지만 창비 편집에 오래 관여하다보니까 다른 분야에 기웃거리는 데 이골이 났다면 나서……(웃음) 이번에 비중있는 분들을 모시게 됐으니까 제가 나가서 사회를 봐줬으면 좋겠다는 주문을 편집위원들로부터 받은 거지요. 토론과정에서 그동안 창비 나름으로 지녀온 문제의식이랄까 이런 것을 반영해줬으면 좋겠다는 주문도 있었습니다. 물론 여기 계신 분들이 모두 창비를 잘 아시고 또 대개는 기고하신 경험도 있으신만큼 저의 특별한 역할이 필요한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면피를 하는 뜻에서 첫머리에 조금 길어지더라도, 이 주제와 관련된 창비 나름의 문제의식이랄까 또는 많은 창비 독자들이 기대하는 점을 염두에 두고 제가 한두 가지 문제제기를 할까 합니다.

 

 

창비의 몇가지 문제의식

 

첫째로 제목에 ‘동북아시대’가 나오는데, 동북아보다 공간적으로 더 넓혀서 세계 전체를 본다면 지금은 세계화시대라는 말이 아마 여러 사람들이 들먹이는 표현이겠지요. 그리고 세계화의 높은 파도랄까 광풍 같은 것에 우리가 어떻게 적응하고 살아남을까 하는 것이 절박한 문제인데, 동북아시대 한국사회의 발전전략을 얘기할 때도 그런 맥락을 감안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동안 창비에서는 그러한 세계화의 현실에 적응할 것을 강조하면서도 항상 세계화라는 대세의 장기적인 전망은 무엇인가, 이것이 인류를 어디로 끌고 가며 과연 얼마나 계속될 것인가에 관심을 기울여왔습니다. 박세일 교수님도 어느 글에서 세계화라는 것이 순기능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역기능도 많다는 점을 지적하셨고, 세계화를 “약육강식의 시장의 승리”로 규정하기도 하셨더군요. 세계화의 대세가 과연 어떤 성질이냐 하는 것을 장기적인 안목으로 짚어보는 작업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창비에서는 자본주의적 근대에 대해서 우리가 한편으로는 근대에 적응하면서 근대를 극복하려는 ‘이중과제’를 지니고 있다, 그런데 ‘이중과제’란 두 개의 과제가 병행한다는 뜻보다는 적응과 극복이 단일과제의 양면이라는 뜻으로 써왔습니다. 세계화의 대세에 우리가 한편으로 적응하면서 뭔가 근본적으로 극복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문제의식을 제기한 셈인데요. 이 명제에 동의를 하시든 안하시든 이를 의식한 논의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둘째로 동북아시대 자체와 관련해서, 동북아가 세계경제에서 가장 성장이 활발한 지역으로 떠오르면서, 특히 중국경제가 발전하면서 그것이 한국경제에 대해서는 새로운 기회이자 위기도 된다는 점은 많이들 지적합니다. 사실 세계화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와도 관련되는데, 지금과 같은 식의 세계화가 진행되다보면 결국 지구환경이 감당할 수 없는 사태가 오지 않을까, 그것이 구체적인 현실로 드러나는 것이 동북아시대가 아닐까 하는 점을 우리가 심각히 생각해봐야겠습니다. 중국처럼 저렇게 엄청나게 크고 인구가 많은 나라가 이제까지 미국이 해오던 발전방식, 그것을 답습한 동아시아의 선진국 일본, 그리고 그 뒤를 따라온 한국으로 이어지는 기존의 패턴에서 근본적으로 달라짐이 없이 계속 성장한다면 이것이 동북아뿐 아니라 인류 전체가 도대체 감당할 수 있는 사태일까 하는 거지요. 그래서 동북아시대라는 것은 단순히 한국이나 한반도가 여기에 적응해야만 하는 문제가 아니고, 좀더 친환경적인 발전의 새 패러다임이 동북아에서 자리잡지 못한다면 인류 전체가 위험에 처할 수밖에 없는 고비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 차원의 동북아시대 논의에 창비로서는 특별한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白樂晴 좀더 친환경적인 발전의 새 패러다임이 동북아에서 자리잡지 못한다면 인류 전체가 위험에 처할 수밖에 없는 고비라고도 말할 수 있는데, 한국이야말로 그런 새 모델을 개발하기에 좋은 처지에 있습니다.

白樂晴
좀더 친환경적인 발전의 새 패러다임이 동북아에서 자리잡지 못한다면 인류 전체가 위험에 처할 수밖에 없는 고비라고도 말할 수 있는데, 한국이야말로 그런 새 모델을 개발하기에 좋은 처지에 있습니다.

셋째, 한반도 문제를 두고서는 창비 지면에서 분단체제론이라는 것을 많이 논의해왔는데, 이것은 남과 북이 흔히 말하기로 체제가 다른 사회지만 좀 다른 차원에서는 분단체제라는 하나의 체제 속에 얽혀 있는 사회들이고, 이 분단체제를 극복한다는 것은 단순히 통일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고 통일하는 과정에서 현재의 남과 북 어느 쪽보다도 더 나은 사회가 한반도에 건설되어야 그것이 진정한 분단체제의 극복이라는 것이지요. 더 나은 사회라고 하면 여러가지 기준이 있겠습니다만 가령 빈부의 격차, 성차별 이런 것이 완전히 철폐되지는 않더라도 지금보다는 줄어들고, 문화적인 다양성도 증대되는 그런 과정이라고 해야겠지요. 우리 제목에 중·장기 전략과 단기적 과제라는 말이 나옵니다만, 아주 길게 봐서 세계체제에 대한 장기적인 전망을 갖고 그에 따른 장기적인 전략을 설정하면서, 단기적으로는 우리가 통일되기 전이라도 당장에 해야 할 이런저런 과제를 거론하고, 동시에 한반도에서의 분단체제 극복이라는 것은 당장의 과제보다는 더 장기적이지만 세계체제의 장기적 변혁에는 못 미치기 쉬운 중기(中期) 정도의 과제로 설정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단기·중기·장기로 구별하는 것은 과제를 세 토막으로 잘라서 따로따로 해나가자는 것이 아니고, 정반대로 동시에 수행해야 할 다양한 차원의 과제들이 단기·중기·장기에 걸쳐 각기 달리 성취될 성격임을 제대로 인식하고 식별해서, 그 과제들을 해결하려는 우리의 노력이 상충하지 않고 이론적인 통일성과 현실적 대응력이 높아지게 하려는 의도라고 해야겠지요.

朴世逸 공공이익에 서서 개별이익을 설득해나가는 세력, 자기 나름의 확고한 지적 확신과 경험적 자기 소신이 있는 정책세력 내지 개혁세력이 우리 사회에 별로 없는데 하루속히 육성해야 합니다.

朴世逸
공공이익에 서서 개별이익을 설득해나가는 세력, 자기 나름의 확고한 지적 확신과 경험적 자기 소신이 있는 정책세력 내지 개혁세력이 우리 사회에 별로 없는데 하루속히 육성해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한국의 지식인들이, 저 역시 그런 경향이 있지 않은가 스스로 반성을 하는데, 현실적인 실행과 동떨어진 그림을 그리거나 또는 단편적인 비판을 하는 것은 잘하는데, 정말 현실 속에서 직접 일해본 경험이 제한되고 실무하는 사람들과 상호소통하는 폭이 좁은 탓인지, 지식인으로서 어떤 장기적인 목표를 설정하고 끈질기게 추구하되 이를 위해 중기적으로는 무엇을 달성하고 또 단기적으로는 어떤 식으로 일을 해나갈지에 대한 종합적인 경륜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오늘 참석하신 세 분은 그러한 다수의 지식인들과는 다른 경험과 경륜을 가진 분들이라 믿고, 이 좌담이 중·장기 전략과 단기적인 과제를 동시에 얘기하는 생산적인 토론이 되리라 기대합니다. 좌담의 취지를 말씀드리고 독자들에게도 알려드리기 위해서 좀 장황하게 말씀드렸습니다. 이제부터의 진행은 우선 세 분께서 한마디씩 들머리 발언을 간략히 해주신 다음에 자유롭게 토론을 벌였으면 합니다. 우선 박세일 교수님부터 말씀해주시죠.

 

박세일 저는 21세기 한반도의 미래구상이 아주 시의적절한 토론 주제 같아요. 지금 우리 사회는 국가발전의 중·장기 과제에 대해서 고민하고 생각해보는 조직이나 사람들이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오히려 옛날 박대통령 때는 아마도 장기집권과도 관련이 있겠지만(웃음), KDI(한국개발연구원) 같은 데서 국가의 중·장기적인 발전에 대해 나름대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민주화되고 세상이 바빠져서 그런지 단기적인 것은 많은데 중·장기 과제를 생각해보는 기회가 별로 많지 않고 그런 사람이나 조직도 많지 않은데 오늘 그런 기회를 가지게 되어서 아주 의미있게 생각합니다.

 

 

새로운 공간전략을 마련하자

 

金錫澈 미국과 일본을 위주로 한 공간구조를 넘어 한반도 공간전략을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할 때, 새만금 구상은 균형발전과 동북아시아시대로 나아가기 위한 시금석적 프로젝트라고 생각합니다.

金錫澈
미국과 일본을 위주로 한 공간구조를 넘어 한반도 공간전략을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할 때, 새만금 구상은 균형발전과 동북아시아시대로 나아가기 위한 시금석적 프로젝트라고 생각합니다.

김석철 지난 30여년간 도시를 계획하고 연구해온 사람으로서 지금이야말로 한반도를 전면적으로 다시 기획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개항과 일본의 강점으로 이어지는 반세기 동안 한반도는 이전과는 다른 엄청난 변화를 겪었습니다. 한반도가 닫힌 공간구조를 갖고 있다가 처음으로 신의주·인천·목포·부산·원산의 5개항을 개항하고 이 5개항과 서울을 연결하는 철도라인을 부설한 그 공간체제가 크게 보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해방이 되고 곧이어 분단이 되면서 미국과 일본과의 관계 위주로 한반도의 공간구조가 또 한차례 변화해 경부선을 축으로 산업투자가 집중적으로 이루어지면서 수도권집중이 될 수밖에 없었죠. 미국·일본과의 관계는 과거부터 밀접한 것이므로, 결국은 중국의 개방과 개혁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느냐 하는 점이 지금에 와서 동북아라는 말을 얘기하게 되는 이유거든요. 중국의 개혁과 개방이 한반도에는 중요한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의 한반도 공간구조로는 한계에 봉착해 있는데 마침 중국에서 그런 엄청난 변화가 생기면서 한반도가 한단계 도약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것이죠. 그래서 미국과 일본을 위주로 한 지금까지의 공간구조를 넘어 한반도 공간전략을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해야 할 때라고 봅니다.

 

성경륭 저는 원래 중앙과 지방, 국가와 사회 등 이런 국내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었는데 80년대 말부터 90년대 초에 유럽통합이 진행되고 89년 에이펙(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이 창설되고 90년대 초 나프타(NAFTA,북미자유무역협정)가 결성되는 것을 보면서 관심이 두 가지로 분리되어왔는데, 이번 좌담기획안을 보고 또 백교수님이 보내주신 좌담관련 이메일을 보면서 상당히 신선한 자극을 받았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일을 하면서 국내적인 흐름과 국제적인 흐름이 별개가 아니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던 차였습니다. 제가 위원회 일을 하면서 제일 유심히 살펴보는 나라가 프랑스인데, 프랑스는 1789년 대혁명을 통해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중앙집권 국가를 만들었어요. 이런 국가가 산업화정책을 펴니까 중앙정부의 수도인 빠리를 중심으로 사람과 자원이 모여들었어요.1947년인가에 『빠리와 프랑스의 사막』(Paris et le Désert français)이라는 책이 출판되는데, 프랑스가 어떤 형국이냐면 빠리는 오아시스 같은 곳이고 나머지는 다 사막화되어 있다는 것이에요. 그런 자기비판이 나온 뒤 프랑스는 63년도에 국토균형정책을 수행하는 DATAR라는 총리 직속기관이 만들어져서 지난 40년 동안 빠리에 모여 있는 공공기관들을 전부 분산했어요. 선진국에서는 보기 힘들 정도로 인위적이고 강력한 정책으로 수도 빠리 인구가 지난 70년대부터 전체인구의 18%선에서 안정화되고, 오히려 프랑스의 변방 인구가 빠른 속도로 늘어나게 되었어요. 그러니까 인구면에서는 균형발전이 이루어진 것이죠. 그런데 이 흐름이 특이하게도 유럽통합과정과 직결되어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프랑스와 함께 유럽통합을 주도하는 독일은 중세 봉건제도를 오랫동안 유지하고 있었고 그것이 연방제로 나아갈 수 있는 토양이 되어 일찍부터 분권형 국가였던 데 비해, 중앙집중형 국가였던 프랑스는 60년대 이후 40년간 분산정책을 추진해 수도권 집중현상을 해소하고 국토균형발전을 이룬 것이죠. 만일 그러지 않았다면 프랑스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유럽통합이 진행되면서 빠리는 점점 비대해지고 나머지 지역은 점점 말라갔을 테죠.

成炅隆 중앙집권 국가에 의해 특정산업 중심, 몇몇 특정지역 중심의 성장전략은 한계점에 이르렀고, 환경을 도외시한 물질주의, 그것도 대기업이나 가진 자 중심의 성장방식은 한계에 봉착했다고 봐요.

成炅隆
중앙집권 국가에 의해 특정산업 중심, 몇몇 특정지역 중심의 성장전략은 한계점에 이르렀고, 환경을 도외시한 물질주의, 그것도 대기업이나 가진 자 중심의 성장방식은 한계에 봉착했다고 봐요.

동북아지역의 한·중·일은 2차대전 후에 미국과 수직적으로 연결되는 구조였어요. 한·중·일의 발전정도가 다르니까 수평적인 연계, 교류, 상호의존 부분은 상당히 취약했죠. 그러다가 중국이 발전하면서 근래에 상당히 빠르게 세 나라 사이의 교역과 교류가 늘어나고 있는데, 아직은 세 나라가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 수준에도 못 미치지만 통합이 많이 진행되고 있다고 생각해요. 나중에 통합의 외형이나 형식이 어떻게 될지는 아직 알 수가 없는 상태지만요. 이런 변화의 와중에 한국사회는 서울 중심의 집중형 구조와 강력한 중앙집권체제가 그대로 유지되고 있습니다.5백만명 이하 되는 도시국가를 제외하면 제가 알기로 우리나라의 수도권 인구 비율은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작년 연말 기준으로 면적은 국토의 11.8%인데 인구는 47.2%예요.2000년 수도권 인구는 46.3%인데 2002년에는 47.2%로 증가했어요. 매년 인구가 20만명씩 수도권으로 이동하는데다가 바깥에서 들어오는 인구보다 내부에서 늘어나는 인구가 지금은 더 많아요. 젊은층이 학교나 취업 때문에 대거 몰려오고 이들이 출산까지 하니까 수도권은 공룡처럼 끊임없이 비대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분산작업도 하고 지역의 자생력을 높이는 산업정책, 지역발전정책 등을 펴면서 지역균형이 이루어지는 상태로 변화시키려고 하죠. 그러지 않으면 국내적으로도 문제가 생기고 나중에 동아시아 전체의 통합성이 증가될 때 서울 이외의 다른 지역은 역할을 할 수 없게 되겠죠. 현재 부산도 제가 보기에 매우 취약한 경제구조를 가지고 있어 독자적인 경제권은 아닌 것 같습니다. 대구도 그렇고 광주도 그렇습니다. 이 두 가지 이슈를 같이 사고하고 연결시켜야만 올바른 국가발전 비전과 전략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백낙청 오늘 좌담의 제목에 비추어 아무래도 현정부의 국가균형발전 전략을 짚고 넘어가야겠는데 성교수님의 발언을 통해 그 문제가 자연스럽게 제기된 셈입니다. 자유롭게 토론해주시지요.

 

 

자주적·민주적 세계화란?

 

박세일 세계화에 대한 시각을 먼저 좀 정리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요즘 세계화, 반세계화 하는 식의 대립적인 논의가 많은데 제 생각에 그것은 바람직한 접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저의 1차 결론은 우리가 세계화의 흐름은 타야 한다는 것입니다. 인류의 역사를 보면 물질적 부의 급격한 증대는 최근 2,3백년간의 아주 예외적인 현상이라고 볼 수 있어요. 과거에는 인류가 물질적으로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지난 2,3백년간 지역시장에서 국가시장으로, 세계시장으로 시장이 확대되고, 인간과 인간의 교류가 확대된 것이 고도성장을 낳았는데 그런 의미에서 세계화는 엄청난 기회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리고 세계화에 참여하는 경우가 참여하지 않는 경우보다 훨씬 더 빠른 경제성장을 이룰 뿐만 아니라 국가간 소득격차를 축소하는 데도 기여를 합니다. 지금 인류가 대략 60억인데 상위 10억이 선진국 즉 세계화가 상당히 진전된 나라에 살고, 세계화에 막 참여하려는 나라들에 약 30억 정도가 삽니다. 우리나라도 거기에 속하고, 사회주의권에 있다가 시장경제권에 들어온 나라, 신흥개발도상국들도 모두 여기에 포함됩니다. 그리고 나머지 20억은 아직 근대화도 시작하지 않은 나라들로서 내전이 진행되기도 하는 등 여러가지 사정으로 세계화와 아무 관계없이 살고 있습니다. 지난 10년간 통계만 봐도 상위 10억명이 사는 선진국의 연평균 소득증가율은 약 2% 정도 됩니다. 그런데 시장경제에 참여하여 세계화의 물결을 타려는 그 밑의 30억이 사는 나라들은 과거 10년간 소득이 연평균 약 5% 정도씩 증가해왔습니다. 이 두 그룹 사이에는 소득격차가 줄어들고 있으나 그 밑의 20억이 사는 저소득의 적빈한 나라들은 지난 10년간 소득이 매년 연평균 소득이 1%씩 감소해왔습니다. 그러니까 세계에서 제일 잘사는 국민과 못사는 국민 간의 격차는 계속 커진다는 것입니다. 최근의 통계를 보면 전세계 최고 부자 2백명의 재산이 20억 인구의 연간소득의 합계보다 많을 정도로 격차가 심합니다. 세계화에 진입해서 나름대로 대외지향적인 경제발전을 이룩하려는 나라는 어떤 형태든간에 상당히 빠른 성장을 보여 물질적으로 풍요해지고 있고 빈곤의 문제에서 해방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가 세계화의 흐름을 타야 한다고 보고 있어요.

다만 이때 조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먼저 저는 우리가 세계화를 하되 자주적인 세계화를 해야 된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세계화를 해도 자기 나름의 발전구상이나 발전전략을 세우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근대화는 서구화가 아니듯 세계화는 미국화가 될 수 없습니다. 세계화시대에 무조건 선진국의 제도나 정책을 카피해서는 실패한다는 거죠. 그런 의미에서 소위 글로벌 스탠더드(global standard)라는 것이, 진정으로 인류에게 보편타당성을 가지는 것도 있지만 상당부분은 미국적 스탠더드가 무조건 강요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러나 미국적 풍토 속에서 작동할 수 있는 법과 제도가 수정 없이 들어올 때는 현실적으로 작동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상당한 부작용을 내기도 합니다. 그래서 글로벌 스탠더드 중에서 우리가 받아들일 부분과 받아들이지 않을 부분, 토착문화와 결합해서 발전시킬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을 선별할 수 있는 안목을 가져야 세계화에 성공한다는 의미에서 저는 자주적 세계화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또 하나는 민주적 세계화인데 세계화가 가져올 수 있는 이득을 국내에 상당부분 잘 배분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겁니다. 이것은 상당히 중요합니다. 아까 세계화가 국가간의 소득격차를 줄인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세계화가 한 나라 안의 소득격차에 미치는 영향을 보면 두 가지로 나타나는데 소득격차가 벌어진 나라가 있고 줄어든 나라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 나라의 국정운영을 하는 사람들이나 정책입안자들이 세계화의 흐름을 타면서 국제경쟁력을 높이고 세계로 나아가는 것은 좋으나 국내에 낙후된 부분이 발생하고 격차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알고, 사전에 적절히 대처하고 사후적으로도 파이를 함께 나누려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세계화는 자주적 세계화와 민주적 세계화 두 부분이 보완되어야 성공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백낙청 세계화 얘기는 제가 먼저 꺼냈습니다만 우리가 세계화 문제만 가지고 원론적인 얘기를 너무 길게 하는 것보다는 구체적인 과제를 토의하면서 세계화에 대한 각자의 의견을 말하는 것이 더 능률적이지 싶어요. 말씀하시는 중에 박교수께서도 참여정부에서 구상하는 균형발전 문제를 건드리신 것 같아요. 다시 말해서 세계화의 과정이 어느정도 자주적·민주적인 것이 되려면 내부의 불균형이 개선되는 쪽으로 가야 한다고 하셨는데, 모르겠습니다, 국가별 경제성장의 수치로 말한다면 세계화 과정에서 득보는 나라들이 더 많다고는 하겠지만 박교수님도 지적했듯이 각 나라 안의 살림살이를 들여다보면 경제성장을 하면서도 빈부격차는 확대되는 경우가 많고 미국조차 그래요. 또 세계경제 속에서 위상이 낮은 나라일수록 그 점에서 더 불리해지지 않은가 싶습니다. 한국의 경우는 말씀하셨듯이 중간그룹이라고 할 수 있는데, 세계화에 잘 적응하면서 좀더 건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내부갈등을 줄이고 불균형을 해소하는 쪽으로 가야겠지요. 성교수께서 프랑스의 경우 국내문제 해결과 유럽통합이 연결되어 있고, 우리도 동북아 지역통합의 맥락에서 서울 중심의 일극체제를 극복해야 한다고 하셨는데, 물론 동감입니다. 다만 세계화 논의와 관련해서 성교수께 질문하고 싶은 것은, 현정부에서 국민통합과 국가경쟁력 강화라는 두 가지 과제를 동시에 해결하겠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것이 세계화의 엄혹한 현실을 충분히 감안한 건지 아니면 그냥 그렇게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직한 그림을 그려보는 건지……(웃음) 그런 것을 여쭤보고 싶군요.

 

성경륭 박교수님의 큰 흐름을 타야 한다는 말씀에는 공감합니다. 다만 세계화라는 큰 흐름과 자주적인 세계화, 민주적 세계화라는 목표 사이에서 일국이 어떻게 대응하느냐 하는 게 문제예요. 세계화라는 흐름 속에서 개별국가가 대응해야 할 문제가 있는데, 일종의 거버넌스(governance)적인 측면에서 보면 개별국가를 넘어서는 지역 거버넌스, 또 글로벌 거버넌스가 있겠죠. 대응이나 전략 차원에서는 그것을 동시에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개별국가들이 조약으로 집합적인 대응을 하기도 하지만 지금 큰 흐름은 지역통합인데, 저는 주변국들과의 공존적 세계화가 필요하다고 봐요. 과거 산업주의시대 혹은 제국주의시대에는 시장이 군사적인 약육강식으로 나타났고, 세계화의 진행과 함께 국제정치학에서 일부 리얼리즘을 신봉하는 그룹도 그러한 약육강식을 강조하고 있죠. 미국의 네오콘(neo-cons, 신보수주의자)들의 대응에서 그런 흐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세계를 화해하고 협력하는 구조로 만드는 흐름과 무력으로 자기들 질서를 강요하는 흐름이 있을 수 있는데, 개별국가들이 세계화 속에서 관계를 맺는 방법에서 두 가지 양상이 나타날 수 있다고 봐요. 그래서 공존적 세계화와 갈등적 세계화로 나눌 수 있다면 지역공동체가 집합적으로 공존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서도 논의했으면 합니다.

지금 저희는 국민통합과 국가경쟁력 두 가지 목표를 추구하고 있는데 사실 어마어마하게 큰 목표지요. 지금 생각은 대략 이렇습니다. 인구집중이 진행되니까 수도권과 비수도권 사이의 대립구도가 생기고, 비수도권 내에서도 부산·대구·광주 등 광역대도시와 그외 지역 사이의 불균형이 있어요. 게다가 중앙집중체제이기 때문에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와의 모순이 있어요. 그런데 정치적으로 드러날 때는 이것이 과거 독재시대의 유산으로 영·호남의 지역주의로 나타나 영남정권, 호남정권이 서곤 했죠. 지금은 영남 사람이 호남과 충청도 표를 얻어서 대통령이 됐는데, 최근에 본인이 나는 영남사람도 아니고 호남사람도 아닌 묘한 입장에 있다는 얘기를 하셨지요. 저는 영·호남의 갈등보다 훨씬 더 구조적이고 근본적인 모순이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격차와 대립, 또 중앙집권화된 구조와 왜소한 지방 사이의 갈등이라고 봅니다. 이런 불균형과 갈등구조가 존재하는 한 엄격한 의미의 국민통합은 어렵지 않을까 해요. 그래서 일차로 지역간의 불균형을 조정하기 위해 몇가지 수단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낙후도(落後度)를 측정해서–대개 낙후된 지역들은 태백산맥과 지리산 일대의 산악지역과 농업을 주로 하는 전남북, 충남, 경남북의 일부 지역이지요–낙후도가 높은 지역에 대해서는 별도의 재정지원과 기반을 갖추게 하는 정책을 통해서 지역의 경제적 자생력을 높이고 지역간 격차를 줄이려는 것이죠. 61년부터 지금까지 약 40년 동안 이루어진 불균형 성장을 교정하는 데에는 시간이 상당히 걸리리라고 봅니다만 지역간 불균형을 줄임으로써 국민통합을 이루는 단초를 마련하자는 것이 하나 있고요.

또 하나는 국가경쟁력인데 새로운 국가발전전략이라고 보는 부분이죠. 과거 한국의 경제성장은 중국의 개방화 초기단계와 비슷했어요. 한국전쟁 이후 저급기술을 사오고 차관을 빌려오고 여기에 싼 노동력을 덧붙여 단순가공산업을 했던 거죠. 그래서 지금까지 발전해왔는데, 다음단계 발전의 핵심은 무엇일까 할 때 저는 혁신(innovation)일 거라고 봐요. 각 기업들이 혁신을 일으켜 새로운 기술과 새로운 제품, 새로운 공정을 개발하고 인적 자본을 육성해야 합니다. 국민 개개인의 기술능력과 교육수준을 강화해 인적 자원 수준을 높이고 기업에선 새로운 R&D(연구개발)가 일어나고 여기에 국내의 자본이 결합하는 그런 새로운 방식이 아니면 다음단계로 도약하기는 어려운데, 바로 한시간 거리의 중국에 값싼 노동력이 널려 있기 때문이죠. 세계화시대에는 자본의 유동성이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가기 때문에 자본을 한사코 잡아놓을 수가 없어요. 가령 삼성 같은 국내기업이 애국심이나 민족주의만으로 먹고살 수는 없잖아요. 경쟁이 심화되고 기업이 살아야 한다면 현재로선 값싼 노동력을 찾아 바깥으로 나갈 수밖에 없죠. 그래서 국내자본이 높은 교육을 받은 고급인력과 결합되어 많은 혁신과 연결되는 구조를 만들어내야 한다고 봐요. 그런 일반적인 과정 중의 하나로 지역혁신체계(Regional Innovation System)라고 부르는 것이 있어요. 제가 최근 유럽에 가서 보니 거의 모든 나라의 키워드가 혁신이고, 또 지역발전전략에 있어서도 어떻게 지역단위에서 지역혁신체계를 만들어내느냐 하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지역혁신체계는 대개 지방대학이 중심이 되어 거기에 지방의 기업, 지자체, 지역의 다양한 연구소 등이 결합해서 아주 활발한 상호작용, 공동학습, 혁신창출과 활용 등이 일어나는데 이것이 집약적으로 나타난 곳이 미국의 씰리콘 밸리라든지 각종 싸이언스 파크라든지 또 무슨 리써치 파크라든지 하는 것이에요. 씰리콘 밸리는 자생적으로 생긴 것이지만 나머지는 거의가 정부와 지자체가 의도적으로 싸이트(site)를 조성하고 조건을 만들어주고 있죠. 저희들이 지금 역점을 두는 사업은 바로 이런 것들입니다. 지금 지역이 다 죽어가고 사람도 기업도 모두 서울로 모이니 시간이 걸리더라도 지역단위에서 새로운 R&D를 이루어내고 대학과 기업이 결합된 클러스터(cluster)가 형성될 수 있도록 돕는 작업을 하자는 것이죠. 이를 통해서 지역경제가 살고 이것이 전체 국민경제와 연결이 되어서 국가경쟁력을 높이는 길이 가능하지 않겠는가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역균형발전과 국가경쟁력 동시달성의 전략은 있는가

 

백낙청 세계화의 대세 속에서 한국경제가 종전 방식으로는 한계에 도달했다는 것은 아까 김교수께서도 첫머리에 지적하신 일이고 뭔가 전국적으로 균형잡힌 새로운 모델로 전환해야 한다는 말에는 원칙적으로 다 동의하시리라 믿습니다. 그런데 제가 질문했던 것은, 우리가 경쟁에 쫓기면서 살아남기에 급급하다보면 어떻게 하는 게 나은지를 뻔히 알면서도 못하는 경우가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국내상황만 본다면 이제는 지방분권 해야 하고 균형도 잡아야 하고 뒤떨어진 고장에 대해서 적극적인 시정조치를 해서 보조도 더 해줘야 하지만, 세계화의 험한 파도가 몰아치는 한가운데서 그런 것을 수행할 수 있는 현실적인 계획과 경륜이 있는가라는 거지요. 가령 국가균형발전을 위한 방안으로 ‘선 지방육성, 후 수도권 계획적 관리’라는 걸 내거시지 않았어요? 거기에 입각해 이번에 특별법안이 마련돼서 엊그제(10월 15일) 국무회의를 통과한 것으로 아는데 벌써부터 수도권에서 반발이 심하지 않습니까? 수도권에서는 오히려 역차별이라고 들고나오는데, 수도권의 집단이기주의랄까 하는 것도 분명히 작용하고 있습니다만, 다른 한편으로는 세계화의 대세 속에서 우리가 수도권집중을 통해 그나마 일정한 경쟁력을 갖추었는데 비록 그 전략이 한계에 다다랐다고는 하지만 믿을 만한 대책도 없이 수도권의 경쟁력마저 깨버리면 되겠느냐는 명분도 있을 것 같거든요.

 

성경륭 혹시 자원을 수도권에 집중해서 키워야 하는데, 지방에다 분산시킴으로써 뒤처진다는 말씀이십니까?

 

백낙청 지금 수도권에서 반발하는 분들의 입장을 제가 정확하게 알고 있는 건 아니고요. 어쨌든 수도권 집중육성이라든가 영호남간의 발전의 격차라든가 농촌과 도시 사이의 격차, 이 모든 것이 그 자체로 바람직한 장기전략은 못되지만, 우리 사회가 어떤 단계에서 세계화에 적응하며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 해온 결과인 건 사실이지요.지금은 경쟁력 차원에서도 어떤 한계에 도달했다는 점은 인정하는데 이것을 해소하는 정부측의 구상이 얼마나 신뢰를 줄 수 있는지를 한번 논의해보자는 거지요.

 

박세일 아주 중요한 문제를 제기하셨는데 제 생각을 간단히 말씀드리겠습니다. 국내 불균형과 불평등 문제를 세계화시대에 어떻게 다룰 것인가 하는 문제는 한편으로는 경쟁과 효율을 추구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형평과 정의, 국민통합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저는 세계화시대에 한국사회의 톱(top) 부분을 세계의 톱 부분과 일치시키는 노력이 우선 급하다고 봅니다. 동시에 국내에서 뒤떨어진 부분을 국내 최고로 끌어올리려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봐요. 서울대의 문제는 서울대가 국내 대학들과 격차가 큰 것이 문제가 아니라 세계 최고수준의 대학에 못 미치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서울대는 세계 최고대학과의 격차를 줄이려고 노력해야 하고, 동시에 서울대와 차이가 있는 대학은 서울대 수준으로 끌어올리려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기본시각과 철학을 그런 식으로 잡아야 할 것 같아요. 형평이라든가 불평등 문제에 대해 관심있는 분들 중 많은 경우 올라간 층은 끌어내리고 밑에 있는 것은 끌어올리고 하는 식으로 문제를 풀려고 하는데 그러면 안된다고 보는 거죠. 서울대는 세계 최고수준의 대학과 경쟁할 수 있는 우수 인재를 과연 길러내고 있느냐에 촛점을 맞춰 나아가는 것이 저는 바람직다고 생각하는데요. 다만 이 그 과정에서 세계 최고수준을 향해 앞서가는 자를 정부가 지원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그것은 민간의 자원과 민간의 활력을 가지고 시장 메커니즘 속에서 얼마든지 해낼 수가 있습니다. 정부는 앞서가는 그룹에 대하여 불필요한 규제나 발목 잡는 일만 안하면 좋겠습니다. 규제완화를 통하여 민간의 자원이나 활력이 동원될 수 있도록 만들면 되는 거죠. 정부가 가지고 있는 제한된 자원을 가지고 신경써야 할 것은 뒤떨어진 부분을 끌어올리는 작업입니다. 이것이 세계화시대에 국민통합을 꾀하고 국가경쟁력을 높이는 하나의 기본방향이지 않을까 합니다.

 

백낙청 여기에 서울대 안 나온 사람은 저 하나뿐인데(웃음), 그나마 저도 서울대 교수로 오래 재직하다가 얼마 전 퇴임을 했으니 이 좌담이 서울대 문제를 논하기에 적절한 구성은 아닌 것 같아요.(웃음) 지금 박선생님이 말씀하신 것도 충분히 설득력있는 주장인데, 다만 서울대가 세계 일류대학 수준에 가지 못하는 이유 중에 하나로 서울대와 나머지 대학들의 격차가 너무 크다는 점도 지적됩니다. 그래서 그 격차를 줄이는 것 자체가 서울대의 경쟁력을 높이는 작업이라는 논리도 있어요. 서울대 경우는 하나의 비유인데, 한국사회의 공간전략에 관해 말한다면 수도권의 경쟁력을 줄이지 않으면서 지방을 키우고 그래서 균형을 잡아주는 일이 필요하다는 데 모두들 동의하실 텐데, 과연 그런 방향으로 가고 있는가, 그리로 가기 위해 어떤 방법이 필요한가 하는 거지요. 가령 김석철 교수는 지난번 창비(2003년 가을호)에서 새만금에 대한 구상을 밝히면서 수도권 문제를 길게 언급하진 않으셨지만, 수도권집중이 지나쳐서 전국이 황폐화되는 문제점을 지적하며 ‘지역중심’을 만드는 것과 ‘지역분배’는 다르다고 하셨지요. 구체적으로 어떤 생각이신지요?

 

김석철 박교수님이 얘기했던 세계화 문제와 성교수님이 얘기했던 수도권과 지방의 균형발전 문제를 하나의 시각으로 같이 진행했으면 하는데요. 세계화를 우리가 좀 추상적인 화두같이 생각하지는 않는지요? 세계화라는 것은 이미 박정희 대통령이 수출입국을 지향할 때 시작된 겁니다. 수출액이 1900억 달러면 산업적으로 이미 세계화가 크게 이루어진 것입니다.국제적인 교역과 교류뿐 아니라 의식 속에서 한반도에 국한됐던 관심이 세계 전체로 나아가는 것도 세계화죠. 제가 보기에 한국 사람들은 세계화가 많이 됐습니다. 베네찌아에 있으면서 보니 그들 대부분이 한국의 분단을 몰라요. 이라크전쟁이 한창일 때도 관심이 없어요. 축구할 때나 다른 나라에 관심이 있지 정작 전세계 사람들이 다 오는 도시에서 세계에 대한 관심이 없습니다. 우리는 굉장히 관심이 많잖아요. 그러니까 의식의 세계화는 상당부분 이루어졌는데, 문제는 경제의 하드웨어인 도시의 세계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에요. 지방분권 혹은 균형발전을 얘기할 때 세계화라는 관점에서 먼저 봐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그런데 세계화가 계속 진행되어왔지만 정작 그것이 한반도 공간전략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 것은 중국으로 인해서입니다. 따라서 지금 모든 것을 다시 생각해보자는 것이죠. 세계화의 관점 속에서 한반도 전략을 구상할 때 중국을 가장 중요한 상대로 보자는 거예요. 앞으로 우리가 진행하는 어떠한 산업도 중국과의 경쟁관계에 놓이게 되어 있거든요. 일본이나 미국의 경우에는 우리가 뒤를 따라가는 것이었고 거기에서 넘쳐나오는 것을 받으면 되니까 그렇게 심각할 게 없었는데 중국과의 관계는 전혀 다릅니다. 세계화의 문제와 중국의 문제와 한반도의 균형발전 문제는 같이 생각해봐야 할 문제입니다.

 

 

수도권정책의 취지와 고민

 

박세일 아까 제가 교육문제를 예로 들었습니다만 수도권 문제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앞으로 동북아 중심국가를 만든다 할 때 중심지에 있는 대도시로서 모든 것이 제대로 갖춰져 있고 세계도시로서의 국제경쟁력을 가지고 있는가? 금융허브를 만든다 하는데 과연 외국인들과 그들의 가족이 여기 와서 살고 즐길 수 있는가? 제조업뿐만 아니라 첨단 써비스와 교육의 중심지를 만든다고 하는데 서울이 과연 그러한 쎈터 역할을 할 수 있는 사회·문화적 인프라가 있는가? 이런 차원에서 서울의 국제경쟁력을 높이는 방안을 우선 깊이 생각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정부가 특별히 새로운 투자를 하지 않아도 민간부문이 투자할 수 있도록 불필요한 규제는 풀어야 서울을 세계적인 도시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이지요.

 

백낙청 예. 서울대를 얘기하실 때 그것이 요점이었는데 제가 다른 방향으로 끌고 갔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서울대처럼 앞서 있는 부분은 정부가 지원해줄 필요가 없고 민간이 나서서 하도록 하고 나머지 균형잡아주는 일은 정부가 해야 한다는 취지셨지요. 이런 원칙에 비춘다면 정부의 지역균형정책도 수도권에 대해서는 더이상 지원을 안하겠다 하면 모순될 것이 없는데, 비판하는 사람들은 정부가 지원을 안하는 정도가 아니라 각종 규제를 통해 발목을 잡는다고 주장하고 있지요. 실은 수도권에 대한 지원이 없다고 할 수 있는지도 의문이긴 하지만요.

 

성경륭 저는 박교수님 말씀에 논리적으로는 거의 동의합니다. 세계화가 진행되고 있고 이제는 우리가 세계화를 이념적으로 동의하느냐, 또는 인식의 수준이 어디까지 되느냐에 관계없이 어쨌든 우리가 대응해나가야 하는 것이지 인정하기 싫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죠. 그 속에서 앞선 부문은 시장 메커니즘으로 가고 뒤처진 부문은 국가가 이끌자는 것도 저는 정확한 말씀이라고 보는데, 다만 국내상황이 생각보다는 좀더 복잡한 것 같습니다. 최고수준에 있는 부문에서는 규제를 푸는 것은 물론이고 국가적 자원도 더 집중해달라고 요구합니다. 모든 중요한 것을 다 해달라고 하더라고요. 재정지원은 안해줘도 되니까 꼭 필요한 규제만 하고 더는 하지 말아달라, 이게 아닌 것 같습니다. 서울 주요 대학의 어느 학장님을 어떤 토론자리에서 만났는데 “당신들 지방대학만 키워서 어떻게 하려고 하느냐? 잘나가는 데는 밀어서 더 잘나가게 해야지” 그런 얘기를 하시더라고요. 지방을 돕는 것은 웨이스트(waste, 낭비) 비슷하게 효율성이 낮고, 긴급한 자금을 잘못 써서 투자효율을 떨어뜨리는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은 것 같습니다.

둘째는 규제를 완화하는 문제인데, 지방을 키우는 아주 강력하고 효과적인 정책이 작동이 안되는 상태에서 규제를 풀면 어떻게 될까요? 지금 수도권을 규제하는 장치가 많이 있습니다. 공장 총량제도 있고, 대학은 손도 못 대고, 몇 업종을 제외하고는 기업의 신규설립이 안되는 등 굉장히 강력한 억제장치가 있는데도 계속 늘어나요. 이 빗장을 푼다면 통제하기 어려운 상황이 올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희 위원회가 세운 모델은 지방을 무작정 지원하는 것이 아니고 일종의 내셔널 미니멈(national minimum)을 정하는 거예요. 그래서 중요한 분야의 국민 최저선, 즉 어느 지역에 살더라도 도로라든지 교육, 의료부문 등에서 이 최저선을 충족할 수 있도록 하고 복지정책이 필요할 때 국민 최저선 원리를 적용하자는 거죠. 그것 외에는 철저하게 효율성과 경쟁력을 중심으로, 아까 말씀드린 대로 지역단위의 혁신능력을 증진해서 중·장기적으로는 국가재정에 대한 의존성을 줄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정책의 기본틀입니다. 다만 문제가 되는 것은 현실에서 앞서나가는 부분이 국가 공공재정을 더 달라고 하는 것, 또 지방에 대한 투자를 낭비요인으로 보면서 규제를 풀라고 하는 것 등입니다. 국가균형발전특별법이 수도권을 규제하는 것이라며 어제(10월 17일) 전 신문에 광고 내고 또 대규모 항의집회를 하겠다고 하는데, 거기에는 지금 중국이 뜨는데 빨리 우리를 풀어주고 지원해야지 왜 낭비하는가, 이런 것이 있어요. 상당부분은 자기들 이해관계와 연관되지만 밖으로 내세우는 논리는 구국(救國)이죠. 우리가 열심히 잘 벌어서 세금 내고 지방 살려줄 테니 간섭하지 말라는 거예요. 그런 사고와 논리이기 때문에 저희들이 대화하고 풀어나가는 것이 참 어렵습니다.

그리고 이제까지 수도권에 대해서는 규제 일변도로 해왔는데 효과가 별로 없었죠. 공장이 덜 설립된 것도 아니고, 난개발이 안된 것도 아니고, 인구유입을 줄인 것도 아니고…… 그나마 규제장치가 없었다면 더 엉망이 됐겠지만 큰 성과는 없었던 것 같아요. 저희들은 수도권 정책을 4단계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첫번째는 수도권 인구의 안정화·적정화입니다. 수도권 인구가 작년 말 기준으로 47.2%인데 인구가 적정 수준으로 안정화되지 않으면 도저히 수도권과 지방 사이의 격차와 갈등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진행하는 정책이 신행정수도건설, 공공기관이전 정책 등입니다. 두번째로 서울시에 있는 민간기업들이 지방으로 이전하면 인쎈티브를 제공하는 정책이 인구안정화 정책과 관련되어 있어요. 인구안정화 정책과 병행해서 일정 시차를 두고 수도권규제개혁을 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규제개혁은 필요성과 효과성을 따져서 체계적으로 하려고 합니다. 세번째가 과학적인 도시계획과 관리를 하자는 것입니다. 서울이라는 곳은 산동네도 있고 공장도 있고 주거지와 함께 학교와 술집도 있어요. 강남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에 이런 문제가 있기 때문에 수도권 주민들의 삶의 질과 쾌적성을 증진하는 것을 3단계의 과제로 생각하고 있어요. 네번째가 수도권의 경쟁력 부분입니다. 저희들 생각은 양적으로 팽창하는 수도권이 아닌 인구 개개인의 생산성, 부가가치, 효율성 등을 높이는 쪽으로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싱가포르 인구가 3백만명 정도 되는데 비슷한 규모의 부산이 싱가포르와 어디에서 차이가 나느냐 하면 결국 인구 1인당 생산성이죠.“계속 규제를 완화해라, 공장도 더 짓겠다, 더 생산해서 나라를 위해 봉사하겠다”라는 서울과 경기도의 일부 주장에 대해 “우리는 생각이 다르다, 여러분들은 인구가 늘어나는 것을 전제로 해서 정책을 펴길 바라는데 그것은 부동산을 가진 일부 사람들의 이익에 봉사할지는 모르지만 생활자와 나라 전체의 입장에서는 절대 생산적인 것이 아니다, 그러니까 인구를 안정화하는 문제에 대해서 합의를 해주시면 다음에 생산성을 높이고 경쟁력을 증진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국가가 적극적으로 협조하고 뒷받침하겠다”라는 입장이죠.

 

 

수도권집중 해소의 다른 길은 없는가

 

김석철 1970년에 바로 이 자리(한국프레스쎈터)에서 ‘서울마스터플랜 1980’ 전시회를 했습니다.당시 자동차는 20만대, 인구는 4백만 이상으로는 서울이 확대되지 않아야 한다는 전제하에 마스터플랜을 짰습니다. 여의도 마스터플랜 책임자로 일한 이듬해에 서울 마스터플랜의 시안을 만들어 전시했던 것입니다. 여의도 마스터플랜은 4대문 안의 서울이 너무 과밀하니까 미래를 대비해서 새로운 도심을 만드는 것이었는데, 그때 저는 서울의 마스터플랜을 먼저 만든 후에 해야지 여의도를 도시로 만드는 도시공학적 방법만 갖고는 안될 것이며 나아가 한반도의 공간전략 아래 이걸 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했는데 그게 무시가 됐어요.

 

성경륭 그때 그것이 채택이 됐으면 이런 문제는 없었을 텐데요.(웃음)

 

김석철 당시 제가 생각한 것은 여의도에 신도심을 만들고 서울의 구도심과 신도심을 선형(線形)으로 연결해서 인천까지 끌고 나가 바다에 닿게 하는 안이었어요. 국토 전체를 놓고 봤을 때, 그리고 앞으로 2,30년 후까지도 서울 인구는 4백만 정도가 이상적이라고 본 것은 국토의 어느 부분에 지나치게 인구가 집중한다는 얘기는 곧 불균형을 초래하게 마련이기 때문이었지요. 이걸 하면 저것이 가게 마련이고, 이것이 가면 저것이 움직이게 마련이니까 4백만으로 유지하는 것이 전체적으로 놓고 볼 때 바람직하다는 거였죠.

분단 이후 서울로의 인구집중이 더 강화되었는데 일제시대와 비교해보면 엄청납니다. 저는 인구집중의 가장 큰 원인을 분단이라고 봅니다. 해방 전의 기록들을 보면 공업분산이라든지 인구분산이라든지 교육분산 같은 것이 철저하게 이루어져 있습니다. 중요한 학교들이 원산·평양·대구·전주 등에 고루 세워졌습니다. 여의도계획 이후 33년 지난 오늘 좌담을 하면서 새삼 느끼는 건 경제관료들이 결국 수도권집중을 주도해왔다는 겁니다. 당장에 효율적이니까요. 그러나 정부는 10년,20년 후를 내다보고 어느 것이 더 타당한가를 살펴야겠죠. 민간에서는 그렇게 하기가 어려워요. 더구나 중국의 산업화·도시화가 엄청난 규모로 이루어져 우리와 경쟁하고 또 어떤 부문에서는 앞서가는 상황에서는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해야 할 요소들이 많지 않은가 합니다. 예를 들어 지금 인천항을 계속 증설하지만 앞으로 늘어날 물류를 봐서는 인천항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결국 수도권집중의 맹점이, 인천항만 잘되니까 계속 키운다는 것인데 이러면 단순히 물류만을 담당하는 항만으로 전락하고 말아요. 로테르담(Rotterdam)같이 물류가 2단계, 3단계로 가서 부가가치를 높이려면 적절한 도시공간이 이어지고 인구이동이 뒤따라야 하는데, 우리는 당장 잘되는 데만 투자해 수도권으로 집중한 것이 지금까지의 정책이었어요. 국토의 균형개발, 인구의 적절한 배분, 미래를 내다보는 큰 틀 속에서 중국이라는 강력한 경쟁자를 염두에 두고 보는 시각도 있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는 다들 수도권이 중국과 경쟁하려면 지금도 부족하다, 더 키워야 한다 하는데 과연 그런지는 모르겠어요. 울산·포항의 경쟁력은 어떤 점에서는 수도권보다 우수합니다. 부산·광양은 물류클러스터도 강력하고 세계경쟁력도 가지고 있죠. 군사정부가 경부선 축으로 개발을 집중하지 않고 포항제철을 광양이나 목포에 건설했으면 전혀 사정이 달라졌을 거예요. 저는 상황이 달라진 이 싯점에서 한반도 공간전략을 다시 기획해야 하지 않겠는가 생각합니다.

 

백낙청 좀더 구체적으로 들어가서 방금 성교수께서 말씀하신 수도권정책, 또 그것의 아주 중요한 표현의 하나로서 신행정수도 건설안, 이런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시나요?

 

김석철 아까 말씀하실 때 빠리를 예로 드셨는데 기본적으로 프랑스는 농업국가입니다. 물론 다른 큰 산업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모든 사람들의 의식을 지배하는 국가의 큰 틀이 그렇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계속 중앙집권이었고, 중앙집권이 오래 계속되면서 몸은 시골에 살아도 사람들의 의식은 항상 빠리에 가 있었어요. 그런데 빠리가 과밀해지고 일종의 불균형을 초래하니까 빠리를 일 드 프랑스(Ile de France)라는 이름으로 확대합니다. 그러니까 수도권을 더 키워서 빠리 집중을 희석해버린 겁니다. 지금 중국도 그런 방향으로 가고 있는데 만약 자유로운 인구이동을 허가했다면 뻬이징(北京)과 샹하이(上海)엔 엄청난 사태가 생겼을 겁니다. 그런데도 지금 샹하이 인구의 10%에서 15%가 유랑민 즉 번지가 없는 사람들입니다. 서울 인구를 4백만으로 제한을 하자 해도 결국 1천1백만까지 왔듯이 그렇게 모여든 것이죠. 만약 그렇게 끊임없이 유입된다면 뻬이징과 톈진(天津)과 탕샨(唐山)을 묶는 메가폴리스 정책을 펴 오히려 뻬이징을 키워버리는 것도 방법입니다. 샹하이도 난징(南京)까지 포함해 인구 3천5백만 정도로 키워버리면 모든 산업정책, 경제정책들이 그것을 하나의 단위로 생각하게 돼요. 한편 우리나라의 경우 인구가 3백만은 되어야 지방분권이 가능한 스케일이 되는데 50만 제주도가 지방분권을 말하고 균형발전을 주장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그러니까 정치적 고려에 의해서 갈가리 나누어진 지방분권 자체도 문제가 있고, 일극으로 과도하게 집중되어 있는 것도 문제거든요. 결국 수도권집중과 지역불균형을 해결하자면 세계화된, 자기 스스로의 몫을 할 수 있는 경제권으로의 재편이 먼저 필요합니다. 가령 부산의 경쟁력을 키우려면 광양과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지방분권의 주체인 도(道) 단위의 분화를 오히려 바꾸어야 할 때입니다. 그것이 큰 장기전략이 아닌가 해요. 그중 하나가 수도권을 확대하는 것이고요. 따라서 행정수도이전은 수도권을 현재 상태로 둔다는 전제하에 진행하는 것이기 때문에 장기전략이 될 수 없어요. 장기전략이라면 1백년 사이에 엄청나게 달라진 한반도의 여러가지 여건을 새롭게 생각하는 것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백낙청 너무 큰 얘기를 하다보면 막연해질 우려가 있어서 제가 좀 끼어들까 하는데요. 김교수께서 수도권을 오히려 키우면서 문제를 해결한다고 할 때는 지방에도 자생력을 갖는 큰 규모의 권역들이 생기는 것을 전제로 하고 계신데 거기에 대해서 나중에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시고요. 또, 수도권을 키워서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도 좀 설명이 필요할 것 같군요. 짐작컨대는 서울과 인천이 커지면서 그 사이의 농촌이 다 없어지고 하나의 거대한 도시구역이 자리잡아버린 것과는 다른 발상이실 텐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다른지가 궁금하고요. 또하나는 어떤 개혁을 추진하건 우리의 실행능력을 감안해야 하는데, 좋은 발상이 오히려 빌미가 돼서 수도권집중을 심화시키고 일극체제를 더 강화하는 결과를 초래할 우려가 다분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도 드네요.

 

김석철 일 드 프랑스 계획이나 뻬이징·톈진·탕샨을 묶는 계획은 도시와 농촌의 공존을 전제로 전체적인 전략을 새로 수립하는 겁니다. 수도권 총량규제를 하면서 정작 난개발로 인한 전면도시화를 방치하는 것은 문제입니다. 동해안을 따라 강원도와 경상북도와 울산까지를 묶는 동해경제권과 부산에서부터 광양·여수로 이어지는 경제권과 목포에서 새만금까지 이어지는 경제권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수도권은 동쪽으로는 춘천, 북쪽으로는 휴전선까지 포함하고 남으로는 대전 일대까지 포함하는 권역을 생각하되 수도권 내부를 재조정하고 특화하자는 것입니다. 애초에 공단을 만들 때 포항·울산·구미가 지금과 같이 중공업·철강·전자로 특화되지는 않았습니다. 역시 시멘트도 들어가고 섬유도 들어가고 이것저것 다 들어가다가 어느 단계에서 서서히 산업 클러스터로 되었어요. 수도권도 수원의 전자산업을 아산까지 확장하는 그런 전략이 필요하지 않을까 합니다. 만약 그렇게 될 경우에 저는 서울 중심의 수도권 인구가 1천5백만까지 간다고 봅니다. 결국 범위를 한정하고 끝까지 억제하기보다는 오히려 범위를 확대해서 농촌지역을 살리자는 겁니다. 지금까지 했던 정책 중에 그린벨트정책같이 잘된 것은 없다고 봅니다. 그마저 없었다면 아수라장이 됐을 거예요. 제가 말씀드린 제2, 제3의 그린벨트를 만들면서 도시권역을 확대해가면 수도권 인구를 1천5백만 정도로 묶어두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백낙청 그런데 수도권 인구가 이미 2천만이 넘어서 있는데 1천5백만으로 줄인다는 말씀이세요?

 

김석철 아닙니다.1천5백만이라는 것은 수도권의 핵심지역인 서울 주변의 인구죠. 수도권을 지금 크기의 1.5배로 확대해도 인구는 10%도 늘지 않습니다. 수도권을 키우면서 중심을 강화하면 전체적으로 좀더 낮은 밀도를 유지할 수 있고 도시와 농촌이 수도권 안에 공존하면서 경쟁력을 키울 수 있습니다. 수도권을 여러 곳으로 나눠서 볼 때 춘천 같은 데는 수도권에 편입시킨다 하더라도 인구가 많지 않지만 새로운 IT산업을 일으킬 수 있고,인구는 적지만 연세대 분교가 감으로써 일종의 산·학 클러스터를 이룬 원주같이 수도권에 가까운 대학에서는 산·학 클러스터가 가능합니다. 그러나 아주 특화되기 전에는 지방대학에서의 산학협동은 아직 어렵습니다. 제 생각은 수도권 인구를 1천5백만 정도로 집중시키면서 오히려 외곽으로 밀어내는 거죠. 인구가 수도권에 2천만이 있어서 문제가 아니라 한곳에 몰려 있어서 문제예요. 지금 서울과 경기도 사이를 넘나드는 교통량이 하루에 이백만인데, 이것은 엄청난 비효율이거든요. 노동문제 때문에 나라가 아주 어려워진 것처럼 말하지만 물류비용이 노동비용보다 훨씬 많습니다. 전국토의 공간구조 자체가 이만한 경제규모를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비효율적이어서, 기업들을 조사해보면 노임보다는 물류비가 훨씬 많이 나갑니다. 노임 좀 덜 주려고 애쓸 필요 없이 균형발전전략만 제대로 세우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백낙청 훌륭한 구상이 나왔을 때 어떻게든 실현되도록 해보려 하지 않고 우리 실력에 그게 되겠느냐고 미리부터 ‘비판적’으로 나오는 태도는 제가 아주 혐오하는 지식인의 악습입니다만(웃음) 적극적인 자세를 가지면 가질수록 현실적 여건과 우리의 역량을 냉정하게 점검해볼 필요가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꼭 김교수 구상대로 안 가더라도 그런 방향으로 어떤 큰 그림을 그려서 밀고 나간다고 할 때 우리 내부의 사회씨스템이라든가 인재 풀(pool)이라든가 이런 것이 지금보다는 훨씬 향상되어야 할 건 분명하지요. 그런 측면은 어떻게들 보시나요? 김교수의 구상 자체에 대해서도 다른 의견이 있으면 말씀해주시고요.

 

 

행정수도이전과 공론형성

 

박세일 제가 보기에 행정수도이전 문제의 경우 정책결정과정에서 정치적 요소나 고려가 과도하게 나타나고 있는 것 같아요. 민주화시대에는 개별정책에서의 정치적 고려가 과거 권위주의시대 때보다 더 심한 것 같아요. 정책결정과정의 또다른 특징으로 이익집단들의 참여가 많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는 민주화 과정에서 나타나는 불가피한 측면이지만 기본적으로 이익집단은 부분이익을 대표합니다. 제가 보기에 현재 정책결정과정에서 전문가집단의 참여는 과거보다는 훨씬 줄어들었어요. 그런데 전문가는 전체이익을 대변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사안에 대해서 가장 정확하게 아는 사람입니다. 전체와 개별의 문제를 같이 이해할 수 있는 사람들이 전문가라고 한다면 앞으로의 정책결정과정에서 이익집단의 얘기는 자세히 듣되 정치적 고려는 줄이고 최종적인 결정을 전문가들의 공론에 따라서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행정수도이전 문제에서 실제로 국가 전체의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전문가들의 충분한 연구와 논의가 뒷받침되었는가 하는 데엔 자신이 없습니다. 그래서 선거과정에서 나온 하나의 공약이라 하더라도 무조건 집행하는 것이 아니라, 한번은 전문가들의 철저하고 치밀한 검토를 거쳐서, 즉 공론화 과정을 통하여 확정하는 것이 옳지 않은가 생각합니다. 저는 여론과 공론을 구별합니다. 여론은 영어로 얘기하면 퍼블릭 오피니언(public opinion), 다수의 견해입니다. 저는 공론을 퍼블릭 저지먼트(public judgement)라고 번역을 합니다만, 그 분야 전문가들이 심사숙고한 의견을 공론이라고 봅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정책결정과정에서 여론에 많이 의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여론에 따라서 정하면 국가정책결정자들은 뭣하러 그 자리에 앉아 있느냐 하는 얘기가 나오는 것입니다. 옛날 조선시대만 해도 선비들의 공론에 따라서 나라의 정책방향을 정하지 않았습니까? 그 과정에서 국시(國是)가 나오는 것이지요. 오늘날 전문가들에 대한 존중이 많이 퇴색되고 있는데 그것을 빨리 고쳐야 된다고 봅니다. 그런 차원에서 행정수도이전 문제도 사전단계로 전문가들의 다방면적인 의견 수렴과 검토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백낙청 이 문제에 관해서는 사실 여론조차 제대로 수렴되었다고 보기는 어렵지 않습니까? 원래 박정희 대통령 때 행정수도이전 구상은 분단체제의 고착을 전제하고 박대통령이 영구집권하는 것을 전제로 주로 안보상의 이유에서 대전 근방으로 이전한다는 계획이었는데, 사회가 민주화되고 분단체제 전체가 변모하고 있는 이 싯점에서 충청지역으로 간다는 전혀 다른 계획이 과연 얼마나 충분한 검토가 있었는지 저도 의문입니다. 물론 인구분산, 지방분권 등의 명분 자체를 부인하는 건 아니지만요.

 

성경륭 박교수님이나 백교수님 말씀은 참 따가운 지적입니다. 그러나 일단 대통령선거에서 국민들의 투표에 의해서 일차검증이 됐다고 판단할 수 있을 것 같고요. 다른 하나는 이번에 법안이 제출되어 국무회의에서 통과됐는데, 법안이 만약 국회에서 통과가 안되고 보류되거나 하면 여러가지 다각적인 논의를 하게 되겠죠. 전문가들 의견도 듣고 극단적인 경우에는 이 사안만 놓고 국민투표를 할 수도 있을 텐데, 그것은 예측할 수 없고요. 지금 신행정수도 건설은 부지선정의 기준, 신행정수도의 구성요소 등 여러 측면에서 많은 연구가 진행되더군요. 제가 읽은 책 중에 하바드대학의 그레고리 헨더슨(Gregory Henderson)이 1968년에 쓴 『한국, 소용돌이의 정치』(Korea:The Politics of the Vortex)가 있는데, 헨더슨은 그 책에서 나름대로 우리의 역사를 개관하고 박정희 3공화국까지 분석하고 있어요. 그분은 권력이 집중된 곳에서 인구와 자원을 빨아들이는 현상을 소용돌이 같은 것이라고 봐요. 한국역사에서는 중앙집권이 너무 강해 중앙과 서울로만 사람이 몰려들어 조선시대에는 당쟁으로 엄청나게 죽고 해방이후에도 마찬가지였죠. 재미있는 것은 이 책의 마지막 장이 분권화에 관한 것이에요. 68년 당시에 놀랍게도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분권화에 있다고 본 것이죠. 저는 헨더슨이 인용하는 정치학자의 글을 많이 읽었지만 90년대 중반까지 한번도 정치학자의 입으로 분권화를 얘기하는 사람을 만나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저희가 맡고 있는 공공기관 분산배치는 정확하게 헨더슨의 소용돌이 원리를 거꾸로 하는 겁니다. 중앙정부가 갖고 있는 권력과 권한을 지방으로 보내는 것이 분권이고, 그 위치를 옮기는 것이 분산인데, 두 가지가 다 인구분산, 자원분산에 효과가 있다고 보는 것이죠. 다만 이것을 보는 경제학자들의 시각과 여러 분야의 전문가의 시각이 있을 텐데 아까 말씀하신 대로 종합적인 검토과정이 좀더 필요하다는 점은 인정합니다.

 

백낙청 헨더슨이 한국사회에서 중앙으로 몰리는 현상은 잘 지적했습니다만, 제가 볼 때 조선시대부터 한국은 원래 그런 사회라는 점을 너무 강조하지 않았나 합니다. 조선왕조가 그 시대의 다른 나라들에 비해 중앙집권이 두드러진 나라이긴 하지만, 오늘날의 수도권 일극중심체제와는 거리가 먼 사회였지요. 아까 김교수가 지적하셨듯이 심지어 일제하 식민지 상황에서도 지금 같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세계화에 따른 경쟁이 격화되면서 후진국일수록 수도권에 집중해서 대응하기에 급급하다보니 좀더 균형잡힌 장기전략을 세울 수 없다는 일반적인 현상에다가, 한국은 분단으로 인해서 그것이 더 악화된 것이지요. 그래서 이 문제를 풀어가려면 역시 분단체제를 허물어가는 과정과 세계화에 적응하는 과정 속에서 균형발전을 어떻게 이룰 것인가 하는 종합적인 접근을 해야 되는데, 우리 정부가 과연 그런 종합적 접근을 하고 있는가 하는 거지요.가령 청와대 안의 위원회들만 하더라도, 국가균형발전 문제와 지방분권, 지속가능한 발전, 동북아경제중심 추진, 이런 것들이 전부 상호연결된 과제인데 위원회들이 따로따로 구성되어 있거든요. 이런 문제를 종합하는 일은 박교수님 지적대로 여론에 맡길 수 없는 문제고 전문가들의 철저한 검토가 필요하지만, 그렇다고 각분야의 전문가들이 전체이익을 고려하고 판단할 수 있는지도 의문이에요. 말하자면 종합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기본적인 교양과 경륜을 갖춘 전문가들이 필요한데, 우리가 정책결정과정에서 정치적인 고려를 너무 앞세우는 문제도 있습니다만 사실은 정말 제대로 기능할 수 있는 전문가집단이 거의 없다는 문제도 있지 않나 싶어요.

 

김석철 저는 행정수도 문제가 처음 거론됐을 때 이건 안되는 것이니까 생각할 필요가 없다고 쉽게 봐넘겼습니다. 77년 행정수도 마스터플랜 초기에는 참여를 안했지만 주요 중심지구 설계에는 참여를 해서 전모를 볼 수 있었는데 그때도 이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어요. 기업들이 참여해야 하는데 기업들은 안 가려고 했습니다. 더 심각하다고 느낀 것은 외국공관원들이 갈 생각이 없었다는 겁니다. 지금 서울에 와 있는 상당수 대사들의 경우 서울이 세계적 도시가 아니기 때문에 가족이 안 따라옵니다. 제가 주한 이딸리아 대사와 친한데 항상 하는 말이 아이들이 보고 싶다는 것이죠. 그러니까 지금의 서울은 더 세계적인 도시가 되어야 하는데 오히려 반대로 가고 있어요.(웃음) 정부청사는 이미 과천으로 가 있는 것 아닙니까? 그러니까 지금 옮긴다는 것은 청와대를 옮기겠다는 겁니다. 대통령 관저가 가고 외국공관이 간다는 얘기지요. 관공서를 그냥 분산하는 것하고는 다른 겁니다. 행정수도를 이전한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잘 모르는 채로 지금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 같아요.

 

성경륭 행정수도이전이란 기본적으로는 청와대와 행정부가 다 가는 것이죠. 외국공관은 그들 선택에 맡겨야 할 것이고요. 사법부와 입법부는 각 기관의 판단을 존중해야 하겠지만, 입법부는 함께 이전하는 것이 국정운영의 효율성을 위해 필요하다고 보는 것 같습니다. 외국공관들의 경우 불편함이 없도록 기본여건을 잘 만들어주어 같이 이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김석철 불편함이 없다고 말씀하시지만……

 

성경륭 그러나 신행정수도 건설의 의사결정 주체가 우리기 때문에 외국공관들의 불편을 이유로 행정수도이전이 곤란하다고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봐요. 외국공관들의 의견을 존중해야 하겠지만 그 기관들이 불편하다고 해서 우리들이 결정을 안하거나 미룰 수는 없는 것이지요.

 

김석철 그것은 주체성이라기보다 잘못 생각하는 거죠. 외국공관들은 바로 행정부 근처에 있어야 해요. 세계화시대에는 결국 다국적기업이 얼마나 참여하느냐에 한 국가의 성패가 달려 있습니다. 거기에 유리한 토대를 만들어야죠. 이만한 세계화를 이루어 세계적으로 경쟁하고 중국과 경쟁을 하고 동북아경제중심을 한다면서 외국공관이 오든 안 오든 자기들이 판단할 문제라고 하면 곤란하죠.

 

성경륭 우리가 그런 요소를 고려하는 것과……

 

김석철 서울에 오는 외국공관원도 가족을 못 데리고 오는 상황인데 새로 만든 도시라면 오죽하겠느냐 하는 겁니다. 기업들은 대사관을 통해서 들어오고 대사관과 수시로 협조를 합니다. 그리고 저는 아까 박교수님이 얘기한 공론이라는 것은 두 가지가 합쳐져야 한다고 봅니다. 지식인 내지는 이 사회를 끌고 갈 소양이 있는, 말하자면 유교사회에서는 군자라고 불렀던 계층과 그 사안에 대한 전문성을 가진 집단 간의 논의, 그것이 공론이라는 거죠. 전문가들의 의견은 왜곡되게 마련이고 어떤 분야에서는 전문가들의 수준이 아주 떨어질 수가 있거든요. 지금 행정수도이전에 대해서 제대로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다고 봅니다.제가 행정수도 얘기를 전문가라는 몇사람에게 해보면 관심도 없고 잘 몰라요. 공론이 없는 것, 그것이 문제입니다.

 

 

개혁세력을 어떻게 육성할 것인가

 

박세일 우리가 세계화를 배경으로 해서 동북아시대를 열고 국토의 균형발전 문제를 얘기하면서 수도권 문제 및 행정수도이전 문제를 거론할 때 또하나 생각해봐야 할 것이 있어요. 권위주의시대가 끝나면서 민주화시대로 들어오고, 세계화·정보화 시대가 열리면서 중국이 새롭게 대두되고 있고, 국내적으로 실업문제·교육문제·고령화문제 등이 심각해지는 등 여러가지 큰 변화의 와중에서 이를 정확히 읽고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하는 점은 굉장히 중요한 국가적 과제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변화, 개혁을 많이들 얘기하는데 개혁정책이 성공하는 경우보다는 실패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모두가 지금 심각하게 생각해보아야 할 것은 왜 우리 사회에는 상대적으로 정책실패가 많은가 하는 겁니다. 변화와 개혁은 국민도 요구하고 시대도 요구하는데 왜 제대로 되지 않을까 하는 문제입니다. 교육개혁을 수없이 이야기하지만 왜 안되는가? 모두가 노사협력이 중요하다고 하면서도 노사개혁은 왜 안되는가? 정부개혁이 시급하다고 하면서 왜 안되는가? 이에 대한 답은 기득권세력의 반대라든가 공론형성이 미흡하다든가 또는 정책책임자가 너무 자주 바뀐다든가 등등 여러가지 있겠습니다만, 제 생각에 가장 중요한 건 올바른 개혁세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에 정책 없이 정치를 하는 정치세력은 있습니다. 비전 없는 정치를 하는 정치세력은 있는데, 진정한 개혁세력은 적습니다. 비전을 만들 수 있고 정책을 입안하고 추진할 수 있는 현장감까지 갖춘 세력, 이론과 현실을 결합할 수 있는, 옛날식으로 얘기해서 문무를 겸한 정책세력은 아주 적습니다. 정책이라는 것은 뭐냐? 이것은 과학(science) 더하기 기술(art)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과학이나 이론만 갖고는 안되고 아트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아트라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경륜이라고도 현장경험 내지 지혜라고도 할 수 있겠죠. 이런 정책능력을 가진, 구체적으로 정책을 디자인하고 추진하고 여러 이해당사자를 설득하고 국민도 설득하는, 즉 공공이익에 서서 개별이익을 설득해나가는 세력, 자기 나름의 확고한 지적 확신과 경험적 자기 소신이 있는 이런 정책세력 내지 개혁세력이 우리 사회에 별로 없습니다. 저 자신도 속해 있습니다만 우리나라 학계는 사실 대체적으로 문약합니다. 추상적이고 구체적이지 않습니다. 반면에 관료는 수성(守成)세력입니다. 관료들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잘 유지하고 관리하는 데는 능하지만 위험부담을 안고 개혁에 뛰어들어서 개혁을 추동할 만한 분들은 아닙니다. 그리고 정치가들은 그동안 비전과 정책 없이 정치를 해왔습니다. 나라 전체의 중·장기 문제를 보고 비전과 전략을 만들지는 않았습니다. 따라서 우리나라에는 구체적인 정책을 디자인하고 추진하고 상호 점검하고 수정할 수 있는 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해요. 우리나라는 그런 정책세력, 개혁세력을 키우지 않았어요. 학계와 실무계가 따로 놀았습니다. 관료들은 학자들에게 비현실적이라고 하고, 학자들은 관료들에게 안주한다고 하고, 기업가와 학계도 다르고, 학계 안에서도 서로 옆 전공분야에 대해서 공부들을 안합니다.(웃음) 아까 백교수님이 말씀하셨듯이 전인적인 교양과 종합적인 시각을 가진 인재 자체도 부족하고, 실무감각과 비전을 가진 인재는 더 부족합니다. 그래서 시대는 변화하지만 변화를 이끌 인재가 없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이것은 하루 이틀에 해결될 문제는 아닙니다만 대단히 중요한 문제입니다.지금이라도 어떻게 그런 인재들을 양성할 것인가, 그리고 외국에서는 어떻게 하고 있는지 이런 것을 생각해볼 수 있는데요. 저는 외국의 두 가지 제도를 눈여겨보고 있습니다.

하나는 민간부문의 인디펜던트 싱크탱크(independent think tank)입니다. 정치적으로 중립적이고 경제적으로 독립된 민간부문의 두뇌집단들이죠. 워싱턴 시에는 국가정책을 연구하고 비판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민간 싱크탱크가 1백개 정도 있습니다. 그곳 사람들은 개별이익을 위해서라기보다는 전체이익의 관점에서 국가정책을 다루고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마셜 플랜의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마셜 플랜이란 2차대전 후 미국의 세계전략에서 매우 중요한 것인데, 사실 이 안을 처음에 건의한 곳은 브루킹스 연구소(Brookings Institute)라는 민간 싱크탱크였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전쟁에 이겼다고 흥분해 있을 때 이들은 앞으로의 세계를 미국이 어떻게 경영할 것인가를 고민했고, 결국은 유럽에 파트너를 두어야 하고 독일의 재건을 미국이 지원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죠. 마셜 플랜 속에는 독일과 미국의 차세대 지도자들의 교환 프로그램이 있는데 이것도 브루킹스의 안이었습니다. 그래서 미국정부는 마셜 플랜의 구체적인 작업을 브루킹스에 맡겼습니다. 그런 예는 한두 가지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나라의 미래를 생각하는 사람들이 모인 이런 조직은 정부의 연구소도 기업의 연구소도 아니고, 공적 대의(public cause)를 위해서 기부금을 받아 민간단체에서 운영하는 전문가집단입니다. 국가적 과제를 다루기 때문에 그곳에는 이론가만이 아니라 전직 장관이나 전직 대사도 있습니다. 이론과 실무를 겸비한 이들이 국가의 정책과제에 대하여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함께 고민도 합니다. 정권이 바뀌면 전직 고위관료들 대부분은 싱크탱크에 와서 자기가 했던 정책관련 작업을 리뷰하는 책을 냅니다. 그래서 그들의 경험이 차기 정부에 들어가서 일할 사람들에게 전수가 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국정운영의 경험이 잘 전수되지 않습니다. 저는 이것도 굉장히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선임자는 후임자에게 정성들여서 가르쳐주지 않고, 또 후임자는 전임자와 차별성을 부각하기에 바빠서 배우지 않으려고 합니다. 조그만 구멍가게를 운영하려 해도 노하우가 필요한데 큰 국가를 운영하는 데 어찌 노하우가 필요없겠습니까? 그런데 국정운영을 노하우 없이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정권 초기에 유사한 실수를 반복하고 배워서 알 만하면 결국 나가야 할 때가 되는 악순환이 되풀이됩니다. 국가운영은 아무나 할 수 없고 아무렇게 할 수도 없는 것인데 말입니다. 함석헌 선생님의 말씀 중에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는 말이 있는데 뭔가 멀리 보고 나라정책을 생각하는 그룹이 제가 보기에는 별로 없습니다. 미국처럼 국가정책을 다루는 독립된 민간 두뇌집단들이 우리나라에도 빨리 생겨야겠다는 생각입니다.

두번째로 국가정책대학원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미국에는 국가정책을 가르치고 연구하는 대학원이 있습니다. 국가정책에 대한 이론뿐만 아니라 필요한 노하우, 정책경험과 지혜 등을 같이 가르쳐주는 대학원들이 있습니다. 하바드대학의 케네디 스쿨이라든가 프린스턴대학의 윌슨 스쿨 같은 것이 그 대표적 예입니다. 거기에서는 교수만이 아니라 정책현장에 있던 분들도 가르치는데 이를 통해 국정운영의 노하우가 이론화되고 체계적으로 교환되고 전수됩니다. 우리나라의 행정대학원은 그런 역할을 못합니다. 물론 정치학과도 못합니다. 우리나라 경영학과나 경영대학원에서는 부족하지만 나름대로 기업운영의 노하우가 전수되고 새로운 이론이 도입되는데, 국정운영에 대해서는 그런 곳이 전무한 상태입니다. 시대는 변화하는데 정치인들은 단기적인 것 인기있는 것만 하려고 하고 관료들은 무조건 현재까지 해온 것을 지키려고만 하죠. 그래서 성교수 같은 분이 정부조직에 들어가서 고생하는 겁니다. 엄청나게 고생하는데 고생하는 만큼 잘 안될 거예요.(웃음) 우리 모두가 이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고 어떻게 풀 것인지 같이 고민해야 합니다. 나까소네(中曾根) 전 일본총리는 『21세기 일본의 국가전략』이라는 책에서 미국의 예를 들며 일본에도 국가정책대학원을 세워야 되겠다고 했는데 작년에 토오꾜오(東京)에 가보니까 이미 몇년 전에 국가정책대학원이 세워졌더군요.

 

성경륭 별도 대학원입니까?

 

박세일 네, 별도 대학원입니다. 전문대학원이지요. 벌써 2,3년 됐는데 국가정책을 이론적으로 실무적으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의 경우 권력투쟁만 하느라고 과거에 국가운영이라는 개념이 없었습니다. 이런 전문대학원과 민간의 싱크탱크를 통해 정책경험이 전수되고 정책인재들을 육성하며 개혁적 정책세력을 키워야 우리나라도 시대의 과제를 제대로 풀어갈 수 있는데, 아직은 그럴 만한 인재, 옛날식으로 말하면 경장(更張)세력이 없습니다. 아니, 극히 미미합니다. 율곡(栗谷) 이이(李珥) 선생의 글을 보면 우리나라에 수성세력과 창업세력은 있는데 경장세력 즉 개혁세력이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요새 제가 생각하는 것과 비슷함을 느꼈습니다.

 

백낙청 물론 옛날부터 있어온 문제입니다만, 이 문제가 악화된 계기는 식민지시대와 그후 분단체제하의 독재시대를 거친 것이 아닌가 싶어요. 식민지시대에는 일본사람들이 하는 국정에 참여한다는 것이 식민통치에 협력하는 부역자(附逆者)가 되는 것이니까 양심있고 기개있는 지식인이라면 바깥에서 비판하고 항거하는 것이 주임무였지 않습니까? 그런데 해방후에 독립국가를 만들었다고는 하지만 그것 역시 분단국가일 뿐 아니라 독재국가였기 때문에 역시 양심적인 지식인들 다수는 비판과 저항에 주력했지 국정운영에 동참하려 하지 않았단 말입니다. 그러다보니까 어느새 지식인세계에 그 나름의 타성이 생긴 것 같아요. 물론 불의에 항거하는 것이야 지식인으로서 바람직한 일이지만 현실을 직접 겪지 않아 잘 모르면서 손가락질만 하는 것은 책임있는 지식인의 태도가 아닌데 자기 나라 국정을 남의 일 보듯이 하는 습성이 생긴 거지요. 조선시대에 선비들이 국정을 주도해서 나라가 문약해졌다고는 하지만 선비들 자체로 보면 글공부 하면 으레 벼슬 살고 국정에 참여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거든요. 지금과 같은 학계와 관계의 괴리는 없었다고 봅니다. 아무튼 문제의 큰 원인이 식민통치와 독재정치에 있다고 할 때 지금 우리 사회가 어느정도 민주화되고, 제가 ‘흔들리는 분단체제’라는 표현도 썼습니다만 분단체제가 급격히 동요하고 변모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저는 해결의 기미는 있다고 봅니다. 새로운 인재를 양성할 수 있는 객관적인 여건은 마련되었다고 생각하는데, 그사이 경제적인 성장을 해낸 것도 중요한 조건 중의 하나죠. 다만 우리 한국사회만 외따로 떨어져 충분한 시간을 갖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라 세계화의 험한 파도가 몰아치는 한가운데서 세계와 경쟁하고 중국과 경쟁하면서 내부문제도 풀어야 하니, 경쟁에 급급하다보면 차근차근 해야 할 일을 뻔히 알면서도 그냥 대세에 휩쓸려갈 위험도 있는 거지요.

 

박세일 하나만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전문적인 정책세력이 약하고 없으니까 우리나라는 국가정책에 대한 논의가 구체적이지 못하고 빨리 이념화합니다. 정책논의의 경우 이념의 거품이 많습니다. 사실 구체적인 실무자들이 볼 때는 큰 차이가 없고 답은 하나임에도 불구하고 불필요한 이념적인 갈등이 많이 있어왔어요. 명분과 이념을 내세우는 것도 대부분 전문성에 기초한 정책연구가 부족하거나 정책내용을 구체적으로 모를 때 생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 문제를 우리 모두가 깊이 생각해보자는 것을 덧붙이고 싶습니다.

 

 

동북아시대의 시금석, 새만금

 

백낙청 이제 구체적으로 동북아시대의 한국사회 발전전략을 생각한다고 할 때, 김교수께서는 지금의 세계화는 중국화라고 표현할 수 있다고 하셨지요, 그만큼 중국의 비중을 압도적으로 보셨는데 구체적인 발전전략을 짠다고 할 때 중국의 변화와 연계해서 짠다는 것을 독자들에게 알기 쉽게 설명하신다면 어떤 예가 있을까요?

 

김석철 구체적으로 한반도에 그나마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진 지방이라면 포항·울산·구미 일원의 산업 클러스터와 부산에서 광양으로 이어지는 물류 클러스터가 있어요. 지금 그렇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가능성이 크죠. 그러나 그 둘의 미래는 모두 중국의 전략에 어떻게 대응하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왜냐하면 철강의 경우 현재 아주 고기술을 제외한 3분의 2 가까이는 경쟁력이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포철은 일본에 밀리고 중국에 따라잡히고 있어요. 일본이 자기네 기술의 상당부분을 한국에 이전했는데 그것은 상대적으로 우리의 규모가 작았을 때 얘기죠. 포철은 중국을 겨냥하지 않으면, 즉 중국에 진출하지 않으면 안돼요. 한국기업의 중국진출이라는 것이 큰 과제 중의 하나이고 어떤 산업에서는 큰 전략 중의 하나입니다. 특히 물류의 경우 현재는 중국과 미대륙 간의 물량이 많아지면서 잠시 이득을 보고 있습니다만, 중국이 시설을 다 완비하면 그냥 우리나라를 지나가버립니다. 지금 샹하이에 만드는 물류시설이 2010년이 되면 한국을 압도하게 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뭐든지 해야 하는 것이죠. 또 한가지 새만금 같은 경우가 좋은 예라고 생각하는데, 각종 보고서를 보아도 2020년까지의 전라북도 전략에 새만금이 없습니다. 새만금 간척사업은 2020년까지를 내다본 전라북도의 전략이기보다는 얼결에 시작한 정치적 사업을 자꾸 합리화시켜나가는 과정입니다. 한반도 안에서 새만금의 역할을 찾으면 길이 없지만 동북아에서 그 역할을 찾으면 있습니다. 광양·부산의 물류 흐름과 동북아 전체를 시야에 넣고 수도권의 분산, 그리고 지역균형발전이라는 각도에서 보면 해답이 있거든요. 그런데 정작 새만금에다 항만을 만들자고 하면 수도권이 더 낫다라고만 생각해요. 전라북도측에서는 당장에 항만건설 예산을 얻어낼 생각으로 간척도 하고 항만도 짓겠다고 해요. 갯벌과 안바다를 다 죽이고 돈 안되는 농토와 오염된 담수호,아니면 텅 빈 산업단지 앞에다 항만을 지어서 무엇에 쓰겠다는 것인지 모르겠어요. 중앙정부의 정책들도 전부 한반도 안에서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있는 곳을 보는 것이지 전체를 놓고 보지 않아요. 새만금 일원은 현재 한반도 안에서는 경쟁력이 없지만 시각을 확대해서 보면 엄청난 역할이 있거든요.

 

백낙청 좋은 말씀이신데 다만 ‘중국진출’이라는 것은 한국기업의 주된 과제이고 국가적으로도 중요하지만, 김교수가 구상하시는 새만금 바다도시만 하더라도 중국으로 진출하는 하나의 통로가 되긴 하겠지만 오히려 중국이나 화교들의 자본을 한반도로 끌어들이는 거점이 되라는 것 아니겠어요? 그렇다면 단순히 ‘중국진출’이라 하기보다 한·중 상호진출 또는 쌍방향진출이라는 표현이 나을 것 같은데요.

 

김석철 네, 그렇습니다. 지금 제가 계획하고 있는 것은 새만금에 중국 자본이 들어온다는 전제하에 우리 것이 나간다는 겁니다. 우리가 중국 어디에 가서 큰 공단을 만들겠다, 그 대신에 우리 쪽에 중국이나 화교들이 와서 자신들에게 유리한 것을 하라는 거죠. 그들이 한국에 오는 것과 우리가 나가는 것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것이 관건이 될 겁니다.

 

백낙청 성교수님, 정부의 대외비사항을 공개하라는 것은 아니지만 하나 여쭤보고 싶은데요. 새만금사업 같은 것은 그야말로 박교수께서 말씀하신 정치적 고려로 추진된 사안 아닙니까? 정치권에 직접 몸담은 분들은 할 수 없다 할지라도 청와대 안에서 정책을 연구하는 분들 사이에 간척사업을 완료해 농지를 만들든 공장이나 물류단지를 만들든 그것은 전라북도를 위해서도 길이 아니다라는 합의가 없습니까?

 

성경륭 그것은 제가 모르기도 하고 답변할 수 있는 사항도 아닌 것 같습니다.(웃음)

 

백낙청 하지만 새만금이야말로 지역균형발전의 핵심일 수 있는 곳이거든요. 지금 김교수께서는 수도권의 경쟁력을 전제하시면서 그 다음으로 그나마 가망이 있는 곳으로 경북 일원의 클러스터, 울산까지 포함한 클러스터를 꼽으셨지요. 울산시는 경남권에 속하기 때문에 대개 부산과 연결시키는데 지금 김교수 발상에서는 울산을 포항·대구·구미와 함께 보는 거지요. 아까 행정단위에 얽매이지 않는 지방권역을 생각해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과 통하는 것 같은데, 아무튼 울산을 포함하는 경북권의 클러스터가 있고, 다음에 역시 도 경계선을 넘어서 부산에서 마산·창원을 거쳐 광양까지 이어지는 경남 남해안지대의 또다른 클러스터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곳들이 다 제대로 산다 하더라도 호남권에 뭐가 없으면 이건 종전의 경부선 축을 따른 불균형발전을 오히려 심화시킬 뿐이지요. 충청권에 신행정수도가 생긴다 해도 그 점은 마찬가지예요. 그렇기 때문에 호남에 뭐가 생겨야 하는데 지금은 수도권은커녕 경북이나 경남의 클러스터에 견줄 것도 전혀 없지 않습니까? 이런 불균형을 시정한다고 할 때 김교수는 새만금이 최적의 입지이고 새만금에 대한 기존의 발상을 완전히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시는데, 이게 국가균형발전위원회에서 자기 분야 일이 아니라고 말씀하실 성질은 아닌 것 같은데요.

 

성경륭 그렇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워낙 정치적 결정이라는 출발을 가지고 있고, 처음엔 대규모 간척을 해서 농사를 짓는 것으로 이야기됐었죠.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전국에 휴경지 보상제도를 실시할 정도로 조건이 많이 달라졌고, 옆에서는 군장공단을 한다고 하는데 그것마저 여의치 않고, 거기에 환경문제도 개입되어 있어요. 새만금 공사가 진행되면서 초기와는 조건 자체가 굉장히 달라졌고, 돈은 계속 투입하는데 투입한 것만큼 효과를 볼 수 있는지도 불확실하고, 엄청난 여러 문제가 있기 때문에 제가 뭐라고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 다만 문제제기하신 대로 광주·전남권, 전북권이 과거에 농업지역이었고 대체산업이 뚜렷하지 못한 제일 낙후한 지역으로 됐는데, 전남의 경우 재정자립도가 14%밖에 안돼요. 이것을 어떻게 할 것이냐 하는 문제로 지금 저희들이 고민하고 있어요. 우리가 국가균형발전정책의 내셔널 프레임워크(national framework)라고 할 수 있는 기본구상은 할 수 있겠지만 이 지역은 이것을 하고 저 지역은 저것을 해라 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을 갖고 있습니다. 현재 균형발전 5개년 예비계획을 짜고 있는데 연역적인 계획과 귀납적인 계획이 접목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전라북도 지역은 관광과 몇가지 산업을 믹스하면 되겠으니까 이렇게 하십시오”라는 식으로 할 수 있을까요? 현지의 여러 조건을 따져서 그 지역이 어느 측면에서 비교우위가 있고 어떤 것을 할 수 있는가 하는 판단은 결국 지역 스스로가 해야 한다는 생각인데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지역의 판단을 전국적으로 집결하면 곳곳이 IT(Information technology) 하겠다고 하고 BT(Bio-technology) 하겠다고 합니다. 그래서 관료들과 같이 얘기를 해보면 정부가 더 개입해야 한다고 하나 저는 더 개입해서는 안된다고 하죠. 나중에 올라오면 그것을 가지고 컨설팅을 해서 하나하나 정리하더라도 더이상 개입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보기 때문에 어려움이 있는데, 국가기관이 더 개입해야 하는 것이 옳은지 아니면 현재의 이런 태도가 옳은지 좀더 많은 고민이 필요합니다.

 

백낙청 지역의 판단에 맡긴다는 것이 큰 원칙으로서는 아름다운데 현실적으로 문제가 좀 있겠어요. 아무래도 판단 주체의 단위가 기존의 광역자치단체 또는 기초자치단체로 가게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까 시·도마다, 심지어 군마다 서로 IT 하겠다, BT 하겠다고 지리멸렬하게 나올 우려가 있고, 관청 위주로 가는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 국가균형발전위원회에서 생각하시는 것이 지역혁신협의회 같은 것일 텐데 위원회의 보고서 자체도 지역에 그만한 역량이 없다는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더군요. 이것도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문제이긴 합니다만, 역량이 없는 상태에서 지역협의기구에 맡겨서 자율적으로 올리면 컨설팅만 해주겠다고 해서 과연 될는지 의문이에요. 새만금문제 같은 것이 대표적인 것인데요, 매사에 대통령이 나서서 이래라 저래라 해서는 안되겠지만 적어도 새만금 같은 크고 복잡한 문제에 대해서는 우선 대통령 자신이 어떤 비전과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물론 그 확신이라는 것은 여러 전문가들과 협의를 거쳐서 도달해야 하는 것이지요. 어쨌든 자기 나름의 확신과 경륜을 가슴에 품은 채 토론을 촉구해야지, 그냥 ‘여러분이 토론해서 좋은 안을 만들어보라’고 하면 결국은 갈등만 증폭될 뿐이지요. 노무현정권 아래서 토론이 활성화된 것은 분명하고 그것이 역사적으로 평가할 만한 변화이긴 하지만, 토론이 어느정도 진행되고 나면 그걸 바탕으로 좀더 구체적인 대화가 이루어져야 하고 대화의 끝에서는 결단이 나와야 토론의 보람이 있는 것인데, 계속 토론만 하다보면 목청이 점점 높아지고 자칫 멱살잡이로 변질하기 십상이에요. 새만금이 좋은 예인데, 대통령의 확고한 의지가 없는 가운데 토론만 난무하다보니 한쪽에서 머리 깎으니까 도지사도 머리 깎고 하는 식으로 번져가요. 대통령과 청와대의 정책기획자들이 어떤 큰 그림과 원칙에 대한 확신이 있으면 관료들은 대개 금방 알아차리고(웃음) 따라가게 되어 있어요. 대통령의 비전에 맞는 구체적 방안들을 내놓을 사람도 많고요. 전라북도에서 반발하는 다수도, 물론 그중에는 간척사업의 기득권에 얽매여서 끝까지 말 안되는 소리를 고집할 사람들도 있지만, 대다수는 대안적 개발을 해준다면 마다할 것 아닌데도 불안감이 앞서고 있거든요. 더 좋은 걸 찾다가 확보한 현찰마저 놓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있는데, 대통령이 ‘당신네들이 토의해서 좋은 안을 내봐라’ 하면 모두가 불안해서 각자가 본래의 입장에서 물러서지 않으려 하기 쉽지요.

 

김석철 비슷한 문제로 랴오닝성(遼寧省)에 진져우(錦州)라는 도시가 있습니다. 인구가 300만쯤 되는 도시인데, 거기가 원래는 항만도시는 아니었어요. 그런데 뻬이징에서부터 션양(瀋陽)까지 고속철도가 중국에서 처음으로 놓이면서 항만이 된 겁니다. 지금까지 랴오닝성의 주축은 션양에서 따롄(大連), 션양에서 하얼삔으로 이어지는 것이었습니다. 최근 중국의 동부해안에 집중되었던 국가전략이 션젼(沈쐴)과 푸뚱(浦東)과 서부개발을 거쳐 동북3성의 옛 중공업지역으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한국이 중국에 진출할 수 있는 기회가 열린 것입니다. 이 지역은 한반도와 역사적·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곳이며 한반도와 중국의 공동경제권이 이루어질 수 있는 곳입니다. 이럴 때 중국과의 공동작업을 시작해야 합니다. 그래서 저희가 ‘진져우와 진져우해안 도시연합’이라는 새로운 계획안을 냈습니다.

 

백낙청 저희라는 것은 아키반입니까?

 

김석철 아키반과 한샘UDM과 명지대 건축도시설계원의 공동연구팀입니다. 동북3성의 공간구조를 볼 때 따롄-션양-하얼삔 라인은 러시아와 일본이 랴오닝성을 강점하면서 만들었던 라인이지 중국의 전체적인 전략구도로 봐서는 뻬이징과 션양을 잇는 라인이 더 중요해요. 그래서 저희가 진져우에 따롄과는 역할이 다른, 인천항·새만금항과 항만을 공유하는 새로운 형식의 복합항만인 일종의 해상공단을 제안했어요. 진져우에 새만금에서와 같은 새로운 산업클라스터를 갖는 바다도시를 창출함으로써 황해로부터의 접근축을 확보하고, 뻬이징-톈진-탕샨 메가폴리스와 동북3성을 잇는 대륙의 축에 접속함으로써 황해와 중국대륙 북부를 잇는 흐름의 중심에 랴오닝성과 한반도가 함께하는 다국적 복합항만을 건설하려는 계획입니다. 그런데 새만금에 들인 노력의 반도 안 들였는데 성장(省長) 이하 모두 그 얘기를 듣고자 하고 사회과학원 등에서 그것을 알고자 합니다. 나라의 모든 인적 자원이 참여해서 하고 있거든요. 거기에는 어떠한 정치적 고려도 없이 오로지 무엇이 최선인가를 보고, 이미 계획이 수립되어 공사가 진행중인데도 더 좋은 안이 나오면 멈추고 다시 하겠다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의 경우엔 아무리 좋은 제안이 있다 하더라도 들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백낙청 우리도 박정희정권 때 같으면 그렇게 할 수 있었을지 모르지요. 물론 중국은 사회주의를 한다는 사회이고 토지에 대한 사유재산권 문제가 없으니까 유신체제하의 한국보다 더욱 강력하게 추진할 수 있지요. 한데 이렇게 이야기하다보면 자칫 독재체제에 대한 향수에 빠질 우려가 있어요.(웃음) 그러나 민주화의 대세는 돌이킬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수용하면서 일을 해야 자주적인 세계화, 민주적인 세계화가 가능하고, 현존하는 세계화의 대세에 적응할뿐더러 그걸 이겨내는 대안을 찾는 일도 가능해지겠지요.

 

 

민주주의와 공화주의

 

박세일 제가 두 분 말씀 들으면서 민주주의에 대해 얘기할 필요를 느꼈습니다. 저는 우리 사회가 권위주의와 싸우는 데 몰두해 권위주의가 끝난 다음에 어떤 민주주의를 세울 것인가에 대한, 즉 민주주의란 과연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전문가나 국민들 사이에 충분한 합의나 성찰이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권위주의적인 질서가 종식되면 민주주의는 자연발생적으로 되는 것이 아니냐 하고 생각했던 거지요. 저는 민주주의가 그렇게 간단히 성공할 수 있는 제도라고 보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민주주의의 성공을 위해서는 국민의 입장에서도, 지도자의 입장에서도 반성할 것이 많다고 봅니다.

공익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서 민주주의를 두 가지로 나눠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사익간에 서로 자기 이익을 주장하다가 뭔가 타협이나 조화가 되면 그것을 공익이라고 보는 시각이 있는데 이것을 다원주의적 민주주의(plural democracy)라고 합니다. 또하나는 사익간의 조화와 타협이 아니라 사익을 넘어서 한차원 높은 데 있는 게 공익이라는 시각으로서, 이것을 공화주의적 민주주의(republican democracy)라고 합니다. 공화주의적 민주주의에서는 공익을 찾으려면 각자 사익을 자제해야 합니다. 그리고 같이 앉아서 공익이 무엇인가를 함께 토론하고 함께 찾아나가야 합니다. 공화주의에서는 이렇게 공익은 사익과 차원을 달리하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공익이나 국익이 사익간의 조화와 타협이라는 소위 다원주의적인 민주주의만이 들어와 있습니다. 다원주의적 민주주의가 강하면 결국 이익집단들은 자기네 주장만을 극대화하는 것이, 그래서 공익이라는 이름으로 사익을 주장하는 것이 민주주의에 가장 합당한 제도 내지 관행으로 이해하게 됩니다. 이 부분은 일반 국민의 입장에서 반성해야 할 것 같아요.

지도자 쪽에도 책임이 있다고 보는데요. 민주주의가 성공한 나라를 보면 보통 두 가지 민주주의가 긴장관계를 이룹니다. 하나는 대중민주주의(popular democracy)로서 수에 의한 지배, 즉 다수결에 의한 지배입니다. 다른 하나는 지도자 민주주의 내지 전문가 민주주의(elite democracy)라고도 하는데, 전문지식과 리더십에 기초한 질의 지배입니다.양(量)의 지배와 질(質)의 지배가 균형을 이루어야 합니다. 국가정책 결정을 다수결의 원칙에만 의존해서 할 수는 없습니다. 히틀러의 지배도 다수결에 의해서 이루어진 겁니다. 민주주의라는 것은 권력의 하방 이동이기 때문에 과거보다 국민의 참여가 많아지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대중민주주의의 올바른 방향이지만 다수의 지배가 놓칠 수 있는 문제를 지식이나 전문성을 가지고 균형을 맞춰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민주주의가 성공하려면 반드시 대중성과 전문성이 조화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전문가가 존중되는 것이고 리더십이 중요한 겁니다. 우리나라에서 지금 대중민주주의는 어떤 의미에서 과도한데 지도자 민주주의는 과소해 인기영합주의가 등장하고 집합적 의사결정을 못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렇게 되니까 모든 정책이 자꾸 표류하는 것입니다.

저는 시장경제 못지않게 민주주의가 어렵다고 생각합니다.국민적인 차원에서는 공익을 제대로 이해해서 사익의 주장을 자제하고 공동선을 함께 찾아가는 노력 즉 공화주의적 민주주의가 좀더 많이 들어와야 합니다. 지도층에서도 수의 지배를 존중하고 국민의 입장에 다가가야 하지만 국정운영이란 상당히 전문성이 요구되고 동시에 개별이익이 아니라 전체의 이익에서 결정하고 결단하고 헌신하는 문제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이런 이해가 생기고 균형이 잡히면 지금 얘기하는 문제도 좀더 올바르게 풀리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성경륭 그런 것들이 우리에겐 아주 부족한 셈인데, 정부가 사회적으로 치열하게 부딪치는 문제들에 대해 정책결정을 할 때는 몇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여소야대냐 여대야소냐 하는 정치세력 분포상의 조건이 하나 있고, 정권과 정권을 지지한 세력 사이의 의견 일치여부가 또 하나 있는데요. 오늘(10월 18일) 이라크 추가파병 결정이 내려졌잖습니까? 이라크파병을 두 번 하는데 이것은 지지그룹의 선호와는 상당히 다른 결정입니다. 과거에 한나라당을 지지하던 그룹이 파병을 찬성하고, 참여정부를 지지했던 그룹은 반대하고 있어요. 화물연대 파업에 대응할 때도 그랬고, 최근 고속철도 천성산터널 공사도 그래요. 지금 부안에서 핵폐기장 건설문제도 결정이 애매한 상태지만 그렇고 새만금도 마찬가집니다. 저는 대통령이 새만금에 대해 구체적으로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지만, 여소야대 국면에다가 핵심지지그룹과 상이한 의사결정을 계속해야 하니까 굉장히 큰 부담이 되지 않겠습니까?

 

백낙청 새만금의 경우는 그게 ‘뜨거운 감자’라는 발상 자체를 바꾸자는 거지요. 대통령선거 때 지지세력이었던 전북도민과 시민단체들을 동시에 만족시키면서 21세기 한국사회의 발전에도 획기적인 계기가 될 해법을 찾을 수 있는데 그럴 생각을 못하는 것이 답답하다는 거예요.

 

성경륭 새만금사업은 모든 대안이 고려될 것이고, 저도 김교수님의 구상에 대해 정부 관련부처에 이런 중요한 대안이 나왔으니까 검토를 한번 해보라고 제안한 바 있습니다. 제가 내부결정과정은 잘 모르겠지만 모든 대안을 검토중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백낙청 박교수님이 말씀하신 ‘공화주의적 민주주의’는 참 좋은 화두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헌법에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이라고 되어 있습니다만 그때 공화국이라는 말을 군주국이 아니라는 정도로만 생각하지 공화주의 자체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요. 그런데 공화주의와 민주주의는 반드시 일치하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고대로마 같으면 공화주의였지만 민주주의는 아니었거든요. 따라서 ‘공화주의적 민주주의’라고 두 단어를 묶어놓으면 답이 쉽게 나오지 않는 것 같아요.그러니까 화두(話頭)라는 거지요. 공화주의와 민주주의 간의 갈등이나 긴장이 있게 마련인데 박교수님의 말씀에서는 촛점이 공화주의에 가 있고 민주주의와의 갈등에 대해서는 사익을 자제하는 쪽에 치중하시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것은 지도자의 책무를 말씀하시는 데서도 그런 인상을 받았습니다. 지도자 민주주의라는 것도 그것이 정말 순기능을 하려면 지도자가, 물론 대통령 혼자서 하는 게 아니라 주변의 전문가와 보좌진의 도움을 받아서 하겠지만, 어쨌든 5년 앞, 10년 앞, 심지어는 2,30년씩을 내다보면서 사회의 올바른 방향을 잡아가는 경륜이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할 경우 그가 공익의 이름으로 시민들의 사익을 짓밟는 것보다는 다양한 사익들이 분출하면서 조정되는 것이 차라리 낫지요. 그래서 박교수께서도 대중성과 전문성이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고 하셨지만, 앞서 말씀하셨던 여론과 공론 문제만 하더라도 그 둘을 구별하는 건 중요하지만 결국은 여론이 따라줘야 단순한 ‘전문가 견해’나 ‘정부 방침’이 아닌 진정한 공론(公論)이 되는 거지요.

대중민주주의 또는 다원적 민주주의가 문제가 많으면서도 기존의 지도층에만 공론형성을 맡기기 힘든 예의 하나가 세계화에 대응하는 자세입니다. 세계화에 적응하는 국가정책은 매우 정교한 전략을 요구하기 때문에 굳세게 반대를 외치는 여러 목소리들이 난감할 때가 많지요. 그러나 기존의 지도층이 세계화의 본질과 그 장기적 전망에 대해 올바른 인식을 갖고 대응책을 짜고 있느냐 하면, 우선 제가 보더라도 대세를 따라가기에 급급하지 장기적으로 극복해야 할 대세라는 개념은 별로 없는 것 같아요. 똑같이 경쟁력을 중시하더라도 무조건 대세를 따라가면서 우리도 G7에 들어가야 한다는 식으로 나가는 것과, 그런 식으로 너도나도 설치다가는 인류가 다함께 망하게 되어 있을뿐더러 한국경제 자체가 과욕을 부리다가 IMF 때처럼 침몰하기 십상이다, 다만 우리는 세계화의 대세에 승복하는 건 아니지만 당장에 경쟁력을 잃으면 대안을 찾을 여지도 없이 짓밟히고 말 테니까 그걸 피하기 위한 최소한의 경쟁력을 확보해야겠다, 뭐 이런 식의 좀더 수세적인 자세랄까 방어적인 경쟁력 노선을 택하는 것이 정책의 내용면에서도 훨씬 견실하고 실제로 성공률이 높아지리라고 봅니다. 제가 새만금 얘기를 자꾸 하는 것도 새만금문제의 지혜로운 해결이 한편으로 세계화의 대세에 적응하는 길이면서 발전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찾는 길이거든요. 현존 세계화의 추세가 무작정 지속될 수 없다고 보는 제일 큰 이유가 환경문제 같아요. 생태계의 위기는 지금도 심각한데 기존의 방식으로 전세계가 계속 성장하려 하고, 더구나 중국 같은 큰 나라가 고도성장을 계속한다면 어떻게 되겠어요? 다 죽는 것 아니겠어요? 그러니까 이 기회에, 성장을 하더라도 세계화의 본질에 대해 다른 인식을 갖고 종전과는 다른 발전의 패러다임을 우리가 동북아에서 창안해야겠다, 그리고 한국이야말로 그런 일을 하기에, 특히 분단체제를 허물어가는 극도로 변수가 많은 과정에서 그런 모델을 개발하기에 좋은 처지에 있고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동북아경제중심이 되는 첩경일 것 같다는 거지요.

 

 

친환경적인 새 발전패러다임을

 

박세일 저는 공화주의적 민주주의와 환경문제는 깊은 관계가 있다고 봅니다. 공화주의적 민주주의라는 이야기 대신에 저는 공동체자유주의라는 말을 자주 씁니다만, 이는 개인의 자유와 창의를 기초로 하되 공동체 내지 공동선에 대한 적절한 고려가 없으면 자유주의는 본래의 뜻을 상실할 것이라고 보는 생각입니다. 공동체연대나 사랑이 전제될 때 개인의 자유와 창의는 더욱더 빛난다는 것이죠. 왜 그런 생각을 하느냐면 인간의 존재 자체가 관계적(relational)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개체적이고 독자적인 존재이면서도 생존조건 자체가 관계적이기 때문에 이를 부정하고 개인만 주장해서는 오래갈 수가 없습니다. 저는 관계성 중에 중요한 부분이 환경이라고 생각합니다. 환경과 분리될 수 없는 관계적 존재로 인간이 살아갈 수밖에 없다면 환경문제를 국가발전론 속에서 감안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죠. 환경문제에 대하여 어느정도 비중을 둘 것인가는 그 나라의 경제 및 의식 발전수준, 주어진 조건에 달려 있겠죠.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균형과 조화입니다.발전과 환경의 문제, 민주주의와 공화주의의 문제, 혹은 중앙집권화와 지방분권화의 문제도 모두 조화와 균형의 문제지요. 조화와 균형을 이루어야 세계화시대에 공동체도 지킬 수 있고 세계적으로 우리의 힘도 길러낼 수 있습니다.

하나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동북아구상 문제도 우리가 한번 정리를 해봐야 하지 않을까 싶은데요. 제가 보기에 중국의 변화는 지금부터 정말 경천동지(驚天動地)할 정도로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수십년간 8억 내지 9억의 인구가 도시로 밀려들 것이고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산업화가 될 것입니다. 그 속에 정치적 변동까지 있으면 그 변화는 엄청날 테고요. 한국과의 경제관계도 크게 확대되고 대단히 밀접해질 것인데 이 과정에서 경제협력이냐 경제편입이냐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는 한국과 중국 간에 누가 누구를 더 필요로 하느냐에 의해 결정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경제규모와 중국의 경제규모를 비교할 때 양적인 측면에서는 분명 우리가 중국을 더 필요로 하게 될 겁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 경제는 앞으로 중국에 편입되어가겠죠. 그렇지만 질적인 측면에서는 협력으로 갈 수 없는가? 그러려면 어떻게 할 것인가가 동북아구상에서 대단히 중요한 문제라고 봅니다. 결국은 거대한 변화과정 속에서 중국이 필요로 하는 것을 우리가 빨리 읽어내야 합니다. 그들이 당면한 문제에 대한 해결책(solution)을 우리가 제시하여야 합니다. 그들이 현재 인식하지 못해도 앞으로 반드시 필요로 할 것을 찾아야 합니다. 그것이 상품과 써비스일 수도, 지식과 경험일 수도 있고 정보와 정책일 수도 있습니다. 이것을 우리가 중국에 제공할 수 있을 때 적어도 질적 측면에서 우리 경제는 협력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대(對)중국, 동북아구상에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이 미국 및 일본과의 관계입니다. 미·일과의 관계가 여기에 들어오지 않으면 대중관계에서 우리가 협력이 아니라 편입으로 끝날 가능성이 대단히 크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이나 미국으로부터 새로운 과학기술과 지식정보를 신속히 도입하여 우리의 문화풍토와 결합시킨 후, 이를 자산으로 하고, 우리의 산업화 경험 등을 참고로 하여 중국의 발전과정에서 반드시 필요로 하게 될 물건과 아이디어를 생산, 공급해주어야 합니다. 이 점이 중요한데 이것은 상당부분 우리의 주체적인 노력에 달려 있어요. 미국이나 일본과의 관계를 무시해서는 절대로 올바른 대중국 전략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성경륭 저와 참 비슷한 고민을 하시는데, 저는 우리와 중국이 전략적 상호의존관계를 발전시켜야 하지 않겠느냐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마치 우리가 아주 급속한 성장,근대화와 산업화를 할 때 일본이 옆에서 자본재나 중간재나 금융을 계속 제공한 것처럼 중국이 필요로 하는 것을 우리가 충족시켜줘야 한다고 봐요. 우리가 일단은 한단계 앞서 있으니까 중국이 계속 부상할 때 이런 상호의존관계를 얼마나 잘 형성하느냐 하는 것이 핵심이 아닐까 생각해요.

 

김석철 우리가 중국에 앞서 있고 또 끊임없이 앞서려면 미국·일본과 협력해야 한다고 하셨는데, 그러나 그 단계는 이미 지났다고 생각해요. 미국에 중국 유학생들이 우리보다 훨씬 많이 가 있습니다. 중국은 이미 아주 강력하게 미국의 핵심에 들어가 있어요. 대중국관계는 다른 각도에서 봐야 해요. 제가 동북아라는 말 대신에 황해도시공동체라는 말을 쓰는 이유가 황해도시공동체라고 할 때는 미국과 화교와 러시아가 참여한 어떤 싸이트(site)가 되기 때문이죠. 러시아는 자원국가이고 특히 석유 때문에 어떤 의미에서는 일본보다도 더 중요합니다. 지금은 한국이 상당부분 금융자유화를 이루었고 예전처럼 일본에 예속된 단계는 지났으니까 그런 점에서도 황해도시공동체라는 말이 적절하다고 봐요. 이미 국가의 장벽이라는 것은 서서히 무너져가고 있고, 특히 동북아 지역에서 동북아 3국이라는 말은 어떤 면에서 난센스입니다. 샨뚱성(山東省)만 하더라도 남한보다 크고 랴오닝성은 한반도보다 크고 일본의 경제력은 한국과 비교할 수 없이 큰데 중국을 한국이나 일본과 같은 의미로 ‘국가’라고 부르고 중심국가를 말하는 건 거의 무의미하죠.

지금 성교수님이 하고 계시는 국가균형발전이라든지 지역발전 작업은, 성교수님 자신이 처음부터 지역적인 맥락을 강조하셨지만, 중국과의 관계에서 더 뜻이 있는 거예요. 서울 수도권 일대만 경쟁력이 생기는 한 불균형은 더 가속화되거든요. 지금 중국이라는 강력한 이웃이 없다면 서서히 심화되겠지만 중국으로 인해 급격히 심화될 거예요. 제가 새만금을 거론한 것은 새만금 지역만의 문제라기보다는 지금 이런 상황을 의식한 것이죠. 부산-광양 간의 물류 클러스터라든가 경주라는 문화인프라를 중심으로 한 대구-울산-포항-구미 간의 도시연합은 좀 시간이 걸리고 판이 만들어져 있지 않아 어려운데, 새만금은 이미 안바다라는 희귀한 판이 만들어져 있고 적절한 기획에 의해서 아주 빠른 시일 안에 여러가지를 할 수 있는 상태예요.

수도권의 확대란 단순히 면적의 확대를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나중에는 이북까지도 이어지겠지만 수도권에서부터 서해안으로 이어지는 라인을 생각한 것이에요. 수도권의 문제와 지방분권의 문제, 균형발전이라는 문제는 이 해안링크라는 새로운 키워드를 도입해 풀 수 있어요. 해안링크로 인해 새만금에 대한 우리 전략이 결국 신의주에 대한 전략이 될 수도 있고 해주에 대한 전략이 될 수도 있어요. 어떤 점에서 새만금·호남평야가 울산-포항-구미나 부산-광양보다 산업화와 도시화가 덜 이루어지고 도시경쟁력이 없어 보이지만, 서울 수도권의 확대를 흡수하면서 서해안·해안링크를 이루게 하는 것이 새만금의 역할이 되는 것입니다. 저는 딴뚱(丹東)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목포로부터 딴뚱으로 이어지는 지역은 동해안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조밀합니다. 그만큼 밀집된 지역이기 때문에 경제적인 파급효과나 협력의 밀도는 훨씬 커질 수 있어요. 그럴 때 새만금에서 단절되어버리면 안되죠. 현재 우리의 새만금 구상은 한반도 전략, 즉 균형발전과 동북아시아 또는 황해도시공동체로 나아가기 위한 시금석적 프로젝트가 아닌가, 그야말로 참여정부가 중점적으로 해볼 만한 프로젝트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백낙청 김교수가 일본이나 미국 것을 빼내서 중국에 전수하는 단계가 지났다고 할 때는 기존의 발전 패러다임 속에서 한국이 설 자리는 이미 없어졌다는 뜻으로 들립니다. 오히려 그 패러다임을 바꾸는 작업에서 한국이 앞장설 때 중국에 줄 것도 생기고, 나아가 일본과 미국에 대해서도 줄 것이 생긴다는 발상이겠군요.

 

김석철 그렇습니다.

 

백낙청 시간이 너무 많이 흘렀으니 이제 마지막으로 한 말씀씩 하시고 마쳐야겠습니다.

 

성경륭 지금까지 경쟁력에 대해 많이 얘기했는데, 한국사회가 안고 있는 여러가지 문제는 경쟁력에 직결되는 부분도 있고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다고 봐요. 균형발전의 문제, 수도권집중, 지역간의 격차, 지역주의 등은 어쨌든 우리가 풀어야 해요. 세계화라는 맥락, 중국이 급부상하는 맥락, 그리고 끊임없이 변하는 동북아 위계구조에서 한국이 생존조건을 찾는 과정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은 인식을 같이하고요. 그런데 과거의 패러다임으로는 더는 뚫고 가기 힘든 단계에 온 것이 아닌가 해요. 중앙집권 국가에 의해 특정산업 중심, 몇몇 특정지역 중심의 성장전략은 한계점에 이르렀고, 또 환경을 도외시하고 오로지 물질주의적인, 그것도 대기업이나 가진 자 중심의 성장방식도 한계에 봉착했다고 봐요. 흔히들 8년 동안 국민소득이 1만 달러에 갇혀 있다는 얘기를 하는데, 여러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성장방식의 문제를 정확히 짚을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다음 단계로 가는 경쟁력이나 우리의 생존이라는 측면은 결국 발전의 양식을 바꾸는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점에서 지방에 권한을 더 주고, 어려운 지역에 좀더 활력을 불어넣고 어려운 지역이 스스로 일어설 수 있는 지역체계를 만들고 요소요소에 혁신클러스터를 만들어서 지역이 자립하게 하는 것이 필요하지요. 저는 황해도시공동체도 좋아요. 어쨌든 전국의 요소요소들이 이런저런 활동을 해서 다른 나라와 교류도 하고 지역의 경쟁력을 높이기도 하는 그런 새로운 접근이 필요한데, 그것은 단순히 국내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국한되지 않는 다른 차원이 있지 않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환경과 발전이 분리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라고 봐요. 먼저 경제를 성장시킨 후 환경문제가 생기면 그때 가서 돈을 투입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제가 일반화하기는 힘들지만 과거 산업주의 모드(mode)를 가진 대부분은 중국으로 진출할 텐데 그것은 이미 엄청난 문제를 양산하고 있고 앞으로도 문제가 되지 않겠느냐는 우려가 들어요. 제가 최근 독일에 출장가서 들었는데, 엔진을 생산하는 단계부터 최고급 기술을 적용해 배기가스를 줄이고 있고 공장에서 나오는 폐수를 재활용하거나 밖으로 배출되지 않게 하는 기술들을 적용한다고 해요. 기술을 매개로 하든 뭘 매개로 하든 환경과 발전이라는 것이 분리되지 않도록 하는 새로운 발전 모드가 필요한 것 같아요. 그리고 동시에 새로운 가치, 새로운 문화가 필요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소비를 많이 하면 생산도 많이 하고, 생산을 많이 하면 이윤과 투자가 많아지고 임금이 올라가고 하는 끊임없는 팽창의 싸이클 속에서 과연 우리가 GNP가 올라갔다고 좋아할 수 있느냐는 겁니다. 자원 중에는 재생이 되는 것도 있지만 재생이 안되는 것도 있어 끝없이 문제를 남깁니다. 새로운 양식을 얘기할 때 기술을 접목해서 풀어야 할 문제와 우리의 가치와 새로운 문화를 발전시키면서 풀어야 할 문제가 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김석철 동감입니다. 실제로 저같이 도시계획을 하고 건축설계를 하는 사람은 경쟁력보다 삶의 질을 고려하는 것이 습관화되어 있습니다. 오늘은 한국사회의 발전전략을 이야기하다보니 자연 경쟁력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된 것뿐이지요. 제가 보기에 외연의 성장이 한계에 부닥친 우리 사회에는 발전을 지속하기 위해 ‘내연의 성장’이라고 할까요, 이것이 문화가 될지 철학이 될지 모르지만 그런 것이 필요할 때입니다.

 

성경륭 내연이요? 내포적 성장 말씀인가요?

 

김석철 아니 불탈 연(燃)자를 써서, 밖으로만 넓어지는 외연(外延)에 대해 안으로 활력에 넘치는 내연(內燃)을 한번 생각해본 겁니다.

 

백낙청 아, 좋아요.(웃음)

 

김석철 어쨌든 그런 게 필요하다고 봐요. 현재 한국사회에서 제일 큰 문제는 인력과 금융자본의 과잉입니다. 4백조가 굴러다니고 있어요. 몇몇 분야의 기술수준은 제가 보기에 최강입니다. 중동에서 가장 제대로 된 도시를 건설한 사람들, 그리고 조선(造船)과 전자 및 자동차에서 한국을 세계 최강으로 만든 사람들이 밀려나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이렇게 올 때까지 참여했던, 또 그런 과실로 생긴 금융과 인력들이 놀고 있거든요. 잉여금융은 지금 투기자본화해 자본시장·노동시장을 왜곡하고 있어요. 그래서 제가 황해도시공동체를 얘기하는데 우리는 판을 키워야 합니다. 중국은 우리처럼 분당 같은 신도시를 4년 안에 만들어서 40만을 입주시킨 예가 없습니다. 그만한 기획을 할 수도 없고 해본 사람도 없습니다. 조선도 자동차도 전자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국이 가진 인력과 자본의 거대한 잉여를 적극적으로 참여시키자는 겁니다. 중국에 교두보를 확보하면서 동시에 한반도의 판에도 중국을 참여시키는 겁니다. 특히 화교라든가 중국을 벗어나고 싶어하는 자본들, 또 중국의 시장 등 여러가지를 고려한 상징적인, 그리고 그런 것들을 구체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사업들을 한번 시작해보는 일이 필요하지 않을까 합니다. 그래서 황해도시공동체라든지 중국으로의 진출, 과감한 중국자본의 유입을 이야기한 겁니다. 세계자본이라는 것은 당연히 와야 하는 것이고요. 저는 한국과 중국의 자본이 상호유입하면서 한반도와 중국대륙의 일정영역을 서로 공유할 수 있는 단계까지 나아가야만 추상적인 담론의 범위를 벗어날 수 있다고 봅니다.

 

백낙청 너무 경쟁력 이야기만 할 것은 아니라는 중요한 지적을 성교수께서 해주셨습니다. 그런데 김교수 말씀대로 오늘은 주제가 그러니까 경쟁력 이야기를 안할 수 없었고 제가 앞장서서 해온 셈인데, 저는 기왕에 이야기를 할 거면 철저히 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었어요. 경쟁력도 중요하지만 환경도 중요하다, 삶의 가치도 돌봐야 된다, 이런 식의 지당한 말씀은 하나마나한 말이 되기 쉽지요. 그래서 발전전략을 이야기하되 단기과제와 중·장기 전략을 구별해가며 말하자고 했던 건데, 아주 길게 보면 삶의 질을 높이는 발전만이 최고의 경쟁력을 갖는 것이고, 중기적 차원에서는 비록 사회체제 전체가 친환경적으로 바뀌지 못하더라도 친환경적 기술의 활용 등 부분적으로 가능한 생태적 전환을 도모하면서 장기적 목표추구를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경쟁력을 유지해야겠지요.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는 분단체제극복이라는 극히 유동적인 상황에서 남들보다 더 획기적인 변화의 가능성이 있다고 믿습니다. 단기적으로는 당장에 경쟁에서 밀려나지 않기 위해 잘못된 경쟁의 규칙에도 적응할 건 해야겠지만 그렇다고 대안적인 실천을 중·장기적 미래로 미뤄둔다면 이거야말로 공허한 거대담론을 갖고 현실을 얼버무리는 꼴이 되겠지요. 그래서 제가 들머리 발언에서도 차원이 다른 과제들을 동시에 수행하면서 우리의 이론적·실천적 대응력을 높여보자고 했던 것이지요.

 

박세일 오늘 아주 유익하고 좋은 토론이었습니다. 배운 것이 대단히 많습니다. 이러한 만남의 기회를 만들어주신 창비에 감사드립니다.

 

백낙청 제가 여러분께 드려야 할 감사의 말을 가로채신 것 같군요.(웃음) 저야말로 많이 배웠고, 긴 시간 애써주신 데 대해 거듭 고맙다는 말씀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