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테러 이후의 세계와 한반도

 

동아시아라는 관점에서 생각하자

아프간전쟁을 보면서

 

 

지명관 池明觀

한림대학교 일본학연구소 소장, 석좌교수. 한일문화교류회의 위원장. 저서로 『한일관계사 연구』 『한국을 움직인 현대사 61장면』 등이 있음.

✽ 이 글은 일본 이와나미쇼뗑(岩波書店)이 발행하는 월간지 『세까이(世界)』 2002년 1월호에 게재된 오까모또 아쯔시(岡本厚) 편집장과의 인터뷰에 약간 가필한 것이다.─필자

 

 

역사교과서 문제를 되돌아보며

 

오까모또  1998년 김대중 대통령의 방일 이래 역사상 가장 양호했던 한·일관계가 2001년에 들어와서 일본의 역사교과서와 수상의 야스꾸니(靖國) 신사 참배 문제로 급격하게 냉각되었습니다. 2002년 월드컵까지 몇달 남지 않았는데 한·일 양국민은 이 대회를 꼭 성공시켜야 한다고 생각하겠지만, 일단 한국 국민들한테서 일어난 일본에 대한 불신감정은 좀처럼 가시지 않을 것 같은데요.

지명관  그 교과서는 누가 보아도 비판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저는 개개의 사실보다 일본의 문부과학성이 ‘터치할 수 없다’고 한 역사관이 훨씬 문제가 된다고 생각해요. 나찌는 자기들이 일으킨 전쟁을 ‘독일민족의 운명을 건 전쟁’이라고 했는데, 이번 『새로운 역사교과서』라는 책은 러일전쟁(1904〜1905)에다가 ‘국가의 존망을 건 러일전쟁’이라는 타이틀을 붙였어요. ‘독일민족의 운명을 건 전쟁’이라는 말에 대해서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1963)이라는 책에서 나찌가 전쟁을 일으켜놓고 이렇게 말한 것은 이 전쟁은 전쟁이 아니다, 이 전쟁을 일으킨 것은 독일이 아니고 운명이다, 독일은 생사의 갈림길에서 자기들이 섬멸되지 않으려면 적을 섬멸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라는 거짓말을 하는 것이라고 했어요. 이른바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에 속하는 사람들은 근대 이후에 일본인들이 아시아에 대해서 품었던 그릇된 생각, 아렌트 식으로 말하면 거짓말인데, 그런 세뇌됐던 생각을 다음세대 젊은이들에게도 이어가게 하려고 한다라고 생각할 수 있지요.

이런 역사관은 부분적인 수정으로 고쳐지는 것이 아니에요. 일본은 근대에 들어서 거듭 그런 거짓말을 해왔습니다. 예를 들면, 러일전쟁 전후해서 보호조약이라는 것을 한국에 강요할 때도 ‘동양평화를 위하여’라든가 ‘한국의 독립을 위하여’라고 했지 않아요. 그런 일본의 거짓말이 저런 교과서에서 계속되고 있고 따라서 미래에도 계속될 것 아니겠습니까.

미래란 항상 불안하게 느껴지는 일종의 흑암인데 거기에 한줄기 빛을 던져주는 것이 바로 조약이나 협정 또는 약속이라고 아렌트는 말했습니다. 1998년의 한일공동성명에서 앞으로는 양국이 이렇게 하자고 약속을 하면서 일본과 한국 사이에도 미래를 향한 한줄기의 길이 비춰졌지만 그것이 이번에 끊어지고 만 것이지요. 2년 반의 이른바 한·일 밀월시대가 무너졌어요. 공동성명도 그전과 마찬가지로 일본의 거짓말이었던 것입니다. 저처럼 한·일관계를 위해서 애써온 사람으로서는 모든 것이 정치적 장난으로 무너지는 것 같아 허망할 뿐입니다.

그러나 한편 E.H. 카(Carr)가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한 말을 생각했지요. “어떠한 역사를 쓰는가 또는 쓰지 않는가 하는 것이 그 사회의 성격을 가장 잘 나타낸다.” 결국 그런 교과서를 썼다는 것도 일본사회를 보여주는 것이지만 그것을 거의 채택하지 않은 것도 또한 현재의 일본사회를 나타내 보여준 것이 아니겠어요.

코이즈미(小泉) 수상은 2001년 10월 하순 샹하이(上海)에서 열린 APEC회의에서 “1998년의 김·오부찌(小淵) 공동선언 정신으로 돌아가겠다”고 했다는데, 뒤늦게 일본정부 역시 그 길을 가야 한다고 생각한 것일까요. 일본은 무언가 불편한 일이 생기면 총리를 바꿔버리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일본은 신뢰받지 못하고 타국과 일본의 관계에는 항상 불안이 따라다니기 마련입니다. 코이즈미 수상은 지난 10월 15일 당일치기로 한국을 다녀갔습니다. 처음엔 무척 긴장된 얼굴로 무거운 발을 옮겼지만, 정상회담이 끝나고 나서는 마음이 퍽 가벼워진 것 같은 표정이었어요. 그리고 APEC, ASEAN+3 회의 등에서 계속 한·일, 중·일 정상회담을 거치면서 점차 그가 동아시아의 두 지도자와 대화를 잘 나누게 된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10월 15일 방한 때도 APEC 회의 때도 한국의 신문은 매우 비판적이었지요. 그런데 11월 ASEAN+3 때는 그때까지와는 달리 코이즈미 수상의 자세를 긍정적으로 보도했어요. 일본신문은 코이즈미 수상이 테러대책 특별조치법 등을 아시아 정상들에게 설명하려고 했으나 실패했다는 식으로 취급하고 있었지만, 한국신문에는 코이즈미 수상을 중심으로 한국과 중국의 두 정상이 손을 잡은 모습이 실려서 마치 일본이 둘의 손을 마주잡게 한 것 같았어요. 21세기에는 한·중·일이 새로운 경제관계·문화관계를 구축하여 무엇이든 문제가 있으면 대화하는 상황이 된다고 보았다고 할까, 전향적으로 보도하고 있었습니다.

일본은 지금까지 동아시아에서 또 세계적으로 압도적인 힘의 우위를 지녀왔습니다. ‘대국’은 새로운 힘이 대두해올 때 그것을 새로운 가능성이라고 보기보다는 불안한 심정으로 바라보는 경우가 많은데, 일본이 중국을 보는 눈도 바로 그런 것 아닙니까. 미국 역시 새로운 힘과 손을 마주잡고 새로운 시대를 구축해가자는 적극적인 자세이기보다는 대두하고 있는 힘을 억눌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은 약간 이중적인(ambivalent) 심정으로, 중국이 대국이 되는 것은 경제적으로 시장이 확대된다는 의미에서 바람직하지만 중국이 패권을 행사해서는 안된다고 봐요. 바로 이러한 시기에 일본이 여기에 건설적으로 관여하여, 동아시아에 균형잡히고 평화로우며 안정된 관계를 구축했으면 해요. 한국은 새로이 일어나는 사태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일 겁니다. 한국신문이 전향적으로 쓰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배경에서 일본에 대해 일종의 기대감을 지닌 데서 비롯됐다고 생각해요. 일본이 이같은 기대에 응답을 할 수 있는가, 그렇지 못하고 다시 우리에게 좌절과 실망을 안겨주는가. 이것은 금후의 동아시아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것으로 주목해야 하리라고 봅니다.

오까모또  예를 들면 이번 미국 테러사건 같은 때도 일본과 한국이 각각 미국에 ‘공헌’하려고 하기보다는 한·중·일이 협의·협력하면서 세계 전체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생각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지명관  앞으로는 무엇이든 중요한 문제가 일어났을 때 동아시아 3국의 정상들이 곧바로 협의한다는 자세가 중요하겠지요. 그렇게 대화를 거듭하면 결속도 강화될 것입니다. 예를 든다면 중국에서 들여오는 값싼 농산물과 공업제품 등이 일본이나 한국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데, 서로 국내 사정을 말하면서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어떤 양해사항으로서 제한을 가하는가 등을 상의할 수 있는 분위기가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한쪽에는 플러스이고 또 한쪽에는 마이너스가 되는 것이 아니라, 양측 모두가 승리하는 더욱 나은 방향을 모색하자는 거지요. 이리하여 동북아시아의 상호의존관계를 구축하는 것이 필요한 것입니다.

1998년에 김대중정권이 성립됐을 때, 일본이 경제수역을 선포하는 문제가 일어나자 김대중 대통령은 그것을 새로운 정권에 대한 일종의 도전이라고 받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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