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한반도에서의 근대와 탈근대
동아시아론과 근대적응·근대극복의 이중과제
백영서 白永瑞
연세대 사학과 교수, 중국사. 저서로 『동아시아의 귀환』 『동아시아의 지역질서』(공저), 편서로 『동아시아인의 ‘동양’ 인식: 19~20세기』 등이 있음. baik2385@hanmail.net
1. 한국발 동아시아론 돌아보기
한국과 일본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동아시아적 시각이 결여되었다고 비판받아온 중국대륙에서조차 요즘 동아시아담론이 활기를 띠고 있다. 쑨 꺼(孫歌)의 말을 빌리면, “우리는 전에 없던 동아시아담론의 풍작시대”1를 살고 있는 셈이다. 특히 한국에서는 지금 ‘동아시아담론’이 흥기하여 “한국사회의 주류담론인 민족담론과 통일담론에 비견할 새로운 지적 공론(公論)으로서 담론권력을 얻고 있다”고 평가될 정도이다.2
필자는 1990년대 초부터 동아시아적 시각의 중요성을 주창하면서 동아시아담론의 확산에 일역을 담당했는데 그 이론적·실천적 작업은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지식인사회에서 얼마간 관심을 끌었다.3 그리고 그간의 작업에 대해 ‘맑스주의와 민족주의에 대한 반성’에서 나온 ‘변혁이론으로서의 동아시아’라든가, ‘민족주의와 민족담론, 통일운동의 후속물로 출현한 성찰적 동아시아론’ ‘실천과제로서의 동아시아’ ‘비판적 지역주의’ 또는 ‘온건한 색깔의 동아시아’라는 식으로 평가받기도 했다.4
그런데 쑨 꺼는 유행 풍조에 휩쓸려 상투화되기 쉬운 관념적 동아시아론을 내재적으로 ‘부정’하려는 의도에서 ‘포스트 동아시아’란 용어를 제기하면서 “역사의 유동성 속에서 살아 있는 동아시아의 윤곽”을 파악할 것을 제안한 바 있다.5 그녀의 문제제기 그리고 필자의 작업에 대한 여러 논평들에 섞여 있는 비판을 보면서 필자의 동아시아론을 돌아볼 필요를 느끼던 차였다. 그래서 이 글을 기회 삼아 동아시아담론의 주요 쟁점을 중심으로 필자의 문제의식을 가다듬어보고자 한다.
먼저 이 글에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인문학과 사회과학을 통합한 접근방식이다. 되돌아보면, 1990년대초 한국에서 처음 동아시아적 시각을 중시한 사람들은 주로 인문학자들이었다. 그들은 1989년 이후 변화한 나라 안팎의 상황, 즉 국내의 민주화 진전과 세계적인 탈냉전의 상황에 맞춰 새로운 이념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동아시아’를 사실상 발견하고, 그것에서 새로운 이념과 문명적 가능성을 찾고자 했다. 물론 90년대 초부터 일부 사회과학자들이 동아시아의 신흥발전국가들(NICs)을 설명하기 위해 ‘발전국가’(developmental state)론을 원용하고 유교자본주의론을 들고 나와 동아시아담론의 한 갈래를 형성했다. 그후 아시아가 경제위기를 겪고 1997년 ‘ASEAN+3’체제가 출현하자 더 많은 사회과학 연구자들이 이 주제에 달려들어 정치·경제영역에서 국가간 협력체를 구축하는 데 관심을 갖기 시작해, 동아시아담론은 한층 더 구체화되고 풍성해졌다.
그런데 양측의 논의는 대체로 평행선을 달리다가 가끔 교차할 뿐이었다. 인문학자들은 주로 문화나 가치 영역에 관심을 기울이거나, 동아시아공동체에 관해 말한다 해도 그것을 동아시아 시민이 자발적으로 추진하는 인격적 유대·결합의 유토피아로서 상상하고 그 실천의 길을 모색하는 경향이 있다. 인격적인 개인들의 자발적 결합체인 공동체(community)는 전근대 시기에 소규모 형태로 존재했는데, 그것이 해체된 근대사회에서도 공동체적 인간관계의 재구축을 추구하는 움직임 속에서 종종 재해석된다. 공동체 이념을 국가를 넘어선 지역 차원에서 구현하려는 것이 넓은 의미의 또는 인문학적 의미의 동아시아공동체라 하겠다. 이에 비해 사회과학자들은 좁은 의미의 또는 정책학적 의미의 동아시아공동체에 주목한다. 그들은 국가나 자본이 주도하고 정치·경제영역에서 날로 긴밀하게 상호의존하는 지역적 현실(곧 지역화)과 그것에 기반한 지역협력체제의 제도화(지역주의)를 분석하는 데 치중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앞으로의 동아시아담론은 이런 분기(分岐)현상을 지양한 통합적 시각을 견지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지역화와 지역주의의 구체적 현실에 효과적으로 개입하면서, 그것이 인간다움을 좀더 충실히 구현하는 지역적 공생사회, 곧 진정한 의미의 동아시아공동체로 향하고 있는지 비판적으로 점검하는 일도 제대로 해낼 수 있지 않을까 한다.6
이와 더불어 이 글을 관통하는 또다른 문제의식은‘근대적응과 근대극복의 이중과제론’(이하 이중과제론)과 동아시아론을 연결하는 것이다. 90년대초 최원식(崔元植)이 ‘맹목적 근대추구와 낭만적 근대부정’을 함께 넘어서기 위해 동아시아적 시각을 제기한 바 있듯이,7 근대에 대한 발본적 문제제기는 처음부터 동아시아론의 핵심을 이룬다. 그것은 7,80년대 민족민중문화론이 자기반성과 새로운 모색을 꾀하던 중, 민중의 입장에서 당면한 과제가 바로 전세계의 과제임을 깨닫는 제3세계적 시각8과 만났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이중과제론은 지금 우리 논단에서 조금씩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중이다.9 그러나 근대적응과 근대극복이 두가지 성격의 단일과제임을 분명히한 이중과제론10은 근대와 탈근대의 단순한 이분법을 넘어서 양자를 동시적인 과제로 삼자는 문제의식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세계사적 근대에 대한 냉정한 인식과 분단체제 극복이라는 실천적 지향이 결합된 좀더 복합적인 사고라 할 수 있다.
필자는 이중과제론이 안고 있는 듯 보이는 이율배반성이라든가 추상성의 문제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시공간에 대한 다층적 인식이 요구됨을 강조하고자 한다. 지구적 규모의 장기적인 시간대에 걸친 논의와 중·소규모의 지역, 중·단기의 과제를 동시에 사고하면서 일관된 실천으로 연결시키는 작업이 바로 그것이다. 바로 여기서 동아시아론이 이중과제론과 만나고, 이를 통해 지역주의적이면서도 세계사적 차원의 보편적 지향을 견지할 수 있게 된다.
2
- 孫歌 「なぜ‘ポスト’東アジアなのか」, 孫歌·白永瑞·陳光興 編 『ポスト‘東アジア’』, 作品社 2006, 119~20면. 국역본은 쑨 꺼 「포스트 동아시아 서술의 가능성」, 한림대 아시아문화연구소 엮음 『동아시아 경제문화 네트워크』, 태학사 2007, 71면. ↩
- 장인성 「한국의 동아시아론과 동아시아 정체성」, 『세계정치』 제26집 2호, 2005, 4면. ↩
- 필자의 동아시아론은 개인의 작업인 동시에 (계간 『창작과비평』의 담론의 하나로 간주되듯이) 집단작업의 소산이기도 하다. 이를 집중분석한 최근의 글로는, 박명규 「한국 동아시아담론의 지식사회학적 이해」, 김시업·마인섭 엮음 『동아시아학의 모색과 지향』, 성균관대학교출판부 2005; 장인성, 앞의 글; 고성빈 「한국과 중국의 ‘동아시아담론’: 상호연관성과 쟁점의 비교 및 평가」, 『국제지역연구』 제16권 제3호, 2007; 임우경 「비판적 지역주의로서의 한국 동아시아론의 전개」, 『중국현대문학』 제40호, 2007. ↩
- 인용 순서대로, 하세봉 『동아시아 역사학의 생산과 유통』, 아세아문화사 2001, 18면; 장인성, 앞의 글 9면; 馬場公彦 「ポスト冷戰期東アジア論の地坪」, 『アソシエ』 No. 11, 2003, 51~52면; 임우경, 앞의 글; 박노자 『우리가 몰랐던 동아시아』, 한겨레출판 2007, 13면. ↩
- 쑨 꺼, 앞의 글, 국역본은 77면, 일본어본은 123면. 또한 요네따니 마사후미(米谷匡史)는 동아시아의 연대와 해방이란 이름 아래 행해진 폭력에 대한 철저한 자기성찰 없이 국가와 자본에 의해 시도되는 동아시아 지역질서 통합을 비판하며 새로운 연대의 관계성을 열기 위해 ‘포스트 동아시아’를 내세운다. 米谷匡史 「ポスト東アジア: 新たな連帶の條件」, 『現代思想』 2006년 8월호. ↩
- 필자의 이런 입장은 인문학자와 사회과학자의 상반된 비판에 대한 대응이다. 중문학자 이정훈은 필자의 동아시아론이 “80년대식의 비판담론에 대한 자기비판”으로 시작했는데 지금은 중심이동을 하여 “현실에 깊이 개입하려는 실천적 노력과 내셔널리즘 및 국가로의 ‘귀환’ 혹은 ‘경도’ 사이의 미묘한 갈림길에 서 있”다고 평가한다. 「비판적 지식담론의 자기비판과 동아시아론」, 『중국현대문학』 제41호, 2007, 9면. 반면 정치학자 고성빈(高成彬)은 “단순히 지적인 상상에서의 규범적이고 사변적인 연구를 넘어서 현재하는 구체적인 정치경제, 사회적 문제들과 연관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문한다. 고성빈, 앞의 글 62면. 필자는 인문학적 접근과 사회과학적 접근이 상호대조와 상호침투를 거쳐 통합의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본다. ↩
- 최원식 「탈냉전시대와 동아시아적 시각의 모색」, 『창작과비평』 1993년 봄호. ↩
- 백낙청(白樂晴)의 다음 언급이 제3세계적 의식의 핵심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민중의 입장에서 볼 때-예컨대 한국 민중의 입장에서 볼 때-스스로가 제3세계의 일원이라는 말은 무엇보다도 그들의 당면한 문제들이 바로 전세계·전인류의 문제라는 말로서 중요성을 띠는 것이다. 곧, 세계를 셋으로 갈라놓는 말이라기보다 오히려 하나로 묶어서 보는 데 그 참뜻이 있는 것이다.” 백낙청 「제3세계와 민중문학」, 『창작과비평』 1979년 가을호 50면. 같은 문제의식은 최원식 「민족문학론의 반성과 전망」, 『민족문학의 논리』, 창비 1988에서도 볼 수 있다. 최원식은 특히 “제3세계론의 동아시아적 양식을 창조할 때 비로소 우리의 민족문학론도 풍부한 현실성과 진정한 선진성을 획득할 수 있을 터”라고 역설했다.(368면) ↩
- 『문화과학』 2000년 여름호 특집이 ‘근대·탈근대의 쟁점들’로 꾸려졌다. 또 김성보(金聖甫)는 근대의 ‘적응과 극복’과 구별해 ‘확장과 지양’이라는 표현을 쓴다. 김성보 「탈중심의 세계사 인식과 한국 근현대사 성찰」, 『역사비평』 2007년 가을호, 245면. ↩
- 이중과제론의 진화과정은 백낙청 「한반도에서의 식민성 문제와 근대 한국의 이중과제」, 『창작과비평』 1999년 가을호; 「21세기 한국과 한반도의 발전전략을 위해」, 『한반도식 통일, 현재진행형』, 창비 2006 참조. 이중과제론이 대두한 의의에 대해서, 송승철(宋承哲)은 “학계의 견해가 한편으로는 근대론과 탈근대론으로 경직되게 양분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민주화 달성 도정에서 중시되었던 경험과 가치들이 갑작스럽게 구닥다리로 치부되는 상황에서, 탈근대적 새로움은 새로움대로 인정하면서도 민주화를 위해 투쟁했던 시대의 가치들을 전지구화의 상황 속에서 발전시키려 한 점”이라고 지적한다. 송승철 「시민문학론에서 근대극복론까지」, 설준규·김명환 엮음 『지구화시대의 영문학』, 창비 2004, 248면. ↩
- 孫歌 「なぜ‘ポスト’東アジアなのか」, 孫歌·白永瑞·陳光興 編 『ポスト‘東アジア’』, 作品社 2006, 119~20면. 국역본은 쑨 꺼 「포스트 동아시아 서술의 가능성」, 한림대 아시아문화연구소 엮음 『동아시아 경제문화 네트워크』, 태학사 2007, 71면. ↩
- 장인성 「한국의 동아시아론과 동아시아 정체성」, 『세계정치』 제26집 2호, 2005, 4면. ↩
- 필자의 동아시아론은 개인의 작업인 동시에 (계간 『창작과비평』의 담론의 하나로 간주되듯이) 집단작업의 소산이기도 하다. 이를 집중분석한 최근의 글로는, 박명규 「한국 동아시아담론의 지식사회학적 이해」, 김시업·마인섭 엮음 『동아시아학의 모색과 지향』, 성균관대학교출판부 2005; 장인성, 앞의 글; 고성빈 「한국과 중국의 ‘동아시아담론’: 상호연관성과 쟁점의 비교 및 평가」, 『국제지역연구』 제16권 제3호, 2007; 임우경 「비판적 지역주의로서의 한국 동아시아론의 전개」, 『중국현대문학』 제40호, 2007. ↩
- 인용 순서대로, 하세봉 『동아시아 역사학의 생산과 유통』, 아세아문화사 2001, 18면; 장인성, 앞의 글 9면; 馬場公彦 「ポスト冷戰期東アジア論の地坪」, 『アソシエ』 No. 11, 2003, 51~52면; 임우경, 앞의 글; 박노자 『우리가 몰랐던 동아시아』, 한겨레출판 2007, 13면. ↩
- 쑨 꺼, 앞의 글, 국역본은 77면, 일본어본은 123면. 또한 요네따니 마사후미(米谷匡史)는 동아시아의 연대와 해방이란 이름 아래 행해진 폭력에 대한 철저한 자기성찰 없이 국가와 자본에 의해 시도되는 동아시아 지역질서 통합을 비판하며 새로운 연대의 관계성을 열기 위해 ‘포스트 동아시아’를 내세운다. 米谷匡史 「ポスト東アジア: 新たな連帶の條件」, 『現代思想』 2006년 8월호. ↩
- 필자의 이런 입장은 인문학자와 사회과학자의 상반된 비판에 대한 대응이다. 중문학자 이정훈은 필자의 동아시아론이 “80년대식의 비판담론에 대한 자기비판”으로 시작했는데 지금은 중심이동을 하여 “현실에 깊이 개입하려는 실천적 노력과 내셔널리즘 및 국가로의 ‘귀환’ 혹은 ‘경도’ 사이의 미묘한 갈림길에 서 있”다고 평가한다. 「비판적 지식담론의 자기비판과 동아시아론」, 『중국현대문학』 제41호, 2007, 9면. 반면 정치학자 고성빈(高成彬)은 “단순히 지적인 상상에서의 규범적이고 사변적인 연구를 넘어서 현재하는 구체적인 정치경제, 사회적 문제들과 연관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문한다. 고성빈, 앞의 글 62면. 필자는 인문학적 접근과 사회과학적 접근이 상호대조와 상호침투를 거쳐 통합의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본다. ↩
- 최원식 「탈냉전시대와 동아시아적 시각의 모색」, 『창작과비평』 1993년 봄호. ↩
- 백낙청(白樂晴)의 다음 언급이 제3세계적 의식의 핵심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민중의 입장에서 볼 때-예컨대 한국 민중의 입장에서 볼 때-스스로가 제3세계의 일원이라는 말은 무엇보다도 그들의 당면한 문제들이 바로 전세계·전인류의 문제라는 말로서 중요성을 띠는 것이다. 곧, 세계를 셋으로 갈라놓는 말이라기보다 오히려 하나로 묶어서 보는 데 그 참뜻이 있는 것이다.” 백낙청 「제3세계와 민중문학」, 『창작과비평』 1979년 가을호 50면. 같은 문제의식은 최원식 「민족문학론의 반성과 전망」, 『민족문학의 논리』, 창비 1988에서도 볼 수 있다. 최원식은 특히 “제3세계론의 동아시아적 양식을 창조할 때 비로소 우리의 민족문학론도 풍부한 현실성과 진정한 선진성을 획득할 수 있을 터”라고 역설했다.(368면) ↩
- 『문화과학』 2000년 여름호 특집이 ‘근대·탈근대의 쟁점들’로 꾸려졌다. 또 김성보(金聖甫)는 근대의 ‘적응과 극복’과 구별해 ‘확장과 지양’이라는 표현을 쓴다. 김성보 「탈중심의 세계사 인식과 한국 근현대사 성찰」, 『역사비평』 2007년 가을호, 245면. ↩
- 이중과제론의 진화과정은 백낙청 「한반도에서의 식민성 문제와 근대 한국의 이중과제」, 『창작과비평』 1999년 가을호; 「21세기 한국과 한반도의 발전전략을 위해」, 『한반도식 통일, 현재진행형』, 창비 2006 참조. 이중과제론이 대두한 의의에 대해서, 송승철(宋承哲)은 “학계의 견해가 한편으로는 근대론과 탈근대론으로 경직되게 양분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민주화 달성 도정에서 중시되었던 경험과 가치들이 갑작스럽게 구닥다리로 치부되는 상황에서, 탈근대적 새로움은 새로움대로 인정하면서도 민주화를 위해 투쟁했던 시대의 가치들을 전지구화의 상황 속에서 발전시키려 한 점”이라고 지적한다. 송승철 「시민문학론에서 근대극복론까지」, 설준규·김명환 엮음 『지구화시대의 영문학』, 창비 2004, 248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