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과 현장
‘동아시아사’의 가능성
한중일3국공동역사편찬위원회 『미래를 여는 역사』에 대하여
나리따 류우이찌 成田龍一
니혼죠시대학(日本女子大學) 교수. 일본근현대사, 특히 도시사·사학사 전공. 주요 저서로 『「故鄕」という物語』 『歷史學のスタイル』 『近代都市空間の文化經驗』 등이 있음. ry1-nrtair@sage.ocn.ne.jp
ⓒ 成田龍一 2006/한국어판 ⓒ(주)창비 2006
1. 2005년의 동아시아
2005년에는 동아시아에서 역사인식의 온도차를 실감케 하는 사건들이 줄을 이었다. 예컨대 봄에 한국과 중국에서 발생한 시위에 대해 일본 언론은 ‘반일’이라는 딱지를 붙여서 보도했다. 일본의 외교정책과 외교자세에 반대한 시위였음에도 불구하고, 일본 언론은 일본 전체를 대상으로 한 시위인 양 보도하면서 비난을 가했던 것이다. 역사교과서 문제와 야스꾸니신사(靖國神社) 참배문제에 대한 아시아의 비판에 관해서는 아시아 각국의 ‘반발’이라는 표현을 써서 보도하기도 했다. 이런 사례들은 곧 전쟁에 대한 기억방식이나 오늘날의 동아시아와 세계를 어떻게 생각하는가와 관련된 문제를 곧 일본에 대한 반발로 취급하는 자세로서, 중국·한국과의 온도차를 좁히려는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또 2005년은 일본 내에서는 ‘전후(戰後) 60주년’으로서 강조되었다. 2005년은 이밖에도 ‘해방 60주년’ ‘을사조약 100주년’ ‘한일조약 40주년’ ‘베트남전쟁 종결 30주년’등 여러가지로 생각할 수 있지만, 오로지 전후 60주년에만 촛점이 맞춰졌다. 게다가 실제로는 전후 60주년에 대한 논의조차 이루어지지 않은 채 노골적인 ‘국익’론이 버젓이 통용되는 참담한 상황이었다. 전후 60주년이라는 인식 자체도 일국사적인 역사인식에 그치고 말았다. 사실“ ‘전후’를 60주년으로 표현할 수 있는 나라가 아시아에 과연 얼마나 될까”1 하는 인식 자체가 희박한 것이었다.
이런 가운데 동아시아의 근현대사에 관한 텍스트 『미래를 여는 역사: 한중일이 함께 만든 동아시아 3국의 근현대사』(한겨레신문사 2005)2가 간행되었다. 일본·한국·중국의 관계자들이 공동으로 편집하여 오랜 시간을 들여 준비한 책이 각국에서 동시에 출간된 것이다. 이 책은 교과서가 아니라 부교재를 표방하지만, 역사교육의 현장에서 사용될 것을 지향한만큼 각종 제약과 곤란이 따랐음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역사교육은 각 ‘국가’마다 제도의 차이가 있을뿐더러 ‘국민’을 육성한다는 목적이 있는만큼 내셔널한 틀로 짙게 채색된다. 또 국가와 국민의 틀을 상대화하려 할 때도 각국의 역사교육이 안고 있는 과제의 차이를 무시할 수 없다. 이처럼 여러 제약과 곤란이 가로놓여 있는 가운데서도 『미래를 여는 역사』를 편찬·간행하는 데 힘쓴 분들께 먼저 경의를 표하고자 한다.
일본에서는 특히 1990년대 이후로 노골적인 내셔널리즘이 배회하고 있다. 역사교육의 현장에서도 ‘역사수정주의(歷史修正主義)’를 내세운 후소오샤(扶桑社)의 『새로운 역사교과서』가 2002년에 등장했다. 『미래를 여는 역사』는 이 책의 출간을 계기로 해서 구상되었다고 한다. 『새로운 역사교과서』에 대해서는 여러 각도에서 비판을 가할 필요가 있고, 한걸음 더 나아가 대안을 제시할 필요성도 요청되므로 『미래를 여는 역사』의 간행은 매우 뜻깊은 일이다.
그렇지만 역사교육을 둘러싼 이러한 상황과 운동이라는 관점을 견지하면서도, 이 책에서 제시된 역사상(歷史像)과 역사서술에 대해서는 정확한 점검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저 운동의 과정에서 나온 산물로만 취급하고 책의 내용을 검토하지 않는 것은 『미래를 여는 역사』의 집필자들도 진정으로 원하는 바가 아닐 것이다. 『새로운 역사교과서』에 대한 비판으로 어떠한 역사상이 제시되는가 하는 점은 운동의 측면에서도 중요하지 않을 수 없다. 이 글에서는 역사학적·사학사(史學史)적 관점에서 『미래를 여는 역사』를 독해하고자 한다. 필자는 한국·중국과는 다른 역사적·문화적 배경을 갖고 있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 사실을 자각하면서) 같은 텍스트를 읽고 언어를 실처럼 자아내어 한국·중국 분들과 대화를 나눌 실마리를 만들어보고자 한다. 그것이 이 글의 목적이다.
『미래를 여는 역사』의 일본측 집필자는 일본 역사학계에서는 ‘전후역사학’이라 불리는 입장에 선 인사들이 주축을 이룬다. 전후역사학은 1945년 8월 이후의 ‘전후민주주의’를 구현한 역사학으로서 사회경제사의 성과를 기반으로 역사를 묘사하며 일본제국의 군국주의적 행위를 비판적으로 고찰하는 역사학이다. 전후 전개과정에서 일본 역사학의 패러다임은 오랫동안 이 전후역사학으로 집약되었고 이에 맞서 역사수정주의가 대두함으로써, 전후역사학과 역사수정주의가 상호 대립하는 시기가 이어졌다.
그러나 1990년 전후부터 이 두 파 외에 새로이 ‘사회사연구’가 대두한 후로는 전후역사학, 역사수정주의, 사회사연구의 3파정립(鼎立) 상황이 출현한다. 사회사연구는 언어론적 전환의 논의를 의식하여 역사구성주의의 입장을 취하는데, 이런 면에서 실증주의, 즉 본질주의의 입장을 취하는 전후역사학과 대립관계를 이룬다. 그러나 사회사연구의 역사학자들도 역사수정주의에 대해서는 모두 반대 입장을 취하고 있다.
현재 실로 성가신 문제지만 반드시 유념해야 할 것은 『새로운 역사교과서』로 대표되는 역사수정주의가 결코 예전처럼 단순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종래의 ‘대동아전쟁 긍정론’같은 복고적인 역사관에만 의존하지 않고, 역사구성주의에 입각한 새로운 논점인 ‘이야기(narrative)로서의 역사론’까지 내세우고 있다. 사학사적으로 볼 때, 『새로운 역사교과서』는 새로운 역사수정주의로서 등장한 것이다.3 일본에서는 이처럼 새로운 논점과 대항관계가 대두한 3파정립 상황에서 『미래를 여는 역사』가 간행되었다.
2. 『미래를 여는 역사』에 대하여
일본과 동아시아 각국 사이에는 한국과의 교류를 비롯해서 국가간·단체간의 각종 역사교육 교류가 진행되고 있다. 『미래를 여는 역사』는 ‘역사인식과 동아시아 평화포럼’(일본과 한국은 민간차원, 중국은 국가차원)을 출발점으로 한 교류의 일환으로서 2002년 3월에 열린 난징(南京) 포럼 이래 준비를 거듭해왔다고 한다. 같은 해 8월에 서울에서 부교재 작성을 위한 회의가 열린 뒤 일본에서 4회, 중국에서 4회, 한국에서 2회의 회의가 개최되었다. 이들 회합의 성과를 토대로 『미래를 여는 역사』가 간행되었다. 일본측 집필자와 관계자 들에 따르면, 이 책은 2005년 3국에서 동시발매되어 일본에서 7만부, 중국에서 12만부, 한국에서는 3만부가 팔렸다고 한다.4 『미래를 여는 역사』는 ‘일본·중국·한국 공동편집’형태를 취해 각 절을 ‘담당국’이 집필했고, 책 말미에 집필 분담이 명시되어 있다.5
일본·중국·한국 3국간의 교류는 지금까지 여러차례 시도된 바 있다. 예컨대 일본을 무대로 해서는 1982년에 발족된 ‘비교사·비교역사교육 연구회’가 있다. 이 연구회는 1984년 8월 ‘동아시아 역사교육 심포지엄: 자국사와 세계사’를 개최했다.6 이 시도 역시 1982년 일본의 역사교과서 문제를 계기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그런데 1982년의 경우 3국간의 주제가 (역사교육의) ‘비교’인 반면, 『미래를 여는 역사』에서는 ‘공통’(의 교재 작성)을 지향하고 있어서, 이 20년간의 추이와 경험의 축적을 엿볼 수 있다.
『미래를 여는 역사』의 일본측 편집위원회는 주로 ‘어린이와 교과서 전국네트〔워크〕 21’ ‘역사교육 아시
- 目取眞俊 『沖繩「戰後」ゼロ年』, NHK出版 2005. ↩
- 일본어판 제목은 『未來をひらく歷史: 日本·中國·韓國〓共同編集 東アジア3國の近現代史』, 高文硏 2005이다.(중국어판 제목은 『東亞三國的近現代史』, 社會科學文獻出版社 2005이다—옮긴이.) ↩
- 이 점에 관해서는 졸고 「歷史を敎科書に書くこと」, 『世界』 2001년 5월호 참조. ↩
- 齊藤一晴 「『未來をひらく歷史』作成のる經過と論點」 上·下, 『季刊戰爭責任硏究』 48/49, 2005.6.9. ↩
- 일본어판에는 각국별 집필항목표가 붙어 있으나 한국어판과 중국어판에는 각국별 집필자만 소개되어 있다—옮긴이. ↩
- 당시의 기록은 『自國史と世界史』, ほるぷ出版 1985로 간행되었으며, 제3회 회의도 同會 編 『黑船と日淸戰爭』, 未來社 1996으로 간행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