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6·15시대, 무엇을 할 것인가

 

동아시아와 코리안 디아스포라

공동체에서 네트워크로

 

 

현무암 玄武岩

토오꾜오대학 대학원 정보학쎈터 조수(助手). 저서로 『韓國のデジタル·デモクラシ一』(한국의 디지털민주주의), 논문으로 「東アジアのコリアン·ネットワ一ク: その歷史的生成」(동아시아 코리안 네트워크의 역사적 생성) 등이 있음.  gen@iii.u-tokyo.ac.jp

 

 

1. 들어가며

 

한반도는 ‘진정한 국민국가’를 이루기도 전에 탈민족이라는 새로운 조류에 휩쓸리고 있다. 민족주의에 대한 내재적인 비판이 제기되는가 하면, 다른 한편에서는 동아시아공동체라는 지역통합의 움직임이 대두되고 있는 것이다. 양자는 지구화에 대한 대응이라는 점에서 맥을 같이하는데, 통일이라는 ‘민족적 과제’또한 이러한 시대적 흐름에 따를 것을 요구받고 있다.

우리는 단일한 국민국가로의 통일을 향한 욕망을 극복할 필요가 있다. 이는 단지 일방적인 통일이 야기할 통일부담이라는 현실적인 문제를 염려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것은 통일로 인해, 글로벌 씨스템에 적응하지 못한 북한이 내부의 식민지가 될까봐 우려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물론 국민국가가 아닌 다른 창의적인 방식으로 점진적인 통합을 이루어간다고 해도 상호신뢰를 회복하기까지는 많은 어려움이 예상된다. 무엇보다도 냉전 붕괴 후에 소련·중국과 국교가 수립되면서 만나게 된 한국의 본국민과 재외동포의 관계가 언어적·경제적 차별에 따른 서열구조로 규정되곤 하는 현실에 비추어보았을 때, ‘동포애’만으로 북한주민들이 동등한 공동체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지리라고는 믿기 힘들다.

흔히 ‘과정으로서의 통일’이 현실적인 방향으로 제시되곤 한다. 그리고 최근의 통일논의가 남북한과 재외동포를 아우르는 새로운 민족통합을 지향하는 것이라면, 한국과 재외동포가 만나는 순간부터 이미 통일을 향한 도정에 돌입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이 재외동포를 한민족이라는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한, 그러한 통합과정은 근저에서부터 흔들리고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남북의 통합이라는 과제를 어떠한 식으로든 추진해가야 하는 상황에서 재외동포의 존재와 그들과의 관계설정이 다문화적인 풍토를 경험하지 못한 한국인들에게 주는 의미는 적지 않다. 그렇다고 재외동포를 남북통일의 리트머스지로 보거나 그들을 통해 다문화주의의 교육효과를 기대하는 것은, 이 글에서 비판적으로 고찰하고자 하는 한반도 중심주의적인 한민족공동체론을 재연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한반도를 중심에 놓는 재외동포 정책에서는 한민족의 정체성과 한국어 교육이 중요한 과제가 되며, 재외동포들을 통일과정에 활용가능하거나 경제발전에 기여하는 존재로 보게 된다. ‘민족의 동질성 회복’을 목표로 하는 한 재외동포 연구단체는 중국조선족 여성과 한국 남성의 결혼을 ‘반세기간 단절되었던 한민족의 재결합이라는 민족사적 쾌거’로 여긴다. 이처럼 재외동포를 바라보는 시각에는 민족의식을 상실한 가난한 북방의 동포를 계몽한다는 우월의식이 드러난다. 노동인력을 들여올 때 한국어시험을 실시하여 이주노동자를 줄이고 조선족의 입국을 용이하게 하자는 지원단체의 주장도 폐쇄적인 민족중심주의에 다름아니다.

재외동포를 자원적인 존재로 보거나 시혜 대상으로 바라보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모습이 아닐 것이다. 사실 역사를 돌이켜봤을 때 ‘재내(在內)’와 ‘재외(在外)’간의 교류는 늘 있어왔음을 알 수 있다. 무엇보다도 식민지라는 상황에서 ‘재내’와 ‘재외’는 언제든지 전이가능한 것이었고, 앞으로도 인적 이동이 활발해질수록 양자의 경계는 더욱 모호해질 것이다.

탈영토적인 한민족의 연대가 과제로 등장하고 있다. 그것이 통일과정의 근간을 이루고 나아가 동아시아의 지역협력체를 엮어나가는 데 기여하려면 우리는 다시 한번 본국과 재외동포의 관계를 돌이켜볼 필요가 있다. 즉 한민족의 연대는 사회적·역사적 장소를 빼앗긴 디아스포라(diaspora)의 존재가 부정되지 않는 관계가 가능한 공간을 통해서 이루어질 수 있다.

이러한 관계를 온전히 이룩하기 위해서는 ‘공동체’가 아니라 ‘네트워크’로서의 한민족이란 발상이 전제되어야 한다. 이 글은 코리안 네트워크의 역사적 궤적을 검토하여 그 근거를 확보하는 데서부터 논의를 시작하고자 한다.

 

 

2. 동아시아의 코리안 네트워크

 

일제는 한반도를 영토적으로 점유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한민족 전체를 제국신민에 포섭하지는 못했다. 그것은 일본이 영향력을 끼치면서도 통치권을 완전하게 행사하지 못했던 제국의 외연부에 존재하는 한민족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일본은 재외한인을 ‘일본신민 조선인’으로 끌어들이려는 갖가지 공작을 추진했다. 제국신민이 아닌 한인의 존재는 한반도지배를 근간으로 하는 일본제국의 발판을 흔드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배의 물리적 장치로 식민지에 확장된 철도·해운·우편 등의 인프라와 제국의 통치권력은 그 의도에 반하여 대항네트워크를 수반하게 마련이었다. 이러한 대항네트워크는 각각의 한인사회를 연결하여 사람과 정보의 유통경로가 되었다. 이를 통해 반일운동과 독립사상 및 근대적 공화사상이 한반도에 파급되었다.

예컨대 1900년대 중반부터 극동 러시아에서 발행된 해조신문(海朝新聞), 대동공보(大東共報), 권업신문(勸業新聞) 등과 미주에서 발행된 신한민보(新韓民報) 등 한인사회의 한글신문들은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논설과 기사를 서로 전재하기도 하고 지면논쟁도 벌였는데, 이는 당시 국경을 넘어선 한인들의 네트워크를 보여준다. ‘신문지법(新聞紙法)’에 의해 언론이 엄격하게 통제되던 시기에 재외 한인사회의 신문은 본국의 신문을 대신하여 애국계몽과 독립사상의 진원지가 되어 당시 형성중이던 한국의 민족주의를 주도했다.

이처럼 제국의 지배에 대항하는 코리안 네트워크는 제국적인 질서형성을 거부하고 새로운 동아시아를 지향했다. 물론 이들이 공유한 기본적인 목표는 조선의 독립과 국민국가 수립이었다. 그러나 일본제국주의에 의한 폭력행위가 ‘동아(東亞)’의 연대와 해방이라는 명목하에 반복되고, 조선과 중국, 대만의 항일운동·민족자결권에 응답하려 한 일본의 사상가나 사회주의자, 그리고 식민지 조선의 지식인까지도 이런 폭력의 연쇄에 끌려들어간 것을 상기한다면,1 한민족의 대항네트워크에서 조선독립을 초월하는 지역연대의 지형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최근 동아시아공동체가 논의되는 과정에서 다시금 코리안 디아스포라가 주목받으면서 한민족공동체론이 부상하고 있다. 한반도의 통일방안으로 제기된 ‘한민족공동체’논의는 1990년대 들어 세계화시대의 민족적 생존전략으로 새롭게 자리매김된다. 재외동포 또한 그러한 세계화전략의 일익을 담당하는 존재로서 새롭게 조명되기 시작했다. 그것이 최

  1. 米谷匡史 「ポスト東アジア: 新たな連帶の條件」, 『現代思想』 2005년 6월호, 7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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