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과 현장 | 국제심포지엄 발제문

 

동아시아의 국족주의를 넘어

 

 

쳔 이즁 陳宜中

『대만사회연구』 편집위원. 사회정치학 전공. 주요 논문으로 「서양 맑스주의의 쇠퇴와 몰락」(The Decline and Fall of Western Marxism) 등이 있음. ic10006@gate.sinica.edu.tw

 

 

1. 『대만사회연구』의 비판적 역할

 

『대만사회연구(台灣社會硏究季刊)』는 1980년대 대만이 계엄령을 해제하기 이전의 시대상황을 배경으로 기획된 비판적 학술지이다. 1988년 창간된 이래 사회와 정치에 관한 광범한 주제에 대해 집중적인 연구와 토론을 전개해왔으며, 2006년 중반까지 통권 61호를 발간했다. 그리고 학술연구와 사회현실의 긴밀한 연계를 표방하며, 매호마다 민주화, 분배정치, 세계화, 이민/노동, 계급, 젠더, 매체개혁, 족군(族群)충돌, 국족주의(國族主義)1같은 대만의 사회현실 및 모순과 관련된 문제들을 다루어왔다.

수년간 학술잡지, 학술토론회, 논단 등의 형식을 통해 『대만사회연구』는 많은 소장학자들의 관심과 참여를 이끌어냈을 뿐만 아니라, 대만의 인문사회학계, 사회운동단체, 학생조직 등 여러 단체들에도 일정한 영향력을 발휘해왔다. 홍콩에서 발행되는 격월간지 『21세기(二十一世紀)』는 「중국대륙·대만 학술잡지 평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대만사회연구』가 제기하는 토론주제야말로 대만 독자들이 이 잡지에 그토록 계속해서 관심을 갖고 읽게 만드는 힘이다. 과거 국족주의, 족군문제에 대한 시의적절한 분석 및 토론과 대응은 대만 지식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는데, 이는 적절한 의제설정으로 토론과 반성을 이끌어가는 『대만사회연구』의 영향력을 잘 보여준다.”

『대만사회연구』에 있어 ‘진보’는 대만과 동아시아에서 여전히 유효한 개념이다. 그러나 소위 ‘진보’란 이론적 실천과 사회적 행동이 동반되어야만 비로소 구체적인 정치적 의의를 획득할 수 있다. 『대만사회연구』는 비판적 지식단체로서, 단지 상아탑의 학술연구활동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아가 각종 사회정치활동에 참여하고 개입할 때, 비로소 우리의 ‘진보’가 현실적 함의를 지닐 수 있다고 본다. 따라서 『대만사회연구』의 성원은 학술연구에 종사하는 한편 강좌나 논단의 개최, 신문·잡지의 전문칼럼 기고, 그리고 소수자집단과 사회운동단체 지원 등의 활동을 벌여왔다.

비판적 지식공동체로서 『대만사회연구』 성원들의 전문영역은 매우 다양하고 관심분야도 제각각 다르다. 창간초부터 『대만사회연구』는 매우 다원적인 진보적 토론의제와 관점을 종합하고 연계함으로써 상호지원하는 연대관계를 형성했다. 과거 10여년 동안 『대만사회연구』의 성원이 개입해왔던 사회 및 정치 논쟁은 상당히 광범위하다. 외성인(外省人) 차별, 반전, 학생운동, 민주화, 언론자유, 사회공정성, 노동체제, 여성인권, 동물권리, 매체개혁, 다원문화, 문화보존, 국족주의, 족군충돌, 역사기억, 대륙—대만 평화, 동아시아 화해, 탈냉전화, 세계화, 신자유주의 등이 망라되어 있다.

이처럼 『대만사회연구』 성원의 정치와 사회에 대한 관심이 매우 광범하고 다양하기는 하지만, 수년간 공동활동을 하면서 대만의 진보발전 방향에 대해 일정한 공통인식을 갖게 되었다. 즉 거시적 측면에서 보면 사회민주 추구, 정치평등 촉진, 족군대립 해소, 대륙—대만의 평화적 관계 추진, 동아시아 화해 지향이 『대만사회연구』의 진보에 대한 기본입장이라고 할 수 있다.

우선 사회와 경제정의의 문제에서 『대만사회연구』는 신자유주의 정치·경제 노선과 여기서 파생된 부정적 영향을 강력히 비판하고, 각종 사회·경제 약소집단의 사회운동에 적극 참여하고 이를 지지해왔다. 또 넓은 의미의 정치평등 문제에서 기본인권과 공민권의 보편적 실현을 주장하고, 소수자집단 및 그들의 종교와 생활방식에 대한 모든 차별정책에 반대했다. 동시에 ‘정치의 공공화’라는 개념을 제창하고, 매체 공공화를 통해 정치/공공영역이 부단히 약화되고 독점화되는 시대적 추세를 바로잡으려 했다. 족군충돌의 문제에서 『대만사회연구』는 족군대립을 조장하는 족군정치를 반대하고, 국족정체성의 차이를 이간하는 권위적인 인민주의정치를 비판했다. 마지막으로 대륙—대만 관계에서는 지역평화, 진보발전의 관점에서 양안(兩岸)의 미래를 모색하고, 단순화된 ‘통일’이나 ‘독립’같은 입장 및 담론에 반대했다. 동시에 양안의 평화가 반드시 동아시아의 화해, 탈냉전화 운동의 맥락 속에서만 점진적으로 실현될 수 있다고 보았다.

『대만사회연구』는 진보주의를 내세우며, 가까운 장래에도 계

  1. 족군(族群)은 영어의 ‘ethnic groups’을 번역한 것으로, 우리말로는 종족(집단)/민족(집단)에 상당한다. 일반적으로 민족/국민/국가로 번역하는 ‘nation’이 다양한 민족과 인종을 정치적으로 통합한 것을 의미하는 데 반해, 족군은 다민족국가 내의 다양한 종족/민족을 지칭하거나 혹은 다민족 내의 소수민족이나 이민집단을 가리키기도 한다. 한편 국족(國族)은 기존의 민족이나 국민의 개념이 자연적 과정으로 해석될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보고, ‘국민’이 근대국가의 장치에 의해 인위적으로 ‘통합’된 산물이라는 점을 부각시키기 위해서 사용되고 있다—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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