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동아시아의 지식인과 동아시아론

 

 

김경일 金炅一

한국정신문화연구원 교수, 사회학 전공. 주요 저서로 『일제하 노동운동사』 『이재유 연구』 『지역연구의 역사와 이론』(편저) 『한국의 근대와 근대성』 『동아시아의 민족이산과 도시』(공저) 『근대의 여성, 여성의 근대』 등이 있음. keongil@aks.ac.kr

 

 

긴 20세기를 보내고 21세기의 문턱에서 동아시아 지식인들 사이의 대화를 위한 시도는, 19세기 후반 이래 전쟁과 냉전체제로 인해 상호교류가 단절되어온 사실에 비추어볼 때 새삼스런 감회에 젖게 하는 바가 있다. 제국주의 열강의 위협 앞에서 지식인의 상호소통을 통해 제국주의 질서를 극복하고 지역의 평화공존을 모색하고자 했던 시도가 참담한 실패로 끝나버린 역사적 경험을 되새기면서 지구화와 신식민주의의 21세기 초입에서 동아시아 지식인들의 상호교류가 어떠한 의미와 한계를 갖는지를 분석하는 것은 자못 의의깊은 일이 될 것이다.

기획물 ‘동아시아의 비판적 지성’(창비 2003)의 각권1에 포함된 6인의 지식인은 1946년부터 1963년에 걸쳐 태어난 전후 세대로서, 앞시기의 제국주의적 침략과 식민주의 그리고 전쟁이라는 참화를 직접 경험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모두는 동아시아의 역사적 경험에 대한 책임의식을 공유하면서, 당면한 자본의 전지구화와 신식민주의가 야기한 여러 문제들에 맞서고자 한다. 이러한 점에서 이들은 동아시아의 ‘비판적 지식인’(사까이 나오끼酒井直樹, 쳔 꽝싱陳光興)이거나 ‘신좌파’(추이 즈위안崔之元, 왕 후이汪暉)이고, 혹은 국가권력에 비판적이라는 의미에서의 ‘자유로운 개인’(쑨 꺼孫歌)으로 일컬을 수 있다.

공간적으로 볼 때 이들은 중국과 일본, 타이완(臺灣), 그리고 그 바깥의 미국에 거주하면서 동아시아의 문제에 개입하고자 한다. 19세기 후반 동아시아의 무대에서 발언하고자 했던 지식인들이 일정한 학문분과나 대학제도에 속하지 않고 비교적 자유로운 환경에서 활동했던 것과 대조적으로, 이들은 사회참여로부터 단절되어 지식인의 경험을 학교 안에 가두거나 ‘학문분과의 가로지르기가 대단히 어려운’ 정형화된 대학제도와 전문가와 학자, 경영인, 기술관료 등의 전문분과체제로의 분화가 갈수록 확대되고 있는 상황에서 현실에 개입하고자 한다.

19세기 후반의 지식인들이 어떠한 형태로든지 서구의 제국주의와 관련해 자신을 드러낸 것과 비슷하게 이들이 현실에 개입하는 이론적 자원이 서구로부터 기원한 것이라는 점은 흥미롭다. 사상사와 사회사, 문화연구, 정치경제학, 정치이론, 커뮤니케이션 등 여러 분과영역에서 이들은 포스트모더니즘과 탈식민주의론, 해석학과 현상학, 비판이론, 분석적 맑스주의, 아날학파, 세계체제론 등 다양한 이론적 자원들을 기반으로 동아시아의 여러 현상들을 분석하고 해명하고자 한다. 이론보다는 사료를 통해 개념을 만들어내야 한다고 주장하며 국내 이론의 권위 인정을 촉구하는 야마무로 신이찌(山室信一)의 경우에도 어느 정도는 그러하다.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왕 후이나 추이 즈위안의 비판에서 보듯 이들이 서구의 이론을 그대로 동아시아에 적용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더라도,“서양이론으로 중국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경향이 강화”(『아시아라는 사유공간』 194면)되고 있다는 쑨 꺼의 지적이 비단 중국에만 한정된 현상은 아닐 것이다. 그녀의 말대로 동아시아 지식인사회에서 서구이론을 기점으로 하는 시각이 흔들렸던 적은 결코 없었으며, 이러한 점에서 아시아 여러 나라의 지식인들이 순 아시아적 대화를 전개하는 것이 애초부터 불가능하다는 언급은 동아시아 지식인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민족주의와 민족국가2

 

이들 6인의 지식인들 중에서 미국의 사까이 나오끼와 타이완의 쳔 꽝싱은, 비판적 성찰까지를 포함한 서구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을 뚜렷이 보이고 있다. 이들 지식인의 대부분이 민족주의에 대하여 비판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지만 이 두 사람에게서 그러한 경향이 두드러진 것은 그 영향과 관련해 보면 흥미롭다. 나머지 지식인들과 비교할 때 사까이 나오끼와 쳔 꽝싱은 민족주의에 대한 반대와 함께 미국에 대해서도 비판적이다. 이는 MIT 교수인 추이 즈위안이 미국에 대해 우호적 입장을 보이는 것과는 좋은 대조를 이룬다.

이들 두 사람에게서 보이는 민족주의에 대한 비판은 최근 한국의 학계에서 제기되는 민족주의에 대한 회의와도 궤를 함께한다. 사까이 나오끼의 민족주의 비판은 국민과 민족 및 인종주의에 대한 비판을 포함한다. 민족주의란 어떠한 경우에도 비판받아야 한다는 원리주의적 입장과는 거리를 두면서 그는 자신의 민족주의 비판이 일정한 역사적 판단에 근거를 두고 있다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국민이나 민족 혹은 인종의 어느 것이든 자기완결적이고 균질적인 공동성은 타자를 배제하는 폭력성에 의해 관철되고 완성된다. 국민이나 민족은 근대 역사의 폭력과 차별, 잔혹함과 밀접한 관련을 가진 것으로 근대세계의 식민주의와 성차별, 인종차별 제도는 그것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이다. 나아가 그는 다양한 차원에서 민족주의들 사이의 공모관계에 주목한다. 일본의 민족주의를 특수주의로 간주하는 경향은 미국 민족주의의 보편주의를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전자에 대한 비판은 후자를 옹호하는 것이다. 또한 전전의 일본은 국민적 단결이라는 이름으로 조선의 민족주의나 타이완 소수민족의 저항운동을 탄압하였던바, 다수자(majority) 국민주의의 통합적 폭력은 소수자(minority) 국민주의 가운데 재생산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점에서도 다수자와 소수자의 국민주의는 공범관계에 있으며, 후자가 전자의 인정을 기대하는 한 다수자의 권위는 보증된다고 서술하고 있다.

원주민과 본성인(本省人), 그리고 외성인(外省人) 사이의 심각한 내부갈등에 직면하고 있는 타이완의 쳔 꽝싱 역시 사까이 나오끼와 비슷하게 민족주의(그의 표현으로는 국족주의)에 대하여 비판적이다. 그에 따르면 타이완 사회가 경험한 역사적 상처와 고통은 외래 식민제국주의에 의한 것 못지않게 국족주의와 국가주의에 의해 초래된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그는 타이완을 동남아시아로 회귀시키고자 하는 서진 이데올로기로서의 중화민족주의나, 타이완을 근거로 새로운 제국을 수립하고자 하는 남진 이데올로기로서의 타이완 민족주의 모두를 비판한다. 그는 원주민인 소수 종족집단이 해방되고 타이완의 노동자·농민·동성애자 그리고 여성이 주체가 될 때 비로소 국족주의가 극복될 수 있다고 본다. 국족주의와 국족의 경계를 넘나드는 이러한 역사실천을 그는 “국족 허물기(破國族, post-nation)의 주변문화상상”(『제국의 눈』 107면)으로 일컬으면서 자본주의 계급구조와 가부장제, 이성애체제, 종족 쇼비니즘은 그 과정을 통해 철저하게 전복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국족 허물기가 국가기구를 탈환하기 위한 준비작업이나 무정부주의 운동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사까이 나오끼와 비슷하게 그 역시 민족주의의 실체는 인정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민족국가를 넘어서자고 하지만 그것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으며, 이러한 점에서 그는 민족주의에 대한 자신의 비판이 국가의 존재와 아울러 사회형성에 미치는 구조적 영향력을 인정한 바탕 위에 있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따라서 자신의 민족주의 비판은 민중민주운동 전략의 연장으로, 체제에 의존하지 말고 체제 바깥에서 자아를 재생산해야 한다

  1. ‘동아시아의 비판적 지성’ 각권은 다음과 같다. 쳔 꽝싱 『제국의 눈』(백지운 외 옮김); 쑨 꺼 『아시아라는 사유공간』(류준필 외 옮김); 추이 즈위안 『중국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장영석 옮김); 왕 후이 『새로운 아시아를 상상한다』(이욱연 외 옮김); 사까이 나오끼 『국민주의의 포이에시스』(이규수 옮김); 야마무로 신이찌 『여럿이며 하나인 아시아』(임성모 옮김).
  2. 동아시아 국가들의 다양성은 nationalism과 nation-state라는 개념을 둘러싼 다양한 번역어의 용례를 통해서도 찾아볼 수 있다. 한국에서 흔히 ‘민족주의’로 번역되는 이 용어를 중국의 지식인들은 국가주의, 일본에서는 국민주의, 그리고 타이완의 쳔 꽝싱은 국족주의(國族主義)로 표현한다. 국족주의라는 표현은 중국의 쑨 꺼도 종종 사용한다. 이밖에도 지구화와 전지구화, 근대성과 현대성이라는 표현도 한국·일본과 중국에서 각각 달리 쓰이고 있다. 혹은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왕 후이의 서술에서 보듯이, 동일한 용어가 각각의 사회에서 상이한 의미 내용을 가지고 유통되는 경우도 있다. 19세기 후반 이래 동아시아 국가들이 서구문명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성립된 번역어들에 대한 개념사적 연구는 동아시아 지성사의 흥미있는 탐구주제이지만, 이러한 용례의 차이는 개념사적 접근에 현재적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