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신자유주의를 넘어 어디로?

 

동아시아의 지역간 협력체제 추진을 제창한다

 

 

최태욱 崔兌旭

한림국제대학원대 국제학과 교수. 저서로 『세계화시대의 국내정치와 국제정치경제』 『정부개혁의 5가지 방향』(공저) 『한국형 개방전략』(편저) 등이 있음. eacommunity@hallym.ac.kr

 

 

1. 신자유주의 패권체제의 한 대안

 

미국발 금융위기를 계기로 지난 30년간 맹위를 떨쳐온 미국 주도의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더는 대세가 아니라는 인식이 전지구촌에 확산되고 있다. 그러면서 (기왕부터 진행돼오던) 다음 두가지 논의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이 새롭게 고조되고 있다. 하나는‘자본주의의 다양성’(varieties of capitalism)에 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패권체제 이후의 국제협력’에 관한 것이다.

‘자본주의의 다양성’논의에 따르면 각국의‘생산 레짐’(production regimes)은 그것을 구성하는 노사관계, 직업훈련 및 고용체계, 기업지배구조, 금융체계, 기업간 관계 등의 제반 제도들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발전해왔으며 어떠한 조정 메커니즘에 의해 작동되는지에 따라 서로 다르다.1 따라서 엄밀히 말하자면 생산 레짐, 즉 자본주의의 성격은 나라마다 제각기 다른 것이다. 다만 유형화는 가능한데, 가장 대표적인 것은 영미형이라 불리는 ‘자유시장경제’(liberal market economy)와 유럽형이라는‘조정시장경제’(coordinated market economy)다.2‘자본주의의 다양성’논자들의 상당수는 미국발 금융위기가 시장의 자유, 즉 시장 참여자들간의 자율조정을 강조하는 미국식 자유시장경제의 위기를 의미한다고 본다. 그들은 (미국까지 포함하여) 그동안 자유시장경제를 지향해오던 국가들이 이제 그 대안을 국가나 사회에 의한 시장개입과 조정을 중시하는 조정시장경제에서 찾아야 할 때라고 주장한다. 혹자는‘사회주의 시장경제’를 대안으로 제시하기도 한다. 거기서 더 나아가는 이들은 차제에 자본주의적 요소를 완벽하게 극복할 수 있는 전혀 새로운 경제체제를 모색해보자고도 한다.

패권체제 이후의 국제협력 문제는 1970년대 중반 이후, 특히 1980년대 후반까지 매우 활발히 진행됐던 논의이다.3 1970년대 초 베트남에서의 미군 철수와 브레튼우즈체제의 붕괴 등은 미국 패권의 몰락 징조로 해석되었고, 이에 전세계적으로 패권 부재상황에서 국제협력을 어떻게 성취하여 세계질서를 안정적으로 유지해갈 것인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그 해법은 크게 세가지로 압축됐다고 볼 수 있다. 신자유주의적 제도론(neo-liberal institutionalism)4과 집단지도체제론(collective leadership theory) 그리고 지역간 협력체제론(inter-regional cooperation theory)이 그것이다. 앞의 두 대안은 국제협력체제의 형성과 유지를 가능케 해온 단일 패권국가의 주도 역할을 국제기구나 레짐의 강화 혹은 소수 강대국들간의 리더십 분담으로 대체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이다. 이번 위기 발생 이후 제기되는 신브레튼우즈체제의 형성이나 G2, G8 혹은 G20의 강화 필요성 등은 모두 이와같은 맥락에서 나온 대안들이라 할 수 있다.

한편 지역간 협력체제론은 일차적으로 글로벌 차원이 아닌 지역 차원에서의 해법 모색을 권한다. 이는 글로벌 차원에서 바로 국제협력을 성취하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인데, 그 근본 이유는 그러한 협력에 참여하는 국가행위자의 수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사실 올슨(M. Olson)의 명제대로, 행위자 수가 많은 집단일수록 거기서는 무임승차의 유인이 강하며, 따라서 집단행동의 문제는 심각해지기 마련이다.5 그러나 EU나 NAFTA등에서 드러나듯, 각 지역 내의 인접국가들이‘역내’협력체제를 형성하는 일은 비교적 용이하다. 역내국가의 수는 한정돼 있기 때문이다. 지역간 협력체제론자들은 글로벌 차원의 최종 해법이 국제체제가 이러한‘지역 하부체제’ 중심으로 개편돼가면서 점차 완성될 것으로 본다. 국가보다는 지역협력체가 세계 정치경제의 주 행위자로서 부상하기 시작하면 이‘지역행위자’들은 이제 상존하는 글로벌 차원의 협력 필요성에 부응하기 위하여 이제‘지역간’협력체제 구축에 힘쓰게 된다. 그런데 이 지역간 협력체제 구축은 역내 협력체제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행위자 수가 많지 않은 소집단의 협력문제에 해당한다. 전세계의 지역협력체들은 기껏해야 소수에 불과할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그리 어렵지 않은 협력작업이란 의미이다. 이것이‘지역간주의’(inter-regionalism) 방식에 의한 글로벌 협력체제의 점진적 구축이 현실성 있는 대안이라는 주장의 핵심 근거이다.6

이 글에서는 이러한 두가지 논의로부터 도출 가능한 (미국 중심의 신자유주의 패권체제의) 대안체제 하나를 제시한다. 2장에서 간단히 설명하겠지만, 그것은 각기 제 나름의 자본주의 유형을 갖춘 소수의 지역협력체들간에 형성되는 글로벌 경제협력체제이다. 즉 자본주의의 다양성이 지역별로 최대한 반영되는 지역간 협력체제 구축이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생각건대, 진보의 핵심 가치가 약자 배려에 있다고 할 때, 이 대안이야말로 앞서 말한 패권체제 이후의 세 대안

  1. Peter A. Hall and David Soskice, “An Introduction to Varieties of Capitalism”, P.A. Hall and D. Soskice, eds., Varieties of Capitalism: The Institutional Foundations of Comparative Advantage, Oxford Univ. Press 2001.
  2. David Soskice, “Divergent Production Regimes: Coordinated and Uncoordinated Market Economies in Contemporary Capitalism”, H. Kitschelt, P. Lange, G. Marks, and J. D. Stephens, eds., Continuity and Change in Contemporary Capitalism, Cambridge Univ. Press 1999. 이 양대 유형을 처음 제시한 쏘스키스가 자유시장경제를 영미형이라고 불렀을 때의 영국과 미국의 자본주의는 2차대전 이후 1970년대 초까지 전성기를 누리던 케인즈주의 모델의 그 자본주의가 아님은 물론이다. 그가 말한 영미형 자유시장경제의 전형은 1970년대 말 이후 영국과 미국을 지배해온 신자유주의체제라 할 것이다.
  3. 이에 관한 대표적인 연구물로는, Robert Keohane, After Hegemony: Cooperation and Discord in the World Political Economy, Princeton Univ. Press 1984; Duncan Snidal, “Limits of Hegemonic Stability Theory,” International Organization, vol.39, 1985; Kenneth Oye, ed., Cooperation under Anarchy, Princeton Univ. Press 1986 등을 들 수 있다.
  4. 국제정치학에서의 신자유주의는 경제이념으로서의 그것과 전혀 다른 개념이다. 국가를 자국의 이익 극대화를 목표로 하는 합리적 행위자로 파악할지라도 그들간의 국제협력은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주장을 신자유주의론이라고 한다.
  5. Mancur Olson, The Logic of Collective Action: Public Goods and the Theory of Groups, Harvard Univ. Press 1965.
  6. 더 자세한 설명은, 졸고 「일본의 부상과 국제공공재에 관한 고찰-동아시아 약소국의 시각에서」, 『평화논총』 4권 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