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테러 이후의 세계와 한반도

 

동아시아 자유무역지대의 국제정치와 한국

 

 

윤영관 尹永寬

서울대 외교학과 교수. 미래전략연구원 원장. 저서로 『전환기 국제정치경제와 한국』 『21세기 한국정치경제모델』 등이 있음. ykyoon@plaza.snu.ac.kr

 

 

1. 테러 이후의 세계경제

 

9·11테러는 세계정치뿐만 아니라 세계경제에도 적지 않은 파장을 일으켰다. 정치적으로는 냉전종결 이후에도 심심찮게 부딪치던 미국과 러시아, 미국과 중국 관계를 변화시켰고 국제정치의 미국 주도 경향을 강화시켰다. 경제적으로는 반(反)테러전쟁이 세계화의 흐름에 제동을 걸 것이라는 예측들이 나왔으나, 오히려 미국·유럽·일본의 동반침체 상황에서 위기의식을 느낀 정책결정자들로 하여금 도하개발아젠다(도하라운드)의 출범을 서두르게 만들었다. 특히 엄청난 잠재력을 가진 중국은 WTO에 가입함으로써 세계자본주의의 흐름에 본격적으로 편입되었다.

아프간전쟁의 조기 종결로 세계화의 진행은 크게 느려지지는 않았으나 경제적 세계화의 진전에 대한 안팎의 도전은 지속될 것이다. 사실 9·11테러도 세계화의 진행과정에서 탈락한 저발전상태의 아랍국가 내의 ‘근본주의자들’에 의해 자행되었기에, 90년대 말부터 강하게 표출되기 시작한 인간적 자본주의를 요구하는 반세계화 운동과 맥을 같이하는 측면이 없지 않다. 이미 반세기 전에 칼 폴라니(Karl Polanyi)는 19세기 후반 자기완결적 시장(市場)기능에 대한 유럽인들의 맹신이 사회적 통합의 해체와 함께 1차대전과 같은 대사건을 초래했다고 경고한 바 있다.1 그러나 이러한 서구문명의 경험에 대한 성찰적 경고는 도도한 세계화의 대세 앞에서 주목받지 못해왔다.

한편 세계화 현상이 전세계 차원에서 확산·심화되어가는 와중에서 역설적으로 지역주의 경향이 강화되는 것이 오늘날 세계경제의 모습이다. 예를 들어 유럽연합에서는 2002년 1월 1일부터 유로화의 일상적인 통용이 시작되었다. 이는 물론 10년 전 마스트리히트(Maastricht)조약 체결에서 이미 내려진 결정이었고 3년 전부터는 정부·기업간 전자결제 등을 통해 유로화가 부분적으로 통용되어왔다. 유럽은 지역경제협력의 최고 단계인 통화통합을 거쳐 이제 명실공히 유럽합중국(United States of Europe)의 단계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한편으로는 세계화의 원심력이 커지는 반면 다른 한편으로는 지역주의의 구심력이 강해지는 세계경제의 동학(dynamics) 뒤에는 정치와 전략이 자리잡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날의 세계를 이해하는 데는 ‘중립적’이라는 외형을 한 경제현상의 뒤에서 움직이는 정치의 실체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여기에서는 세계경제의 흐름 속에서 동아시아경제는 어떤 위상을 차지하며 어떤 변화들이 일어나고 있는가? 그리고 그 배후에서 작동하는 정치경제의 역학관계는 어떠한 모습으로 전개되고 있는가? 그러한 와중에서 21세기의 분단 한국은 어떤 방향을 지향해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들을 짚어보고자 한다.

 

 

2. 지역협력질서의 심화와 동아시아

 

유럽과 북미의 경우

유로화의 출범에는 여러가지 의미가 있겠지만 가장 근본적인 것은 아마도 그동안 규모의 경제(economies of scale) 실현을 방해해온 각 국가들간의 통화장벽을 해소한다는 점일 것이다. 예를 들어 그리스로부터 출발해서 유럽연합의 모든 국가들을 거쳐 북쪽의 아일랜드까지 가면 통화교환 때마다 지불하는 수수료 때문에 원래의 돈 가치가 절반으로 줄어든다고 한다. 이제 이러한 거래비용을 제거하고 시장의 범위를 확대해 규모의 경제를 실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로써 미국이나 일본 경제에 대항하여 경쟁력을 제고할 수 있다는 것이 유럽 정치지도자들의 생각이다.

유로화 출범의 또다른 중요한 의미는 이제 앞으로 세계경제를 미국과 유럽이 공동으로 경영하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지금까지 미국이 주로 세계경제를 운영해왔다면 이제는 유럽연합이 주도권을 나누어 갖게 될 것이다. 미국의 프레드 버그스텐(C. Fred Bergsten) 같은 경제학자들도 이 점을 공개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이는 바꾸어 말해 동아시아권이 그들 경제의 활발한 성장세에도 불구하고 세계경제의 주도적 운영에서 여전히 소외될 것임을 의미한다.

한가지 재미있는 현상은 유로화 출범에 대한 중국의 반응이었다. 중국정부는 이를 적극 환영한다고 표명하였다. 중국은 유로화 출범을 그동안 경제적·정치적으로 패권적 지위를 누려온 미국에 대한 견제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특히 중국은 유럽과의 협력증진으로 미국을 견제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예를 들어 옛날에는 유럽과의 거래에서 환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일일이 유럽국가들의 통화로 결제하지 않고 미국 달러화로 해왔으나 이제 달러 대신 유로화로 결제를 할 수 있게 되어 달러에 대한 의존도도 낮출 수 있으리라는 것이다. 이는 지역경제협력 현상의 배후에 교차하는 정치적 고려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처럼 지역경제통합의 선두를 달리고 있는 유럽과 그 뒤를 따르고 있는 북미지역에 비해 동아시아는 상대적으로 뒤처지고 있다. 유럽의 지역경제통합 노력은 내부적으로 2차대전 이후 독일과 프랑스 간의 평화정착의 한 방안으로 제안된 유럽석탄철강공동체의 형성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리고 외부적으로는 미국의 냉전 세계전략에 힘입었다. 미국은 냉전이 시작되자 사회주의 소련의 위협으로부터 유럽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유럽의 경제적인 부흥이 중요하고 이를 위해 경제통합이 바람직하다고 판단했으며, 이에 따라 마샬 플랜(Marshall Plan)과 같은 대규모 지원을 실시한 것이다.

북미자유무역지대(NAFTA)의 형성에도 외부적인 요인이 컸다. 원래 미국은 다자주의 무역질서를 고수해왔으나, 1982년 새로운 무역라운드를 개시하는 데 다른 나라들이 협조하지 않자 지역주의 전략을 채택하기 시작했다. 1988년에는 캐나다와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하고 1993년에는 멕시코를 여기에 포함시켰다. 2001년 4월에는 캐나다 퀘벡에서 미주지역 34개국 정상들이 모여 2005년까지 미주자유무역지대(Free Trade Area of the Americas)를 출범시키자는 퀘벡선언문을 합의하였다.

그런데 1980년대 자유무역지대 확산의 배경에는 이른바 일본식 자본주의의 영향이 적지 않았다. 특히 미국이나 유럽국가들의 입장에서 볼 때 일본식 자본주의는 서구 자본주의와는 다른 모습으로, 국가가 인위적으로 비교우위를 창출하며 여러 장벽을 통해 수입을 제한하고 수출을 장려하는 중상주의적(重商主義的) 모습을 띠고 있었다. 적지 않은 학자들이 이러한 ‘불공정한’ 일본식 자본주의에 대한 반감이 여러 자유무역지대 제안의 배경을 이루어왔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2. C. Fred Bergsten, “Commentary: The Move toward Free Trade Zones,” in A Symposium sponsored by the Federal Reserve Bank of Kansas City, ‘Policy Implications of Trade and Currency Zones’(1991.

  1. Karl Polanyi, The Great Transformation: The Political and Economic Origins of Our Time (Boston: Beacon Press 1957)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