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하성란 河成蘭

1967년 서울 출생. 1996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소설집 『루빈의 술잔』 『옆집 여자』 『푸른수염의 첫번째 아내』, 장편 『식사의 즐거움』 『삿뽀로 여인숙』 등이 있음. gaeulhae@yahoo.co.kr

 

 

 

돼지는 말할 것도 없고

 

 

태초부터 이곳에는 돼지들이 있었다. 크고 작은, 누르스름하거나 점박이인 이천여 두의 돼지들이 빈둥거리면서 하루를 난다. 분홍색 콧구멍은 거칠게 뿜어대는 콧김으로 축축하고, 납작한 코언저리는 굳기름을 핥은 듯 기름기가 돈다. 코로 지푸라기들을 헤집다가도 벌러덩 드러눕는다. 바닥으로 쓰러질 때의 충격은 두꺼운 비곗살이 고스란히 흡수한다. 사료를 실은 외발수레들이 돈사로 들어서면 한바탕 소동이 벌어진다. 부리나케 사료통으로 달려가느라 미처 깨지 못한 동료 돼지의 몸통이나 귀를 밟는 짓도 서슴지 않는다. 헐레벌떡 뒤늦게 서둘다가 발을 접질리고 다시 바닥에 나뒹구는 일도 다반사다. 사료통이 채워지기도 전에 머리를 들이미느라 밀고 밀린다. 그 바람에 사료가 머리통으로 쏟아지지만 아랑곳하지 않는다. 길쭘한 주둥이를 밀어넣어 반쯤 썩은 사과나 옥수수 대궁을 건져 우적우적 씹어댄다.

배가 차면 돼지들은 한가롭게 짚더미에 누워 바닥에 등을 긁어댄다. 늦잠을 잔다고, 살이 찌니 조금만 먹으라고 핀잔을 줄 사람이 없다. 이럴 땐 정말 돼지가 되고 싶다. 이곳은 젖과 꿀이 흐르는 돼지들의 낙원이다. 돈사의 스피커에선 하루종일 모짜르트 교향곡이 흘러나온다. 모짜르트가 돼지들의 정서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는 알 수 없지만 돼지들은 하루가 다르게 피둥피둥 살이 쪘다. 가죽 밑에 두툼한 비곗살이 끼었다. 돈사 맨 안쪽 돈방에서 태어난 돼지들은 차츰차츰 입구 쪽의 돈방으로 자리를 옮겨간다. 잔병치레를 하거나 돌림병이 도는 일만 없으면 육개월 남짓 걸린다. 입구와 가장 가까운 돈방까지 밀리고 나면 그다음은 출하다.

돈사 앞 공터에 울타리를 박는 작업이 한창이다. 인부들 사이를 굴러다니듯 재게 걸으며 감 놔라 대추 놔라 간섭하는 사람이 엄마다. 일이년 사이 웰빙이라는 단어가 급부상했다. 재래종 돼지들을 방목해 키우려는 생각이다. 제주도를 찾는 관광객들이 관광코스로 꼭 토종 흑돼지집을 찾는다는 데서 착안했다. 하지만 울타리를 박으면서도 엄마는 구시렁거린다. 칠십여년 전만 해도 농가에는 몸집이 작고 털이 검은 재래종 돼지 일색이었다. 하지만 수지가 맞지 않았다. 재래종 돼지들은 한배 새끼수가 많고 고기 근수가 많이 나가는 요크셔종과 교배되었다. 빠른 세대교체를 겪으면서 이제 어느 돼지에서도 재래종의 흔적을 찾아보기란 힘들어졌다. 그런데 별안간 토종 돼지라니, 엄마의 눈에 세상은 거꾸로 돌아가는 중이다.

돼지는 기하급수적으로 번식한다. 암퇘지는 21일 간격으로 발정을 되풀이해서 일년에 두 번에서 두 번 반, 여덟 마리에서 열한 마리가량의 새끼를 친다. 그 새끼가 다시 새끼를 칠 수 있는 성돈이 되기까지 예닐곱달밖에 걸리지 않는다. 삼십년 전, 젊은 엄마는 트럭 짐칸에 웅크리고 앉아 품속에서 꿈틀대는 두 마리의 새끼 돼지를 어루만졌다. “이제 반년 뒤면 암퇘지가 열 마리의 새끼를 낳을 거야. 고놈들 중에서 암컷이 다섯 마리라고 쳐, 고것들이 자라 다시 다섯 마리씩의 암컷을 낳는 거야. 6×5, 30×5, 150×5……” 비포장길을 달리던 트럭이 자갈돌을 밟고 거칠게 튀어올랐다. 그럴 때마다 엄마의 암산은 끊어졌다. 엄마의 상상은 돼지들이 돼지우리를 콩나물시루같이 채운 뒤에도 계속되었다. 엄마는 어둠속에서 흰 이를 드러내고 소리없이 웃었다. 그런 상상력이라도 없었다면 엄마는 그 시절을 버텨낼 수 없었을 것이다.

엄마는 달랑 돼지 두 마리만 몰고 이곳에 들어왔다. 그 시절 젊은 엄마의 모습을 떠올릴 때면 막연히 읍의 교회에서 나눠주던 엽서가 생각난다. 엽서에는 키보다 큰 지팡이를 짚은 예수님이 서 있다. 그 주변에는 털실 뭉치 같은 양들이 서 있거나 앉아 있다. 예수님이 길 잃은 한 마리의 양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해준 것은 여름성경학교의 선생이었다. 나는 ‘기다린다’라는 말이 좋았다.

엄마의 돼지들은 예수의 양들처럼 조용하지도 고분고분하지도 않았다. 새끼 돼지들은 쉴새없이 바스락댔다. 하지만 말귀를 알아듣지 못하는 돼지들보다 아버지를 구슬려 이곳까지 몰고 오는 게 더 힘들었다고 엄마는 삼십년이나 다 된 일을 어제 일처럼 말했다. 트럭이 가지 못하는 산길을 걸어가는 동안 엄마는 돼지들 때문에 죽살이쳤다. 새끼 돼지들은 곧잘 길을 샜다. 할 수 없이 양손에 한 마리씩 돼지를 부둥켜안았다. 놀란 돼지들이 질금질금 엄마 옷에 오줌을 지렸다.

엄마와 인부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졌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데 일이 왜 이리 더디냐는 엄마의 말이 화근이었다. 인부가 들고 있던 연장을 내던졌다. 엄마의 키는 일꾼의 겨드랑이에 겨우 닿을까 말까 했다. 엄마는 뛰어오르면서 인부에게 삿대질을 한다. 인부는 어이가 없다는 듯 두 팔을 허리에 올리고 고개를 돌린 뒤 침을 뱉었다. 호락호락 물러설 엄마가 아니다. 엄마는 숱한 수퇘지들의 불을 깠다. 그래서인지 이상하게도 남자들은 엄마 앞에서 오금을 못 폈다. 엄마가 아버지에게 반한 건 단지 아버지의 큰 키 때문이었다고 했다. 아침 조회시간, 공장 마당에 늘어선 올망졸망한 공원들 틈에서 다른 이보다 머리통 하나만큼 더 컸던 아버지는 한눈에 띄었다. “내가 엄말 고대로 뺐으면 어쩔 뻔했수?”라고 물으면 엄마는 생각하기도 싫다는 듯 짧은 두 팔을 내저었다.

엄마는 인부들을 일렬로 세워놓았다. 무슨 말을 들었는지 인부들은 프리킥 찰 선수에게서 골대를 수비하듯 두 손을 바지춤에 모으고 있다. 기어이 인부에게서 사과를 받고 물러난 엄마는 기세등등 집으로 올라간다.

750×5, 3750×5…… 엄마의 상상 속에서 돼지들은 계속 새끼를 친다. 금방 돈사가 넘쳐난다. 돼지들은 앞마당을 채우고 개울 건너 감자밭과 옥수수밭 너머까지 들어찬다. 그대로 두면 지구는 돼지로 가득 찰 것이다.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 부지런히 돼지고기를 먹어야 한다고 H가 말했다.

 

“회원 여러분, 단 두 가지만 명심합시다.” 동호회 번개모임에서 H가 말문을 열었다. 신선한 돼지고기는 연한 분홍빛을 띱니다, 절대 상한 돼지고기를 먹어서는 안됩니다, 돼지고기는 밝은 회색이 될 때까지 반드시 익혀 먹읍시다. H의 말이 끝나자 식당 곳곳에서 산발적인 박수가 터지다 말았다.

동호회원 수가 오천 명이 넘었다. 마포구를 대상으로 한 번개모임에만 사십 명 가까운 회원이 모였다. 동호회 사람들이 삼겹살집을 점거했다. 가끔 가게 안으로 들어오려던 손님들이 문밖에서 돌아갔다. 회원들은 불판 구멍이 뚫린 스테인리스 원탁에 바투 앉았다. H는 다른 식탁들까지 봐두었다가 고기나 밑반찬이 떨어지기 무섭게 주문을 하곤 했다. H는 귀가 드러나도록 짧게 머리를 쳤다. 귀 밑으로 이어지는 날렵한 턱선은 방금 면도를 했는지 파르스름했다.

H가 집게로 고기를 뒤집었다. 비계에서 흘러내린 기름이 인공 숯 위에 떨어지면서 타다닥 사방으로 튀었다. 젓가락으로 고깃점을 뒤집으려는데 H가 집게로 내 젓가락을 톡톡 쳤다. “상큼레몬님, 오늘은 내가 할 테니 다음에 해요.” 맞은편의 안경 쓴 대학생이 웃었다. “첨이라 잘 모르시나봐요.” 번개모임이나 정기모임에서 삼겹살을 먹으러 가면 회원들 가운데 한 명이 그날 삼겹살을 굽는 ‘삼돌이, 삼순이’가 된다, 괜히 이 사람 저 사람 거들다보면 쓸데없이 고기를 여러 번 뒤집게 될 뿐 아니라 뒤집는 시간을 놓쳐 태울 수도 있다, 말을 마친 안경잡이가 검지 끝으로 안경 코받이를 추켜올렸다. “삼겹살은 딱 두 번만 뒤집어야 해요.” H가 말하는 그 순간에 또 타다닥 기름이 튀었다.

식당 안은 열두 개의 불판에서 나는 연기로 금방 부예졌다. 연기가 눈을 찔렀다. 부연 연기 사이로 열심히 삼겹살을 굽는 사람들이 보였다. 삼겹살 마니아들이 이렇게 많을 줄 몰랐다. 연령대도 직업도 다양했다. 뜨거운 불판 탓인지 회원들은 쉽게 술이 올랐다. 고기가 익는 속도가 더딘데다 테이블당 사람수가 너무 많다보니 고기보다는 술을 더 들이켠 탓도 있었다. 식당 구석에서 누군가 들고 있던 맥주잔을 놓쳤다. 시멘트 바닥에서 유리컵이 산산조각났다. 사십대로 보이는 한 사내가 원탁에 둘러앉은 대학생들에게 설교를 늘어놓았다. “……그러니까 일생에 기회는 딱 세 번 온다 이거야. 기회가 올 때 잡아야 한다 이 말씀이야, 알았어?” 사내가 소주를 따라주자 대학생들은 고개를 돌리고 술을 홀짝였다.

남자들은 식당 바닥에 담배꽁초를 비벼끄고 침도 뱉었다. 맞은편의 안경잡이는 어쩌다 눈이 마주치기라도 하면 소리없이 씩 웃었다. 안경알이 점점이 튄 기름투성이였다. 술버릇도 가지가지였다. 남자들 사이에 끼여 앉은 단발머리 여자가 훌쩍였다. “라푼젤님 왜 우세요?” 당황한 남자가 허겁지겁 천장에 매달린 휴지를 말아 여자에게 건넸다. “돼지사랑님 고마워요.” 여자가 휴지 끝으로 눈가를 찍더니 언제 울었냐는 듯 까르르 웃었다. 사십대 사내는 횡설수설했다. 그러다가 “그러니까 열심히 공부하란 말야, 이 자식들아!”라고 고함을 치더니 스테인리스 원탁 위 파무침과 기름장이 놓인 접시에 털썩 머리를 박았다.

H를 가게 밖으로 불러냈다. 봄밤이었다. H의 스웨터에 밴 고기 냄새가 내 쪽으로 날아왔다. 나를 이곳까지 데리고 온 직장동료 S는 곁에 앉은 남자와 무슨 이야기가 그렇게 재미있는지 나는 안중에도 없었다. 어렵게 운을 뗐다. “이런 모임인 줄……” H가 말허리를 잘랐다. “아하, 재테크 동호횐 줄 아셨구나? 십년에 일억 만들기 뭐, 이런 거.” H는 크고 건장했다. “그런 사람들 꽤 있어요. 동호회 이름이 돈방석이니까 곧잘 그런 오해들을 하죠. 하지만 다 그런 거 아녜요? 그렇고그런 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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