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정미경

정미경 鄭美景

1987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희곡 당선, 2001년 『세계의 문학』에 단편소설을 발표하며 작품활동 시작. 소설집 『나의 피투성이 연인』, 장편소설 『이상한 슬픔의 원더랜드』 등이 있음. mkjung301@hanmail.net

 

 

들소

 

 

가봐야 할까?

오늘?

며칠 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던 질문은 시시각각 다른 대답을 만들어냈다. 새삼스럽게 가서 뭘, 싶다가 물 같은 마음으로 한번은 만나야 하지 않을까,에서 다시 오늘? 아니면 며칠 후에?로 바뀌었다. 넌 내게 아무것도 아니야,라던 그녀의 말이 여전히 서운한 건 아니다. 납득할 수 없는 건 그녀의 말이 아니라 그 말을 할 때의 눈빛이었다. 또렷하면서도 모호한, 불안해 보이면서도 강퍅한 눈빛은 처음 보는 사람의 그것처럼 낯설었다. 그 눈빛이 오래 서운했다. 쉽게 결론내리지 못하는 질문일수록, 질문하는 사람의 마음속엔 이미 대답이 예정되어 있다. 손목시계를 한번 들여다본 명조는 이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던 사람처럼 주저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로비의 회전문을 나서자 체감온도가 단숨에 10도쯤 올라간다. 한풀 꺾인 햇살을 받은 매연이 금속성의 비처럼 부옇게 떠 있다. 갤러리는 걸어서 십분도 걸리지 않는 곳에 있다. 횡단보도를 건너 인사동 초입으로 들어서는 잠시 동안에 온몸의 신경줄이 푹 삶아놓은 것처럼 늘어진다. 바닥에 드러누운 직사각형의 돌이 걸음을 흐트러뜨린다. 도대체 무지막지하게 커다란 돌덩이를 길 가운데 던져놓는 이따위 아이디어를 낸 건 누구란 말인가. 불길한 운명을 봉인해놓은 관처럼 생긴 그 검은 돌들을 사람들은 이리저리 피해 걸어다닌다.

수요일 저녁의 인사동은 한시적인 독립국가다. 끓여도 녹지 않는 재료를 한 솥에 붓고 끓이는 듯한 기이한 냄새와 드센 열기가 거리를 가득 메운다. 사람들의 얼굴엔 배타적인 비밀집회에 참석한 듯한 흥분과 설렘이 떠오른다. 오후 여섯시. 갤러리마다 새로 설치한 조각이나 그림, 사진 같은 걸 전시해놓고는 일시에 스커트를 들어올려 속옷을 보여주듯 노출하는 시간. 잘 봐, 이게 나야. 과시의 욕망 앞에 어떤 금기도 힘을 잃는 시간이다. 오늘치 팸플릿을 든 행인들이 뜨거운 맨살을 스치며 지나간다.

명조는 수요일의 인사동을 좋아하지 않는다. 자료를 구하거나 사람을 만나러 나올 때도 목요일이나 금요일쯤, 욕망이 썰물처럼 밀려나간 시간이 편안하다. 누군가의 내면을 깊숙이 들여다보고 싶은 마음도 없고 자신을 드러내고 싶은 욕망 따위도 명조와는 거리가 멀었다. 수혜는 팸플릿을 보내지 않았다. 그러나 지난주부터 크고 작은 리뷰기사들이 신문마다 올라 있어 신작들을 훑어볼 수 있었다. 작품 옆에 서서 찍은 수혜의 사진들은 표정이 다양했다. 활짝 웃거나 무표정한 사진 속 그녀는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달라진 건 그녀의 작품들이었다. 그것도 완전히. 만나지 못했던 일년이 까마득하기도 하고 불과 두어주일 전 같기도 하다. 생각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 이대로 걸어서 종로 쪽으로 나가버릴까. 들러서 얼굴을 볼까.

삐익. 삐익.

짧고 높은 호루라기 소리가 두번 울린다. 골똘히 생각에 빠져 있던 명조는 하마터면 앞에 놓인 검은 돌에 무릎을 부딪칠 뻔했다. 돌의 모서리를 피해 오른쪽으로 몸을 돌리는데 그곳에 서 있던 여자아이가 에너지가 바닥난 로봇처럼 스르륵 주저앉는다. 여자는 앉는가 했더니 바닥에 그대로 누워버린다. 하마터면 명조는 옆에 주저앉아 가슴을 흔들어댈 뻔했다. 주위가 헐렁하다. 서 있는 사람은 명조 혼자였다. 바닥에 누운 사람들은 눈까지 감고 미동도 하지 않는다. 옷차림은 모두 달랐지만 나이들은 비슷해 보였다. 팽팽한 피부들이 햇살을 튕겨낸다. 붉게 달아오른 안색이, 이건 죽음이 아니라 욕망의 퍼포먼스라고 증언하고 있다. 땀이 흘러내리던 등줄기에 소름이 쪼르르 일어선다. 저쪽에서 무심코 걸어오던 사람들이, 무너진 교각 앞에 급히 멈추듯 서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쪽을 쳐다보고 있다.

삐익.

이번엔 조금 긴 호루라기 소리가 한번 울린다. 호루라기를 든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바닥에 누워 있던 사람들이 구물구물 일어난다. 가로수에서 노란 이파리 하나가 허공을 가로지르며 떨어져내린다. 누웠다 일어난 사람들과, 구경하던 사람들이 섞인다. 빨간 구두를 신고 발뒤꿈치를 세번 부딪치면 좋은 일이 일어날 거라고 믿는 아이들이겠지. 운명이 쓰러뜨리지 않으면 제 스스로 무릎을 꺾고 바닥에 쓰러져보는 게 인간이다. 명조는 어쩐지 자신이 더이상 젊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갈까 말까, 저 아이들이라면 그런 고민은 하지 않았겠지. 갤러리는 바로 코앞이었다.

 

 

실내는 꽤 넓었다. 불규칙한 간격으로 띄엄띄엄 서 있는 것들은 들소들이다. 그저 네 발로 땅을 딛고 제 앞의 허공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는 들소들. 풍화된 것처럼 이목구비는 살짝 모서리가 지워져 흐릿하다.

수혜는 입구에서 비디오카메라를 든 남자와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클로즈업하지 말고, 공간이 허락하는 한 멀리서 찍어주세요. 실내에 가득한 사람들의 웅성거림 속에서 수혜의 목소리만이 귓속에서 도드라진다. 전시장의 풍경은, 들소 한마리가 달랑 실려 있던, 신문의 자료사진이 주는 느낌과는 아주 다르다. 나선형으로 꼬인 거대한 뿔을 단 들소들은 쓸쓸한 아름다움을 지녔다. 무뚝뚝한 짐승들 사이의 시공(時空)은 수요일 오후 여섯시의 인사동이 아니다. 아주 먼 곳, 먼 시간의 기운이 맨살에 닿는다. 여기는 어디일까. 천천히 그 사이를 천천히 걸어다니고 있는데 뒤에서 수혜 목소리가 들린다.

“왔어?”

며칠 전 같이 저녁을 먹고 헤어진 사람에게 하듯, 담담한 인사다. 신문이나 잡지에서 간간이 기사를 보긴 했지만 얼굴을 보는 건 일년 만이다. 작년 여름, 열대의 바다를 달려온 그해의 첫 태풍이 도시 위를 휩쓸 때였다. 하윤의 장례식장에 명조는 끝내 들어서지 못하고 돌아나왔다. 풀썩 주저앉을 듯 수척하던 수혜의 모습과 사진 속에서 흰 이를 드러내고 웃던 하윤의 얼굴이 아직도 선명하다.

“작품이 완전히 달라졌네? 우연히 들렀으면 네 전시인 줄도 몰랐겠다.”

“그러게. 팔아야 한다는 강박이 사라지니까, 나도 모르게 달라지더라.”

남의 얘기 하듯 무심하다. 그랬다. 어디 국립이나 사설 미술관에서 구입해 가면 모를까 개인이 소장할 만한 작품들은 아니었다. 아파트나 주택에 두기엔 너무 컸고, 이미지도 너무 강렬했다. 수혜가 조각가로 명성을 얻고 소장가들의 리스트에 지속적으로 이름을 올리게 된 건 줄기차게 지속해온 인물씨리즈 덕분이었다. 얼굴선과 이목구비가 슬쩍 뭉개진 그녀의 인물들은 손바닥으로 쓸어보고 싶을 만큼 사랑스러웠다. 예쁘다,고 말하면 수혜는 예뻐야지, 하고 간단히 대답해버렸다. 대답은 간단했지만 표정은 늘 복잡했다. 작품들은 전시회가 개막하는 날 거의 판매가 끝나곤 했다. 그런 날이면 그녀는 명조의 손에 등을 맡기고 우울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언제까지 이 노릇을 해야 하나, 어깨가 부서질 듯이 아파. 목덜미를 손으로 아프도록 꽉 쥐었다 놓으면, 후우 하고 뭔가를 쏟아내듯 긴 숨을 내쉬었지.

하윤의 죽음과 함께 작품을 많이 팔아야 한다는 강박도 사라졌다. 그 강박이 사라지면서 그녀와 명조 사이의 매듭도 끊어져 나갔다. 납득할 수 없는 그 인과관계에 대해 수혜는 결코 설명하지 않으려 했다. 그녀의 일방적인 결정이었고,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완강했다. 작품을 많이 팔아야 하는 이유는 사라졌다 해도 어쨌든 약간은 팔려주어야 한다. 수혜와 그녀의 딸이 먹고살고, 다음 작업을 계속할 수 있는 만큼은. 어쨌거나 소들은, 너무 쓸쓸해 보였다. 소 주제에.

“어째 추워 보이네?”

명조의 말에 수혜는 새삼스러운 눈길로 실내를 휘 둘러본다.

“그래? ……얘들은 빙하기의 들소들이야. 삼만년쯤 전에 살았던. 오래전에 멸종된 것들이지. 여기 바닥을 두터운 얼음으로 채우고 싶었어. 오늘 하루만이라도 시도해볼까 생각도 했는데, 사람들이 빙하기가 아니라 아이스링크를 떠올릴 것 같아 포기했어. ……어때?”

수혜가 조심스럽게 묻는다. 얼음 이야긴지 이번 전시에 대한 소감을 묻는 건지 애매하게.

“얘네들, 묘하게 사람 마음을 끄네. 자료를 좀 모아줘. 이런 이미지로 캐릭터를 만들어보는 것도 재미있을 거 같아. 사용하게 되면, 로열티는 지불할게.”

“하아.”

수혜는 뜻밖에 단음으로 뚝, 끊어지는 독특한 웃음을 터뜨린다. 크고 투명한 비눗방울을 탁 터뜨리는 듯한 웃음. 저 웃음소리는 눈을 감고도 알아맞힐 수 있다.

언젠가 소파에 앉아 무심코 채널을 돌리다 화면 속에서 하윤을 본 적이 있다. 북녘의 어느 도시였다. 겨울이어서가 아니라 뒤로 보이는 풍광 때문에 지독히 삭막하고 을씨년스러운 그곳에서 하윤은 북측의 의료책임자와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명조는 하윤의 얼굴을 지켜보고 있었다. 착하고 바보처럼 욕심없는, 수혜가 넌더리내는 그 성격이 고스란히 새겨진 얼굴이었다. 착하고 사람좋아 보이지? 결국 자기 하고 싶은 대로 다하는 사람이야. 수혜는 고개를 젓곤 했다. 무슨 얘기 끝엔가 두 사람이 크게 웃었는데, 화면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여자의 웃음소리가 동시에 터져나왔다. 수혜의 웃음소리였다. 수혜는 프로그램이 끝날 때까지 화면에 나오지 않았다. 수혜에게 그 다큐를 보았다는 얘기는 하지 않았다. 하윤이 하는 일에 대해 끊임없이 불만을 터뜨리며, 같이 가서 웃긴 왜 웃는단 말인가, 그런 마음도 약간 있었던 것 같다. 사람은 보이지 않고, 황량한 화면과는 어울리지 않던 그 갑작스럽고도 명랑한 웃음소리를 명조는 이상하게도 오래 기억하고 있었다. 얼굴을 마주하고 들었던 웃음보다 더.

“왜 웃어? 난 진심인데.”

“한뼘 길이 스커트 아래 흰색 팬티가 보이는 여주인공에 지겨워진 애들이 이젠 어슬렁거리는 들소 캐릭터가 보고 싶대?”

명조 역시 웃고 말았지만, 농담은 아니었다. 들소들을 둘러보며, 빙하기를 배경으로 한 게임을 하나 만들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스쳤는데 수혜의 웃음에 머쓱해져 그냥 얼버무렸다.

“음, 독특하고 매력적이란 얘기지.”

사람들이 끊임없이 수혜에게 눈인사를 하고 지나다니는 곳에서 더이상 나눌 얘기가 없었다. 오프닝 시간이 됐는지 큐레이터가 수혜를 불렀다. 음식을 포장한 랩이 벗겨지고 와인이 돌았다. 뿔테안경을 쓴 남자가 짤막한 축사를 했고 수혜의 인사가 이어졌다. 명조는 뒤에 멀찍이 서서 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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