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윤성희 尹成姬
1973년 경기도 수원 출생. 199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소설집 『레고로 만든 집』 『거기, 당신?』이 있음. hitchike@hanmail.net
등 뒤에
십삼만 킬로미터를 달린 자동차는 액셀러레이터를 밟을 때마다 운전대가 심하게 흔들렸다. 손이 떨렸다. 가슴도 떨렸다. 운전대의 떨림이 손을 통해 가슴으로 전달된 것인지, 아니면 그 반대인지 전혀 분간할 수가 없었다. 손톱 밑이 새까맸다. 나는 열 손가락을 코밑에 대고는 있는 힘껏 숨을 들이마셨다. 그 바람에 차가 잠시 중앙선을 벗어났다. 손에서는 흙냄새가 났다. 단지 흙냄새뿐이었다. 어디선가 얍! 하는 기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은 태권도 도장과 창문을 마주하고 있다. 용기가 필요한 날이면 나는 창문을 열어놓고 도장에서 울려퍼지는 기합소리를 들었다. 그러면 나도 모르게 다리에 힘이 들어갔다.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아무 결심이나 하게 되었다. 내일부터는 음식에서 양파를 골라내지 않을 거야, 그녀에게 더이상 전화하지 말아야지, 성공하거든 꾼 돈부터 갚자 따위의 결심들을. “이젠 다시 결심 따위는 하는 일이 없을지도 모르지.” 나는 말했다. 그 말이 밀폐된 자동차 안에서 여러 겹으로 울렸다. 나는 깊숙이 브레이크를 밟았다. 킥! 몸이 앞으로 밀리면서 운전대에 가슴을 살짝 부딪쳤다. 자동차의 모든 창문을 연 다음, 운전석의 문을 열었다 다시 닫기를 서너번 반복했다. 그래도 자동차 안의 공기는 바뀌지 않았다. 다시 차를 출발시키면서 나는 내가 누구보다도 가위바위보를 잘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얼마나 잘했느냐 하면, 초등학교 사학년 때는 단 한번도 술래를 한 적이 없을 정도였다. 나는 가위바위보 할래? 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담임선생님은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이렇게 말해주었다. “가위바위보를 잘하다니, 넌 참 머리가 좋은가보구나.” 태어나서 딱 한번 교회에 갔었는데 그때 나는 그 선생님을 위해 기도했다. 뒤차가 경적을 울리더니 내 차를 추월했다. 나는 나를 추월한 차를 다시 추월하기 위해 속력을 내기 시작했다. 자동차는 시속 100킬로미터 이상을 달릴 수가 없었다. 저절로 과속 방지를 해준다니까. 차 좀 바꾸지, 하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그렇게 대답하곤 했었다. 차는 금방 시야에서 사라졌다. 스무 살 초반에 한 여자를 친구와 동시에 좋아한 적이 있었다. 나는 친구에게 가위바위보로 결투를 하자고 말했었다. “한판은 시시해. 가위바위보를 오백번 해서 더 많이 이긴 사람이 그녀와 데이트를 하는 거야.” 친구의 대답은 이랬다. “미친놈.” 그건 그때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 들어야 하는 말이었다. “미친놈.” 나는 운전석 창문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소리쳤다. 바퀴에 튕겨오른 돌이 이마를 때렸다. 눈물이라도 좀 나와주면 나 자신에게 조금 덜 미안했을 텐데 이상하게도 자꾸 웃음이 났다. 웃는 바람에 커브길에서 운전대를 꺾지 못했다. 차가 공중을 향해 날아오를 때 나는 액셀을 더욱 힘껏 밟았다. 계기반의 바늘이 110을 가리켰다. 차가 공중을 날던 그 짧은 순간 내 머릿속을 스쳐간 생각은 이랬다. 중국어를 배우고 싶어. 패러글라이딩도 해보고 싶고. 수상스키를 타보는 것도 소원이었는데.
머리맡에서 이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그래, 알았어. 알았다고.” 그는 천장에 매달아놓은 줄을 잡고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줄 끝에는 동그란 버스 손잡이가 달려 있었다. 버스 손잡이는 좌골 신경통에 걸린 그를 위해 48호 트럭기사가 달아준 것이었다. 48호는 트럭기사가 되기 전에 버스기사였는데, 버스회사를 그만두기 전에 자신이 몰던 버스에서 손톱자국이 가장 많이 나 있는 손잡이 하나를 떼어가지고 나왔다. 하룻밤에 500km 이상을 달리는 날이면 48호는 손잡이에 난 흠집들을 만지작거리며 이런 생각을 하곤 했다. 이깟 손잡이를 손톱으로 눌러가면서 사람들은 대체 어떤 고민을 했을까? 버스 손잡이를 그에게 선물하고 난 뒤로 더이상 48호는 그런 질문을 하지 않게 되었다. “48호가 마지막으로 왔던 게 언제더라?” 그는 손가락을 꼽아가며 날짜를 계산하려다가 이내 그만두었다. 기억이 뒤엉키기 시작하면서 그는 지나간 일은 모두 어제 일로 생각하기로 했다. 그런 의미로, 48호가 마지막으로 그에게 들렀던 날도 어제였다. 먼 기억들이 더 먼 기억들과 겹쳐졌다. 눈을 감으면 어제의 기억이 영상으로 떠올랐다. 눈을 뜨며 지내는 시간보다 눈을 감으며 지내는 시간이 더 많아졌다. 그는 과거에 묻혀 지내는 노인이 되고 싶진 않았다. 그래서 스스로를 이렇게 위로했다. 단지 어제의 일일 뿐이라고. 그는 접이식 침대에 걸터앉아 탁자 위에 놓인 틀니를 바라보았다. 틀니는 우유회사의 로고가 새겨진 투명 플라스틱 통 안에 들어 있었다. 이곳을 거쳐간 여섯명의 미혼모 중에서 아이에게 분유를 먹이던 여자가 있었다. 그들 모자가 떠나고 난 자리에서 그는 반쯤 먹다 만 분유통을 발견했다. 그는 그 분유를 아껴두었다가 보름달이 뜨는 날이면 한잔씩 타서 마셨다. 분유를 마시는 날이면, 그는 옥수수밭 한가운데로 들어가 굵직한 똥을 누었다. 그리고 자신이 눈 똥 냄새를 오랫동안 맡았다. 다시 이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처음 이 부딪치는 소리를 들었을 적에 그는 그 소리가 자신의 입 안에서 나는 줄로만 알았다. 그래서 그는 이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은 잇몸으로 있는 힘껏 손가락을 깨물어보았다. 아픈 것은 손가락이 아니라 잇몸이었다. 그에게 틀니를 만들어준 친구와 했던 마지막 대화는 이랬다. “튼튼한가?” “그럼.” “적어도 자네보다는 오래가야 해.” “설마, 자넨 이 틀니보다 오래 살 생각이었나?” 그렇게 말할 때 친구의 입에서 풍기던 담배냄새를 아직도 그는 맡을 수가 있다. 어제의 일이었으니까. “틀니를 자명종으로 가진 사람은 세상에 나밖에 없을 거야.” 그는 틀니를 꺼내 잇몸에 끼웠다.
그가 나를 발견했을 때 나는 운전대에 고개를 박은 채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고 한다. 반짝반짝 작은 별. 그도 아는 노래라서 잠시 그 노래를 따라 불렀다고. “거짓말 마세요.” “정말이야. 그런데 음정이 제멋대로였어.” 그가 틀니를 끼우고 맨손체조를 시작하려 할 때 어딘가에서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오른쪽 다리를 끌면서 집 밖으로 나오자 옥수수밭 사이로 찌그러진 자동차가 보였다. 그는 자동차 유리를 손바닥으로 닦았다. 이슬이 소맷부리를 적셨다. “옥수수밭이었으니까 살았지. 옥수수들이 자네를 지켜준 거라니까.” 나는 천장에 매달린 버스 손잡이를 잡아보았다. “아직 일어나지 마.” 그가 내 양쪽 어깨를 눌렀다. “거울 좀 주세요.” “없어.” 나는 손바닥으로 얼굴을 만졌다. 이마에 상처가 만져졌다. “볼 만해. 너무 걱정 마.” 만지기만 했는데도 저절로 신음소리가 나왔다. 나는 두 손을 코밑에 대고 숨을 들이마셨다. 희미하게 피 냄새가 나는 듯했다. 손톱 밑은 여전히 새까맸다. 그가 수건에 물을 묻혀 내 발을 닦아주었다. “바지는 어쨌어요?” 나는 고개를 들어 팬티만 입고 있는 아랫도리를 힐끔 보았다. “맙소사. 그 붕대는 뭐예요?” 그는 수건을 뒤집어 이번에는 허벅지를 닦았다. “부러지진 않은 것 같은데…… 모르지, 뭐.” 수건 끄트머리가 사타구니에 닿을 때마다 웃음이 났다. 어릴적에는 간지럼 따위는 전혀 타지 않았다. “사랑에 실패하고 난 뒤에 간지럼을 타게 되었어요.” 눈이 많이 내리는 날이었다. 전봇대 아래 서서 나는 그녀의 방 창문을 바라보았다. 열려라. 열려라. 눈송이가 코끝을 스칠 때마다 주문을 외웠다. 전봇대 아래에서 나는 쪼그려 뛰기를 백번도 넘게 했다. 그녀가 문을 열면 나는 이렇게 말할 참이었다. “텔레파시가 통했나봐.” 마침내 창문이 열렸고 그녀가 가래침을 뱉었다. 그러고는 이내 고개를 거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