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김지우 金智雨
1963년 전주 출생. 2000년 제3회 창비신인소설상으로 등단. 작품으로 「눈길」 「물고기들의 집」 등이 있음. jireesan@hanmir.com
디데이 전날
영감의 디데이를 하루 앞둔 오늘 아침 우리는 부쩍 짜증이 났다. 황영감 솜씨가 도시 예전 같질 않았기 때문이다. 오늘 영감 하는 걸로 봐선 차려준 밥상도 못 받아먹을 판이다. 운전자가 보행자를 발견하고 급브레이크를 밟는 순간 오른쪽 다리를 바퀴 앞에다 슬쩍 밀어넣고 절묘하게 나동그라지던 예전 솜씨는 온데간데도 없었다. 번번이 기막힌 찬스를 놓치고 한발 앞서 뛰어들거나 어물쩡거리다 뒤미처 밀어넣는 식이었다. 그러곤 아이고 내레 죽네, 내레 죽가서, 엄살소리만 되우 요란했다. 한낱 바람잡이에 불과한 나조차도 지극히 불안하고 초조한 마당에 영감과 한 꿰미에 엮여 밤낮없이 돌아가는 칠범씨야 애가 탈 노릇일 것이다. 연습부터 이렇듯 파장이 나는 판에 막상 실전에 부닥쳐 잘해내리라는 보장이 있겠는가를 생각하면 아찔하기까지 했다. 교통사고를 위장한 자해공갈이라는 게 눈을 부릅뜨고 긴장을 해도 순간적으로 실수를 하기 마련이다. 하물며 자칫 제 꾀에 제가 넘어가는 어수룩한 꼴이라도 보이는 날이면 뉘 오랏줄에 줄줄이 묶여갈지도 모르는 판이다. 더구나 이미 한 건 벌여둔 일조차 협상이 뜻대로 안되고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지 않은가. 말이 쉬워 꾀병환자 노릇이지 이 더운 여름날에 사대육신 멀쩡한 사내들이 더는 못할 짓이었다. 이래저래 우리는 지치고 맥이 풀려버렸다. 우리가 뱀 허물 벗듯 아무렇게나 풀어놓은 붕대들이 밝은 햇살 아래 걸렛조각처럼 널브러져 있어 궁상기마저 더했다. 그 참에도 칠범씨만이 여태 미련을 못 버리고 제 성질껏 영감을 다그치며 막판 연습에 매달리고 있다. 그래봤자 하나마나한 허탕짓거리일 것, 저만치 서서 굿이나 보겠다는 시늉으로 나와 경범씨는 그들로부터 멀찌감치 비켜선다.
“자, 보행자 신호 들어왔고, 우회전 차가 저만치서 달려온다, 서울은행을 지나고 파리바게뜨를 지나서 공일일 대리점 앞으로 바짝 붙어온다, 저 죽을 줄 모르고 달려온다, 영감 뛰어들 채비하고, 이미터, 일미터, 횡단보도 정지선, 끼익! 운전자 급정거했다, 영감 뛰어들고! 오른쪽 다리 갖다대고! 아따 참말로 미치고 팔딱 뛰겠네.”
아니나다를까 이번에도 영감은 길바닥에 덜퍼덕 누워버렸다. 여지없이 칠범씨의 타박이 또 속사포로 날아갔다.
“요번엔 어째 또 그 모냥이다요? 뭣 땜시 고러고 또 벌러덩 나자빠져버리냔 말요? 참말로 혼자 보긴 아깝고만. 고러고 네활개 치고 뻗어 있응께 뭣 같은 줄 아요? 꼭 깨골딱 하고 숨넘어가는 깨구락지 같소. 영감이 생각해도 우습소? 어째 그요? 이 장사 한두 번 해보요?”
“하, 기것 참, 내레 와 이러디? 전 같닪고서리.”
“그래갖고 퍽이나 잘도 죽겠소. 요번 참엔 죽겠네 말겠네 소리는 일절 하들 말란 말이요. 그냥 죽은 듯이 눠만 있으라 해도 어째 미운 시살배기마냥 징그럽게 말도 안 듣고 그요?”
“아이구나, 내레 또 깜빡했구나 야. 와 이러디 덩말?”
“노망 들랑갑소. 내동 잘하던 짓도 못하고. 어쩌끄나. 인자 가고 싶은 디도 다 갔소.”
“말이래두 기러디 말라우.”
칠범씨의 야죽거림에 안 그래도 오그랑방탱이 같은 영감 얼굴이 대번에 실쭉해졌다.
“글먼 잘해야제. 거기가 그렇게 쉽게 가지는 데다요 어디?”
칠범씨가 내처 놀리고 들자 영감은 표정마저 뚱해졌다. 곁에서 그냥 보자니 장난 반 웃음엣소리 반으로 붙인 불이 자칫 노한 바람을 탈 기세였다.
“칠범씨가 웃자고 하는 소리지, 그 연세에 노망이라니요.”
내가 칠범씨를 역성들며 영감을 말리고 나서자 영감이 뚝뚝하게,
“내레 고거이 서운한 거이 아니구 저가 뭔데 간다 못 간다 하냔 말이디.”
하고 속엣말을 툭 내뱉었다. 칠범씨가 무안했던지,
“영감 성미하고는. 그러니까 내가 노망났다 하제. 사람 말귀도 못 알아먹고.”
하는 것을 경범씨가 눈을 끔벅해 눈치를 주더니, 합죽이가 됩시다 합! 하고는 해죽이 웃었다. 어이가 없는지 칠범씨가 너털웃음을 웃었다.
“허허 참. 우리가 애기요?”
“그러고저러고 잠깐 쉬었다나 합시다.”
“그럽시다. 안 그래도 하도 떠들어댔더니 목구멍이 컬컬한 참이요.”
우리는 한적한 그늘을 찾아 신축건물 공사장 뒤편에 아무렇게나 퍼져 앉았다. 바람 한줄기 일지 않았다. 아침부터 맹렬한 기세로 더위가 몰려들고 있었다. 우리는 담배조차 기신기신 꺼내 내 불은 내가 붙여물고 네 불은 네가 붙여물었다. 그러고는 노숙을 하던 습성대로 각자 요령껏 알아서 눕거나 기대거나 했다. 말을 하는 것도 주고받는 것도 귀찮아 우리는 각자 담배만 퍼걱퍼걱 피워댔다. 어느덧 거리는 출근하는 차량들로 붐벼나고 있다.
부스스한 침묵을 먼저 깬 건 영감이었다. 바지춤을 움켜쥐고, 내레 밭에다가서리 거름 좀 주구 오가서 하고는 영감 키보다 훨씬 더 후리후리한 옥수수밭 사이로 스며들어갔다. 칠범씨가 한동안 차량 움직임을 묵묵히 지켜보더니,
“저놈들 중에 한 놈인디, 나만치로 드럽게 재수없는 놈 한 놈.”
혼잣소리인 양 야살을 떨었다.
“칠범씬 저러고 안 살았소? 저러고 아침 일찍 나가서 벌어먹고 말이요.”
“묵은 얘긴 하들 맙시다. 고러고 살아봤자요. 당신들도 살아봤잖수. 세상은 말이요, 바로 저런 놈이 잘사는 데란 말이요.”
우리는 일제히 윗몸을 일으켜 칠범씨가 가리키는 ‘저런 놈’을 바라보았다. 주행신호를 받고 서서히 움직이는 차량들 틈새로 중형승용차 한 대가 갑작스레 두 개 차선에 걸쳐 끼여들기를 시도하는 통에 나머지 두 개 차선 차량들이 옴짝달싹 못하고 쭉 밀려 서 있었다. 여기저기서 급하게 울려대는 경적소리가 사뭇 요란해도 아랑곳없이 ‘저런 놈’은 기필코 후진과 직진을 반복하더니 이윽고 제 갈길로 부리나케 달려가버렸다.
“저런 죽일 놈이 있나.”
딱히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주먹질하듯 단박에 터져나온 소리가 그랬다.
“내일 아침에 꼭 저런 차나 한 대 걸려야 할 텐데.”
하는 경범씨 말에 칠범씨가,
“넷이서 아주 작살을 내주게? 아따, 그럴라면 형씨 둘이서 망을 아주 단단히 봐줘야 쓰겠소.”
하고 은근히 부채질하자 경범씨가 대번에 흔쾌히 맞장구를 치고 나섰다.
“그럽시다. 까짓 망보는 게 어렵겠수?”
그런데 모처럼 의기투합해서 기탄없이 웃고 떠드는 틈새를 타 경범씨가 조심스레 우려를 표명했다.
“이나저나 영감님 사정 봐주려다 까딱하면 줄초상날까 겁나는데요. 우리 일 엮어둔 것도 있는데.”
“줄초상이야 나겠소마는 영감이 어째 예전만 못한 건 사실이오. 아직 하루 더 남았응께 두고 봅시다.”
하는 칠범씨 얼굴빛이 썩 좋아 보이진 않았다. 영감 일이라면 무조건 영감 역성부터 들고 보는 칠범씨인지라 말을 꺼낸 사람도, 미적미적 대답을 하는 사람도, 중간에서 그 둘을 지켜보는 나도, 서로간에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찜찜한 기분을 떨쳐버릴 수는 없었다. 경범씨가 무슨 말인가를 덧붙이려다 칠범씨가 하루만 더 지켜봅시다, 하고 얘기 가닥을 추스르자 그냥 마는 것 같았다. 현재 상황으로선 역시 그 수밖에 없다는 게 우리 모두의 판단이기도 했다.
소변을 보러 갔던 영감은 빈터에 가꿔진 남의 채마밭 구경에 정신을 팔고 있었다. 생판 남의 밭일지라도 푸성귀들마다 실하게 살이 차고 성긋벙긋 넘실대는 게 오지고 좋아 뵈는 모양이었다. 영감 좋아하는 꼴을 가만히 놔두고 볼 칠범씨가 아니었다.
“영감, 담배도 안 태우고 뭐 하요? 삐쳤소?”
“삐치기는 야 내레 와 삐치기? 좋아 봬서리 그러디 않간?”
“넘의 것 좋아봤자 배나 아프지, 졸 게 뭣이 있다요?”
“내레 고향이 평안남도 평양시 선교리 98번지 보통강 근처 남새밭 아니가서?”
“그요? 그래서 시방 고향 생각하요?”
정말로 고향 생각이라도 하고 있었는지 영감은 대답이 없었다. 예감이 이상했는지 칠범씨가 공사장 철제빔에 엇비스듬히 기대고 있던 상체를 일으켰다.
“그런가만?”
“………”
“아따, 쪼까 쳐다보쇼 영감. 그런가만?”
칠범씨의 보챔을 받고서야 영감이 마지못한 듯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기러면 머 하가서?”
“머 하가서는 무슨. 두말 않고 두만강 건너가버리면 그만이지. 안 그요?”
별다른 생각도 없이 몽총히 앉아 있다 불쑥 칠범씨가 뒷짐 지우듯 동의를 구해오자 당혹스러웠다. 평소에도 칠범씨 말이 그 괄괄한 성격만큼이나 익살스럽고 엄벙부렁한 데가 있어 농인가 싶으면 참이고, 참인가 싶으면 농인 때가 많아 말가닥을 추스르기가 쉽지 않은 까닭이었다.
“기러기가 어디 말처럼 쉽간?”
부질없는 소리라는 듯 영감이 해망쩍게 웃었다.
“어려울 건 또 뭐다요? 돈만 있으면 되지. 돈 갖고 안되는 일 있으면 시팔, 한번 나와보라고 하쇼. 지금 세상은 돈 있으면 귀신도 부리는 세상이요.”
“그 말은 맞소.”
경범씨도 나도 그 말엔 즉각 동의를 했다.
“보쇼, 다들 맞다지 않소? 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