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간평 │ 시

 

떠도는 낭만의 기호들

 

 

박형준 朴瑩浚

시인. 시집 『나는 이제 소멸에 대해서 이야기하련다』 『빵냄새를 풍기는 거울』 『물속까지 잎사귀가 피어 있다』 등이 있음. agbai@korea.com

 

 

 

국수 삶는 출출한 밤이다

 

우르가를 보는 밤, 곰보는 징기스칸의 후예, 테무친 같은 나의 아들은 잠들고 참으로 고요한 밤이다, 몽골 영화 우르가를 보면서 자꾸만 그대의 초원에 우르가를 꽂고 싶은 밤이다

 

곰보는 징기스칸의 후예, 곰보의 딸은 부마, 집시도 아닌 것이 아코디언을 연주하네

 

(…)

 

술을 마시며 우르가를 보는 밤이다, 술에 취해 몽골의 낮은 구릉들에 취해, 우르가의 풍경을 듣는 밤이다

 

나는 고독의 후예, 삶에 취한 밤이면 나도 말을 타고 한세상을 건너가지

 

나도 말을 잘 타지, 그대에게 취한 밤이면 말을 타고 아득한 시간의 저편으로 나는 마구 달려가네, 우르가를 들고 그대의 드넓은 초원 위를 달려가는 나는 고독이 사랑한 生의 후예

 

국수 삶는 출출한 밤이다

―박정대 「우르가」(『서정시학』 2005년 봄호) 부분

 

『서정시학』 2005년 봄호는 특집으로 ‘21세기, 젊은 남성시인들의 시세계’를 내세우고 있다. 이윤학 박정대 박형준 이정록 이장욱 장철문 문태준 배용제 권혁웅 손택수 유홍준 등 11명의 신작시 두 편과 자선시 한 편씩을 수록하고 있다. 그리고 ‘한국의 젊은 남성시인들’이라는 제목의 좌담으로 평론가 이광호 유성호 박혜영 김용희 등이 수록된 시인들의 작품세계를 훑어보고 있다. 나도 과분하게 이 특집에 초대되어 잡지를 일별할 기회를 갖게 되었다. 그런데 그중에는 90년대 초반부터 활발하게 시작활동을 하여 이미 중견 소리를 들을 만한 시인도 다수 포함되어 있어 다소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좌담을 살펴보니 이광호(李光鎬)는 이런 선정에 이의를 제기하는데, 주류 담론의 보수화가 젊은 시인들의 새로운 개성이 발현될 수 있는 시적 공간을 제한한다는 그의 지적에 공감이 갔다. 사실 7,80년대의 최승자 이성복 황지우 기형도 등의 시에 비해 90년대 시들이 확연한 시적 개성이 부족한 것은 많은 평론가들이 지적한 바 있다. 가령 이 좌담에 참석한 유성호(柳成浩)가 “우리 시대를 규정하고 있는 복합적인 타자들을 시 안으로 불러들이는 데 게으른 것 같”다며 “다만 풍경과 기억을 병치한다든가, 내면으로 침잠해서 시적 완결성을 꾀한다든가, 이런 작법들이 의외로 많”다고 지적한 것이 한 예가 될 것이다. 허나, 나 자신이 특집에 포함되었고 또 거기에 수록된 다수의 시인들과 지속적으로 교류하고 시를 토론한 사이여서 그런지 이런 소리가 그저 곱게 들리지만은 않았다.

그런데 이 좌담을 설렁설렁 넘기고 특집시들을 읽다보니 좌담자들의 우려가 그저 탁상공론만은 아닌 듯했다. 또 필자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이윤학 이정록 장철문 등의 시는 더이상 젊은 시의 범주에 포함시킨다는 것이 민망스럽게 느껴졌다. 이윤학(李允學)의 시는 자기 폐허의 성채에서 빠져나와 ‘참외꽃의 솜털’을 바라볼 줄 아는 동심을 보여준다(「흔적」). 또 장철문(張喆文)은 ‘할머니가 빚은 수제비 반죽을 집어던진 것’이 둥근 달이 되고 그것이 다시 화자의 딸아이에게로 떨어지며 유전되는, 추석날의 아름다운 저녁을 우리들의 심정에 새겨넣는다(「추석」). 90년대의 대표적인 시인이라고 할 수 있는 이들의 시세계는 자기 기원으로까지 거슬러올라가 상처가 시작되는 지점을 우리 현실에 대입하여 보여주었다. 마치 뒤를 돌아보며 앞으로 내달리는 타조처럼 이들의 시는 기억과 현재의 통합을 아슬아슬한 내달림으로 형상화해온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시적 경향을 지닌 시인들을 21세기의 젊은 남성시인이라 부를 수는 없을 것이다. 한 계절이면 십여종이 넘게 출간되는 문예지에 어느덧 이들의 시가 앞머리를 장식할 만큼 시적 연륜이 쌓인 것도 단적인 이유가 될 듯하다. 시에서 굳이 남성과여성을 가르거나 젊은 시니 아니니 따지는 것도 부질없기는 마찬가지이다. 차라리 90년대의 시적 경향을 넘어서서 지금 우리의 현실을 날카롭게 직시하는 시가 새로움의 전범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박정대(朴正大)의 시는 2000년대의 시적 특징이라 할 수 있는 낭만성을 시적 역량으로 끌어올린 좋은 본보기가 된다. 그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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