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촛점 │ (속) 팔레스타인 노트

 

또다시 총은 패배한 것 같다

 

 

쌈 바후르 Sam Bahour

팔레스타인 웨스트뱅크의 알비레에 사는 팔레스타인계 미국인. 팔레스타인 텔레콤사의 창립을 돕기 위해 1995년 미국에서 팔레스타인으로 재이주함. 『고국: 팔레스타인과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구전 역사』(HOMELAND: Oral History of Palestine and Palestinians, 1994)를 공저로 펴냄. 이 글은 팔레스타인의 온라인 저널 The Electronic Intifada (http://electronicintifada.net)의 ‘a diaries project’란에 실렸으며 6월 27일 글의 원제는 “Breaking the Fear”, 7월 1일 글의 원제는 “Uninvited Guests Become Neighbors”임. sbahour@palnet.com

ⓒ S. Bahour 2002 / 한국어판 ⓒ 창작과비평사 2002

 

 

두려움을 깨뜨리다

 

오늘은 6월 27일이다. 마침내 우리 도시의 초대받지 않은 손님들이 우리집을 방문하였다. 우리가 24시간 통행금지를 당하는 동안 16명의 완전무장한 이스라엘 군인들이 라말라에서 나흘째 실시중인 호별 가택수색의 일환으로 우리집에 들어온 것이다.

우리가 사는 곳은 3층으로 되어 있다. 처가 식구들이 1층, 우리가 2층, 그리고 나의 부모님이 3층에 산다. 아내 아비르(Abeer)와 큰딸 아린(Areen)은 가택연금(국제법에서는 이를 ‘집단적 처벌’이라 부른다) 기간 동안 시간을 보내기 위해 온종일 빵을 구웠다. 아린이 오븐에서 갓 구어 낸 달콤한 ‘하레사’(Haresah)를 싸면서 아래층의 할머니에게 그걸 보낼 생각으로 들떠 있을 때가 오후 7시 30분이었다. 지금처럼 통행금지를 당할 때는 집 밖으로 나갈 수가 없기 때문에 정면 베란다에서 바구니와 밧줄을 이용하여 아래로 물건을 보낸다. 바구니가 흔들리면서 문 안으로 들어가면 처가식구들이 우리가 무얼 내려보냈는지 보려고 열어본다. 이번에는 아린 혼자 베란다에서 바구니를 내려보내고 있었는데 그것이 반쯤 내려갔을 즈음 할머니댁 현관 계단에서 한 군인의 철모를 보았다. 그애는 서둘러 바구니를 끌어올려 안으로 집어넣고 활짝 열어놓은 창문은 닫지도 않은 채 뛰어들어와 군인들이 우리집에 왔다고 말했다. 그애는 잔뜩 겁에 질렸는데 통행금지 조치 이후 어느 때보다 더 무서워했다. 나는 『뉴욕 데일리 뉴스』(New York Daily News) 기자인 코키(Corky)와의 전화를 막 끊고 컴퓨터에 앉아 있던 참이었다.

나는 앞창으로 가서 우리집 돌담 앞에 한 무리의 군인들이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아버지는 그때 마침 우리집에 와 있었다. 우리가 무슨 일이 일어날지 기다리며 앉아 있는데 초인종이 울렸다. 아내가 인터폰을 받아보니 장모가 군인들이 여기 왔으니 문을 열라고 했다. 문을 열었을 때는 군인들이 아니라 장모 파드와(Fadwa)만 들어왔다. 내가 계단에서 맞으니 장모는 그들이 우리 중 한사람만 아래로 내려오면 된다 하더라고 일러주었다. 나는 무슨 일인가 보려고 내려갔다. 처가댁 현관 층계에 이르러 안을 들여다보니 현관은 완전무장한 채 무릎을 꿇고 최대한의 경계자세를 취한 군인들로 빼곡이 들어차 있었다.

한 군인이 현관 문간에서 무릎을 꿇고 있다가 내가 다가가자 총을 겨누었다. 나는 그들에게 인사를 건네고 무슨 일인지 물었다. 그는 내게 헤브루어를 하는지 물었고 나는 그에게 영어나 아랍어를 한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는 완벽한 영어로 위층에는 누가 있는지 물었다. 나는 내 식구들과 아버지가 있다고 답했다. 그는 모두 집 밖으로 나오라고 명령했다. 나는 날씨도 쌀쌀한데 애들까지 나가야 하는지 물었다. 그는 내 말을 끊다시피 하면서 “모두 나오시오”라고 말했다. 나는 위층을 향해 소리를 질러 가족들에게 신분증을 갖고 내려오라고 했다. 기다리는 동안 그 군인은 장모에게 마르완 바르구티(Marwan Barghouti, 파타Fatah의 웨스트뱅크 조직 책임자로서 제2 무장봉기intifada운동을 주도하다가 2002년 4월 13일에 이스라엘 군대에 체포되었음―옮긴이)가 어디 있냐고, 마치 알고 있어야 마땅하다는 듯이 물었다. 나는 그에게 장모가 같은 성을 쓰기는 하지만 그와는 전혀 관계가 없노라고 말했다. 나는 두 사람이 다른 마을 출신이라고 했다. 그는 빈정대며 “아니, 여기가 라말라잖아”라고 했다. 나는 다시 이곳은 라말라가 아니라 알비레이며 내 처가는 디르 가산나 출신이고 마르완은 코베르라는 마을 출신이라고 대답했다. 그가 어리둥절해하는 것 같아 나는 애초의 질문에 답하여 마르완은 ‘당신네 감옥’에 있다고 말해주었다. 그는 능글맞게 웃더니 그 답을 인정하는 것 같았고, 또 그건 사실이었다.

그때쯤 아내가 딸들과 아버지와 함께 내려왔다. 큰딸 아린은 두려움으로 떨고 있었다. 나는 그애를 안아서 무릎꿇은 자세로 무기를 겨눈 채 문간과 현관을 온통 메운 군인들 앞으로 데려갔다. 그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