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또 한번의 잘못

미국의 대북정책

 

 

브루스 커밍스 Bruce Cumings

미국 시카고대학 역사학과 교수. 한국전쟁의 기원에 관한 방대한 연구 The Origins of the Korean War I·II, North Korea: Another Country 등 다수의 저서가 있으며, Koreas Place in the Sun: A Modern History가 본사에서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현대사』로 번역·간행됨. 본지에 「한국전쟁과 애치슨 발언」(64호) 「70년간의 위기와 오늘의 세계정치」(87호) 「비교론적 시각에서 본 시민사회와 민주주의」(92호) 「냉전구조들과 한반도의 지역적·전지구적 안보」(112호)를 기고한 바 있음. 원제는 “Wrong Again”(London Review of Books 2003. 10. 31)이며 필자가 한국의 독자를 위해 쓴 ‘후기’를 붙임. rufus88@uchicago.edu

ⓒ Bruce Cumings 2003/한국어판 ⓒ 2004 (주)창비

 

 

1994년 6월, 빌 클린턴은 평양에서 북쪽으로 60마일 가량 떨어진 영변의 북한 원자로에 ‘선제공격’을 개시할 뻔했다. 당시 지미 카터가 마지막 순간에 북한으로 하여금 영변 핵시설의 작동을 완전히 동결하도록 설득했고,1994년 10월에는 기본합의서에 서명이 이루어졌다. 그후 6년 동안 우파 공화당원들은 이를 맹렬히 비난했고, 마침내 조지 W. 부시가 기본합의에 대한 일군의 반대파들을 행정부로 데리고 들어와 합의를 허물기 시작했으며, 그럼으로써 스스로의 예언을 실행하여 평양과의 위험한 대결을 다시 시작했다. 이라크를 침공하고 사담 후쎄인이 가진 무기에 대한 각종 과대경고를 했던 바로 그 사람들이 그와 비슷한 방식으로 북한의 위협을 과장해왔다. 실상 두번째 북핵 위기는, ‘한껏 자극적으로 꾸며진’ 정보를 이용해 평양을 벽으로 몰아붙이고 쌍방의 협상을 불가능하게 만든 2002년 10월에 시작되었다.

침공을 정당화하는 데 이용된 놀랄 만한 정보기관의 실책에 대해 훨씬 더 논쟁적인 영국 대중들이 (말하자면) 즉각 싸울 태세를 갖추었음에도 불구하도, 자기만족에 빠진 미국의 대중들은 지금껏 부시가 단 한개의 대량살상무기(WMD)도 발견하지 못한 사실에도 개의치 않는 듯하다. 이런 현상의 전모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미국내 최고 신문들과 최고 추적보도 기자들(둘 모두)의 글을 끈기있게 읽어보아야 한다. 『뉴욕 타임즈』 12면에 묻혀 있는 주디스 밀러(Judith Miller)의 길고 세세한 기사를 보자. 총 34문단 중 30번째 문단에 가서야 우리는 이라크의 무기 소재지에 대한 미국의 전쟁 전의 정보가 종종 ‘어처구니없을 만큼 잘못된’ 것이었음을 알게 된다. 어느 미군 고위간부의 말은 이러했다.

 

팀들은 사진과 추정위치 (…) 등이 들어 있는 묶음을 받게 됩니다. 이런 식의 지시를 받지요.“이 장소로 가라. 거기에는 맥도널드 가게가 있을 것이다. 냉장고를 들여다봐라. 프렌치 프라이와 치즈버거, 그리고 코카콜라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그리로 가보면, 냉장고도 없고 맥도널드도 없을 뿐 아니라 맥도널드를 거기에 들여와야겠다는 생각조차 없었던 겁니다. 매일 매일이 그런 식이에요.

 

이 군간부가 속한 ‘MET 알파’ 그룹은 미정보기관 내 이라크 조사단이 “대단히 의심스럽다”고 간주한 시설을 조사하러 바스라에 파견되었다. 조사단은 핵무기에 사용되는 부품들을 찾아냈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 팀이 실제로 발견한 것은 ‘커다란 공장용 야채찜통 몇개’였는데 수송상자에 러시아어로 선명하고 정확하게 그렇게 표기되어 있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능력에 관한 정보기관의 주장은 이보다 훨씬 공개적인 검증을 덜 받았다. 십년이 넘는 기간 동안 CIA는 북한이 1989년에 원자로에서 얻을 수 있는 최대치의 플루토늄 11 내지 12kg 이상을 재처리하지는 못했을 것이므로 한두 개의 핵폭탄을 갖고 있을지 모르나 그 이상은 아니라고 주장해왔다. 이런 결론은, 정부의 북한전문가들을 모두 소집해서 북한이 핵폭탄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손을 들라고 한 회의 후,1993년 11월의 국가정보평가(National Intelligence Estimate)에서 처음 등장했다. 절반을 갓 넘긴 수가 그때 손을 들었다. 다수를 겨우 차지한 이 사람들은 북한이 1989년에 추출한 연료의 마지막 1g까지 전부 재처리했으며,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이 플루토늄을 폭발시킬 내파장치를 만들어냈다고 가정했다. 여기까지 맞다 쳐도 CIA가 지칭한 것은 ‘장치’였지 폭탄은 아니었다.

그 이래로 해마다 CIA 국장은 북한이 한두 개의 (장치가 아니라) 폭탄을 갖고 있을 “확률이 절반 이상이다”고 의회에 말했고, 신문들은 판에 박은 듯 이 가정을 사실로 보도해왔다. 그러나 1996년 리버모어(Livermore)와 핸포드(Hanford) 연구소의 핵전문가들은 북한이 가진 연료량에 대한 추정치를 단 하나의 핵폭탄에 드는 양보다도 적을 것으로 보았다. 그들은 결론짓기를, 북한이 고작해야 7 내지 8kg의 연료를 가진 반면,“폭탄 한 개를 처음 제조하는 데는 무기급 플루토늄 10kg이 들고” 그 다음부터는 개당 8 내지 9kg이 든다는 것이다. 가장 뛰어나며 또 가장 믿을 만한 독자적 전문가 중 한사람인 데이비드 올브라이트(David Albright)에 따르면,“최악의 경우에 대한 가장 신빙성 있는 추정치”는 북한이 6.3에서 8.5kg 사이의 재처리 플루토늄을 가졌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달리 말해, 언론에서 끝없이 복창되는 CIA의 숙지된 추측은 틀린 것으로 보인다. 눈에 잘 안 띄는 이 오류의 결과는 그것이 미국과의 협상에서 북한의 입지를 강화하는 역할을 해왔다는 점이다.

『뉴욕 타임즈』 백악관 담당기자 데이비드 쌩어(David Sanger)는 미 정보기관으로부터 나온 ‘특종들’을 너무 자주 기사화하는 바람에 몇몇 동료들은 그를 그냥 ‘특종’이라 부른다. 불행히도 그중 상당수는 잘못된 것이었다. 쌩어는 북한이 보유할 수도 혹은 아닐 수도 있는 한두 개의 핵장치들에 관해 CIA가 덧붙인 모든 단서조항들을 생략하는 일에 특히 능숙하다.1998년 8월, 『뉴욕 타임즈』 1면에는 북한이 은밀히 핵무기를 만들고 있는 거대한 지하시설 위치를 정보기관이 파악했다는 내용의 그의 기사가 실렸고 이는 당연히 언론에 일대 소동을 야기했다. 그러나 북한의 (이례적인) 허가로 미군이 그곳을 사찰했지만 아무것도 없고 방사능 물질의 흔적조차 없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그 소식은 주요기사 대접을 거의 받지 못했다.

2003년 7월 20일, 『뉴욕 타임즈』는 미 정보기관이 “무기급 플루토늄 생산을 위한 두번째 비밀공장”을 찾아냈다고 또다시 주장한 쌩어의 기사(톰 섕커Thom Shanker와 공동작성)로 앞서 나갔다. 정부의 한 고위관리는 『뉴욕 타임즈』의 이 정보와 관련해 “매우 우려할 만하나 아직 확실한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증거가 된 것은 북한이 유일한 재처리 시설이라 밝힌 영변 핵단지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에서 플루토늄 생산 때 배출되는 가스인 “크립톤85(kryton-85)의 수치가 높다”는 점이었다. 크립톤85의 수치 상승이 숨겨진 두번째 핵시설을 나타낸다는 이야기였다. 남한의 전문가들은 즉각 이 기사를 부인했고, 데이비드 올브라이트는 크립톤85의 수치 상승을 탐지함으로써 숨겨진 혹은 비밀스런 장소의 위치를 집어내는 일이란 사실상 가능하지 않다고 단언했다. 게다가 북한은 (플루토늄과 달리) 여러 시설에서 크립톤85의 배출이 정상수치를 넘어서지 않을 정도의 소량 단위로 우라늄을 농축할 능력이 있다. 요컨대 두번째 시설이란 없는 걸로 보인다.

밀러의 기사가 그랬듯이 쌩어-섕커 기사에서도 진짜 결정적인 사실은 마지막 단락에 등장하는데, 거기에는 근래 북한의 핵설비가 “정확한 숫자를 알 수 없는 여러 다른 장소”로 분산된 점을 감안할 때 그에 대한 선제공격이 어떤 난점을 갖는지 서술되어 있다. 매일같이 읽어온 경험에 비추어보건대 『뉴욕 타임즈』는 이때 처음으로 북한에 1만5천개나 되는 “